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특정분야는 선호하는 인재상이라는 게 있다. 가령 영업직군은 외향적이고 사교적이어야 하고, 홍보직군은 꼼꼼하고 열정적이고 아이디어가 많아야 한다는 식. 혹은 특정 분야는 이러한 인물들이 주로 모인다는 기대치가 있다. 공학분야는 T형 분들이신 분들이 모이고, 경영경제 분야는 S이신 분들이 모이고, 철학분야는 N일 거라는 식. 사람들이 오랫동안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렇더라~' 또는 '이게 좋더라~'라는 경향성을 발견하곤 한다. 통계에 기반한 경향성은 나름 근거가 있는지라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요즘에는 여러 분야의 크로스오버가 눈에 띄는 시대이기도 하다. 판사를 하시는 분이 시나리오를 집필하시어 드라마 작가까지 데뷔하기도 하고, 의사이신 분이 웹툰을 그려 인기작가가 되기도 한다. 종교단체를 운영하시는 분들이 전문 회계를 배워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도 한다. Google에서는 개발자들에게 명상하는 법을 전파하여 일의 능률을 올리려는 시도도 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각종 경험을 통해 전자를 습득하게 되는 것같다. 나이가 들면서 쌓이는 지혜 중 다수가 저런 경험적 지식 아닐까. 남들의 입과 미디어 등을 통해 접한 다양한 통계치. 어느 정도는 대다수에 상황에 적당히 잘 돌아가는 휴리스틱적인 지식. 잘만 활용하면 일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강점이 있는 데 반해, 통계적 기댓값이 무슨 세상의 진리인 양 취급하면 그 사람의 확증편향이 깊어질 뿐이다. 해서 나이 먹고 자기 의견만이 옳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꼰대라 불리기도 한다. (물론 꼰대는 나이를 가리지 않긴 한다) 또 아쉽게도 젊은이들 중에는 본인의 경험을 내보이는 선배를 앞뒤 안 가리고 꼰대 취급을 하는 자도 있다.
어제 코딩수업에서 보드게임 수업을 했다. 나는 화투를 포함하여 보드게임 류를 썩 잘 하는 편이 못된다. (숫자 계산하는 거 왤케 어려움.... ㅠㅠ) 그래도 게임 자체는 좋아하여서 수업이 참 재미있었다. 나를 포함하여 네 선생님이 테이블에 앉아 팝콘/스택버거/폭탄대소동 엔트리봇/ZIP 게임을 함께했다. 게임들이 하나같이 논리적 사고를 함양하기 위한 좋은 교구였다.
그런데 가만 보면 게임을 하면서도 각자의 캐릭터가 보인다. 어떤 분은 전략을 잘 세우고, 어떤 분은 변화하는 조건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어떤 분은 셈 자체가 빠르다. 게임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게임을 하면서 쌤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의외로 또 꿀잼이었다. (게임에 몰입하는 우리 쌤들 모두 최고!)
그러고 보니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다녔던 학원이 생각난다. '○○○○ 연구소'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이 학원은 여느 보습학원과는 운영시스템이 다소 달랐다. 일반적으로 학원은 강사의 수업을 듣는 거에 의의를 둔다. 그래서 얼마나 훌륭한 강사를 우리 학원이 보유했느냐가 학원의 홍보 포인트가 된다. 하지만 내가 다녔던 학원은 강사보다는 강의 컨텐츠가 중요했고, 그 컨텐츠를 학생들이 흡수하여 '스터디'를 하는 게 중요했다. 이 학원은 '사고력 증진'이라는 테마로 문제를 해결하는 스무 가지의 메소드를 한 주에 하나씩 훈련했다. 훈련을 위해 주어진 교재가 있었고, 그 교재를 푼 다음 스터디원들과 모여 풀이과정을 공유하는 일을 매주 반복했다.
그 학원은 학생으로서 공부했던 곳이기도 하면서 훗날 내 인생의 첫 커리어를 강사로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더하여 홧병을 경험해 본 곳이기도 하다...ㅋ) 강사로서 애로점은 이모저모요모조모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 하나는 스터디 클럽 조직하기였다.
스터디를 운영 하다보면 누군가는 설명을 주도하고 누군가는 끌려가는 식의 진행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면 설명하는 자가 손해를 보는 게 아니겠냐는 시각이 물론 있다. 공부 잘 하는 친구들만 한데 뭉쳐서 드림팀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고, 스터디팀 조직할 때 '(공부 잘 못하는) 저 친구와는 같은 팀이 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직접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의미가 있는 의견이라 최대한 반영하려고 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았다. (끊임없이 설득하고 수그려야 했던 과정을 겪었어야 했던 것은 덤!)
