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글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고 남기는 글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나라의 체제는 대체적으로 유행이 존재했다. 부족제에서 봉건제로, 봉건제에서 절대왕정체제로, 절대왕정 체제에서 민주사회로. 물론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유행'이라는 측면에서는 대세에 따르는 국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절대왕정에서 민주사회로 넘어올 때 큰 갈래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였지 싶다. 어떤 나라(이를테면 유럽?)는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성립시켰다. 세계 도처의 나라들도 각자의 배경과 문화에 맞게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정착했다. 흥미로운 건 대부분의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들은 '시장경제'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합이 잘 맞는다는 걸 역사가 증명해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측면으로 접근 및 해석이 가능한 체제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자본주의가 가진 미덕에 하나는 '자유시장경제'라고 본다. 근래 들어 자유시장경제를 '법은 관여치 말고 자유만이 최고이다'라는 식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같아 보여서 안타깝다. 본래 자유시장경제는 '진입장벽이 낮아서 누구든지 신규로 들어올 수 있는 시장'을 가리킨다. 진입장벽이 낮을 수록 완전경쟁시장에 가깝고, 완전경쟁시장일 수록 소비자의 효용을 증가한다. (= 생산자가 가격은 낮추고 품질은 높이는 과정이 소비가 효용으로 이어짐) 때문에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완전경쟁시장을 형성하려 노력했다. 미국의 반독점법도 이러한 명분에 근거한 것임이 자명하다.
반대로 기업 입장에서 완전경쟁시장은 피곤한 구조다. 시장에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꾸준히 만족스러운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경쟁자를 없애는 것이다. 때문에 기술적 격차를 키우든, 문화를 조장하든(= 유행), 밸류체인을 선점하든 해서 장벽을 만들어 나간다. 그런 맥락으로 정부와 결탁하여 법적 장벽을 만드는 방법도 선택해 봄직하다. 그래서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정경유착의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이 생긴다. 전체주의에 가까운 국가에서는 아예 권력자들이 기업을 독점하여 꿀을 빨기도 하고.
자유시장경제에서 소비자들은 여러가지 선택권을 갖게 된다. 1번 공급자와의 거래가 맘에 안들면 계약을 위반하지 않는 이상 2번에게 넘어가도 하등 문제 될 게 없다. 이는 정치제도에도 똑같이 반영될 수 있다. 나와 이 사회의 편익을 위한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를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 뽑아놓고서 하는 결과물이 영 아니다 싶으면 다음에 안 뽑으면 된다. 좀 더 적극적으로 본인의 권리를 행사 해 보자면, 뽑아놨더니 하는 행위가 사회의 공멸을 부를 뭔가를 하겠다 싶으면 들고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러한 면 때문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합이 맞다. 둘 다 이 시스템을 누리는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사표시(지지 or 거부)를 상대방에게 적용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시장경제를 건드렸으니 이번 차례는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엄밀히 따지면 이념이 아니라 제도이다. 민주주의를 영어로 쓰면 Democracy이다. 어미가 '-racy'라는 것부터 민주주의는 이념(-ism)이 아니라 제도임이 명백하다. 영어권 사람들에게 Democracy의 반댓말을 말하라고 하면 Autocracy라고 말한다고 한다. Autocracy가 그렇다면 무어냐? 번역을 하면 '독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민의를 반영하는 것을 지향하는가, 1인 내지는 소수의 권력자를 통해 결정하는 것을 지향하는가에 따라 Democracy부터 Autocracy까지의 스펙트럼이 나뉜다.
나는 여기서Democracy가 되었든 Autocracy가 되었든 국민(or 민중)의 중요성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Democracy의 경우 국민은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개인주의에 빠져서 사회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국민들은 개인과 사회의 어느 정도의 적정선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들게 적정선 이상의 인지와 판단능력 및 참여의사가 요구된다. 이를 충족하려면 그들은 사회의 현상에 무관심하지 않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배워야 한다. 민주주의 공론장 특유의 시끌벅적함을 수용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거짓과 선동을 가려내어 핵심이 뭔지를 파악하려고 적어도 '노력'은 해야 한다. 지금껏 권력을 잡은 인간이 부패했던 무수한 사례들을 보며, 뽑아놓은 대표자에 대한 신뢰를 보내는 한편으로 언제든지 그 신뢰를 저버릴 준비도 함께해야 할 필요가 있다.
