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양력으로 기념일을 세는 것이 대세가 된 듯 하다. 울 아버지와 어머니는 음력으로 생일을 셌는데, 나와 동생은 유치원이나 학교같은 데에서는 양력으로 생일을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내 진짜 생일은 음력이라는 믿음이 남아있다. (그런 내 생일은 하필 추석이랑 겹친다 ㅎㅎㅎㅎ) 하지만 내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 아이의 생일을 말할 때에는 더이상 음력은 말하고 있지 않다. 한 세대가 조금 넘는 시간동안 날짜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와중에 내 마음의 설날은 그으래도 여전히 음력 1월 1일이긴 하다. 그리고 바로 어저께가 음력 1월 1일이었다. 시댁을 찾아뵙고 친정을 찾아뵈며 인사를 드리느라 다소 피곤하긴 하다. 그래도 양가를 거쳐온 후에 바리바리 받아온 음식들을 냉장고에 정리하니 까치 설날이 마무리된 것같은 기분이다.
오가는 길에 휴게소도 여러 번 들렀다. 평소에는 어디 가서 군것질거리를 잘 안 사주는데, 차를 타고 먼 거리를 돌아다니는 때에는 비교적 관대하게 먹고픈 것을 사주다보니, 아들램은 '난 휴게소가 너~무 좋아!'라며 애교를 피운다. 아이의 단순함과 해맑음에 실소가 나왔다. 그게 또 그 나름대로 누릴 수 있는 가정의 행복이리라.
친할머니 댁은 차로 4~5시간이 걸리는 거리인지라 휴게소를 여럿 들렸다. 하지만 외할머니 댁은 차로 1시간 반 남짓한 거리고 휴게소도 하나 밖에 없다. 친정에서 집으로 오는 길, 아들램은 굳이굳이 휴게소를 들려야겠다고 한다. 외할머니 댁에서 나오면서 화장실에서 큰 거 작은 거 다 해결하고 나왔으면서, 휴게소에서 큰 것을 보겠다(!)는 야심을 계속계속 엄빠에게 어필중이다. 아.. 이럴 땐 질 수 밖에 없다. 오오냐~ 휴게소에 들러주마.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은 거들 뿐, 먹고 싶은 걸 이야기 한다.
아들램 : (아주 당당하고 밝게) '엄마 나 꼬X 먹고 싶어요~!'
어뭉 : (살짝 당황하며) '꼬X 아니야.. 꼬치~~야 ^^!'
아들램 : (나름 조심해가며) '꼬치~ 먹고 싶!어!요!!!'
어뭉 : (마음 속으로는 잇몸 만개 ㅋㅋㅋㅋ) 그래~ 뭐가 있는지 볼까?
그는 소떡소떡을 먹고파했다. 지난 휴게소에서 먹었던 그 맛이 너무 좋았나보다. 좋아, 소떡소떡집을 찾자! 하필 지금 들린 휴게소가 상하행 어디서든 들어갈 수 있는 양방향 휴게소라 공간이 넓다. 아이손을 꼭 잡고 여기저기를 헤매다 겨우 소떡소떡집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당당하게 회오리감자를 먹고싶다 이야기하였다. (응?ㅋㅋㅋㅋㅋ) 그래~ 먹어라. 이럴 때 누리는 거지~ 사준 회오리감자는 아이가 먹기에는 꽤나 딱딱한 튀김옷을 가지고 있었다. 덤으로 너무도 기름졌다 ^^; 회오리감자 모양을 갖춘 기름덩어리인 줄...
아이는 나름 열심히 먹다가 '이제 엄마가 먹어요'라면서 회오리 감자를 나에게 패쓰했다. 그도 이 감자를 해치우기가 쉽지 않겠구나 판단한 것. 결국 나머지 부분은 내가 다 먹고, 그는 배고프다는 노래를 불러댔다. 해서 이번엔 어묵꼬치로 두번 째 시도를 했다. 그가 고른 건 날치알 어묵꼬치. 계산하는 엄마 옆에서 방긋방긋 웃으면서 엄마 뒤에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아들램이었다. 계산원 아주머니께서는 어쩜 아이가 이렇게 귀엽고 밝냐며 아들램을 이뻐해주셨다. 순간 아들램에게 입력 : '어서 새 해 인사 드려야지~!' 그러자 아들램이 외친다 :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도 계산원 아주머니도 아들램도 웃음꽃이 한가득이다. 행복이 별거랴, 이게 바로 행복이지!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긴 한데. 나는 새해 복을 많이 '받으라'는 말보다는, 복을 많이 '짓는다'는 말을 더 좋아한다. 복을 받는 건 내가 어찌하기 어려운 면이 좀 있는 것같은데, 복을 짓는 건 얼마든지 내 영역에서 시도하기 좋은 것같아서 말이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눈빛, 감사의 말, 위트 넘치는 유머 등이 내 선에서 행할 수 있는 복이라 믿고 싶다.
그리고 내가 누리고 있는 복(福) 중에 하나는 울 아들램을 세상에 빛보게 하고, 이 아이와 함께 여러 가지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가는 것이지 않을까. 햇수로는 몇 년 안되긴 했지만 이 아이를 잉태하고 또한 기르며 해왔던 많은 일이 행복했다. 행복(幸福)은 물론 복이다. 어찌 복을 지었다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이 행복한 순간을 중계하는 것이 누군가의 미소 지음과 내 기쁨을 자아낼 수 있다면 그 또한 복 지음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내 선에서 나눌 수 있는 복을 나누어 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