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 사이에서 싸움 안나는 일은 거의 없다. 누군가와 물리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가진다는 건 그에 상응해 갈등상황을 마주할 횟수 자체가 늘어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같은 접촉횟수 대비 갈등의 빈도를 비교했을 때 갈등이 덜 발생하면 좋은 이웃 자주 발생하면 나쁜 이웃이라고 평할 뿐이다. 그렇게 한국은 이웃간 긴 역사만큼이나 나쁜(!) 이웃 때문에 골머리를 썩곤 한다.
반중정서. Anti-China. 알고보니 또 '그 나라'이더라....의 주인공 중국(中國). 땅덩어리는 넓은데 마음은 좁아서 중국이라 불리우는 비하의 밈이 되어버린 중국. 한 때는 아시아의 유력한 강국으로, 배울 곳이 많은 성장의 나라라고 여기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뭐든 좋아보이면 내꺼라고 우기는 탐심에 혀를 내두르는 나라로 전락해 있다. 와중에 가져온 게 적지는 않았는지 각종 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것도 사실.
반일정서. Anti-Japan. 성웅 이순신께서 말씀하시되,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하셨다. 혼네(本音, 진심)와 다떼마에(建前, 겉으로 하는 소리)가 분리된 소통방식을 지닌 나라라 그렇다 쳐도 표리부동의 극치를 달리기에 신뢰관계를 세우는 것부터가 어렵다. 그런 녀석들에게 40여 년 가까이 나라를 잃고 각종 이권과 자원을 뺏기고 존재를 지워질 뻔한 위기를 겪어본 게 한국이다. 지금도 일제강점기 역사를 배울 때면 알 수 없는 감정적 답답함이 강하게 치고 올라온다. 후생 유전학적으로 트라우마도 유전이 되나? 밈이 전승된 건가?
이러한 연유로 한국에는 중국을 싫어하는 사람,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는 그러한 반응이 참으로 이해가 된다. 나의 것을 빼앗기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흔하지 않다. 빼앗아놓고 사과조차 안하는 것을 용인하면 '이제는 그래도 된다'는 새로운 기준이 생기고 만다. 힙겹게 쌓아온 도덕적 합의가 무너져 내리는 꼴도 보고싶지도 않다. 사회의 변화는 그만큼의 합당한 계기가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아무리 싫어도 이웃나라이고, 다른 면모를 보면 중국이든 일본이든 배울 점이 있으며 지난 날은 지난 것이니 덮고가자는 자들도 있다. 이 역시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과거에 매달리면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마련이다. 그리고 아무리 쟤네가 싫어도 한국의 대외무역 비율에 있어 중국과 일본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좋든 싫든 같이 갈 수 밖에 없는 관계이다.
그 와중에 정치적 견해에 있어서 변종이 생겨난다. 첫번째는 뉴라이트(New Right)라 불리는 모리배들이다. 그들은 역사에 있어서 '팩트'를 들이대며 반일(反日)은 감정적 동조에 따른 결과물이라 주장한다. 물론 그들이 보고 있는 범주 안에서의 팩트만 근거로 삼는다면 그리 보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팩트라는 것을 바라볼 때에는 좌우전후 상하좌우 다각적인 축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오롯이 전체를 보고 사실관계를 논하는 것이다. 그런 면으로 볼 때 일부의 팩트가 전체인 것마냥 취급하는 것은 참 우습다. 한국인의 감정적 왜곡 대신에 본인들은 인지적 왜곡을 하는 셈이다. 하많하않이다. 다만, 탈출은 지능순이니 기회를 줄 때 빠져나와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두번 째는 반중정서에 기반한 갈라치기이다. 이는 한국의 정치상황과 연결된 부분이 있다. 언제나 그렇듯 정치뉴스 기사는 댓망진창이 나기 십상인데. 일부는 현재 정부가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을 들어 '친중정부'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그리고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정부가 강하게 항의하면, 중국이 서해에 세워둔 불법 구조물은 왜 강력히 항의하지 않냐며 비판의 글을 남긴다. 실제로 현정부의 외교적 온도에 대하여 반미친중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현정부가 반미친중한다는 시각을 만들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쇼츠로 중국의 만행을 끼얹으면 안 그래도 중국을 있는 그대로 보고싶은 자들마저도 '아 저새끼들은 안 되겠네~!'로 돌아서기 십상. 나조차도 '하 진짜 중국은....' 하는데 뭐 ㅎㅎ
중국이나 일본이나 남의 나라 거 껄떡대고 빼앗아 갔다는 것에는 다름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함부로 눈감고 넘어가게 되면 다같이 사는 세상의 규범이 무너지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아무리 동북아시아 지역 협력관계 어쩌고를 말해도 물러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 (또는 일본)에게 받았던 피해의식에 과도하게 휩싸여서 반중/반일이 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가해자-피해자는 존재하고 그렇게 봐야 할 순간이 분명히 있지만, 그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것조차 잃어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런 순간에는 외려 서늘한 시각으로 상황을 보는 게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제일 악질인 놈들은 한국인들이 겪은 역사적 아픔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하는 놈들이다. 의견이라는 것은 대개 분열하게 마련이고, 그 분열한 것이 드글드글 살아있는 게 민주정의 특징이다. 분열하는 의견에는 감정의 때가 묻게 마련인데, 한국을 말살하려는 것도 한국의 것을 제 것이라 탐하는 것도 감정의 때를 짙게 만드는 좋은 요소이다. 그만큼 분열의 조장은 사람들의 이성의 끈을 끊는 좋은 수단이다. 조심하자. 정줄 놓은 나간 사람을 다른 올가미로 낚아채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것들이 암약하는 세상이다. 그게 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뭐 좋다. 이게 현대전이지. 들어와 봐라. 수탈의 역사를 딛고 세계에서 드물게 개도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든 나라의 저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시간이 오는 것같다. 한대 쳤을 때부터, 맞을 각오는 하고 때렸어야지 않겠나? 가만 보면 한국인들이 좀 독종같은 면이 있어서, 목표로 삼은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같다. 아아~ 긴장 풀어. 너무 힘빼지는 말자. 때가 되면 그 때에 알맞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