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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에세이] 게임같은 육아

by 힙스터보살


현남편과 연애를 할 때에도 밀당 따윈 없었다. 별 기대없이 진행한 소개팅 후 세 번 째 만남에 사귀기 시작했다. 남편은 두근두근해하면서 취중진담식 고백을 하셨는데, 나는 '일단 만나보고 아님 헤어지면 되지 뭐'라고 쿨하게 대응한 덕분에 기적적으로(?) 초고속 커플이 되고 말았다.


예전이었다면 사귀기 전까지 내가 그와 맞을까 아닐까 한참 재고 따지고 그랬을 거 같은데, 한창 힘든시기를 지내서 그런가 연애에 있어서는 좀 많이 쿨(?)해지고 말았다. 사귄 다음부터는 내가 더 좋아해서 아동바동대고 남펴니는 평온하게 지내는 건 아이러니지만? (응? 나 좋아한다는 티 좀 많이 내달라구요 ㅋㅋㅋㅋㅋ)


그런 우리는 아이도 덜컥 생겼다. 같이 지내보다보니 이 분이 아빠가 된다면 참 괜찮은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용기인지 냅다 감행(!!)을 했고 호두가 우리한테 찾아왔다.


맨 처음 초음파 찍으러 갔을 때 아기집이 두 개였다. 삼신 할머니께서 이 커플이 늦게 만난 게 아쉬워서 한 방에 둘을 보내주시려 했나본데. 아무리 생각해도 둘 나이와 소득을 보건대 쌍둥이는 무리였는지, 두번 째 초음파를 보러갔을 때에는 아기집이 하나로 줄어들었다는 후문이 있다더라~ㅎㅎㅎ


찾아와줘서 너무 고마워 호두야..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울컥한다...


최근에, 남편과도 안했던 밀당을 아들과 하고 있다. 그것도 배변훈련을 하면서 말이다. 우리 아들램은 변화에 좀 예민한 스타일인 것같다. 그래서 새로운 장소에 간다, 새로운 수업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굉장히 소극적이 된다. 한참동안 적응할 시간을 줘야 마음을 열고 참여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팬티에서 기저귀로 넘어오는 과정이 쉽지가 않았다. 그는 기저귀를 너무 애정했다. 그래서 처음 팬티를 입힌 것도 기저귀 위에 입혔다. 꽤 오랜 기간 (3개월 이상?) 그렇게 입다가 어느날 갑자기 무작정 팬티를 먼저 입고 기저귀를 입혔다. 당장은 불편을 호소했지만 '괜찮괜찮 Bro' 분위기로 몰고갔다가, 팬티 젖고 다시 기저귀 위에 팬티 입는 상황으로 복귀하기도 했지만, 얼렁뚱땅 팬티를 기저귀 안에 입히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 후에 기저귀는 안 입고 팬티만 입히는 건 어느 정도 수월하게 넘어갔다.


지난 번 스윙바이 배변훈련법에서도 말했다시피 아이는 밤귀저기를 제일 먼저 뗐다. 아침에 눈뜨고 정신 좀 차리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을 변기에 쉬야하기로 정했다. 그에게 루틴이 정해지다보니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오줌부터 싼다. (자동사냥 너무 좋아 ㅠㅠ...) 밖에 나가기 전에는 싸기,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오면 오줌부터 싸기 등의 루틴이 잡히고, 이제는 스스로 오줌이 마려우면 냉큼 변기에 소변을 눈다. 전에는 내가 드라이브해서 소변을 보러갔는데, 이제는 '오줌 마려워?' 물어보면 '아니~'할 때 충분히 그의 의사를 존중하고 화장실에 데려가지 않는다. 이쯤 되니까 엄마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진다 : '이제 응가도 변기에 쌌으면!!!'


문제는 이미 그는 서서 기저귀에 응가를 누는 것이 너무 익숙한 자라는 것이다. 아이에게 고구마똥~ 방울토마토 똥~ 하면서 똥을 직접 보는 게 재미지다는 것을 스리슬쩍 알려줘도 (This is 넛!지!) 쪼그려 앉아 싸면 서서 싸는 것보다 응가가 잘 나온다는 것을 알려줘도 소용이 없다.


