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성교육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모르겠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지고 세포분열이 이뤄지고 어쩌구 저쩌구 그리하여 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짜잔! 이랬는데.
이게 성교육인지 생물학 교육인지. 와중에 나는 '선생님~ 그럼 난자와 정자는 어떻게 만날 수 있어요?'라며 겉으론 해맑게, 속으로는 음흉하게 질문을 던졌다. (뭐, 이미 답은 알고 있었지만....ㅋ) 과연 이런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저 구색맞추기식 자원낭비에 지나지 않나 싶어 쓸쓸한데.
성(性)은 인간의 존립에 뗄레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독자분께서도 부모가 당신을 낳아주고 키워주지 않았더라면 당장 이 글을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독자분께서 남편 또는 아내분과 행복한 성생활을 하는만큼 가정이 화목하고 둘 사이도 돈독해진다. 남자분들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성생활이 본인의 건강한 삶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계신다는 통계도 봤는데. 이토록 우리의 삶은 성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하지만 성(性)이라는 분야가 인간의 내밀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고 또한 자극적인 면이 있어서 대놓고 이야기하기가 좀 거시기(?)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필요성만큼 커리큘럼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성교육의 제약인 것같다. 또한 한국사회 특유의 보수성 때문에 성교육을 통해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고 알지 않아도 될 것을 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같다. 그런 분들이 있으시다는 게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가끔은 성교육이 교육다워지지 못하는 결과를 만드는 것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성교육은 '성교'육이 아니라, 성'교육'이다. 명백히 교육의 일종이다. 교육이니만큼 피교육자들에게 미처 인지하지 못한 어떤 포인트를 일깨워 줌이 필요하다. 그렇게 다수의 구성원이 배움의 내용을 공유함으로써 구성원 통합에 기여하고 전반적인 사회적 표용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성'교육'의 목표는 '여성과 남성이 어떻게 다르고, 그 다음으로 인해 각자 어떠한 고충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이성을 이해해주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추어 서로 더 잘 돕는 개인이 되는 것'이다. (순결사탕 먹는 걸 목적으로 하지 말규...)
드라이하게 말 해 보자면 인간의 성기능도 다른 여타 기능과 딱히 차별할 게 없는 신체기능의 일부이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남 녀 모두 신체가 번식에 적합하도록 상태가 바뀔 뿐이다. 어느 정도 합의가 된 두 사람은 성행위를 할 수도 있다. 성행위의 결과로 아이가 생길 수도 있다. 이는 음식을 먹으면 위가 연동운동을 하거나, 몸에 균이 침투했을 때 면역세포들이 반응하는 거나, 차가운 것을 만지고 차갑다고 느끼는 감각활동과 하등 차이가 없는 몸의 기능 중에 하나일 뿐이다. 다른 행위와 달리 강한 정신적이 흥분이 일어나는지라 사건사고가 생기는 것이 흠인데. 그마저도 제대로 안다면, 쉬쉬하는 것보다 제대로 앎으로서 사건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여자인 나조차조 성적흥분, 임신, 출산 과정에서 어떤 것을 겪는지 한참 뒤에야 겨우 알게된 것들이 많다. 남자들의 소중이가 야한 것을 보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처럼, 여성의 소중이도 야한 것을 보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한다는 것을 나이 서른을 넘기고서야 알았다. (이걸 보고 '너도 원하고 있군?' 요딴식으로 해석하는 남자분 있다면 반성하라. 원하는 차원이 아니다.) 이걸 모르던 여성분 중에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내가 대체 왜 이러는지 자괴감에 빠졌던 분도 모르면 몰랐지 분명히 있었을 거다. 그냥 성교육 시간에 있는 그대로 그렇다고 말 한마디만 해주면 충분했을 것을. 그걸 알게 된다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벌을 받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남자들 입장에서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어떤 힘듦을 겪는지 잘 알 필요가 있다. 임신기간동안 아무리 아파도 아이와 영양시스템을 공유하는 바람에 약도 함부로 못먹고, 외부 자극원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해 입덧을 하게 되는데 이게 마치 깨지 않는 숙취마냥 하루종일 상태가 메롱하다는 거고, 임신성 당뇨에 걸리면 (그것도 임신 중에 ㅠㅠ) 강제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출산하면서 겪는 촉진/음부이발/회음부절개 (그중에 음부이발이 제일 상전이더라...) 굴욕3종세트의 존재를 모른 채 분만실에만 따라들어가도 나는 훌륭한 아빠라고 알고 있는 남성분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건 남자들 탓으로 돌릴 것도 없다. 명백히 교육이 잘못한 거다. 이걸 알려주는 게 그렇게 힘든가? 내 소중한 아내가 저런 험난한 시간을 거쳐야 한다는 걸 알면 '어떻게 내 파트너를 더 잘 도와줄까' 고민할 여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살아본 인생 기준이긴 해도, 사랑은 꽤 멋진 면이 많다. 그러면 기왕지사 사랑을 잘 좀 하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을 알아보는 것도, 얻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심지어 막 캐냈을 때의 사랑은 원치 않는 불순물도 적지 않게 섞여들어가 있다. 어렵사리 얻은 사랑을 온유하고 영롱하게 다듬으려면 어느 정도 사랑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을 펴낸 건 아닐런지.
성교육의 접근은 이 두가지를 충족하면 된다 : (1) 있는 그대로 알려준다 (2) 성행위의 원인은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불교적으로 재해석하자면 (1) 정견(正見)을 통해 상황 그대로를 인지케하고 (2) 인과적으로 해당 상황을 이해하도록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애궂이 부끄러움과 순결을 강조할 이유는 없다. 물론 그 둘이 성적흥분에 도취되기 쉬운 인간을 제약하는 데 있어 꽤 훌륭한 수단임은 부정하지 않겠다. 이와 같은 방편도 상황에 따라서는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있는 것마냥 제약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건 득보다 실이 많아보인다.
그런 면에서 우리 아들램의 성교육은 이 애미가 호되게 교육 해 주지 싶다. 어디가서 내놨을 때, 몰라서 멍청한 짓을 저질러서 본인도 부끄럽고 상대방도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다른 분야는 실수하면서 배우는 게 어느 정도 좋다고 보지만 이 분야는 한 번만 잘못했을 때 짊지어야 하는 것이 큰 분야다보니 엄근진하게 접근해도 좋을 것같다. 그렇게 우리 아들램이 효과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되게끔 해주고 싶다. 의도대로 결과가 나와주면 고맙겠지만 또 어떨지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 나는 성교육의 큰 방향은 정한 거 같아 한시름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