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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인 Sep 14. 2019

탈노동을 상상하게 만드는 퍼포먼스라는 노동

우주마인드프로젝트 <스피드.잡스 (Speed. Jobs)> 를 중심으로-

공연관람일시: 2019. 6. 4 (화), 16:00
공연장소: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기고자: 조혜인

<스피드. 잡스>는 제목을 통해 스티브 잡스(Steve Job)를 상기시키며 ‘신자유주의1) 시대에서 이뤄낸 성공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려는 퍼포먼스라는 인상을 준다. 본 퍼포먼스의 최초 성격은 야외공연 형식으로서 ‘청계천 광통교’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이 기간동안 주목할 점은, ‘우천시 취소’라는 알람을 관객들에게 사전 전달한 점이다. 퍼포먼스는 노동이다. 덧붙이자면, 퍼포먼스는 퍼포머, 연출, 스태프, 기획 등 모든 창작자 들이 시간, 체력, 정신력을 소모하는 대가로 자본이란 이익을 얻으려는 명백한 노동이다. 이러한 퍼포먼스라는 노동은 본디 자본을 얻기 위해 관객에게 질 좋은 퍼포먼스를 ‘서비스’ 해야 하는 노동윤리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본 퍼포먼스는 ‘우천시 취소’라는 사전 공지를 통해 이러한 윤리의식을 전복하려 한다. 관객이 투자한 자본2)보다 궂은 날씨 가운데에서 고생하지 않겠다는 창작자들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우천시 취소’는 창작자들(노동자들)의 자유에 초점을 맞춘 동시에 퍼포먼스 현장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실험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자유는 자본주의의 명령으로부터 벗어날 자유뿐 아니라 또 다른 자유 —섹슈얼리티의 규범, 가구의 구성 및 가정 내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기준으로부터 벗어날 그런 자유들—로 확장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3)

청계천에서의 일정이 마무리되면, 장소가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으로 바뀐다. 하우스가 오픈되면 큼직한 통유리 창문이 일부 커튼으로 가려져있고, 평평한 마룻바닥 위에 관객들이 앉을 접이의자들이 원형으로 셋팅 되어있다. 출입구 쪽에 큐브 하나가 놓여있으며, 출입구와 정반대편 위치에 김승언, 신문영 두 퍼포머가 서있다. 그들의 주변에는 기타와 아코디언이 있으며, 상수쪽에는 서울연극센터의 소유물로 보이는 피아노가 존재 한다. 퍼포먼스가 시작되면 퍼포머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이어 여행에 대한 만담이 시작된다.


<스피드. 잡스>(2019) 포스터 (C) 우주마인드프로젝트 페이스북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스피드. 잡스> 공연장  (C) 우주마인드프로젝트 Would You Mind Project 페이스북

<스피드. 잡스>의 서사는 일과 휴식이 주객전도 된 두 퍼포머의 자기 이야기로 구성 된다. 그들은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이라는 무한한 비극의 알고리 즘적 서사를 창조해낸다. 일 하기 위한, 휴식하기 위한 노동으로서 비자발적 워커홀릭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삶에 대한 서사는 우리의 삶과 매우 닮아 있다. 여행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의 속도를 더욱 올려야 하는 참담함을 어쿠스틱 음악을 사용해 마치 노동요처럼 흥겹게 표현하고, 무대를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그들의 육체가 몸소 ‘연기’라는 노동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온다. 그 과정에서 김승언 배우의 얼굴로부터 굵은 땀방울이 마룻바닥 위에 쏟아진다. 관객이 직접 관객 자신의 노동현장에 가지 않더라도 퍼포먼스라는 노동이 이루어지는 또 다른 노동의 현장(공연장)에서 직접 ‘노동’ 하고 있는 배우라는 ‘노동자’를 보게된다. 배우의 몸에서 흐르는 땀의 즉물성은 곧 배우의 현존으로 이어 지고, 배우와 함께 시공간을 향유하는 관객은 이를 통해 노동의 강도와 속도가 올라가도 마치 제자리걸음과 같은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무엇이 우리를 일하게 하며, 우리는 왜 오랫동안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스피드. 잡스>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라는 노동으로부터 탈노동의 유토피아를 상상해본다. 탈노동의 유토피아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노동 거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여기서 “노동 거부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노동사회의 구성과 일의 도덕화된 개념을 거부하는 것이다.”4) 마치 ‘우천시 취소’처럼 우천시 오로지 관객을 위해 야외극을 강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노동이 프레이밍 되고 있는 방식을 해체 해야한다. Calling5)이 아닌 work가 되기 위해, 우리의 삶이 일에 속박되지 않기 위해 탈노동을 향한 욕망, 상상 그리고 의지를 촉발시키는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하니까’라는 불가피성에 기댄 이유와 ‘우리는 일 하고 싶기 때문에 일한다’는 의지에 기댄 이유만으로 우리가 왜 일을 하는지 설명되기엔 부족하다. 노동사회는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사는 사회다. 역으로, 탈노동의 사회는 살기 위해 일하는 사회이고, 이것은 현실에서 유토피아로 상정된다. 이루어지지 않을 유토피아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첫 시작이다. <스피드. 잡스>는 퍼포머들 내면에 잠재 되어있는 탈노동의 유토피아가 현실에 시공되기 위한 시도로서 유의미하다. 그렇다면 우리 세상과는 다른 또 다른 세상에 대해 꿈꾸는 퍼포먼스는 어떤 영향력을 내포하고 있을까? 필자는 인용구를 통해 그 영향력에 대해 고찰해보며 본 감상문을 마무리한다.

“다른 세상은 가능할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 만 마치 다른 세상이 가능한 듯이 요구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존재할 때만, 비로소 다른 세상의 가능성이 생겨난다.”6)

미주
1)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란 국가가 시장에 권력을 개입하는 것을 비판하고,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이다.
2) 본 공연은 관람료가 무료이기 때문에, 우천시 관객이 불편함을 감소하고 공연장소에 찾아오는 ‘시간’ 또한 자본으로 가정한다.
3) 케이시 윅스 지음, 제현주 옮김,『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2016, 동녘, 60p
4) 위의 책 57p
5) 종교적 ‘소명’, ‘부르심’, 그리고 ‘일’이라는 뜻도 된다. 프로테스탄트 노동 윤리는 자신의 일이 신으로부터 내려온 소명으로 접근하라는 명령이 담겨져있다. 이로서 노동 윤리가 서구 청교도 윤 리로부터 사로잡혀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마치 신의 부름을 받은 것’처럼’(신의 부름을 받 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생의 조직화된 세속적 노동에 헌신해야 한다는 청교도 윤리의 유산에 대 해 막스 베버는 분석한다.
6) 위의 책 3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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