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해방 전략

by 힙스터보살


* 본래는 매주 수요일 발행이나, 내일은 장기연휴의 첫날인지라.. 할일이 더 많아서(!!! 주부 포지션 이렇죠 뭐 ^_ㅠ...) 하루 일찍 올립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생존을 위해 뭐라도 '해야만'한다. 균류는 물질을 분해하여 양분을 얻고, 식물은 광합성을 하여 포도당을 만들어내야 한다. 초식동물은 풀을 우물우물 먹어야겠고, 육식동물은 무엇이라도 잡아먹어야 한다. 와중에 인간은 뭐라도 된다고 본인의 생존을 위해 자원을 마련하는 일련의 행위에 '노동'이라는 이름을 갖다붙였다. 내 보기에는 생존을 위해 자원을 모으고 소비하는 데에는 하등 다를 게 없다만. 뭐 그래도 인문학적 매너를 지키자는 좋은 취지로 인간의 자원수집 및 순환행위를 '노동'이라고 부르련다. 아무래도 이 글이 '인간'이 쓰는 글이고, 독자 역시 '인간'이기에, 인간다운 단어를 쓰는 게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노동을 영어로 표기하면 labor인데. 어원을 찾아보니 라틴어 labor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 뜻은 '힘든 노력, 고통, 고역'. 그럼 그렇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노동'을 안 건드릴 수가 없는 이유의 근본은, 인간이 일하는 행위가 고통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과 분노 고통과 같은 것들은 으례 심리적 상처를 야기한다. 누군가는 그 상처를 문학으로 재탄생시키거나 철학으로 다듬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상가들이 노동을 대상으로 다각적인 접근을 했던 것이고, 이쪽에서 꽤 알아주는 사상가 중에 하나가 마르크스 아니었나 싶다. ('노동'이라는 키워드를 대면 '마르크스'라는 인지적 연결고리가 생긴 것만 봐도 그의 마케팅은 성공인듯)



나는 노동을 쪼오끔은 과학의 눈으로 다듬고 싶다. 생명은 탄생 이후 필연적으로 죽음에 다다른다. 죽음은 어떻게 정의내리는 것이 적절한지는 학자들마다 이견이 분분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생명체가 더이상의 에너지 분출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또 '생명체'는 무엇이냐 물을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니 내 뇌가 녹아내린다.... 껄껄) 우리는 태어나면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소비하며 에너지를 방출하고, 그것이 더이상 영위되지 못한 상태에 이르는 죽음을 맞이한다. 좀 더 확대해석 해 보자면, 현재 우리의 생 순간순간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또 달리 생각하면, 인생의 완성은 죽음이라고 볼 수 있다.)


와중에 노동은 생존을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먹는 일, 배우는 일, 돈버는 일 등등이 나의 에너지를 소모하여 내 존재가 이 사회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 기여를 고려해도 어찌되었든 노동활동은 '일'이기에 에너지를 소모한다. 아주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생하게 하는 행위는 필수 불가결하게 우리를 멸에 이르는 흐름과 합류한다. 그래서 일을 하는 행위는 고통스러운 게 아닐까?(그렇기에 사는 것은 고통이라는 붓다의 말씀이 떠오른다. 아아 그는 역시.....) 때문에 그 고통을 경감하는 최소한의 조치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식의 접근법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노동활동에는 조커같은 해법이 있다. 바로 그 일를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일찍이 스님이 하셨던 다음의 말씀을 전한 적이 있다 : '노동의 해방은 노동시간의 단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즐기는 데에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지지자 불여 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호지자 불여 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일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고통을 상쇄하여 노동에 매진할 수 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좋아한다'는 기분은 쾌락에 관여된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심리적인 접근으로 제공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근무 시간 중에 커피를 마시며 카페인을 조달하는 거나 달달구리를 냠냠거리며 당을 조달하는 것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쾌락중추를 건드린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커피를 마시는 것도 제공물이 카페인에서 당으로 바뀐것 뿐, 쾌락중추를 건드려서 노동의 고통을 상쇄하는 행위라는 기본 구조는 변화가 없다. 적어도 '그 일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행위와 달리 일을 하면서 동시에 발생시키는 행위이기에 가장 강력하고 별도의 자원이나 에너지를 들이지 않는 효율성이 있다는 차이가 있지 싶고. 그러니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도 나오는 것같다.


우리 말년이는 진정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구나하하하하



나는 ppt를 만드는 걸 엄청 좋아한다. 내 생각을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게 알려주는 것도 좋아한다. (비록 블록코딩이지만) 코딩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다. 내가 생각한 기능을 구현해내는 과정이 짜릿하다. 나는 애들이랑 대화하고 노는 것마저 좋아한다. 이런 요소를 쿵챠챠 쿵챠 조합시킨 '코딩강사'라는 직업은 그래서 나름 만족도가 높다. 심지어 이번 수업에 아이들 반응이 좋아서 수업이 끝나니까 아쉬워한다는 말씀을 하신 담임선생님도 세 분 이상 계셨다는 점에서 보람도 느낀다. (빈 말일지라도 들을 땐 기부니가 너무 좋았다 ㅠㅠ) 코딩수업에 대해 교내신문에 기사가 떴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나 싶어 신기방기.


이렇게도 나랑 궁합이 착착 맞는 일이지만, 수업준비는 역시나 피곤하다. 어디서 쭉 달릴지, 어디에서 일시정지 시키고 집중을 하게 만들지, 전달할 내용은 어떻게 배치하여 몰입감을 높일지 등등. 40분 수업을 디자인하고 요소를 배치하는 그 일련의 과정에는 적지 않은 품이 든다. (너무 힘들어서 좀 소홀히 준비했다가 수업이 망힌 적도 있다... ㅠㅠ) 수업자료를 만드는 일이 아무리 신나도 다 만들고 나면 몸의 진기가 빠져나간 기분이다. 시간을 많이 써서 잠이 부족한 것은 덤.... 으아아 여전히 이어지는 고통의 굴레... (그래서인지 6학년 한 바퀴를 다 돈 지금은 라이트하게 수업을 준비한다. 하하하~)


노동의 고통은 살아있는 자가 피하기 어려운 인생의 고통이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것이 생명체의 사명이라면, 파훼법을 찾을 수밖에. 지금으로서 나의 선택은 대충이라도 시작을 하기는 하고, 시작한 순간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빠져든 다음에는 어찌저찌 즐김으로써 힘듦조차 느끼지 않게 만들 수밖에. 이게 쉽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살포시 있긴 하지만, 이대로만 되어준다면 왠지 갓생을 살것만 같은 느낌적임 느낌이 든다. 그렇게 시간을 소모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는 순간 내 삶은 어떤 완성에 이를까? 뭐.... 가보면 알겠지!



* (그으래도)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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