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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홈즈

내 쉴 곳은 어디에

by Bein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며 낄낄거리던 나른한 시간들이 언제였을까. 친구 집에서 머무는 동안 소파에 누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른 아침 7시에 집을 나가 저녁 8시 무렵에 들어오며, 차에서 쉬고, 차에서 밥을 먹고, 차량용 DVD로 영화를 보거나, 차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 드라마를 봤다. 차가 가장 편안한 집이 되다니 아... 집에서 뒹굴뒹굴 쉬고 싶다. 강렬하게.


초기 정착 1단계, Room Rent : $1,000, 2 beds, 1 bath, 공동 주방,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 요금 별도

초기 정착의 첫 단계는 거주할 집을 구하는 것인데 첫 단추를 잘 꿰었어야 했다. 모든 것이 마냥 순조로울 줄만 알았다. 미국에 오기 전, 우리 가족은 헨더슨빌에 사는 중국 친구집의 사진을 보고 친구 집에서 룸 렌트를 하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가 거주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세입자를 들이는 것이 불법이었다. 그러나 혼자 사는 그녀에게 빈 방을 세 놓는 것은 경제적, 심리적으로 이득이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첫 번째 세입자는 60대 후반의 은퇴한 여성이었는데, 지하층의 방에서 6개월 거주하다가 집을 엉망으로 사용해 계약을 종료했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그녀 집의 두 번째 세입자가 되었다.


우리 가족이 그녀의 집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쯤 지나, 지하층에 또 다른 세입자가 들어올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세 가구가 한 집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집주인 마음이지 뭘. 좋은 점이라면 우리를 향한 관심사가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조만간 지하층으로 이사 올 예정인 예비 세입자를 배려하기 위해 1층에서 지내는 우리의 발소리를 체크하러 지하에 자주 내려갔고 아이들은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 다녔다.,


두 달간 불편한 동거를 하고 친구는 발리로 긴 여행을 떠났다. 집주인이 없다는 생각에 모처럼 입맛이 생겨 낡은 가스레인지에 라면 물을 올렸다. 불을 줄이려다가 가스레인지 손잡이를 돌렸을 뿐인데 손잡이가 빠져버렸다. “이런! 하필 친구가 없을 때 망가질 건 뭐야. “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의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마음이 불편하고, 여기서 하나라도 더 집이 망가진다면... 오만상 찌푸린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세탁기가 덜덜 덜덜덜 거리다가 또 작동을 멈췄다. 균형이 맞지 않으면 멈춰버리는 세탁기에 진절머리가 난다. 빨래 돌리는 것도 조심조심해야 하고, 밥 하는 것도 조심조심, 걸음도 조심조심. 이 집에서는 매사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 칼날 같은 그녀가 없어도 주인을 닮은 집은 매사 내 마음을 날카롭게 쿡 찌른다.


어디선가 기름 쩐내도 아니고, 쿰쿰한 냄새가 난다. 오래된 이 집의 나무에서 배인 냄새와 음식을 하면서 집에 배인 냄새가 뒤섞여 불쾌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추가했다. 냄새까지 불평불만이 생기고 있는 것을 보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 같다. 이 집에서 하는 일은 어떤 것도 즐겁지가 않다. 이대로 미국에서의 남은 시간이 괴롭기만 하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사 나가자! 돈을 아끼려다가 스트레스가 한계치를 넘어서 방전될 것만 같다. 지출은 더 발생하겠지만, 지금처럼 편히 집에서 쉬지도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바깥으로 뱅글뱅글 돌면서 매일 외식비에 돈을 찔끔찔끔 쓰느니, 우리끼리 살 수 있는 공간에서 외식비 대신 렌트비에 돈을 지출하는 게 낫겠다 싶다.


정착 2단계, 독립할 결심 : 집 어디서 구하지?

한인 부동산이 없는 헨더슨빌에서 집을 구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Zillow와 Google Maps, Apartment.com 등의 부동산 사이트와 Airbnb에서 장기 렌트를 검색하고, 눈에 보이는 부동산 업체와 아파트 오피스를 무작정 방문하기로 했다.


* Zillow.com: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부동산 사이트로, 렌트보다는 매매 정보가 많다.

* Google Maps: "apartment complex, town house 또는 condomidium complex near me"로 검색한 후 직접 현장 답사를 다녔다. 다양한 장소를 탐방하며 헨더슨빌 곳곳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됨.

* Apartment.com: 애슈빌과 헨더슨빌 지역의 렌트, 매매 정보가 몽땅 이곳에 있다.

* Airbnb: 가구 일체 포함, 단기 및 장기 거주 가능, 계약이 손쉬움.


