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신뢰의 역학관계, 그 다양한 층위를 파고들다
<분노>는 어느 면으로보나 시종일관 들끓는 영화입니다.
매 장면의 촬영, 음악, 조명 등 많은 요소들이 공들인 티가 역력합니다.
다 보고나면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러닝타임도 142분^^;)
살인사건 현장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추리극일것이라는 첫인상을 자연스레 갖게 합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세 명의 용의자 중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작품 자체가 의도하고 있는 바 같습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범죄추리물의 외피를 두르고 있는 심리드라마라고나 할까요.
치바의 부녀, 도쿄의 연인, 오키나와의 소년소녀의 이야기가 한 영화를 이루고 있지만
이들은 우연으로라도 만나거나 서로 지나치지조차 않습니다.
끝까지 서로의 존재를 모른채로 남게 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야기가 산만하다거나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음향이나 대사 등을 통해 장면과 장면 사이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솜씨가 매우 좋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점 때문에 영화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그 자체의 정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분노와 신뢰의 역학관계를 파고드는 이 작품을 다 보고나면
분노란 무엇인가, 부터 시작해서 많은 질문이 머리 속을 떠나니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믿기 때문에, 믿지 못해서 혹은 않아서 분노하고 절규합니다.
분노는 얼핏보면 간단해보이는 감정이고 그렇기에 비슷해보이지만
사실은 얼마나 많은 다양한 층위가 있는지 헤아려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면면이 대단한 배우들의 호연으로 이것을 표현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이야기 자체가 신선하거나 독창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영화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 혹은 방식이 훌륭합니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배우들의 영화에 대한 확신이 느껴진달까요.
이러한 점만으로도 <분노>는 극장에서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