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생활도 수행이더라

by 힙스터보살


남펴니는 술을 좋아한다. 나보다도 술이 약하면서 굳이굳이 드신다. 그가 이십 대 때에는 술을 입에도 안 댔다고 하는데, 직장생활 중에 너무 힘든 시기에 술로 버틴 경험 탓인지 습관적으로 술을 마신다.


그가 술을 즐겨한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지금 나는 거의 술을 안 먹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꽤 여러 종류의 술을 적지 않은 양으로 즐겼다. 소개팅 자리에서 첫 식사로 족발에 소주를 기울인 것도, 다 이런 연유가 있었지 않았을까.





그이와 사는 공간을 공유한 이래로 아이도 찾아와 주고 법적인 부부도 되었다. 막 아주 넘치는 행복에 겨워 산 것은 아니라지만 또 그런대로 소소하게 꾸준히 즐겁게 살고 있다. 둘 다 웃음이 많은 탓에 아이도 웃음이 많은 것이 크게 감사하다. 남펴니가 집안일에 결코 적극적이지 않지만 한편으로 그는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 할 때 내치는 법도 없어서 다행이다. 우리 부부는 나름대로 균형을 잡으며 지내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아예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잔잔하게 의견대립이 있을 때는 여럿 있다. 그중에 하나가 술 때문이지 않나 싶다. 출산 이후에 급격히 떨어진 체중과 불어난 몸무게 때문에 나는 요즘엔 술을 거의 안 마신다. 누군가는 술을 마시면 잠이 잘 온다 그러는데, 나는 술을 마시면 잠이 깊게 들지 않는 탓인지 뭔지 더 피곤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술을 마신다. 이제는 1일 1병이 루틴이 된 듯하다. 술은 뭐라도 안주와 같이 먹어야 하기에 그는 늘 야식을 한다. 술과 야식을 먹는다는 것 자체는 좋고 나쁨이 없으나, 꾸준한 체중증가와 건강검진 때마다 보여주는 안 좋은 지표가 내 불안을 자극한다. 나는 물론 울 오빠를 좋아하지만, 만에 하나 그가 병환에 걸려서 간호에 매진해야 한다면 지금만치 좋아할 자신도 없다. 긴 병에 장사는 없고 나는 인간을 또 그렇게까지 믿지도 않는다. 물론 나 자신 포함해서.


그래서 몇 번은 조금 강하게 내 주장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현실적인 걱정을 이야기하면서 내 의견을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 역시 그의 상황과 욕구를 알이주길 바랐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랑이 권장받는 이유가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은 모 아니면 도다. 너무 좋거나 혹은 상당히 나쁘거나. 때문에 몇 번의 의견대립 끝에 나는 그가 좋아하는 대로 두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머리는 그렇게 결론지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가 술을 줄였으면 하고 있기는 해도 말이다.


와중에 어제는 그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것도 꽤 자발적으로. 왜냐면 그가 독감에 걸렸으니까(....)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시는 상태여서 그럴지도 모른다만, 어찌 됐든 휴주(休酒) 1일 달성에 성공한 셈. 그리고서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이가 술을 끊으려 하려거든 진실로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나 되어서야 가능할 법하겠구나. 내가 그이의 금주를 희망하는 것이 어쩌면 그의 병환을 바라는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매일 술 먹는 남편 v.s. 병수발을 필요로 하는 남편


둘 다 별로지만 더 별로인 건 후자이다. 전자를 선택하자니, 음주와 야식으로 인해 병을 부르는 리스크가 있기는 하겠고. 전자를 선택하면 낮지 않은 확률로 언젠가 금주는 하긴 하겠구나.... 하하하하! 금주를 하면 뭐하노 그의 웃음을 보기 힘들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허허허허!





수행자는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상대방이 요구하는 게 있으면 두 말 않고 하면 될 일이라지만, 내가 가진 신념과 대치하는 그 무언가를 대하는 순간 수행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제법(諸法)은 무아(無我)한지라 오계(五戒)를 거스르는 일만 아니라면 딱히 거부할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럴 때 보면 '부처님 가르침 완전 좋음!'라면서 불자 행세를 하다가도 내 맘에 안들면 '흐으으음...'거리게 되는 내가 딱 그 수준이로구나 싶다.


좋은 사람과 만나 이미 많은 복을 누리고 있는데도, 바라는 게 많은 나는 여전히 어리석은 중생인가보다. 어리석어서 조그만 일에도 금새 행복해지는 거려나? 어리석어서 쉽게 마음의 고통이 일어난다는 건 잘 알겠다. 고통과 쾌락의 윤회를 끊고 늘 평온한 상태가 열반일 듯 싶은데. 나같은 중생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고통도 희열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될 듯 하다. (이런 열반도 열반에 쳐 주긴 하나? ㅎㅎ 그런 면에서 죽음은 삶의 해방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같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까지는 매트릭스의 파란약을 선택한 사이퍼처럼 애욕의 삶을 선택했지 싶다. 때때로 즐겁고 때때로 굉장히 고통스러운. 하지만 그게 중생의 삶을 선택한 결과라면 피할 수 없는 거겠지. 차라리 이게 현실적인 것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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