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가 만능이 아니더라
태초에 심테 다이어리가 있었다.
흔히 OCEAN이라고 불리는 성격의 5요인(Big 5) 검사 결과에 따라 맞춤형 디지털 다이어리를 추천해 주는 하이어리의 첫 번째 아이템이었다.
MVP로 노션 템플릿을 만들고 노코드 툴로 랜딩 페이지를 개발해 메타 광고를 돌렸다.
그 결과 완벽한 지표를 얻었다.
광고 클릭률 4%
랜딩페이지 전환율 12%
최종 구매 전환율 20%
누가 봐도 좋은 지표였기에 '이 사업은 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도 그래도 이 성과 덕분에 예창패에 합격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가격은 터무니없이 낮았으며, 서비스를 유지하려면 내 리소스를 끝없이 갈아 넣어야 했다.
한마디로 사업 구조 자체를 잘못 설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MVP 관점에서 보면 '성공'이었다.
MVP는 타당했고, 분명히 작동했다.
지표는 예쁘게 나왔고, 스스로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그 모든 건 희망고문에 불과했다.
퇴사 후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하며 나는 가장 먼저 책을 읽었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봐야 한다고 전해 내려오는 필독서들을 읽기 시작했다.
책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도 그중 하나였다.
MVP를 만들어 검증하기
될 놈인지 알아보기
XYZ 가설을 세워서 테스트하기
그대로 실천했다.
심테 다이어리도 그렇게 탄생했다.
아이템이 아니라 시장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책을 읽으면 창업은 참 명쾌하다.
원리가 너무나 간단해 보인다.
가설을 세우고, MVP를 만들어 검증하고, 피봇하거나 지속하거나.
근데 막상 내 사업에는 이 간단한 게 도저히 적용되지 않는다.
MVP도, 린 스타트업도, 고객 검증도 다 맞다.
하지만 그 방법들을 안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방법들을 내 상황에 맞게 시도하고, 경험 속에서 배우고,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내가 내공이 부족하고 그 정도 경지에 도달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책 속의 성공 사례들은 단번에 완성된 게 아니다.
수백 번의 시행착오와 끝없는 실패를 버텨낸 끝에 남은 결과물일 것이다.
그런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성과와 이제 막 시작한 나를 같은 선상에 두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창업 서적들이 절대 무의미하지는 않다.
그 책들이 있어서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창업 이론에 빠삭하다고 해서 사업의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닌 듯하다.
결국 직접 부딪히며 깨우치는 수밖에는 없다.
또 쳐맞을 준비는 되어 있다.
어쩌면 다음번에는 잘 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날아오는 펀치를 기꺼이 맞아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