Autocracy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왕정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전체주의가 등장했다지만, 둘은 사실 닮은 점이 많다. 그 중 하나는 대중에게 충성심(Royalty)를 강조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이 쉽사리 권위주의에 빠진다는 것이다. 권위는 지도자가 만들어낸 성과에 따라 형성되는 '결과물'로 취급받음이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주의 정부가 되었든 독재주의 정부가 되었든 정부조직은 개개인의 편익과 조직 전체의 생존을 전반으로 아울러야 한다고 본다. 개인의 편익이 조직의 융성으로 이어지고 조직의 융성이 개인의 편익을 높이는 선순환이 이루어진 사회(= 이게 내가 생각하는 '대동사회'이다)에 얼마나 기여했느냐가 권위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일단 그가 지도자이기 때문에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리 생각하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와 같은 성향이 못내 불편하다. 맡겼다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맡긴 일을 잘 수행해야 인정해 주는 것이 적합하지 않던가. 잘 했다가도 점점 이상하게 간다면 비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대표자에 대한 지지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이겠지만, 일이 빠그러지는 데에도 지지만 보내는 것은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다.
공적기관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와 지지를 보낼 필요는 십분 인정한다. 하지만 이를 넘어선 충성심을 요구하는 것은 비판과 관찰의 민감도를 낮추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대중이 마땅히 관심을 두지 않는(혹은 못하는) 분위기를 바탕으로 권력자가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렀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역사는 증명하였다. 누군가는 독재라도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했다 말할런지 모른다. 하지만 제지할 수 없는 독재는 전체주의로 넘어가게 마련이다. 그나마 민주주의 사회는 '민중이 주인이다'는 의식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아서 독재를 더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게 다행이고. (심지어 민주주의라고 해서 반민주주의 적인 대표자가 등장하지 않은 것도 아님)
때문에 <동물농장>을 쓴 조지 오웰이 복서를 좋게만 표현하지 않았던 것같다. 그는 분명 능력도 있고, 좋은 인성을 가졌다. 인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경이로울 수준이다. 하지만 사회의 존속을 위해서는 능력과 인성 외의 요구사항을 충족한다는 것을 그 스스로가 반증하고 말았다. 과도하게 몰입된 충성심으로 인하여 권력자는 비판을 받을 여지를 잃어버리다시피 하였다. 대중의 비판에서 멀어진, 혹은 대중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권력의 흐름이 어떠했는가? 이상을 배반하고 위선을 반복하며 공고한 차별을 재생산하지 않았던가?
민주주의든 권위주의든 그 안에 소속된 국민들이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비판과 감시를 계속 해 나가야 한다. 그게 전체주의로 빠지지 않는 하나의 방법인 것같다. 형형하게 깨어있는 것을 바라지는 못하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막아서는 안된다. '언론의 자유'란 그런 식으로 가치가 있는 법이다. 또한 '나는 대표자를 선택할(또는 버릴) 자유가 있다'는 감각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그 둘을 놓는 순간 권위는 고삐풀린 망아지가 되어 누구를 들이받을지 모를 일이다.
스탈린도 박정희도 둘 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서 경공업 중심의 국가 경제체제를 중공업 체제로 바꾼 성과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스탈린이 독재를 했던 기간은 30여년이고 박정희는 20년이 좀 못되었다는 것과, 전자는 민의를 반영하는 시스템을 스스로 파괴하였고 후자는 (피를 흘릴지언정)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이를 발판삼아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융성하였다는 데 있다. 한국의 많은 기성세대가 박정희를 찬양하듯이 따른다는 것을 나는 이미 잘 안다. 나 역시도 박정희가 이루어낸 경제적인 업적을 폄하할 생각이 1도 없다. 다만 이 점은 분명히 하고싶다. 그가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성공했다면, 그로 인해 국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접게 만들었다면, 2025년 현시점 대한민국이 이루어낸 업적은 결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대한민국 경제발전 사례를 세계 유일무이하게 취급한다. 또한 성공요소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시장경쟁체제의 도입과 민주주의의 정착이다. 그게 왜 중요하겠는가? 국가주도의 경제발전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개인의 창의력을 바탕으로한 혁신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가주의와 개인주의는 양립하기 힘든 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그걸 해내버리고 말았다. 그 기저에는 '내가 배워서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내가 주인이다', '니가 못하면 갈아치운다' 등의 신념이 있다. (그래서 계엄을 선언한지 n시간만에 탄핵도 성공한 것같다 ㄷㄷ) 나는 이 점이 꽤 자랑스럽다. 이런 신념이 오래토록 후대에 이어지기를 바란다.
와중에 권위주의에 입각하여 탄핵된 세력의 복귀를 바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대들의 충성심이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바라건대, 돌이켜 생각 하기를 요청드린다. 당신의 행동이 공존으로 가는 길인지 공멸로 가는 길인지. 좀 더 넓은 시야로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생각해 보길 바란다. 또한 강력히 항의하고 싶다. 명분을 위시한 갖은 핑계로 민주사회의 근간을 흔들어놓는 시도에 동참한 자들은 그 결과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좋든 싫든 당신과 대한민국이라는 한 배를 타고 있는 승객의 입장에서, 누군가가 배에다가 구멍내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다. 필요시에는 적극적으로 당신에게 반대하여 잡음을 만들어낼지라도 말이다.
*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