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작하고 난 후로는 가끔 저녁메뉴에 면이나 떡이 추가되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맛도 좋고 가격도 쌈직한 떡집이 있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집은 수원이고 그 떡집은 용인(!)에 있기는 하다. 떡집에 가기 위해서는 수원에서 용인까지 가는 도보여행을 거쳐야 한다. 그게 가능한 건, 우리집이 수원과 화성과 용인의 경계에 있기 때문.
간만에 도보로 용인에 있는 할머니 떡집에 가볍게 여행을 다녀왔다. 어렸을 때 우리가 접하는 '인자한 할머니'의 표상에 딱 맞는 그런 할머님이시다. 오랜 영업생활 때문인지 본래 그러신 건지 항상 웃상이시다. 목소리에 서두름이 없다. 나이가 있으셔서 빠릿한 기운이 없지만 그 자리만큼 능숙함이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 제일 좋은 건, 그 떡집에 가면 마음이 불편한 게 없다.
아~ 집에 밥 없는데. 오늘의 탄수화물은 떡이다. 그렇게 놀이터에서 한참 놀다 귀가하는 아이를 꼬셔본다.
'오늘 우리 할머니 떡집 갈래?'
'좋아~!'
도보로 약 10분. 사잇길을 따라 ㅌ다리와 ㅍㄹ바게트 사이에 있는 할머니 떡집이 보인다. 문을 열면 달콤 고소한 떡냄새가 좋다. 10월부터 떡값이 올라서 못내 아쉽지만, 올린 가격 덕분에 할머니의 떡이 이제서야 여느 다른 떡집이나 마트 떡과 얼추 비슷한 가격이 되어간다. 1팩 2500원 2팩 4천원. 아 이만하면 괜찮지~
일단 한 개는 내가 보기에 괜찮은 걸로 짚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물어본다. '△△이는 뭘로 먹을꺼야?' 아이는 한참 구경을 하더니 '이거!'라면서 한 팩을 가리켰다. 내가 고른거랑 쫌 겹치는데 싶어 아쉬웠지만 아이의 선택이니. 'ㅇㅋ~ 그럼 이거 두 개 산다! 할머니, 계산 해 주세요~' 그 때 아이가 말한다 '어? 할머니가 안계시지요?' 할머니가 인자한 웃음을 띄며 나오신다. '할머니가 허리가 아파서 누워있었어~'
떡집에는 판매용 떡 옆에 시식용 떡이 함께 있다. 아무래도 이런 데 오면 시식용 떡 하나 집어먹는 게 나름의 재미이긴 하다. 문제가 있다면 할머니께서 아이들을 너무 귀여워하신 나머지 자꾸 시식용 떡을 경단마냥 여러 개 끼워서 아이에게 주신다는 것. 아이는 할머니께 '고맙쯥니다~!'라고 외치며 너무도 즐겁게 떡을 냠냠 먹는다. 눈치 없이 좋아라 먹어대는 아이에 엄마 맘이 쫌 불편해지기는 하는데, 그에 대비 할머니는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시다. 어쩜 아이가 이렇게 똑똑하냐며. (...어... 그냥 떡만 먹은 거 같은데요?! 아닌가 할머니의 칭찬을 끌어내서 계속 떡을 먹는 게 똑똑한 건가?! 아 할머니가 좋으셨으면 됐어!!)
지난 번에는 그렇게 꿀떡 경단은 3번(!)이나 먹었지만, 이번에는 2번(...)으로 마쳤다. 이미 날도 어둡고 저녁 먹을 시간이 가까워서 집에 가자고 살짝 재촉했다. 할머니께서도 웃으며 인사를 해 주신다. 아이도 할머니까 인사를 하며 떡집을 빠져 나온다. 마치 진짜 할머니댁에 놀러오기라도 한 것같은 분위기였다. 떡집을 나오며 아이가 말한다. '우리 내일 또 올께요~!'
흑....... 귀여워 ㅠㅠㅠㅠㅠㅠ 내 아들램이라지만 매우 귀엽다 ㅠㅠㅠㅠ 귀여워서 심장이 찌릿하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단골이 우리 가게를 좋아해주면 그만큼 매상도 일정하게 유지가 되니 오는 아이들을 이뻐라 하는 게 영업전략적인 부분에서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머릿속의 계산기를 뚜드리지 않아도 이미 아시지 않을까? 그 짧은 시간동안 마음껏 행복한 것만으로도 인생의 손익계산서는 이미 충분히 흑자라는 것을. 돈도 벌고 일도 즐거우면 그보다 더 좋은 게 무엇이리. 게다가 나도 행복하고 손님도 행복하면 그게 곧 자리이타(自利利他, 나도 좋고 그에게도 좋음)의 실천이렸다.
아이 입장에서는 사랑도 받고 떡도 먹는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치고 가재잡는 격으로 좋은 셈이다. 아이가 할머니께 보이는 미소가 그런 이득을 무의식적으로 계산했을런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집에서 느꼈던 내 행복이 위선적이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The moment of truth라고 믿고 싶다. 세상에 고정된 것이 없다 하여도 인연에 따라 생겨나는 것들은 있으니. 사랑과 행복도 그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집착하지 말라 하셨겠지. 그래도 일단 행복과 인연이 닿았을 때 누리는 것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ㅎㅎㅎ
학교일을 끝내니 집안일과 돌봄, 디딤돌 동아리 대표로서 잡무를 해야 하는 하루하루가 빡빡하다. 솔직히 좀 지친다. 그런 내 입장에서는 이런 따뜻한 순간이 참 소중하다. 사회는 믿지 못할 인간들이 여기저기 포진해 있어 신경에 날을 세우고 있어야 함을 알지만, 이 때는 좀 쉬어도 되지 않겠는가. 죽는 순간까지 남에게 큰 피해 입히지 않고 행복한 것들을 줍줍하며 살아가면 충분하지 싶다. 요 정도 행복은 맘 편히 누리며 살아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