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굉장히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변화를 해석하는 주역과 음양오행에 은근히 관심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주를 보는 거는 '좀.....' 그렇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떻게 태어난 연월일시에 의해 인생이 정해진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치면 제왕절개로 일과 시를 조절해서 운명을 정할 수 있다고 봐야할까? (너무 에바 아닐까?)
아 물론 통계적으로 '이 시기 때 태어난 사람들이 이러하더라'라는 데이터가 쌓이다보니 발견한 패턴을 바탕으로 사주를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보기는 한다. 그래도 사주로 전 인생을 예지하려는 건 역시 '좀.....'스럽다. 그래서 재미로만 보는 게 좋겠고.
하지만 명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궁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나서는 사주가 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독자님께서는 사주에서 '궁합이 좋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는지? (아시는 분은 쉿ㅋ) 그 관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지금부터 썰을 풀어보겠다.
궁합에 앞서 사주에 대한 기본상식부터 짚고 넘어가련다. 사주를 보면 연/월/일/시 별로 2개의 글자를 따온다. 4x2는 8이니까 사주'팔자(八字, 여덟 글자)'라고 하는 것이다. 사주팔자에서 다루는 단위를 명리학에서는 '오행(五行)'이라고 부른다. 오행을 달리 말하면 다섯 가지 원소라고 보면 되고, 구체적으로는 달, 불, 나무, 물, 쇠로 구성되어 있다. 각 원소는 서로 상생(相生, 서로 좋다)하거나 상극(相剋, 서로 억제함)하는 관계를 가진다. 상생한다고 좋고 상극한다고 나쁜 의미는 아니다. 각 원소 간의 반응적 특징이라고 이해하는 게 좋다.
그러고 보면 저기서 말하는 달, 불, 나무, 물, 쇠가 우리가 쓰는 일주일의 그 '월화수목금(月火水木金)'이다. 이미 한국은 명리학에 입각한 세계관으로 시간을 세고 있었던 셈이다. 오히려 중국은 일주일을 셀 때 '星期一, 星期二, 星期三...' 이렇게 세는데, 한국말로 바꿔 부르면 '1요일, 2요일, 3요일...'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한국이 좀 더 무속적(?)인 세계관에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시 명리학으로 돌아와서. 명리학에서는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이유가 꽤 논리적이다. 아까 말한대로 년월일시에서 두 글자씩 따서 8칸을 만든 채로 다섯 가지 원소를 채워넣는다 쳐 보자. 가장 균형잡힌 형태는 각각의 원소가 고르게 분배되어있는 것이다. 다섯 개가 두 번 씩 등장하면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 래야 그럴 수가 없다. 여덟 칸 중 다섯 개 칸에 月 1번, 火 1번, 水 1번, 木 1번, 金 1번을 할당하면 나머지 3 칸이 남는다. 그러면 5가지 원소 중에 많아도 3가지까지만 고를 수 있다. 최대한 고르게 글자를 분배하고 싶어도 원소 2개는 필연적으로 탈락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오행을 균등히 지닌,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고 보는 거다.
그런데 궁합은 상황이 좀 다르다. 1인의 팔자에 또 다른 1인의 팔자를 더하여 16글자의 조화를 파악한다. 누군가는 사주팔자에 오행을 모두 가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은 대개 다른 오행을 갖게 마련이니, 하나로 합쳐지는 경우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없는 글자를 할당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리하여 '좋은 궁합'이란 기본적으로 내가 없는 원소를 상대방이 보충해 주고, 상대방이 없는 원소를 내가 보충해 주는 경우를 가리킨다. 아까 전처럼 오행을 가장 고르게 분배한다면 3번 씩 넣을 수 있고, 1개를 더 넣을 수 있다. 그렇게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고 보는 건가?
이러한 궁합의 관점과 미묘하게 결을 같이하는 연예이론을, 요즘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름하야 '테토-에겐 유형'.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테토-에겐 유형이란 인간의 연애 및 성격유형을 분류하는 밈이라 한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르테론(Testosterone)'과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의 표면적인 특성을 기준으로 테토남/테토녀/에겐남/에겐녀를 구분하고 그들 사이의 연애 먹이사슬 구조를 설명한다. 각 성향별로 누가 누굴 좋아하는지는 저~기 아래의 도표를 참고하면 좋겠다.
테토-에겐은 구분요소가 4개 밖에 없어서 궁합보다는 좀 더 단순한 해석이 뒤따르지만, 내 보기에는 이 연애궁합 관점이 상당히 신빙성을 갖는다고 본다. 사용한 단어가 테토남-에겐녀와 같이 약간 세속적이라 그렇지, 융 아저씨가 말했던 아니마(Anima, 무의식에 존재하는 여성적인 측면)와 아니무스(Animus, 무의식에 존재하는 남성적인 측면)가 테토-에겐 성격유형에 녹아든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융은 여성이라고 곧이곧대로 여성스럽다고, 남성이라고 곧이곧대로 남성스럽다고 보지 않았던 것같다. 생물학적인 여성/남성을 뛰어넘어 여성은 내면의 아니무스를 발견하고 남성은 내면의 아니마를 발견하여 내부적인 통합과 자기실현에 이르라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서로의 부족함을 채움으로써 더 나은 열 여섯 글자를 만들길 희망하는 궁합과 테토-에겐유형은 미묘하게 비슷하다는 인상을 가진 것같다.
그렇게 보면 나와 우리 남편은 참 궁합이 잘 맞는다. 남편은 내향적이고, 직관적이고, 이성적이고, 주어진 대로 행동한다. 나는 상대적으로 외향적이고 (내/외향 테스트 하면 49:51로 외향적), 직관적이고, 이성적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려고 한다. 둘 다 직관적이면서 이성적인 면이 있어서 대화가 잘 통한다. 와중에 내가 좀 더 감정적인 면이 있어서 대화가 더 다이내믹하다. 테토-에겐의 관점에서 보자면 남펴니는 에겐남, 나는 테토녀의 포지션에 가깝다. 위 도표에 보면 테토녀는 에겐남을 안좋아하는 것같은데, 고건 틀렸네! 나는 울 남편이 매우 좋음 ㅋㅋㅋㅋ (귀엽고 똑똑한 건 역시 좋다, 꺅)))
여행 일정을 잡을라치면 나는 어쩌다가 한 번 갈 수 있는 이 여행에서 뽕을 뽑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방문지와 필요경비, 예상 소요시간을 엑셀에 정리하지만 남편은 군소리 없이 나의 여행계획을 따라가 준다. 나는 그가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에 여행에서 그의 자유로움이 녹아들 수 있게 빡빡한 일정을 짜지는 않는다. 꽤 괜찮은 궁합이지 않은가!
어쩌면 내가 그를 좋아하는 데에는 이렇듯 다름이 서로를 보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겪는 다름(남성/여성, 장애인/비장애인, 이성애자/동성애자, 진보/보수)는 사실 당연한 것이면서도 또한 서로를 보충하는 관계로 거듭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서로 반목하기에 바쁘지만 한 생각 돌이켜서 어떻게 하면 서로 더 잘 협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봄은 어떨런지. 그럼 또 아나? 서로 좋다고 사랑에 빠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