후보지 현장답사

지금 위치에서 가깝고, 멀지도 않은 곳의 리스트를 뽑아 발품을 팔았다.

1. Simple Life Village: 1인 가구 또는 2인 가구에 적합한 Tiny Home으로 집이나 정원 관리에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도 없이 딱 적당한 크기였지만, 렌트 매물은 없었다. 위치는 Flat Rock 지역의 외곽에 떨어져 있다.

2. Highland Lake Properties: “wonderful peaceful spot flat rock" 구글 맵 리뷰에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오피스를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이렇게 좋은 리뷰에 위치면 가격이 비쌀 것이 분명하다.

3. 시니어 하우스: 집에 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소규모 아파트먼트 컴플렉스. 오피스에 들어서니 친절한 직원에게 렌트를 찾고 있다고 하니 60세 이상만 입주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4. Grey Mill Apartments: 메인 스트리트에 위치한 벽돌 아파트 단지로, 이전 신발 공장을 리모델링한 세련되고 모던한 인테리어가 돋보였지만, 온통 콘크리트벽에 썰렁하고 아늑한 느낌이 없다. 싱글에게 적합해 보이며 현재 렌트 가능한 매물도 없었다.

5. Park Residences Apartments: 메인 스트리트와 가까우며, 개인 차고를 이용할 수 있어 좋아 보였지만, 역시나 렌트 가능한 집이 없었다.

(Two Bedroom 2 Bed, 2 Bath/ Starting at $1,675)


6. Ballantyne Commons: 깔끔한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수영장 등 공용 시설이 잘 관리되어 있었다. 아이들 학교에서 조금 멀지만 예산 범위 내였고, 당장 입주 가능하다.

(Two Bedroom $1,800 2 Beds, 2 Baths)

7. Brittany Place appartments : 발란타인 보다는 작은 규모의 전형적인 대단지 아파트로, 6개월 계약도 가능하지만 기간이 짧을수록 렌트비가 올라간다. 가격은 Ballantyne Commons보다 저렴했지만, 위치와 시설 면에서 후순위.


8. The Residence at Chadwick Square Court: 2층 구조로 실용적이었지만, 더러운 카펫이 눈에 띄었다. 가격과 위치는 좋았지만, 스태프와 관리에 대한 리뷰가 좋지 않아서 결정이 망설여졌다.

(Two Bedroom $1,430 2 Beds, 2 Baths 1,166 Sq Ft)


9. Cottages of Flat Rock: 오두막 스타일의 집으로 좁고, 관리가 미흡해 보였으며, 큰 개가 갑자기 돌진해 오는 등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


10. Charleston at the medow: 네 식구기 살기에 적당히 아담하며 가격도 좋았고, 직원도 친절했지만, 바로 앞에 공장이 있고, 걸어서 5분 거리에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2 Beds, 1 Bath , $1,390)


11. Publix 뒤편의 싱글하우스: 외관에서부터 위험해 보였고, 잔디 관리 상태로 집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많은 매물을 보다 보니 잔디의 길이만으로도, 안전한 지역인지와 집 값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게 됨.


12. Airbnb: 시내 중심가에서 가깝고, 가구가 완비된 곳이어서 가구에 돈을 지출할 필요도 없이 우리에게는 최적의 조건이었지만, 아이들의 학교에서 거리가 멀어 적합하지가 않았다.


드디어 찾은 집

가을에 시작된 집 헌팅은 겨울까지 이어졌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답사를 잠시 중단했지만, 매일 아침 여러 부동산 사이트를 확인했다. 어느 날 아침 심봤다!!!! 를 외쳤다. Apartments.com에 꿈에서나 그려보았던 우리의 최애 장소인 공원 앞에 싱글하우스 렌트가 나왔다. 아파트가 아니고 싱글하우스였기에 가격도 예산보다는 살짝 높았지만 앞뒤 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위치, 안전성면에서 베스트다.


13. Highland: 공원에 산책 갔다가 들러봤던 곳이다. 보자마자 여기로 이사 오고 싶었음. 최고의 후보지이다.

(Single House, $2,500, 2 Beds, 2 Baths)


14. Boyd Dr Apt : 깨끗한 공기. 딱 맞는 예산, 최고의 동선이나 결정적으로 현재 렌트 가능한 집에는 세탁기가 없다.

(2 Beds, 1 Baths, $1,400)

위치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Boyd 아파트
세탁기가 있는 Boyd 아파트 다른 호수의 구조, 이미지 출처, zillow

정착 3단계, 집 계약하기

아파트먼트닷컴 사이트에서 투어를 예약하고 정확한 시간에 나타난 중개인은 우리가 이전에 여러 번 방문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던 부동산 리얼터였다. 플랫락 파크 앞 싱글하우스와 플랫락 지역의 아파트를 보여주었다. 아파트는 위치도 좋고, 조용하고 사방에 나무로 둘러 쌓여 있어서 공기도 좋고, 안전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지만 공용세탁기를 사용해야 해서 불편해 보였다.


