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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교과서 찬성론자의 변

by 힙스터보살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논란이 많았던 때가 있었다. 아마 지금도 논란일 것이고 당분간 논란이 잠들지는 않을 것같다. 아무래도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 초기에 있기에, (여느 프로토타입이 그렇듯) 만듦새가 좋지 못할 확률이 대단히 높아서 더 논란이 되는 것같다.


교육열 하면 다른 어떤 나라 못지 않은 열정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질 떨어지는 학습도구를 채택한다? 이거이거 아니될 말이지. 게다가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 세대는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에 심리적 거리가 더 가까운 세대이지 싶다. 때문에 디지털 교과서가 정착하는 데에는 많은 부침이 있으리라 예상한다.


심지어 나조차도 이렇게까지 만듦새가 별로이고 어떻게 활용할지 가이드라인이 잘 잡히지 않았다면 굳이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해야 할까 의문이 든다. 어차피 방향은 정해져 있지 싶은데, 수정 보완하여 도입하면 되지 않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또한 디지털 교과서는 매체의 특성상 종이책보다 업데이트가 월등히 빠르다. 최신 정보를 빠르게 전파한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지만, 교과서 편찬위가 각종 단체들로부터 받는 외압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추구하기 어려워 할 수 있겠다는 우려도 없잖아 있다. (일제시대 일본의 만행 축소하고 근대사의 독재정치 부분 축소는 분명히 조심스러워야 할 부분이다. 후손들에게 남겨야 할 잔인한 교훈이라 생각하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최근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모습을 돌아보건대 더욱 그런 마음이 든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글을 써 왔지만, 글을 종이에다가 쓴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펜을 잡고 글을 쓰면 팔이 아플 지경. 타이핑을 하며 생각을 옮기는 것이 나는 숨쉬듯 자연스럽다. 심지어 요즘에는 요령도 생겼다. 음성인식 기능을 켠 후 브런치 앱에다 초고를 쓴다. 글을 쓰는 방식이 손가락으로 타이핑 하냐 입으로 타이핑(?)하냐의 차이일 뿐, 결과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말로 입력하는 게 속도가 월등히 빠르기도 하다.


뿐만이 아니다. 나는 가끔 내 글을 다른 글과 링크를 걸기도 한다. 두 글이 각각 표현하려는 바가 다르나 어느 정도 연관이 있고 서로 근거가 되어주는 관계가 있다면 나는 두 글을 엮인글 사이로 재탄생시킨다.


종이글은 매체의 특성상 엮인글을 쓰기 어렵다. 초연결 시대에 이르른 현대에서 디지털 매체의 연결용이성을 활용하는 것은 꽤 유효한 접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내가 썼던 글을 가지고 책을 내고 싶다. 그런데 그 책을 종이책으로 내고싶지는 않다. 심지어 전자책조차 이런 링크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가 거의 전무하다는 게 아쉽다. 그러니 전자책이 그저 부피만 줄어든 종이책 취급밖에 못받는 아닐까? 그렇게 누군가의 Kindle은 책장에서 잠들겠지. 지금 이 브런치에 내가 쓰는 글과 같이, 링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전자책이 나오길 매우 바란다. (뜬금이지만, 나는 글써서 돈 많이 벌고 싶당~ 가족들과 맛난 거 먹고 여러 군데 여행도 하고 싶당~ 헤헿)


지금 당장의 디지털 교과서는 조악할지 모른다. 하지만 디지털 교과서에 수록한 숱한 텍스트와 보조자료가 링크를 통해 탄탄하게 관계맺는다면, 어쩌면 학생들은 심화된 개인학습을 체험할 기회가 많아질 수 있다고 나는 기대한다. 텍스트를 읽다가 내가 관심이 생긴 키워드를 클릭하여 그 분야를 체험하고, 그 분야에서도 내 눈길을 잡아끄는 키워드를 타고가고, 타고타고 가다보면 그 종착역에는 내가 진짜 관심있어하는 것을 발견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똑같은 '교과서'라도 기존의 교과서가 시험문제 출제기준 수준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면 디지털 교과서는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탐구의 장을 되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와중에 이미 유럽 선진국은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 도입했다가 종이책으로 되돌아갔다는 기사가 기억난다. 그럴 법도 하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디지털 교과서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냈는지까지는 내가 자세히 모르지만, 몇 년 전에 접했던 온라인 교육매체 수준 - 일방적이고, 그림과 텍스크가 시간에 따라 재생되는 정도 수준 - 이라면 그냥 종이책 쓰는 게 훨씬 효과적일 거라고 본다. 내가 그리는 디지털 교과서는 당연히 그 이상을 지향한다. 오히려 영상재생 몇 개 꼴랑 지원하는 디지털 교과서라면 그냥 옆에 컴퓨터 따로 두고 재생하면 되지 굳이 한 매체에 담아서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을까.


심지어 최근의 대한민국은 막 AI시대에 발을 들여놨다. AI 기술을 잘만 이용하면 디지털 교과서가 다루는 지식을 종으로 횡으로 엮기 정말 좋다. 이걸 일일히 인간의 수작업으로 하는 데에는 분명히 적지 않은 품이 들텐데 말이다. 하지만 AI기술을 도구 삼아 접근한다면? AI 리터러시를 제대로 습득한 자라면 지금 내가 구상한 디지털 교과서를 구현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도입 타이밍 마저 이토록 좋다니. 대한민국이 운이 좋아지고 있나보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인류의 역사는 가까이서 보면 부침이 있어보이긴 해도 멀리 보면 전반적으로는 발전하는 경향을 보였다.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여줄 것같다. 당장은 조악하고 도입하기에는 해결해야 할 여러 난점이 있지만, 넓게 보자면 이 방향이 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이 흐름을 잘 이용하여 기존의 교육시스템이 이룩하기 어렵던, '개인화된 학습'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 고교학점제 도입도 이런 개인화된 학습을 지향하다는 점을 교육부는 명시하고 있다. 물론 사십 줄이 되어서야 내 인생의 진로를 정한 나조차 십대 중반의 나이에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식의 커리큘럼을 짜라는 게 가능한가 의문이 들기는 한다. 그래서 진로를 정하기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위해 좀 더 어린 시절부터 학생 개개인을 관찰하고 그 특성과 관심을 반영하여 진로를 설계하는 살뜰한 보살핌이 필요하지 곁들여져야 한다고 본다. 아마도 제도적으로 정착하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그 역할을 해야 할 확률이 높겠고 말이다.


여하튼 교육이 개인 능력의 발견 및 발전에 포커스를 맞추고 이것이 또한 사회의 발전과 순환을 이루게 한다는 거시적인 발상을, 나는 매우 환영한다. 개인의 성장이 곧 사회의 성장이 되고 사회의 성장이 개인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사회. 이게 내가 소망하는 사회이기도 하고, 공자 선생님께서 말했던 대동사회(大同社會)의 모습은 아닐까 짐작도 해 본다. 그러니 힘 내 보아라 디지털 교과서야, 내가 응원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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