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영상 속에서 쓸쓸함을 보았다.
농부인 아빠는 카메라와 영상에 관심이 많다. 아빠는 항상 자신의 아이디어를 영상으로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렇게 유튜브 채널을 열었고, 좋은 장비는 아니지만 핸드폰보다 아주 조금 나은 중고 카메라를 들였다. 나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좋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아빠의 영상을 편집하고 촬영하는 것은 피해왔다. 영상 속 아빠를 바라보며 오글거림을 피하고 싶어서였을까? 혹은 아빠의 영상이 수익이 나지 않을 것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빠의 열정적인 모습은 멋있었지만 아빠가 왜 영상을 찍으려고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문득 아빠의 작은 카메라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농사라는 직업은 아주 외로운 일이다. 드넓은 땅을 자기 혼자서 개간하고, 흙속에 씨앗을 뿌린 뒤 작물들이 자라는 일을 1년 내내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결실을 맺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제약과 방해요소들이 나타난다. 자연과 함께하는 일이지만 자연이 농사를 돕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있지 않다. 오히려 방해가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끝을 모르고 메말라가는 땅에 어떻게든 물을 대고자 멀리 있는 하천의 물을 끌어오기도 하고, 그렇게 좀 자라나 싶다가도 몇 분 동안 내리는 우박에 파릇파릇하던 이파리에 총알구멍 같은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비가 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리다가도 폭포처럼 내리는 장대비에 뿌리가 썩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날씨는 절대 농부의 편이 아니다. 그렇게 매년을 불가항력을 느껴가며 농사를 이어간다. 농사꾼이란 그런 직업이다.
그런 아빠에게 카메라로 자신을 담는 일은 홀로 묵묵히 일하며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소심한 외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상 속의 아빠는 특히 더 밝아보였다. 소소한 재미와 행복들을 찾고자 노력하는 모습들이 자주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에서 아빠의 쓸쓸함이 가장 먼저 보였다. 지금은 잠깐 영상 촬영을 쉬고 있지만 아빠가 다시 시작한다면 나는 그 영상을 직접 편집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