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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k Mar 30. 2017

#06. 오키나와 혹등고래

“이것은 오키나와 다이빙 가이드가 아니다”

오키나와 혹등고래는 수줍음이 많아요.


고래가 수줍음이 많다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인스트럭터는‘shy’라고 표현했다. 고래를 만나고 난 뒤에는 예쁘고 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가까운 오키나와에서 혹등고래를 만날 수 있는데 후기가 없는 것은 만나기 어렵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했지만,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희망에 힘을 더하듯 고래를 만나러 가는 날, 오키나와 입국 첫날 무섭게 불던 바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바다는 다리미로 다려 펼쳐놓은 실크처럼 매끄러웠다. 


배를 타고 몇십분이 지났을까, 어렵지 않게 헤엄치는 혹등고래를 만날 수 있었다. 고래는 큰 소리를 싫어한다는 주의사항을 들은 뒤라 환호나 비명을 꾹꾹 참아 삼키며 감탄을 뱉었다. 혹등고래를 찾아 가까이에 가면 배 엔진을 끄고 주변을 맴도는 고래를 지켜본다. 혹등고래는 배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꼬리를 보여주기도 하고, 몸을 수직으로 세워 수면 위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기도 하고, 숨구멍에서 물을 뿜거나 몸을 뒤집어 수면에 누우며 5m에 달하는 긴 핀을 보여준 뒤 사라지기도 했다. 물속에 빨려 들어갈 때 생기는 넓고 긴 물커튼과 그것을 만드는 고래 꼬리, 느릿한 움직임으로 고래의 육중함이 느껴졌다.


혹등고래의 성체의 몸길이는 약 15m, 팔처럼 보이는 양쪽 지느러미는 5m에 달한다고 한다. 새끼와 함께하는 혹등고래는 만나지 못했고 성체 혼자 혹은 두 마리가 함께 다녔다. 물 밖에서는 느릿하게 움직이는 듯했으나 수면 위로 떠올라 구르는 꼬리짓 한 번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물속을 가른다고 했다. 배 위에 서서 사방 곳곳에 떠오르는 혹등고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다에는 우리 말고도 혹등고래를 보기 위한 배들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같은 고래를 쫓았다. 당장에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다른 배들이 곁에 있었고 안전상의 이유로 다른 배가 있는 동안은 입수하지 않았다. 한두 시간쯤 흘렀을까, 함께 바다 위를 부유하던 웨일 와칭 배는 항구로 돌아갔고 바다와 혹등고래를 우리가 독점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새로운 혹등고래가 나타났고 우리는 입수를 시작했다. 물속에서 그들을 쫓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물 밖에서 혹등고래를 발견하고 그들을 쫓아 입수하면 우리는 방향을 잃었고 아무리 핀을 굴러 쫓아도 따라갈 수 없었다. 혹등고래는 거대했고 물속에서 빨랐으며 아주 깊이 잠수해 헤엄쳤다. 물속에서 몇 번인가 마주친 혹등고래는 우리가 그들을 찾아내거나 따라갔다기보다는 우연히 마주쳤다는 것이 적절했다. 그들은 우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본인들의 길을 갈 뿐이었다. 내가 스노클링 하며 치어떼를 보는 기분과 비슷할까. 육중한 체구와 몸의 형태, 움직임을 바라봤지만, 그들과 접촉한다는 감각은 없었다. 영상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멍하니 보고 있으면 절대 닿을 수 없는 깊은 바닷속으로 유영하며 유유히 멀어졌다. 


혹등고래를 만나러 가기로 했을 때부터 고래의 노랫소리가 듣고 싶었다. 물속에서 노래의 음파를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망막에 비치는 흐릿한 잔상보다 고래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지만 내가 만난 혹등고래는 단 한 번도 노래하지 않았다. 오키나와에서 돌아온 뒤 수염고래들의 노래에 대한 TED 영상을 보았다. 훌륭한 일러스트와 예쁜 설명이 담긴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었다. 공기보다 4배 정도 소리가 잘 전달되는 물속에서, 지구 상에서 가장 큰 포유류인 고래는 길고 정교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신음, 외침, 지저귐, 휘파람 등이 일련의 규칙을 갖고 배치되어 자신들의 문법을 만든다. 수컷이 암컷에서 구애하거나, 자신의 세력권에서 외부인을 내쫓기 위해 노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래들은 인간의 바다 소음 공해로 노래를 멈추고 있다. 보트, 군용 음파 탐지, 수중 건설, 석유 탐사 등 인간의 활동으로 고래들의 소통이 방해받아 노래를 멈추거나 소음을 피해 그들의 터전을 떠나기도 한다. 이 영상을 보고 오키나와의 혹등고래가 생각났다. 우리가 보트 소음을 몰고 그들의 평안을 쫓아버려 울지 않게 된 것일까? 


다이빙을 시작하고 수족관, 돌고래쇼, 고래 등 해양생물 남획 문제에 관심을 두고 그에 반대하는 활동을 지지한다. 하지만 바다와 바다 생물을 아끼는 만큼 자연 상태의 그들을 보고 싶다는 욕심도 커진다. 혹등고래가 진심으로 보고 싶었고 이기적일지도 모르는 그 바람을 이뤘다. 친절한 혹등고래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의 평안과 바꿔 마주한 짧은 시간에 기뻐하는 치어의 소박한 꿈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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