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이 글은 종교에 대하여 비틀어 생각하는 글입니다. 본인이 종교에 대한 진지한 마음이 크신 분이라면 다른 글을 읽어보심을 추천드립니다.
어떤 아이가 왕자로 태어났다. 그는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자였지만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의 품을 떠나 방황하였다. 스스로 던진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여러 스승을 찾았다.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완연한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였고, 깨달음에 대한 갈망으로 6년의 고행 끝에 혼절을 하고 말았다. 다시금 수행에 이어간 청년은 심적인 번뇌를 이기고 완연한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는 본인이 깨달은 바를 설파하기 시작하였고, 그의 가르침에 감응한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그렇게 그 자신은 만인의 스승(Guru)이 되었다.
어떤 아이가 태어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여자와 남자가 교합을 하여야만이 아이가 생기지만 그 아이는 아비가 없다 하였다. 교합이 없이 태어난 건지, 교합이 있었으되 아버지가 알려지지 않는 건지 알 길은 없다. 확실한 건 그 아이는 아버지라 부를 사람이 없는 채로 태어났다는 것. 그의 유년시절이 잘 알려진 바는 없지만 그가 찾아 헤맨 무엇인가는 있었던 것같다. 아마도 그것은 아버지 아니었을까? 자신의 탄생에서부터 부재했던 그 아버지말이다. 그는 아비 없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이를 전파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끝내 모든 왕들의 왕(King of Kings)이 되었다.
두 사내는 실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들의 메시지는 제자들에게 이어졌고 제자들은 종단을 만들었다. 전자는 불교라는 이름으로 아시아를 뒤덮었고 후자는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으로 유럽을 뒤덮었다.
불교의 경우에는 브라만의 절대성(아트만 추구)에 반발한 상대주의적 태도를 근간으로 일체개공(一切皆空, 만물은 이러하다고 정할 것이 없다)을 주장했다. 또한 브라만식 계급의식에 대항하여 평등을 주창했다. 오늘날 불교는 속세와 떨어져 세상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것같은 종교 취급을 받지만, 초기 불교는 꽤나 사회개혁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크리스트교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기존종교를 계승한 측면이 있다. 크리스트교의 경전인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있는데. 구약은 기존 유대교의 관점을 주로 담고 있고 신약은 예수의 등장 이후의 관점을 주로 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크리스트교가 유대교의 전통을 계승함으로 인해 크리스트교 역시 유일신 신앙의 전통이 남아있다.
하지만 둘은 차이점 역시 있다. 구약에 등장하는 하느님은 심판자의 측면이 강하고 신약에 등장하는 하느님은 사랑을 베푸는 부모님과 같은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지위계층에 상관없이 베풀고 사랑함을 지향한다. 계급사회가 엄격한 그 시절에 이와 같은 성향은 사회개혁적인 면을 적잖이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유럽은 기독교 사회주의가 존재한다. 물론 굉장히 보수적인 기독교인 역시 존재하지만 말이다.
내가 태어난 한국은 종교적인 면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아시아권역에 속하는 나라인지라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였다. 삼국시대를 시작으로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천 년에 걸쳐 불교문화를 삶에 녹여내었다. 한국은 이슬람 국가의 그것과 같이 율법으로서 삶을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또 그것과 어쩌면 유사하게 삶의 곳곳에 불교적 태도가 어려있다.
가령 중도를 벗어났는지 살피는 태도라든가 수행정진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를 보면 그렇다. 어쩌면 한국 특유의 학구열은 수행정진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와 계급적 차별을 탈피하려는 대중의 욕구가 결합된 결과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불교에 이어 유학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둘은 다소 분쟁이 있기는 하였으나 어찌저찌 잘 융합하여 조선은 유교문화를 꽃피운 국가로서 재도약을 하기도 한다.
한국은 종교사에 있어서 독보적으로 특이한 모습을 보이는 나라이기도하다. 전 세계에서 굉장히 드물게도 그리스도교를 스스로 수용했던 나라, 그것이 한국이다. 플라톤이라는 사내가 주창했던 철인정치를 어느 정도 유사하게 구현한 나라가 조선이기도 하다. 조선의 학자들은 그리스도교를 '천주학'이라는 학문으로서 받아들였다. 학문을 닦던 중 그 메시지에 감응하여 스스로 신자가 된 이들도 나타났다. 걔 중에는 조선의 명군 중 한 명인 정조가 총애하던 다산 정약용 선생과 그의 형제들도 있었음이라. 낯선 땅에서 스스로 복음의 전파에 소식에 감동한 교환 비오 6세는 멀리도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고 하고.
이런 기반 덕분인지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다중의 종교를 수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큰 종교분쟁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의 후손으로서 살아온 나는, 일찍이 유교적인 기풍 속에서 살다 이제는 불교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와중에 각종 종교가 가리키는 바가 어쩌면 하나의 길에 다다르는 것이라는 미묘한 감각을 느끼며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탐구가 어디에 다다를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여정을 따라가는 발걸음은 예나 지금이나 가볍고 마음은 충만하다.
나는 앞서 두 사내의 삶이 흥미로워 AI에게 둘의 MBTI가 무엇이겠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전자의 사내는 INTJ라고 답하였고 후자의 사내는 ENFJ라고 답하더라. 수행을 위해 숲으로 들어간 붓다가 I이고 사랑을 설파하기 위해 세상에 나온 예수는 E였던 것인가. 둘 다 세상의 진리를 꿰뚫어 보심에 N이 되었던 것인가. 세상의 원리를 깨닫고 논리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불교라 T인가. 사랑과 연민을 추구하고 불의에 대하여 분노했던 그리스도교는 F인가. 여하튼 수행의 길과 하느님의 비전을 제시한 둘 모두 J였던 것인가. 보니까 INTJ랑 ENFJ는 궁합도 좋네.
와중에 세상을 개혁하려고 하고, 현실에 기반한 구체적인 도덕규범을 제시하며,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강조하고, 군자의 삶을 보여준 공자 선생님은 ESFJ라고 한다. 선지자로서 새로운 공동체를 정립하고, 규율을 일상생활에 적용시킨 샤리아라는 현실적인 지침을 제시하고,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합리적인 전략전술을 펼치며, 이슬람 공동체를 통하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리더였던 무함하드는 ESTJ라고 한다. 보니까 ESFJ와 ESTJ도 궁합이 잘 맞네. 유교국가 하면 탑랭크인 한국이 중동지역에서 그렇게 선전하고 있는 게 꼭 저런 탓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또 그럴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고도 싶고.
너무 갔나? 상상정도는 해볼 수 있잖아. 오늘의 종교탐구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