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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에세이] 마흔 즈음의 육아

by 힙스터보살


나이가 들어서 좋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이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좀 알겠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가만보면, 나는 남들에 비하여 '아~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이는 허용범위가 다소 넓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범위가 넓은 대신에 범위를 넘어가는 순간이 오면, 다른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반응한다. 어쩌면 나란 사람의 중도는 이런 식으로 맞춰나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해서 나는 엄마들이 와글와글 남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에도 '저게 화날 일인가' 싶은 때가 자주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그런 거 가지고 마음이 불편하신 건 남편 탓이라고 보긴 애매한대요'같이 눈치없는 발언을 하는 자는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네들이 토로하는 답답함에도 어느 정도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나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유사한 결의 답답함을 느끼며 살기 때문에 그녀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싶다. 다만 조금 아쉬운 건, 조금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면 나도 행복하고 그도 행복한 자리이타의 어떤 지점에 다다를 수 있음이 보이는데. 그게 보일지라도 쉽사리 '이렇게 하세요'라고 드라이브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


어찌돼었든 각자의 방법으로 너무 괴롭지 않게 살아간다면 그게 곧 행복이다. 깊이 바라건대, 각자의 삶에 다양한 색깔로 행복이 깃들기를 바란다.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어느 작가분도 말씀하셨지 않았던가,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그만큼 이미 태어난 이상 충분히 괴롭지 않게, 행복하게 사시다 소천하시길 바란다. (너무 갔네! 여러분 막걸리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ㅋㅋㅋㅋ)




어찌보면 엄마의 이런 면 때문에 우리 아들램은 꽤 관대한 영아기를 보냈지 싶다. 좀 더러우면 어때, 애는 금방금방 낫는데 조금 상처나는 게 어때 싶어서 좀 풀어놓고 살지 싶었다. 그러면 너도 좋고 나도 좋지 뭐. 애 키우면서 심히 느낀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 힘들게 키우는 건 '영 아니올시다~'였었다. 방치하는 것도 아니될 말이지만, 요즘같은 시류에는 과하게 살뜰히 아이를 보살피는 부모 덕분에 아이는 많은 행동을 제약받고 필요 이상으로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다. 회복탄력성이 주목받는 시대에,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역행적인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음은 다소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뭐 역사란 게 그렇긴 하지만)


그런데 또 엄마의 이런 면 때문에 아이는 아주 가끔씩 눈물을 쏙 뺄 정도로 호되게 혼이 난다. 오늘같은 경우에는 아이가 엄마 몰래 변기에다가, 쓰지도 않은 휴지를, 한가득 버려놓은 일이 있었다. 장난이야 할 수 있는 거기는 하지만, 변기 안에 흠뻑 적셔진 휴지뭉치를 보는 순간 '이건 아니잖아'하는 플래그가 0.0000000001초 만에 확 서버렸다.


"○○○, 이리와."

(아이가 주섬주섬 화장실로 왔다)

"○○이는 휴지가 뭘로 만든줄 알어?"

"모르겠어요"

"나무로 만들었어. 나무를 베어서 만드는 거라고. 나무가 죽어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그런데 ○○이는 그렇게 나무를 희생해서 만든 것을 ○○이 재미있으라고 변기에 버려? ○○이는 나무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민들레도 그래. 봄에는 민들레가 여기저기 많아서 꺾어도 되나고 허락했지만, 요즘에는 길가에 민들레가 많이 있어?"

"없어..."

"그래 없잖아. 벌이랑 나비랑 민들레에서 밥먹어야 하는데 ○○이가 꺾어버려서 밥 못먹는 거 저번에도 봤잖아. ○○이는 민들레 꺾는 게 재미있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민들레가 없어져서 밥을 못 먹는 나비랑 벌은 안 불쌍해?"

"......"

"○○이가 즐거워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슬픈일이 될 수도 있는 거야. 나비도 친구가 있고 벌도 형제가 있어. 친구를 잃고 형제를 잃으면 좋아?"

"....아니"

"생각해봐, ○○이가 무서워하는 괴물이 엄마를 잡아가면 ○○는 어떨 것같아? 그러면 똑같이, 나비랑 벌이 친구를 잃어버리고 형제를 잃어버리면 ○○이는 어떨 것같아? 좋아?"


