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이 같이 순한 애라면 열 명도 키우겠다, 안 그러냐 애미야?"
저 말을 듣자마자 '어... 그렇기에는 애 키우는 게 안 힘든 건 아니던데'라는 생각부터 불쑥 튀어나왔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고 "아 그럼요, △△이 같은 애가 또 없죠!"라고 맞장구를 치는 데 성공했다.
다시 생각 해 보면 시어머니 말씀이 매우 옳다. 울 아들램은 키우면서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아이가 아니다. 밥 잘먹지, 잠 잘자지, 뛰어 노는 거 잘하지, 적당히 사회성도 좋다. 무엇보다 내가 울 아들램을 제일 좋아하는 포인트는, (너무 감사하게도) 잘 웃는다.
누군가 나에게 '다시 태어나서 가정을 꾸린대도 애를 낳겠느냐'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분명 애를 키우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쉽지 않는 면을 뛰어넘는 값어치가 진짜 있더라. 한 인간의 성장을 돕는 일의 보람됨을 느끼는 게 좋더라. 개인적으로 제일 와닿는 건 '쉽지 않은 과정을 견뎌디기 위해 좋든 싫든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밖에 없고, 실제로도 이만큼 성장한 나자신에 대한 만족감'이다. 누군가와 친교를 맺거나 어떤 일을 하면서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감각을 갖는 건 그만큼 멋진 일이다.
누군가 나에게 '아이 낳는 것을 권장하겠냐'고 묻는다면, 하라는 쪽으로 맘이 기울긴 하지만... 선뜻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경제적으로 후달려지는 것도 것이지만, 애를 키운다는 거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육아가 힘든 시기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이 아이와 신생아 시기를 거치는 게 제일 힘들었다. 일단 내 생활의 전환이 너무 컸다. 회사를 관뒀다. 회사를 관둔 것 자체보다는 '돈 버는 자로서의 포지션을 포기하고, 그로 인해 기존 사회에서 유리되는 느낌'을 받아들여야 하는 데에서 우울함이 오더라. 거기에다가 24시간 5분 대기조와 같이, 아이와 한 몸같이 지내야 하는 갑갑함이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이렇게도 중요한 것이였는지 새삼 깨달았다. (애가 이전보다 독립적이 된 3년 차가 훨씬 낫다, 나는!)
아울러 인생 앞 일 모르는 건데 남편 하나 믿고 간다는 게 못내 불안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면서 남편과 이러저러한 대화를 하다 내 귀에 확 박힌 말이 이거다 : "자기야, 우리 △△이가 중학생이 되면 제가 정년이예요" 그 말에서 느껴지는 남편의 부담감이 전해지더라. 그렇게 둘째 생각은 접었다. 울 아들램을 적당히 키우고 나서는 남편이 더이상 부담을 느끼지 않게 돈을 벌어와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내가 어느 정도 경제적 부담을 같이 짐지고, 어느 순간에는 바톤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를 키운지 3년이 넘어가는 시기에 코딩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접하고 망설임없이 지원했다. 일주일 내내 네 시간 씩 수업을 듣는데, 수업 마치고 곧바로 하원하고 애랑 좀 놀다가 저녁 준비하러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게 매일의 루틴이다. 7시~8시 딱 이 구간. 내 모든 정신에너지와 신체에너지가 바닥난다. 격하게 피로한데, 도무지 쉴 수가 없다. 하필 아이 밥 먹이고 남편 귀가 후에 같이 식사를 하는 타이밍이라 쉴 여지가 없다. 때문인지 요즘에는 육아에 있어서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잦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수업 마치면 어떻게든 그날그날 복습을 했을텐데, 요즘엔 도무지 그러질 못하겠다. 그래서 COS도 1급이 아닌 2급을 치뤘다. 1급을 보자면 볼 수는 있었는데, 집에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보니 그렇게까지 아둥바둥해가며 시험을 준비해야 하나 싶더라. 달리 말하자면 개인의 커리어가 너무 소중한 여성분은 아이를 키우는 게 더욱 힘들 수 있겠더라.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보면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구간이 생긴다. 아울러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직원에 대한 배려가 진실로 필요하겠더라. 물론 회사에서 성과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표이지만, 회사도 사회공동체의 성격을 계승하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적절한 타협선을 가지고 가야하지 싶다.
그 외에도 육아가 힘든 순간이 분명히 있었다. 아이가 뒤집기와 되집기를 반복하면서 뻑하면 구토를 하던 시기가 찾아왔을 때,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밥 먹이는 시간에 난장판이 되는 순간을 처음 접했을 때, 유아식을 시작하면서 기껏 열심히 식사를 차렸더니 안 먹겠다고 할 때, 예전에는 이만~큼 먹었는데 어느 순간 잘 안 먹기 시작할 때, 고집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을 때, 뭐만 하면 '무서워 무서워'하면서 피해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요즘에는 '내 것'에 대한 주장이 갑자기 강해지면서 '싫어 내꺼야, 아아아아아아아악--!!!'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 글을 새벽에 쓰는 게, 아이가 잠꼬대로 울면서 싫어 내꺼야 하는 소릴 듣다가 잠이 깨버려서 그런.....
한국에는 '미운 세살'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영미권에도 'Terrible Two'라는 말이 있더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시기가 되면 엄마가 힘들어지는 건 공통인가보다. 그런데 또 돌아보면 육아를 하다 힘든 시기가 도래하는 건 하나같이 아이가 어떤 변화와 성장을 하는 딱 그 시기 때 그렇다. 때문에 위기가 곧 기회라 하는 것이구나. 이미 누군가는 인생을 살며 저 말의 의미를 잘 깨달았을 터인데, 나는 나이 사십 줄이 다 되어서야 저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한 것같다. 느린 건 아쉽지만 방향은 맞는 것같아서 다행이지 뭐~
그래도 엄마가 되어서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자연히 자비심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수행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작지 않은 공덕인 것같다. 세상 많은 일이 '그럴 수 있다'는 관점으로 바라봐지더라. 그리고 좀 더 여유있게 요리 보고 죠리 보다보면 감각으로 느끼는 것 그 이상의 것들을 넘어볼 수 있는 경우도 생기더라. 그 상태를 전체적으로 아울러 볼 수 있게되면 마음의 고통이 덜한다.
이게 조견(비추어본다 照見, 여유롭게 한 발자국 떨어져 비추어 보면) 오온(다섯가지 쌓임 五蘊, 일차적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이) 개공(모두 공하다 皆空, 좋다/싫다게 매몰되지 않는다)의 의미였을지 모른다. 고(고통 苦, 해당 상황에 처해져 어떠한 고통을 느끼며 문제제기를 하고) 집(모으다 集, 이 고통에 원인이 있음으로 그 근원을 파악하고) 멸(없애다 滅, 그 실체를 완연히 알아버려서 고통의 실체를 소멸하고) 도(이르다 道, 마음의 평정에 이른다)가 육아에 있다.
사성제(네 가지 높은 깨우침 == 고집멸도)는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완연한 깨달음을 얻고 첫 가르침을 설파하실 때 하신 말씀이던데, 역시 출가하기 전에 애를 키워보셔서 그런가 아주 그냥 딱 맞는 말씀을 하셨나보다(?!) ㅋㅋㅋㅋ 무릇 이 글을 접하신 육아맘 육아대디 분들이시여, 성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