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성균관대 하계연극제] <I‘m the BOSS>를 중심으로
공연일시: 2019-08-17 (토) 19:00
공연장소: 성균관대학교 경영관 원형극장
작성자: 조혜인
2019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하계연극제 두 번째 타자는 <I’m the BOSS>(조다은 작/연출)이다. 같은 해 1학기 무대연출 수업으로부터 발전 된 공연으로, 『오이디푸스 왕』을 현대적으로 각색하려는 시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로가 서로를 색출해내는 과정으로 ‘마피아 게임’ 형식을 고민하며, “서로 다른 의견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1](조다은) 라는 연출 의도를 앞서 발표 한 바이다. 최종 발표에서 선보인 공연은 테베의 시공간을 수렴했다. 정치적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으로 관객에게 월계수 관을 나눠주고, 시민, 경찰, 의사 등 마피아 게임의 룰을 수행하게 했다. 이 때, 고대 그리스의 의복을 입고서 등장한 ‘권력’은 관객으로 하여금 악의 세력을 색출하도록 이끌었다. 결국 시민은 패배했다. 여기에는 반전이 있다. 기실 정해진 악의 세력은 없었던 것이며, ‘권력’ 자신이 시민을 죽일 자격이 있는 마피아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부터 출발한 <I’m the BOSS>는 분명 한층 변화와 성장을 겪은 면모가 드러난다.
본 공연은 무엇보다도 『오이디푸스 왕』의 시대와 플롯을 과감히 떨쳐낸다. 그 대신 ‘정치와 권력’이라는 핵심적 키워드의 끈은 이어진다. 의원이 입장하면, 원형극장 특유의 구조인 반(Semi)-콜로세움 형태로 인해 마치 국회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여기서 이번 연극제의 타이틀인 <호모 이매지넌스 - 상상하는 인간>에 가닿으려는 시도가 포착된다. ‘원형극장’을 공간 연출의 전략으로 선택함으로서 관객으로 하여금 민주주의가 싹트던 기원전 삶의 한 단면을 상상케 하기 때문이다.
프리셋에서는 대동국 후보자 및 보좌관이 무대 위에서 마치 게임 유저가 자신을 선택 해주길 기다리는 캐릭터와 같이 ‘움직임-멈춤’의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액팅을 수행한다. 게임 음악까지 가미되어 본 공연의 형식이 게임처럼 이루어질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허구임을 드러냄, 짜여진 것,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유저(관객)에게 자유를 부여 할 것인가에 대한 연출상의 고민이 형식에 그대로 담겨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흡사 고전게임 <버블버블>을 떠오르게 하는 영상을 활용하여 후보 선출 방식을 설명해준다. 공연의 플롯은 군인들이 대동국에 배신자가 있다는 찌라시를 뿌리며 시작된다. ‘대동국 VS 신토국’이라는 불안정한 정세를 주어진 상황으로 상정하고, 신토국 배신자 역할을 부여받은 관객은 그룹 내에 한 명씩 숨어있다. 이들은 무고한 시민을 속여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동국 대통령 선출을 해야한다. 기호 1번 양원수, 기호 2번 강정의, 기호 3번 정치밀이 기존 후보로서 등장하고, 나머지 기호 4번과 5번은 공연 도중 즉석으로 선출된다.
기호 4번과 5번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양원수는 의원석에 앉은 의원들과 ‘가위 바위 보’를 한다. 양원수와의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긴 두 명은 무대 위로 나와 기호 4번과 5번의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발생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는 중요한 자리에서 가위 바위 보 게임이라니? 주로 가위 바위 보는 내 몫, 네 몫을 분배해야 하지만 어찌 해야 할 지 모르는 애매한 상황에서 주로 수행된다. 선출 과정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게 했던 것도 이러한 가위 바위 보가 가진 속성 때문이었을까? 비록 단순한 관객 참여지만, 어떠한 가능성—권력의 생성이라는 거대 담론이 고작 가위 바위 보와 같은 알량하고 어딘가 불합리한 구조로부터 야기 될 수 있음—이 발생한다.
공연은 이어서 각 정치그룹별로 배신자를 색출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그룹 안에서 색출된 용의자는 코인을 몰수당하고, 검은 마스크를 받은 채 발언권을 박탈당한다. 이것은 곧 마지막 ‘선거’에서 투표권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호 1번과 기호 2번이 최종적으로 선거 명단에 올라가게 되는 플롯으로부터, 기호 1번이 당선되면 각자 가진 코인만큼 현금을 돌려받거나 기호 2번이 당선되면 모여진 현금을 어떤 단체에 기부하게 되어있다. 군인의 안내에 따라 각 후보를 방문하며 유세를 들을 때, 강정의에 의해 기부 될 단체를 추천 받는다. 이 때, 한 의원이 ‘위안부’를 언급함으로서 어떤 돌발성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강정의는 그 의견을 수렴하였고, 강정의가 대통령으로 선출됨으로써 훗날 이 돈이 어디에 후원 될지에 대한 실제적인 궁금증이 유발된다.