하지만 (비교적) 설명하는 위치에 있던 내 경험을 빌리자면, 잘 못 따라오는 친구가 팀에 있다는 게 (열심히는 해온다는 전제 하에) 그렇게 나쁘진 않았던 딱히 것같다.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바를 명확하게 알 수 있고, 설명이 더듬거려지는 포인트를 마주하면 거기가 바로 '내가 진짜 모르는' 것임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모름지기 공부라는 게 '내가 뭘 알고 있는지, 뭘 모르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이를 해결 해 나가는 과정임을 감안하면, 나는 꽤 공부다운 공부를 했지 싶다.
엉덩이 붙이고 씨름하는 것도 결국 나의 무지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메타인지 수준을 높히고 지식을 많이 쌓는 게 하루이틀에 되는 것은 아니지 싶다. 그래서 일단은 오래 앉아 있기라도 하라는 것일테지. 태생적으로 머리가 좋아서 메타인지도 높고 지식 투입 대비 손실률이 월등히 적은 친구가 굳이 책상에 오래 앉아있을 이유가 무엇인가 싶다. 물론 모두가 머리가 좋진 않으니 오래 앉아있기라도 해서 극복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공부한다'고 하면 엉덩이 힘부터 이야기하는 소위 교육전문가들을 보면 답답함이 느껴지긴 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더라. '팀플은 왜 공산주의가 망했는지를 알려주는 사례다'라고. 어느 정도 동의하는 말이다. 경영학과 출신으로서 다수의 팀프로젝트를 거쳐보니, 팀플이 잘 굴러가는 건 한두 사람이 하드캐리를 하는 때가 많다는 걸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주로 그 '하드캐리'를 맡아본 나로서는, 이제는 팀플을 한다치면 책임감을 기본 아이템 삼아 프로젝트 전반을 이끈다. 뒤따르는 팀원에게 한 번에 한 두 가지 정도만 명확한 테스크를 주려고 노력한다. 가급적이면 결과물도 직접 확인하고 피드백도 주려고 노오력은 하는데... 이럴거면 차라리 혼자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을 때가 자주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팀플이야말로 참으로 많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키우는 기회이기도 했다. 팀플 간에는 경쟁이 발생하여 스스로 움직이는 동기가 생겨나기도 한다. 공모전이 그렇다. 대단히 재미있는 건, 유능한 팀플원일 수록 경쟁도 잘 하지만 그만큼 협력도 잘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경쟁을 잘하는 사람은 남들에게 협력을 안 할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학생들간의 경쟁이 꽤 심한 걸로 소문난, 내 고등학교 모교도 막상 다니던 시절에는 서로 필기노트를 보여주는 천사같은 친구들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안다. 예전에는 재능을 중심으로 진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이제는 '얘는 이걸 잘하니까 이 분야로 가야해요'와 '얘는 이걸 좋아하니까 이 분야로 가고자 해요'를 교차시켜 진로를 결정한다는 걸. 능력이 출중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분야를 좋아하니까 모이는 사람들 덕분에 한 영역 내에서도 다양성은 이전보다 늘어나는 추세가 될 수밖에 없다.
'다름'은 처음 접했을 때 우리의 감정은 불편함을 내비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다시 말 해 각자 가지고 있는 강점이 다르기 때문에, 의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생각 해 보건대 훌륭한 리더는 이런 사람일 것같다 : 다름 속에서 좋은 조합을 만들고, 그 조합이 이루어질 수 있게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자. 그럴려면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걸 순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불편함은 일차적인 반응임을 알고 평정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평정의 마음으로 강점을 꿰뚫어 봐야 한다. 파악한 강점들이 내 의도에 맞게 움직여 달라 설득해야 한다. 소통은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기에, 실패하더라도 성내지 않고 꾸준히 시도해야 한다. 다시 보니까 불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고스란히 리더의 덕목에 녹아있다.
한창 경영학 공부할 때에는 리더십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었다. 보스와 리더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적어놓은 글을 읽으며 감탄하곤 했는데. 쫓고자 했던 삶(진정한 리더)이 현재의 삶(재가 수행자)과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다는 게 놀랍고, 새삼 뿌듯하다. 그래서인지 어쩐지, 이번 코딩수업에서 만드는 '디딤돌 동아리'에 회장이 되고 말았다. (허허허허허~) 이미 동아리 원분들한테 여러 차례 드린 인사이지만, 이번엔 내 자신에게도 이렇게 인사하고 싶다 :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