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사업은 필요악

하지만 필요악이라고 하는 게 죄송할 정도로 사랑함

by 메건


필요악: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회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악

정부지원사업을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다.

창업자 입장에서 이 단어는 정부지원사업을 표현하기 딱 알맞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매출이 자생할 정도로 바로 터져서 외부 도움 없이 성장하는 게 당연히 바람직하다.

하지만 예비·초기 창업자에게 그런 일은 너무나 드물다.

그래서 정부지원사업은 불편함을 알면서도 절실히 기대게 되는 제도다.




정부지원사업을 해본 창업자라면 안다.

사업비를 받는 대신 치러야 하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

복잡한 정산 절차와 요구되는 수많은 서류, 그리고 거듭되는 반려에 하루가 통째로 사라진다.

사업비 등록할 일이 생기면 벌써 지친다.

얼마 전 만났던 대표님께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셔서 재밌었는데, "그렇게 깐깐하게 평가해서 뽑았으면 제발 좀 믿고 맡기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사업 도중 피봇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더라도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된 상태라면 원래 아이템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

평가를 받아 통과된 건 지금의 사업계획서이지 그때그때 바뀌는 새로운 아이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간에 방향을 바꾸려면 일일이 승인을 받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허용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모순이 생긴다.

시장이 원하는 변화보다 계획서에 적힌 틀을 먼저 따라야 하는 상황.

정부지원사업의 혜택을 제대로 받으려면 처음부터 완벽한 사업 아이템을 정해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고객을 보며 달려야 하는 창업자가 다른 일에 시간을 허비하는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다.

일부 창업자들이 한 번 겪고 질려서 정부지원사업은 쳐다보지도 않고, 후배 창업자들에게 하지 말라며 만류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극초기 스타트업에게 이만큼 좋은 기회도 없다.

매출이 없는 상황에서 몇 달을 버틸 수 있는 숨통이 트이고, 실패와 시행착오를 감내할 여유가 생긴다.

같은 길을 걷는 창업 동기와 멘토, 투자자들을 만나는 네트워크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산이다.

개인적으로는 제공되는 교육 프로그램에도 만족도가 높다.

마케팅, 재무, AI 등 창업자라면 알아야 하지만 혼자 배우기 어려운 실무 지식들을 배울 수 있다.

특히 창업 선배님들의 직접 강의는 살아있는 노하우로 가득해 존경심이 차오르고 짜릿한 전율마저 느껴진다.




국가도 정부지원사업을 꾸준히 운영하는 이유가 있다.

이는 단순히 창업자 개인을 돕는 복지가 아니라, 나라 전체 경제를 위한 투자다.

얼마 전 새롭게 배웠는데 스타트업은 기존 기업보다 훨씬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성균관대 창업지원단 교육 자료

창업이 늘어날수록 고용이 늘어난다.

즉, 정부지원사업은 스타트업들을 키워
사회 전체의 성장판을 촉진하는 전략이다.

모두가 잘 되는 건 아니고 폐업이 되는 아쉬움도 있지만, 많은 씨앗을 뿌리고 그중 일부가 크게 성장하는 기회를 만드는 방식이다.




따라서 착각하면 안 된다.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고 해서 내 사업이 곧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평가 구조는 상대평가다.

절대적으로 좋은 사업을 통과시키는 게 아니다.
비슷비슷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점수가 조금 더 높았다는 이유로 뽑히는 경우가 많다.

순수 사업성 보다 어느 지역, 어떤 주관기관에 신청을 했는지에 영향을 받아 결과가 갈리기도 한다.


사업비가 점수에 따라 차등 지급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상위권인지 턱걸이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청창사의 경우 문을 겨우 닫고 들어온 수준이었다ㅋㅋ

내 사업 아이템이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일말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덕분이라는 걸 의미했다.

처음에는 속상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 시간을 발판 삼아 진짜 성과를 내는 건 내 몫이다.




결국 모든 창업자는 정부지원사업의 품을 떠나야 한다.
언젠가는 지원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사업을 해내야 한다.
그때까지 좋은 기회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실력을 키우고, 진짜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나중에는 후배 창업자들을 도와주는 선순환의 고리에 참여하고 싶다.

단순히 ‘필요악’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귀하고 값진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 믿음에 꼭 보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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