아이는 끝내 '엄마 미안해'를 외치고 서럽게 운다. 나는 웬만하면 아이가 슬퍼하는 데에 있어서 안아주고 도닥여주고 달래주지만, 그 때만큼은 놀라우리만큼 단호하게 굴고 1도 달래주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서 훌쩍이는 아이에게,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방에 계속 있어'라고 하며 저녁밥 준비를 마저 했다.


이게 내 행동에 대한 자기합리화인지, 혹은 아예 반대로 내 행동에 대한 명확한 자기확신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아이가 공동체에 대한 개념없이 군다든가, 우리가 서로 이어져있는 관계임을 무시하고 본인만의 즐거움을 위해 행동하는 것에 대하여 굉장히 단호하게 행동한다.


물론 아이가 너무 어려서 그래도 되겠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실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아이가 40개월이 넘어가는 순간 눈빛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이전과 다른 어떤 단계로 넘어갔음을 아는 순간부터 이제는 3년을 채우지 못한 영아에게 베풀었던 관대함은 필요없어짐을 알게 되었다. (진짜 이건 육아를 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3년을 넘어간 아이는 뭔가 질적으로 다릅니다. 진짜 달라요.. 이걸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언어는 내 이 느낌과 생각을 다 담지모태!!!)


마찬가지의 이유로 이 아이를 더이상 '어린아이로만' 받아주는 데에도 어느 선이 지나갔음을 느낀다. 물론 내 아이는 겨우 42개월 밖에 안된 어린아이인지라 세상을 살아본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한 것을 알아도, 정신의 상태는 넥스트 레벨로 갔음을 안다. 좀 더 '인간 대 인간'으로 대우 해줘도 된다는 그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때문에 잘 한 것에 대해서는 예전보다 진심으로 칭찬하고 기뻐해주지만, 아니다 싶은 것에 대해서는 예전과 비할 수 없게 단호하게 굴기도 한다. 물론 한 행동 대비 심각할 정도로 화를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미친듯이 소리치며 화내지 않기는 한다. 우리 아들래미야 그럴 일을 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와.... 지금도 우리 아들램 대단하네. 엄마가 브런치 글을 쓰는 동안 조용히 있다싶었는데. 그동안 뭐하나 봤더니 본인 스스로 바지를 벗고 기저귀로 갈아입고 응아 쌀 준비를 하고 계셨더란다. (와............... 말잇못)


지금도 소변은 충분히 가리고 있는데, 아들램은 유독 대변만큼은 기저귀에 보고 싶어한다. 이제는 형아가 되어서 응가는 변기에 싸야한다고 설득하고, 오늘 아침에도 '선생님이랑 응아는 변기에 보기로 약속했어'라면서 변기에 10분 가까이 앉아서 대변보기 시도를 했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어린이집 선생님께서도 ○○이가 일관성있게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대변을 볼 때 기저귀를 하지 않는 것을 권장하셨지요. 바로 이틀 전에 있었던 일이랍니다.)


엄마 미안해!!! 울며불며 엄마를 바라보던 아들램은 오간데 없다. 본인이 좋아하는 동화책을 가져와서 해맑은 표정으로 '이거봐요~ 큰 멍멍이예요~~'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가져온 책은 <Clifford, Big red dog> 형님께서 물려주신 유아도서 컬렉션 중 하나 ㅎㅎ) 아니 근데 아들 근처에서 똥냄새가 나네?후... 엄마가 브런치에 글이나 쓰는 여유를 부리는 것도 여기까지로구나. 우리 아들램을 보면 참 다행이다 싶은게, 아까 전같이 서럽게 우는 시간도 금새 마무리짓고 어느 새 생글생글 웃으면서 돌아다닌다는 것?


아이를 호되게 혼내는 것은 참으로 주의해야 할 일이 맞지만. 요즘 부모님들을 가만 보다보면 아이가 부모님으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을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좀 된다. 경험치라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서 쌓이는 것이고, 회복탄력성은 실패를 경험하고 그것을 딛는 과정에서 키워지는 것이다. 아이를 너무도 사랑하여 아이의 시간을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주려는 엄빠들의 마음은 200% 이해가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네들의 사랑이 자칫 잘못하면 슬픔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안타까운 맘도 크다.


으아이고... 글을 쓰는 중에도 자꾸 응가냄새가 난다. 와중에 아들램은 요즘 흠뻑 빠져든 벌레잡이 식물에 대하여 신나게 이야기한다. 기저귀 안에 응가를 품은채... ^^; 이제는 진짜 씻기러 가야겠다. 워후 곧 재워야 할 시간이네. 아이를 키우는 하루는 이렇게도 빨리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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