고민이 깊어진다. 전처럼 TV보는 시간을 15분으로 맞추고 중간에 쉬는 시간에 변기에 5분간 앉아있는 훈련도 해 보았다. 물론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앉아있는 동안 대발이 동화를 음성으로 들려주며 변기에 앉아있는 경혐량 자체를 쌓는 게 좋았다.


그런데 요즘 우리집 기조가 15분씩 끊어 보는 것에서 벗어나고 있어서 잘 활용을 못하고 있다. 이미 스윙바이의 순간이 와준 덕분에 그가 하루종일 팬티를 입는 생활에 익숙해지게 하려고 기저귀는 가급적 안 입히고 있다. 그덕에 그는 가끔 팬티에 응가를 싸기도 하고... 엄마는 응가 마려우면 꼭 이야기 해달라고 하였...지만 아이는 무시하고 팬티에 응가를 하기도 하고... 그럴 때는 엄마가 불같이 화낸 적도 있고... 이제는 엄마는 꽤 초탈(?)해서 팬티에 응가를 눠도 무념무상 mode로 손빨래를 하러 간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다음 전략이 필요하다.

다행히 그는 팬티에 응가를 싸면 안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기저귀에 응가를 누고 싶어한다. 그래서 나의 타협점은 이것이다 : 응가가 마려우면 엄마에게 알려달라. 그리고 변기 위에 3분간 앉아있으라. 3분 앉기에 성공하면 그 다음에 기저귀로 갈아주마' 그는 콜 하였고 훈련은 진행중이다.


이러한 밀당 덕분에 그도 좋고 나도 좋은 시기가 도래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균형점의 축을 옮기려고 변기에 앉아있는 시간을 점차 늘릴 생각이다. 자꾸 이 녀석은 2분으로 줄이려 하는데, 나는 4분으로 늘리려는 상황. 벌써 이 녀석이 흥정을 한다 ㅋㅋㅋㅋㅋ (훌륭해!)


보이십니까 노자 선생님? 인류가 호접몽을 꾸겠다고 합니다!


게임화(Gamification)라는 말을 들어보셨는가? 요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을 마치 게임을 하듯이 연출하는 기법을 말하더라. 굳이 업무 뿐만이 아니라 교육현장에서도 퀴즈를 내고 맞추는 걸 게임처럼 보여줘서 아이들의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효과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기도 한다. 노동의 해방은 노동시간 감소에 있는 게 아니라 노동을 즐기는 데 있다는 스님의 말씀도 게임화(Gamification)과 같은 맥락의 말인 것같다. 어쩜 동서양의 지향점이 이렇게도 비슷한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분명히 수고로운 일이다. 아이를 키우는 게 뿌듯한 것을 모르는 이가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키우기를 망설이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는 자기의 삶이 황폐해질 정도로 '육아'가 쉽지 않은 활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게임화(Gamification)에서 고된 육아의 해법을 찾는 힌트를 얻은 것같다. 마치 아이키우기를 다마고치 키우기마냥 즐기는 거다. '배변훈련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배변훈련 공략법 세우기'와 같이 게임처럼 생각하고 공략하는 것이다. 그러면 같은 배변훈련이라도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육아 뿐만 아니라 게임마냥 산다면 그거야말로 RPG(Role Playing Game)일텐데. 세이브를 할 수 없어서 그렇지 현질도 할 수 있고 파티도 맺을 수 있고, 매일매일 퀘스트도 있고...? (어? 이것이 인생게임?? ㅋㅋㅋ) 언젠가 뇌에 저장된 Data를 손실없이 입출력하는 기술이 발전하면 세이브도 되겠다. 그럴려고 머스크가 뉴럴링크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뉴럴링크 기술이 진일보 한다면 리얼월드에 준하는 메타버스가 구현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미 우리가 메타버스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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