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과 주어진 역할 사이에서..
꽃 같은 그대,
나무 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그대는 꽃이라서 1년이면 10번은 변하겠지만
나는 나무 같아서 그 10년, 내 속에 둥근 나이테로만
남기고 말겠다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길 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 않게
그대의 꽃 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
<이수동 / 동행>
꽃봉오리가 올라와 이슬 먹고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아침 햇살 덮으면 활짝 꽃잎 펼쳐네 기지개를 켜고 한없이 어여쁘게 놀다가 지쳐, 밤이 오기도전에 한 잎 한 잎 포개어 잠을 청하고를 반복하다가 찬바람 불면 시들시들 사라졌다가 따뜻한 봄이 되면 약속을 지키려 다시 찾아오는 꽃과 봄 여름 가을 겨울 꿋꿋하게 한 곳에 자리 틀고 평생을 버티고 있는 나무와 꽃은 본질이 선명하게 다른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꽃을 보고 나무의 모습과 비교하며 나무처럼 변함없는 한결같은 든든함을 요구하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무 입장에서 생각하면, 10년 동안 계속해서 모습을 달리하는 꽃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하지 않을 것을 강요한다면, 꽃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본질 자체를 부정당하는 일입니다.
=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 황인환 ]
지난 주말 새로 산 둥글고 두툼한 방석 위에 앉아 읽었던 책 속에서 위의 문장이 담긴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단단히 고정시켜 두고 머그잔에 든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다.
왜?
너무나 당연한 내용인데 왜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는 각자 자신의 본질을 지키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일, 타인의 본질 또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일을 왜 어려워하는 것일까?
삶을 살아가며 가지게 되는 여러 역할 속에서 요청받는 또는 강요받게 되는 것들의 대부분은 누군가 조금 더 대접받고 조금 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넘기고 싶은 속내가 깔려 있기 때문 아닐까?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의견을 나누의 타협하고 일을 나누는 것, 혹 누군가가 더 많은 일을 가져가하게 되더라도 납득할 수 있도록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예의상 그 정도 정성은 보야야 한다.
MBTI를 들먹이며 "난 원래 그래" "뒤끝은 없어" "그냥 해야지 당연히~ 우리도 그랬어!"라고 말하는 시원시원한 성격 자신이 생각하는 건 모두 입 밖으로 흘려보내야 하고 뒤끝은 없는 사람.
그럼 분위기상,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 한숨 돌려 생각을 정리하고 말모양을 다듬어 내어 보내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 위의 직설적이고 말모양이 전투적인 사람을 향해 넓은 가슴으로 끄덕끄덕 하고 싶은 말 다해야 숨 쉬고 살 테니 다하시오~ 하며 받아 내어주어야 한다는 건가.
자신의 모양새는 이렇게 생겼으니 받아들여라가 어떻게 그렇게 당연하게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건지.
타인의 타고난 모양새는 안중에도 없는 말이라 생각한다.
무례하다. 무례하다.
이런 사람을 뭐라 불러주면 좋을까?
긴 혼잣말을 하고 난 뒤에야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에 이런 가사가 떠 올랐다.
[내가 되고 싶으나, 사람들이 원하는 나, 네가 사랑하는 나, 또 내가 빚어내는 나, 웃고 있는 나, 가끔은 울고 있는 나, 지금도 매분 매 순간 살아 숨 쉬는 ~]
살면서 가지게 되는 역할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답게 살고자 하는 만큼, 타인 또한 그답게 살는 것을 존중하고 협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내가 나답게, 내가 되고 싶은 내가 있으니 서로 협조해 주고 응원해 주어는 것에 정성을 담아 한다.
잠시 내 마음을 살피는 것을 소홀하게 하면 어느 순간에 늑대에게 잡아 먹히는 토끼가 되듯 강하게 역할에 대해 요구가 늘어나고 강요에 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날이 좋았던 어느날 넓은 안전한 풀밭에서 쉬어가는 토끼의 모습으로 있다가 늑대의 말에 정신이 번쩍들어 "난 순한 토끼가 아니라 3월의 미친 토끼가 될꺼야"라며 두 주먹에 불끈 힘주며 대응했던 일이 떠올라 문장이 든 페이지를 한참을 잡아두게 된것이다.
컵에든 커피를 다 마셔 버린것 처럼 불편했던 그 순간도 '훅~' 날려 보내며....
* 미친토끼 =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