우리는 단연코 싱글하우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라면 예산이 초과된 렌트비였다. 외식비를 줄이면 된다. 1년 계약이 가능하며 갑작스러운 귀국 시 미리 알리면 된다고 했다. 성인 한 명당 100달러의 수수료와 재정 서류, 신원 확인 서류를 제출하고 보증인이 필요했다. 남편의 지인에게 연락해 보증을 받은 후 계약을 완료했다.


정착 4단계 : 살림살이 구하기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집을 구하자마자, 정말 크리스마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룸렌트를 하고 있는 터라 단출하게 살고 있었기에, 미국 올 때 가져왔던 여행 가방을 차에 싣고 새집으로 이사했다. 텅 빈 집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메아리로 돌아왔다. 첫 번째로 새 매트리스를 구입했는데, 그 위에 눕는 순간 몸은 물론 마음까지 푹신해지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식탁이었다. "1년만 살 건데 새 가구는 낭비지 않나?"라는 고민이 머리를 떠다니던 찰나, 우리의 이사 소식을 들은 튜터 할머니의 이웃들이 식탁, 리클라이너, 의자, 토스터기, 퀼트 이불까지 아낌없이 나눠주시며 낯선 이방인 가족에게 도움을 주셨다. 주방은 한국 아주머니들 두 분이 예쁜 그릇과 여러 살림살이들을 채워주셨다. 그릇들이 하나같이 너무 예뻐서 과연 여기에 어떤 음식을 담아야 하나 잠시 고민이 되었다.


미국 할머니들의 따뜻한 마음과 한국 아주머니들의 세심한 챙김 덕분에, 우리가 도무지 속해질 것 같지 않았던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너무나 적은 것만을 알고 있었을 때 우리에게 내밀어준 다정한 손길은 그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귀하고 감사했다. 그 사랑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직 막막하기만 하다.

이제 먹고, 자고, 씻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은 해결되었지만 자꾸 공간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싶어 월마트에서 저렴한 소파를 구매하고, 책상은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에서, 커피메이커는 월마에서, 카펫은 아마존에서 크리스미스 특가로 구입했다. 결국 TV도 샀다. 이사 후 집에 식탁, 소파, 책상까지 생기니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홈 스위트 홈'이 되었다. 내 쉴 곳, 내 작은 집에서 느긋하게 쉬고, 낄낄거리며 웃으니 이곳에서 가능하면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초기 정착 완료 : 우리 집, 우리가 쉴 곳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며 정착을 마치고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를 떠올렸다.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 즉 의식주를 해결하는 단계는 우여곡절 끝에 채워졌다. 우리 가족의 독립된 공간에서 매일의 끼니를 챙기고, 몸을 뉘일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며, 새로운 환경에서 최소한의 생활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그다음 단계인 안전의 욕구도 점차 충족되고 있다. 낯선 동네의 풍경이 익숙해지고, 주변 환경이 더 이상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 마음이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가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사랑과 소속감을 채워가는 단계다. 낯선 타국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책임지고 꾸려나가야 할 공간을 마련하며,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이 교차했지만 새로운 보금자리는 점차 우리 가족이 마음껏 쉴 수 있는 진짜 집이 되어가고 있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는 작은 노력들도 하나둘 시작되었다.


어제는 서툴렀고,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런 시도들이 쌓여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사랑과 소속감도 우리들의 보금자리에 잔잔하게 스며들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주저앉을 때도 있을 것이지만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정착은 단순히 새로운 집을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곳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가며 연결될지를 만들어가는 여정이다. 이 아늑한 공간에서 천천히 사유하며 우리의 정착기를 써 내려가려 한다.



우리 이사 왔어요.

앞집과 양 옆집에 이사 왔다고 인사를 하고 간식을 돌렸고, 답례로 맛있는 맛있는 초코 브라우니와 쿠키를 선물 받았다. HOA에서도 이사 온 것을 환영한다고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 헨더슨빌에 온 후로 처음으로 마음이 놓인다.

오랜만에 집 앞 공원을 빠르게 걸으며 숨을 고르니 이해받고, 위로를 받는 것 같다. 아침에 받은 긍정의 에너지를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을 만큼의 너그러움이 생겨났다. 새로운 집에서 좋은 일들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좋은 이웃과 친구들을 사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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