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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오늘의 비추천 : 스탈린식 독서

by 힙스터보살


일반적으로 독서한다고 하면 좋은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게 마련이고, 독서를 취미로 두신 분들이 스스로 자랑거리로 삼는 부분에 '나는 독서를 하는 사람이다'는 것도 없진 않은 것같다. 그런 지적 허영마저도 없다면 누가 책을 들까도 싶고. 의외이다 싶지만 역사적으로 유명한 다독가 중에는 스탈린이 있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맞냐고? 맞다. 이오시프 스탈린. 낙후된 농업국가였던 러시아를 5개년 계획을 통해 단시간에 세계적인 공업강국으로 탈바꿈 시켰던 지도자. 일인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정치적 정적과 수많은 자국민을 제거한 독재자. (어...? 누가 생각나는데...?)


조금 알아보니까, 스탈린은 생전에 2만 5천여 권에 달하는 장서를 수집했고, 하루에 300~500쪽의 책을 읽은 독서광이라고 한다.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레닌이었고 비스마르크의 회고록과 미국 헌법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는 손수 장서 분류체계를 만들고, 책을 읽으며 메모를 남기는 걸 즐겼다고 한다. 신기한 일이다. 자유와 평등을 지지하는 미국의 헌법마저도 즐겨읽었다는 그는 어떻게 독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을까? (그렇게 치면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한 헌법을 근거로 계엄령을 발동시킨 대통령도 있긴 해...?)


우리 스탈린 아조씨는 다독다독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독거렸나보다잉?


'스탈린식 독서'라는 걸 알게됐다. 역사적으로 유니크한 발자취를 남겼던 스탈린 아저씨라 그런가 독서를 하는 것조차 범상치 않았다. 그는 독서를 할 때 여백에 자신의 의견을 적는 것을 즐겨했다고 하는데, 그 메모를 보니 '헛소리, 개소리, 맞아, 옳아' 식으로 쓴 게 주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에 맞으면 OK,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Not OK. 스탈린은 러시아 독서계의 신랄한 빨간펜 선생님이셨다.


얼마나 잘나셨으면 자신이 기준이셨는가 모르겠는데. 자기확신을 강하게 하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다보니 책을 읽을 때에도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는 것들은 찾아다니고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 건 외면했지 싶다. 물론 스탈린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맞는 것을 동조하게 마련이고 자기 생각에 안 맞는 건 심적으로 멀리하게 마련이지만, 스탈린 아저씨의 확증편향은 약간... 경계성 장애에 근접해가는 수준으로 독보적이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같다.


이번 대선 후보를 봐도 그런 분이 보인다. 요즘 육아와 학업, 글쓰기로 남는 시간이 별로 없어 대선토론을 보지 못했는데. 요즘 시대가 너무 좋아져서 유튜브로 13분짜리 하이라이트 모음을 보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단히 강한 인상을 주신 분이 계신다. 젊은 친구가 학력도 좋아봬 보이던데, 보니까 답정너 스타일이더만? 누가 나중에 데리고 살지 모르겠는데, 연인이 된다면 사회에 방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저런 스타일을 사랑 해 주고 붙잡아주시는 미래의 보살님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여러분 주변에도 그런 분이 있으실지 모른다.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다 아니라고 하는 부류들.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다 그러한 면이 있긴 한데, 같이 있다보면 '...어?' 싶은 분들. 좀처럼 남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는 스타일. 그 점 때문에 공격을 받으면 아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논점을 흐리든 뭘 하든 방어하는 스타일. 곁에 있으면 화가 나고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긍휼히 보이기도 하는. 나도 그런 사람이 있다. 그래도 다행히 괜찮다. 고통스러웠던 시기를 거치면서 나름 깨달은 바가 있다. 원래 싸우면서 제일 힘든 건 본인이 고통스러운 거지. 난 일단 먼저 나왔다?


나오는 방법이 궁금해? 궁금하면 500원~


비정상회담에 나와서 인기 패널이 됐던 러시아 출신 귀화한국인 일리야에 말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신학교를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취급하는 정서가 있다고 한다. 이 점을 빌어 신학교를 졸업한 스탈린도 놀린다고 한다. 신학교 졸업자가 뭘 알고 세계 역사를, 마르크스 주의를, 대문호의 작품의 글을 평가하느냐는 식의 조리돌림. 누군가는 스탈린의 정책으로 인한 러시아 경제부흥을 찬양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정서를 보면 꽤 상식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그래도 내 주변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분들은 상식적인 분들이 대다수이다. '쟤 뭐야' 싶은 분들이 그렇게 자주 있지는 않다. 불자로서 그런 분들을 마주했을 때 분별심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놓기 어려운 지점들이 생기고는 한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런 자들을 보면 마음의 정을 꺼내서 사정없이 모난돌을 내리친다. 정을 내리치는 내 마음에 이 말이 떠오른다 :


인간도 하나의 우주다. 우주는 그 자에게 시련이라는 선물을 줌으로써 그 사람을 응원하고 있다. 뭍 사람들의 보살행이 반드시 우리가 기대하는 아름다운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차라리 이러한 면조차도 아름다움으로 볼 줄 아는 심미안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다시금 독서라는 키워드로 돌아와서.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는 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는 법이다. 독서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도 다를 것이다. 이 점을 알게 된 나는 누구나 자기 내면의 거울을 닦아 스스로를 바르게 비추는 지혜가 필요함을 느낀다. 그래서 붓다께서도 계정혜(戒定慧, 계율과 선정과 지혜) 삼학을 닦으라고 하셨던 것같다. 역사적으로 못난 짓을 했던 분 덕분에, 지금 이 시간에도 실시간으로 못난 짓을 하는 분들 덕분에도, 우리는 뭐가 중요하고 뭐가 필요한지 감각을 가질 수 있는 것같다. 실로 아름다운 목불견정(木不見釘)과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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