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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를 만드는 공동체 의식

by 힙스터보살


도장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양각과 음각으로 나뉜다. 양각은 내가 남기고자 하는 글자 주변을 파는 방식이고, 음각은 내가 남기고자 하는 글자만 파내는 방식이다. 양각은 글자만 색깔을 지니기 때문에 밝은 느낌을 가지고 있어서 양(陽, 볕 양)이라는 글자를 쓰고, 음각은 글자를 제외한 곳이 모두 색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어두운 느낌을 주는지라 음(陰, 그늘 음) 자를 쓴다.


고등학교 때, 학교 미술시간에 도장만들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음각/양각 여부는 본인이 결정할 수 있었는데, 나는 음각을 선택했다. 왜냐고? 이게 미술 수행평가였는지라, 양각으로 파다가 부러뜨려 먹을까봐 겁나서 ㅋㅋㅋㅋ (저도 점수는 따야지 않겠습니까 ㅋㅋㅋㅋ 얼른 파고 다른 과목도 공부해야죠 하하하!)


도장만들기 시간에 학생들은 대부분 본인이름을 팠다. 하지만 난 왠지 내 이름을 파고싶지 않았다. 뭔가 더 간지나는(!) 어떤 네 글자를 새기고 싶었다. 그러다 번뜩 떠오른 게 선견지명(先見之明,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이라는 글자였다. 새기고나서도 뿌듯하게 보관했었는데. 이사도 다니고 바빠서 신경을 못 쓰다보니 그 도장이 어디 갔는지를 모르겠다. 울 엄니 스타일이라면 저런 거 안 버리고 어딘가에 모아서 주셨을 법한데. 글을 쓰다 보니까 갑자기 찾고 싶어진다.


왼쪽이 양각, 오른쪽이 음각이다.


도장을 이야기하면서 뜬금 리더에 대한 생각이 났다. 일전에 리더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마스터INTJ 님께서 달아주신 댓글 중 이 말이 눈에 띄었다 : "현실에서도 그런 리더(모든 걸 꿰뚫고 조율하며 혼자 빛나지 않고 빛을 이끌어내는 자)가 존재하길 바라는 저의 바람은 단지 희망고문에 불과한 걸까요?"


그런 마음이 아주 매우 충분히 이해된다. 우리 주변에 선견지명을 갖춘 리더는 흔치 않아보인다. 내 시야가 좁아서 그런건지, 있어도 못 알아보는 건지, 진짜 드문건지 구분이 잘 안간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그런 리더가 있을거다'라는 믿음은 있다.


'믿는대로 보인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무엇이 보일까 잠시 상상해봤다. 그러자 조금 다른 시각이 생겼다. 뭔가 좀 독특하다든가 걸핏하면 사고를 치는 사람들이, 어쩌면 다른 환경에 처했더라면 리더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메타버스의 또 다른 내가 쩌는 간지의 무엇인가가 되어있을 수도 있는 것같이?!) 그들이 자질을 발휘할 기회가 마땅히 없어서, 남들 눈에는 '사고나 치는사람'으로 머물러버린 건 아니었을런지.


이순신 장군도 어렸을 때에는 사고 깨나 치던 개구장이였다. 순신 어린이가 그저 평화로운 조선의 하루를 살았더라면 '성웅 이순신'이 역사에 남았을까?아니면 다른 의미로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되었을까? 응당 사주는 믿을만한 게 아니지만, 김영철/조두순 같은 범죄자의 사주를 보면 큰 인물이 될 사주였다고 한다. (그쪽으로 큰 인물이 되버린 게 유감일 뿐) 사주의 요소를 배제하더라도, 만일 그들이 자라는 환경이 달랐더라면 그들의 잠재력을 긍정적으로 이끌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히틀러는 미대에 합격시키는 게 맞았으려나? ㅎㅎㅎㅎ)


