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까 기미가 눈에 띈다. 집에서만 생활하면 크게 개의치 않을 것같은데. 강의를 하러 나가면서 화장을 하다보니 눈에 거슬린다. 화이트닝 기능성 선스크린과 쿠션을 펴발라본다. 어찌저찌 가려지기는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은 화장을 지워도 깨끗한 피부이기를 바란다. 해서 비타민C 스틱을 구매했다. 비타민C가 미백에 효과가 있다기에.
비타민C가 피부에 닿으니 꽤나 따끔따끔하다. 그만큼 자극적인가보다. 그래도 아주 쪼금이라도 기미를 흐려지게 하는데 도움이 되겠거려니~ 하며 있을지 없을지 모를 효과를 기대한다. 외려, '이정도는 반응이 와야 기미가 없어지려나!' 하면서 비타민C에 대한 기대감마저 생기기도 한다.
아프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보면 통각세포를 자극하는 일련의 반응에 불과하다. 간지럽다는 것마저 아주 미약한 수준으로 통각세포를 자극한 결과로 알고 있다. 아픔을 회피하려는 것은 인간본능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아픔을 느끼는 과정을 면면히 살피면 이만큼 건조하게 표현할 수 있다.
온도를 감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에는 온도의 변화를 감지하는 세포가 있다. 열 에너지를 빼앗기면 차갑다고 느끼고 열 에너지를 얻으면 뜨겁다고 느낀다. 그 에너지를 빼앗기는 속도차이나 에너지 수준차이에 의해 우리는 온도의 변화를 감지할 따름이다. 하지만 같은 온도의 차가운 물도 여름에는 '시원하다'고 하고 겨울에는 '차갑다'고 한다. 우리집의 냉온수 정수기는 항상 비슷한 온도의 물을 제공하지마는, '시원하다'와 '차갑다' 사이의 심리적 간극은 작지 않은 것같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인지와 판단은 참으로 본인 위주로 형성되어 있다. 기실 어느 생명체가 아니 그럴까도 싶다. 하지만 판단에 앞서 발생하는 현상 그 자체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그래서 붓다께서 말씀하셨겠지, 오온(五蘊, 인간이 감각반응을 하는 다섯단계)이 개공(皆空, 모두 공하다)하다고.
시원하면 좋은가? 아프면 나쁜가? 가볍게 생각하면 그런 것같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생물'이기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쾌적함을 따르고 고통스러움을 피하려 한다. 그렇다면 진보당이면 그르고 보수당이면 옳은가? 혹은 그 반대는 어떠한가? 이미 한쪽에 마음이 기운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한쪽이 틀렸음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본인이 옳다고 믿는 쪽의 통계나 자료를 서슴없이 들이댄다, 숫자가 만병통치약인마냥. (세상이 당신이 바라보는 상황과 같이 단순하다면 나도 참 편할텐데)
우리의 삶은 옳고 그름 이전에 '그냥 그러한 것들'이 천지에 널려있다. 다만 우리의 인지는 그것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좋다/나쁘다로 가른다. 거기까진 좋다. 옳고 그름을 가르고 기피하거나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존을 도모하니까. 하지만 믿음의 힘까지 키운 인간은 그 이상의 행동을 한다. 본인이 옳다는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자를 쉽게 공격 해 버린다.
모든 것의 공함을 이야기 하시며 자비심을 가지라 하신 부처님. 세상의 추악함을 모를 리 없으셨겠으나 사랑하라 명하신 예수님. 나는 이들이 언제나 대단히 보인다. 인류 역사에서 이만치 탈인간스러운 비전을 제시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뭐... 이마저도 내 스스로가 좋고 나쁘다는 생물적 판단반응에 휘둘린 결과일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부처님과 예수님 모두 후대에게 큰 질문을 남기고 가신 것같다. 부처께서는 '무엇이 어리석지 않은 것이냐'를 알아내라 하시고, 예수께서는 '무엇이 아버지의 말씀이겠느냐'를 고민하라 하신 듯하다. 전자는 내 안의 불성(佛性)을 기반하여 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후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담보로 하여 답을 구할 수 있으리라 믿음을 주었다. 후자도 나쁘지 않은 방법인 것같은데, 개인적인 취향은 전자이다. 그런데 전자를 택하든 후자를 택하든 (결론에 이르기까지 형성되는 문화적 양상은 좀 다를지언정) 이르는 결론이 비슷한 것같다. 해탈에 다다란 모습이 구원을 얻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그건 그렇다 치고, 비타민C는 계속 바르는 게 괜찮을까? 내 피부가 이만치 따끔따끔한 것이 좋은 것일까? 아프니까 관둬야 하는지, 아파도 버티며 기미파괴의 그 날까지 존버하는 게 나은지 지금 현상황에서 나는 답을 모르겠다. 모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답을 찾아나가야겠지. 내 피부를 소중히 여기는 원칙을 바탕으로, 비타민C가 피부에 끼치는 여러 가지 영향을 찾아봐야겠지. 종합적으로 고려하건데 적절한 지점이 어디일지도 생각해야겠고. 이렇게 언급한 세 가지가 결국 계(戒, 원칙), 정(定, 수행정진), 혜(慧, 사고의 힘)구만. 계정혜 삼학을 닦다보면 비타민C를 더 바를지 말지를 알게될 것같긴 한데...? 와우
이 화장품이 따끔거리지 않았다면 내가 이만치 생각하고 찾아볼 동기가 생겼으랴 싶다. 그래서 니체 아저씨가 고통이 성장의 발판이 되어준다고 아득아득 주장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기꺼히 당신의 말씀에 좋아요를 한 표 드리리다. 그렇게 오늘도 무지한 중생은 세상의 공함과 생물학적인 고통 사이에서 핑퐁당한다.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를 읊조리며 인생에게 조련당하는 훌륭한 마조히스트로 재탄생 중이다. 아야! 아야야!! 더 세게!!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