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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인 Sep 21. 2019

지금도 이어지는 질문, 누구의 소유인가?

[남산 2019 하반기 리뷰단] <오만한 후손들>을 중심으로

관람일시: 2019-09-19 (목) 19:30

공연장소: 남산예술센터

작성자: 조혜인


<오만한 후손들> 공식 포스터

극단 산수유가 올해 <12인의 성난 사람들>, 권리장전 2019 원조적폐 <마산>에 이어 <오만한 후손들>을 올리고 있다. 필자는 본 공연을 남산예술센터 하반기 모니터링단으로서 만나게 되었다.

<오만한 후손들> 공식 사진

본 공연은 현재까지도 연극계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는 ‘공공극장으로서 남산예술센터(드라마센터)의 사유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 개의 층위로 구성된 공연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소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층위는 셰익스피어가 구현한 <햄릿> 속의 세계다. <햄릿>에서는 불안한 정세 속 부당한 방법으로 아버지와 국가를 잃어버린 햄릿의 고뇌가 주로 드러난다. 이를 왜 드라마센터의 논쟁과 연결시켰을까? 햄릿 왕의 유령은 유치진의 유령으로 등장하며 나라를 떠나지 못하던 햄릿 왕처럼 드라마센터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호레이쇼는 말한다. “이 나라가 썩어가고 있어!” 이때 공공성을 띈 국가와 극장이 진정으로 ‘자기 것’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생성된다.


두 번째  층위는 무대 위 <햄릿>을 끝낸 지금, 이 시대의 연극인들의 삶이다. <햄릿>에서 진지하고 근엄하며 고통에 찌든 무거운 모습에서 벗어나 평범한 극단원의 모습으로서 극 중 긴장감을 해소시킨다. 공연을 위해 스케줄을 비우고, 공연이 끝났으니 양꼬치를 먹어야 하며, 다시 알바에 가야 하는 등 연기가 아닌 것 같은 리얼리티를 생성한다. 극단원들끼리 드라마센터에 대해 논쟁을 벌이며 이 부지가 어째서 공공화되어야 하는지 날카로운 목소리가 ‘연극배우’로부터 나온다.


드라마센터는 지난 2018년에 임대 종료되었고, 2020년 12월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상황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자리에 드라마센터를 설립하려 했던 부지선정의 문제가 있다. 국유재산이 개인에게 허가가 나면서, 공공극장으로서의 정상화를 위한 연극인들의 모임이 생긴 것이다. 설립 과정부터 부정한 극장이고, 목적은 ‘공공성’에 있으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목적에 맞게 부지가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유화의 입장 또한 있으므로 양 측의 쟁점이 팽팽하게 대립한다.


하지만, 본 공연에서는 말한다. “극장의 가치는 연극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연극인들이야말로 이 극장의 사회적 활용의 주체라는 말이다. 비록 법적으로는 다른 곳의 소유지만. 우리는 어느 시각으로 이 쟁점을 바라봐야 할까?


세 번째 층위는 드라마센터에 대해 토론을 하는 언론인, 비평가들의 세계다. 이들은 연극인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부르주아지 계급에 있는 듯 보인다. 교양 있는 말씨, 각 잡힌 양복, 비평가가 구사하는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단어와 문장과 같은 특징은 현현하게 연극인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이들은 드라마센터 사건을 개연성 있게 정리해주는 역할을 하는 대신 아무런 대안 없이 극장 밖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수동적 입장을 가진다.


지금의 연극계를 이끌어가는 주역인 연극인들은 드라마센터 무대 위에 남아서 “하고싶은걸 계속 할 수록, 하고싶은걸 못한다”라고 푸념하고, 부르주아지들은 구조 밖에서 위치하며 가타부타 말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런 뒤틀린 세상이 철골구조물 무대 세트로 표현된 것은 인상적이다. 구조물 맨 위에는 유치진이 있고, 그 아래에 비평가들, 그 아래에 아나운서들, 그리고 가장 아랫 바닥에는 연극배우들이 위치하며 공연은 막을 내린다.


드라마센터는 누구의 소유인가? 유치진은 아직도 드라마센터에 유령처럼 남아서 이를 자신의 통치 하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연극인들은 결코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모두를 위한 극장으로서 공공화를 외치고 있다. 소유하려는 1인은 사회의 맨 위 구조에, 공공화하려는 다수는 사회의 맨 아래 구조에 위치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히 드러난다. 햄릿은 한 나라의 왕자라도 되었는데 말이다.


드라마센터를 둘러싼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갈등은 이제 <오만한 후손들>을 거쳐간 관객들에게도 외면할 수 없는 사건으로 기억하게 한다. 사유화/공공화 이분법의 프레임을 넘어서, 진정으로 이 극장이 ‘극장 다울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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