그래서 달리 생각 해 본다. 우리 사회에 귀한 옥석이 발견되더라도, 깎고 다듬고 갈아내지 않으면 보석으로 재탄생시킬 수가 없다. 물론 인생의 절차탁마(切磋琢磨) 과정에서 '정 책임자'은 나 자신일 것이다. 하지만 '부 책임자'가 있다면 이 사회의 구성원들 하나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각 글자가 드러나기 위해 주변 글자를 파내려가야하는 것처럼, 주변을 포함한 환경의 역할 또한 꽤 중요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위치에서 이 사회가 원하는 리더를 기르기 위해서라도 본인 또한 그 어떤 리더가 되어 제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모두 제각기 다른 면이 있기에 또한 제각기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강점을 각각 살려내고, 내 맘에 안든다고 핀잔주지 말고, 공동체 의식으로 이끌어준다면 '이상적인 리더'를 만드는 것이 과연 꿈이기만 할까.


인적자원관리를 배우면서 접했던 X이론 Y이론


경영을 한다는 것은 곧 사람을 다루는 거라며 인적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류가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경영학을 배울 때에는 '인적자원관리'라는 과목이 따로 개설되어 있었다. 이 과목을 들으면 필히 더글러스 맥그리거(Douglas McGregor)의 'X이론 Y이론'을 배운다.


X이론이 바라보는 인간은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본다. 사람은 본래 일하기 싫어하고, 책임지는 것도 싫어한다. 때문에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강제, 통제, 지시, 불응 시에는 위협과 처벌이 필요하다. 또한 사람이 움직이게 만들려면 외부적인 보상이 있어야 한다. 일을 잘 하면 돈을 주든 지위를 올려주든 하라는 거다. 대개의 사람들은 목표도 야망도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이끌' 리더가 필요하다.


Y이론이 바라보는 인간은 긍정적이고 능동적이라고 본다. 일은 놀이나 휴식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스스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을 적극 수용하기도 한다. 사람은 나서부터 창의적이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존재이며, 이에 따라 목표의식과 야망을 갖는다. 이런 자들에게 보상은 외부적인 것(금전, 지위) 뿐만 아니라 자아실현, 존경, 내적만족, 성장이 있어야 한다.


나는 내 나름대로 Y형 인간이 되고자 했다. 그런 과정에서 Y형 인간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적잖이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Y형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만도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Y스러운 면도 있고 X스러운 면도 있었다.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 달랐다. 심지어 나조차도 내 스스로 열심히 일하던 직장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도 있었건만 '연봉동결'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퇴사를 결심하지 않았던가. Y형 인간이 우월하고 X형 인간이 저급하다 욕할 게 못된다.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지만 땅을 디디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탁월한 리더는 이 점을 두루 이해할 필요가 있다. 탁월한 리더라면 이 점을 모두 아우르고, X형 인간이든 Y형 인간이든 모두 소중한 이 사회의 재목임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 가능성에 베팅하고 현실적으로 구현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맡고 있는 소임에 따라 구현 과정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나 하나 또는 주변 몇 사람일 수도 있고, 한 회사나 한 나라를 아우르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내가 내 인생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책과 미디어와 주변인들의 입을 통해 여러 번 들어보지 않았던가? 그렇게 겪어낸 노하우를 책으로 담고 밈(meme)으로 담아서 물려주는 거고. 앞으로는 AI한테도 물려줄 것같고.


그렇기에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내 스스로가 이 사회의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원하는 리더를 키우는 소임을 맡은 또 다른 리더임을 기억 해 주셨으면 한다. 타인은 지옥이라는 드라마도 있지만, 타인은 자아실현의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그런 방식으로 내가 사회랑 결합하고 사회가 나와 결합한 모습이 유토피아(Utopia)가 아닐런지. 보니까, 그리스인들이 '유토피아'라는 단어는Ou-topos (아무데도 없는 곳)이면서 Eu-topos (좋은 곳)이라는 의미를 결합시켰 만들었다던데. 까짓거 우리가 그리스인들 좀 뛰어넘으면 어때? 못할 건 또 뭐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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