하지만 본 공연에서 아쉬웠던 점은, ‘코인의 효용성’에 있다. 결론적으로 코인이란 선거를 할 수 있는 권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공연의 전반적 과정 내에서 코인의 교환이 다각도로 이루어질 수 없던 구조에 대해서도 생각 해본다. 50코인을 지급받고 선거를 자진 포기한 기호 4번을 제외한 대부분의 의원들은 30코인을 끝까지 지니고 투표에 사용했거나, 배신자로 색출되어 모든 코인이 몰수되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코인의 효용성이 좀 더 극대화 되었다면, 신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돈에 대한 욕망’을 품고 정치 참여에 임하는 시대 비판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언급을 해본다.
코인이 사용 될 ‘선거’라는 클라이막스에 치닫기 전, 주지 할 만한 현상이 포착되었다. 대동보국 자유토론 후 의원들에게 질문을 받는 시간이 온다. 이 때, 기호 3번이 먼저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다음 질문들이 의원석으로부터 꼬리를 물고 나올 것이라는 이라는 연출적 기대감이 담긴 시도가 느껴진다. 하지만, 의원석에서는 찰나의 순간 동안 깊은 침묵이 돌았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순간이 형성되며,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라는 물음이 발생한다. 우리의 교실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침묵은 정치를 향할 때 ‘DK Group’을 형성한다. 여기서 DK란 ‘Don’t Know’의 약자다. ‘나는 모른다’ 혹은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할래’로 이어지는 DK는 국민으로서 정치를 행사할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요, 질문 없는 사회 즉, ‘권력이 개인을 통제하기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된다. 의원석 내에 맴도는 침묵의 순간은 ‘무엇이 우리를 입다물게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귀결된다. 단순한 부끄러움 때문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기에? 혹은 말 할 준비가 되었지만 기회를 주지 않는 권력이 쥔 시간때문에? 이것은 필자 또한 일상에서 고민하는 부분이다. ‘말’ 해야한다. 속으로는 부끄럽고, 덜덜덜 떨리고, 우리가 내뱉는 말이 때로는 비논리적일지라도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우리가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 해야 될 때에는 더욱이.
우리는 왜 침묵할까? 푸코(Michel Foucault)의 주장을 상기해본다. 푸코는『광기의 역사』와『성의 역사』에서, 어떤 담론이 한 시대에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이유는 그 담론 자체가 갖는 탁월함 때문이 아니라 모종의 정치권력에 의하여 조종되고 선택된 결과 때문이라는 사실을 파악한다.[1] 즉, 자아는 정치적 통제라는 권력의 연출(조작)행위로서 만들어진 어떤 결과일 뿐인 것이다. 양원수는 본인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 인해 무수한 통제를 낳으며 국가를 독점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 정치 담론을 생성하려 하고, 권력으로 인한 연출은 대중을 컨트롤한다. 결국 권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입을 다물어버리는 DK가 생성 될 수 있다.
결국, 마지막 선거 개표 결과로 인해 강정의가 당선되며 공연은 막을 내린다. 모든 것이 허구인지 진실인지 끊임없이 관객을 교란시키는 과정 가운데, 개표결과는 모종의 진실성을 내포한다. 의원들이 직접 무대 위로 올라가 투표참여를 함으로써 이 결과가 참이며, 우리 손으로 이뤄낸 정의의 시작이라는 희망을 남긴다. 여기서 우리가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세지가 발생한다. 권력에 의해 무의식 깊은 곳 까지 조작 당한 DON’T KNOW들은 자신이 DON’T KNOW인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참여를 통해 DO KNOW로 변화 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이처럼 대동보국 투표 참여를 통해 맛본 궁극적인 정의 구현을 통해, 의원들이 극장 밖을 나가 일상을 살아갈 때 정치적 행위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조심스레 기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무대 위의 정치 행위가 일상의 정치행위로 이어지는, 무대와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점이 바로 <I’m the BOSS>에서 중요하게 시사되는 바이다. DO KNOW로 나아가는 우리 사회를 위하며 본 기고를 마무리한다.
미주
[1] 무대연출, PT일시: 2019-05-14
[2] 본 기고문은 2019-08-17 토요일 오후 7시 공연을 바탕으로 작성됨을 밝힌다
[3] 이주영, 『현대미학 특강』, 미술문화, 2018, 20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