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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어리 Jan 29. 2023

키키 스미스

작가의 아시아 첫 미술관 개인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설 연휴에 억지로 시간을 내어 들른 전시는 고맙게도 부풀어 있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전시 제목 "자유낙하"는 그녀의 동판화 작품의 제목이기도 했고, 미술관에 따르면 "시대의 굴곡에 따라 조형적 운율을 달리해 온 그녀의 예술적 특성"을 풀어내기 위한 의도로 "작품에 내재한 분출과 생동의 에너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10여년 전, 대학원 분과 세미나시간에 읽었던 "1990년대 이후의 미술사" 책 도판에서 그녀의 작품을 처음 보았다. 흔히 "애브젝트(abject) 아트" 또는 "혐오미술"의 한 사례로 등장하는 그 조각은 소름끼치게도 등을 여덟 줄로 길게 난도질 한 여성의 인체 조각 <The Sitter>(1992)이었다. 실물 크기로 제작되었을 법한 그 살색 조각과 선홍색으로 깊이 패인 상처는 분명 폭력성이 드러나는 작품이었음에도 이상하게 내 마음을 끌었다. (도판: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이미지 아카이브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737653 )


1980년대 이후 미국을 휩쓸었던 젠더 이슈들, 특히 임신중절을 둘러싼 여성 신체에 대한 논란은 그녀의 작품에서 여성 이미지를 다루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가부장제가 여전히 공고한 서구사회에서도 여성 신체가 담론화 되는 데에는 폭력성을 피할 수 없다. 작가는 벌거벗은, 취약한 여성의 몸을 전면에 내세우는 예술적 저항의 방식으로 그 시대에 응답한 것이 아닐까.

<탄생>, 2022, 청동, 99.1x256.5x61cm

해부학을 공부했다고 알려진 그녀의 평면 작품들 판화, 드로잉, 사진 등에는 세부묘사 특히 선이 도드라지게 사용된다. 새의 깃털과 고양이의 털, 여성의 체모, 그리고 나뭇잎의 잎맥까지... 사물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 보지 않고서는 주목하기 어려운 내밀하고 섬세한 부분들에 작가는 주목하고, 모든 작은 것들에 생명을 부여한다.    

<붉은 토키>(부분), 1996, 네팔 종이에 잉크

 

<무제(여자와 나뭇잎)>, 2009, 토리노코 종이에 석판, 채색, 198.1x109.2cm


작가는 당시 미국 미술계에서 비주류 매체로 인식되었던 종이와 드로잉, 판화를 놓지 않았으며, 사진과 조각을 끈기있게 실험했다. 탁본하듯 잉크를 묻혀 찍어낸 나뭇잎의 윤곽, 종이에 누워 윤곽을 따라 그려서 완성한 자화상, 그녀의 품들에는 종이 매체로 작업할 때에야 가능한 '지표성'이 두드러진다. 작품에서 촉각과 온기가 느껴지는 까닭은 그래서일 것이다. 생명체가 실제로 닿았던 흔적들. 이렇게 작가가 위계와 서열 없이 예술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인간, 동물, 식물, 나아가 눈과 비, 우주의 별까지 모든 자연물을 아우른다.


지금은 한풀 꺽였지만 근래 미술작품이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현상을 보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캔버스와 물감 위로 보이는 것은 숫자일 뿐, 거기에 담긴 색채와 온기와 촉감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소위 미술시장에서 '핫'하다는 작가들의 자기복제적인 무수한 작품들에서 많은 경우 나는 생동감을 느끼지 못한다.


키키 스미스의 개인전을 보며 모처럼 미술 작품이 담은 온기를, 숨 바람을, 생명력을 읽어낼 수 있었다. 참으로 드물게, 미적 갈증이 넘치도록 충족된 전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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