그대가 충분히 만족했기를...
그대가 내어준 다정함 한 스푼을...
그대가 내어준 다정함 한 스푼을...
- 당신이 무의식을 의식하게 될 때까지 당신의 삶을 인도하는 것이고, 당신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것이다.
<칼융>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성에 제어되지 않고 욕망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고 이념의 수행자가 아니라 욕망의 실행자가 된다는 것이다.
-수행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어라.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기준의 수행자가 아니라 기중의 생산자가 되어 보겠다는 것이다.
<최진석 교수>
포근함과 다정함 두어 스푼은 기본으로 내어주고, 공감과 조용한 위로를 여운으로 남길 줄 아는 사람.
늘 열심히 자신의 사명을 궁금해하며 삶의 작은 순간도 버려지지 않도록 애쓰던 사람.
20대와 30대를 시각디자이너의 모습으로 40대엔 남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며 상담 사회복지사, 미술심리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해 50세 미술심리상담소를 오픈해 자신이 원하는 길,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목표를 이루었던 사람.
그 과정에서 50세에 늦둥이 아들을 출산해 아기엄마로서의 행복을 다시 만나고, 육아와 심리상담 공부를 병행하며 자신과 아이를 성장시키던 책임감 있게 어떤 역할에서든 정성을 다해왔던 사람.
나의 20대의 멘토로 커리어우먼의 정석을 보여주었고, 자신의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닮고 싶었던 나의 선배님.
"새로운 세상에서의 삶은 이곳보다 훨씬 편안하고 여유 있고 자유로운 곳인가요?"
"이곳에서 그토록 찾고자 했던 소명, 삶의 의미,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그것을 찾았기에 이렇게 서둘러 하늘나라로 돌아 간 건가요?"
"선배님! 함께한 30년간의 인연으로 보았을 때 정성껏 진심으로 자신을 돌보고 가족을 돌보며 주변을 살피었던 넉넉한 사람의 삶이었습니다. 하늘에 가셔서 잘살아내고 왔다며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애타게 애간장 녹이는 일 없이 평안히 쉬어 보세요. 함께한 소중한 추억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3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나누며 살았던 선배가 작년 12월 초 급하게 우리를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호스피스병동에서 잠시 인사를 나누었고, 이틀 후 선배가 떠났다는 소식이 왔다.
인사를 나누었을 때 또렷했던 눈동자, 무표정했으나 나를 향해 말대신 여린 표정으로 전하던 속삭임이 선명하게 남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에게 선배의 죽음은 충격이었고 받아들이기엔 통증이 컸다.
55세의 6살 막내아들을 두고 긴 시간 준비했던 상담사의 일을 내려놓고 목표했던 그곳, 자신의 삶에서 찾고자 했던 소명을 향해 그렇게 열심히 던 그가 너무 힘없이 허무하게 빠르게 이곳에서의 시간을 마쳐 버렸다.
함께했던 시간 동안 나는 선배를 보며 마냥 멋있는 여성,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 하루 한 시간도 그냥 보내지 않는 철저한 사람, 그것만으로도 버거울 텐데 한 가정의 아내로 엄마로(늦둥이까지 찾아온 현실) 살아온 그가 대단했다.
돌아보니 평소 앓는 소리 하지 않았기에 견뎌내고 버텨내는 삶에 대한 위로를 받기는 했으나 내가 선배를 위해 나눌 기회는 없었던 것 같아 가슴에 무거운 바위가 들어와 박히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며칠을 그렇게 슬피 울었다. 그렇게 울어 본일도 없었던 것 같다.
눈물이 말랐구나 싶어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진한 커피 향이 나를 만지는 순간 우리가 마주 앉아 마시던 그 맛있는 커피 한 잔의 기억이 눈앞에 그려져 다시 울었고, 갤러리에 선배와 함께한 사진을 보고 온몸에 힘이 빠져 누워서 울었다.
설연휴를 앞두고 납골당을 찾았다.
평소 그가 좋아하던 커피를 준비해 함께 마시려 했지만 커피잔을 내려놓을 만한 조건도 되지 않았고 나 또한 선배와 속삭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칸칸이 모셔진 분들이 바로 옆, 위아래 계시니 어떻게 자리를 잡을 수가 없어 커피를 손에 들고 서성이고, 두어 바퀴 맴돌다 다시가 서성이다 돌아왔다.
선배를 보내며 슬프고 아프고 안타까웠던 것들을 인정하고, 일상이 안정되기까지 약 3개월 정도 걸렸다.
위의 최진석 교수와 칼융의 문장은 필사 노트에 자주 쓰던 내용이다.
오늘도 필사 노트에 그 문장을 써보았다.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애타게 찾는다. 자신다운 삶을 자신의 소명을 의미를...
헌데 그렇게 치열하게 열심히 애쓰고 애써서 그것을 찾아내는데 온 힘을 다해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즐겁고 내가 사계절을 느끼며 변화를 알아차리며 조금 더 여유 있게 살포시 걸으며, 아프지 않아도 하루를 딩굴딩굴 굴러도 죄책감 가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선배가 조금 더 느슨하게 퐁당퐁당 열심히 생활해도 잘 지내며 목표로 하는 위치에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숨을 좀 더 깊이 쉬어가며 느릿한 하루를 보내며 아주 천천히 하늘도 땅도 나무도 풀과도 인사 나누자 떼쓰며 눈 맞추며 걸어가고 싶다.
최책감,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집착, 특별한 의미를 찾는 일을 퐁당퐁당 쉬어가며 한참을 앉았다가 누웠다가 움직여도 나를 들들 볶지 않도록 더 자주 숲을 찾아야겠다.
선배가 하늘에서 푹 쉬었다가 다시 이곳으로 여행 오게 된다면 나무늘보만큼 여유 있게 천천히 삶을 살아 보길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