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링단] <곡선 - 우리는 맷돼지 사냥에 성공했다>를 중심으로
관람일시: 2019. 5. 18 (토) 19:00
관람장소: 미아리고개예술극장
작성자: 조혜인
<곡선-우리는 맷돼지 사냥에 성공했다>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왜 춤을 춰 왔는가?
프리셋에서는 클럽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의 힙합음악과 DJ부스가 존재하고, 무용수들이 나란히 누워서 춤을 추고 싶다는 듯 리듬을 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움직이고자하는 열망을 대신 발산해주는 페인터가 원시시대 동굴벽화와 같은 맷돼지를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가 아닌 ‘객석등’이 켜지며 복도에서 무용수가 등장한다. 본디 '익숙한' 공연이라 함은 무대의 불빛이 밝게 빛나지 않는가? 객석의 등이 확 켜지는 순간, 본 공연은 '관객'들을 더욱 조명하고자 하는 공연이라는 것을 암시하게 되었다.
춤을 추고 있는 이 순간 자체는 내가 왜 춤을 춰야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답을 하고 있다. 본 공연은 무용수의 아름다운 몸짓을 그저 감상하기 위한 공연이 아니다. 극장의 모든 불을 켠 채 함께 춤을 출 관객을 탐색하는 무용수와, 객석에서 무대로 내려와 함께 춤을 추는 관객이 춤을 추는 사건 그 자체가 빛나는 공연이다. 그렇다면 맷돼지는 '춤추고자 하는 욕망' 즉, 무대 앞으로 돌진하기 일보직전인 관객을 상징하며, 맷돼지를 사냥하는 행위는 그러한 관객을 발굴하여 맷돼지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맷돼지’, ‘사냥’, ‘성공’ 세 단어는 모두 어떠한 (정신적이고도 물리적인) 역동적임이 담겨있다. 힙합음악에 맞춰 군무가 끝나면, 한명의 사냥꾼(무용수)이 객석에서 맷돼지(관객)를 잡아온다. 나머지 무용수들은 격렬한 춤에 힘이 드는지 상하수 벽쪽에 앉아 술을 마시며 담배도 핀다.
사냥꾼이 백조를 연상시키는 깨끗한 느낌의 발레를 추는 동시에 맷돼지는 무대 위에서 잠시 그것을 바라본다. 이 때 쉬고있는 사냥꾼들이 내뿜는 담배연기는 마치 포그효과를 만들어 무대 위에서 즉물성을 더해준다. 안개 속에서 고결하게 헤엄치는 백조의 느낌을 감각적으로 더해주는 시점이 포착된다. 그렇게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들고 백조의 춤에 몰입을 하게 될때 쯤, 무용수는 자신의 춤을 멈추고 무대에 함께 있는 관객에게 발레포즈를 취하도록 몸동작을 잡아준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저 관객은 진짜 관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참여형인 '척' 하는 퍼포먼스인건가? 혼란이 오는 지점이 발생했다. 왜냐하면 사냥당하는 맷돼지들이 더럿 있었는데 모두 적극적으로 춤을 추었고, 춤을 추어 본 사람들 같았기 때문이다. 무대에 처음 올라서는 관객들의 동선 이동 또한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것도 위와 같은 생각에 혼란을 발생 시켰다. 하지만, 관객이라면 무대 위에서 쭈뼛거려야하고, 춤을 추지 못해야하고, 퍼포머보다 한 수 아래인 퍼포밍을 선보여야한다는 필자의 고정관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대에 설 관객들이 모두 선정되면 무대는 다시한번 클럽으로 변한다. 이제는 제대로 클럽 분위기로, 조명도 싸이키 이펙트를 거침없이 걸어두고 여전히 상수 업스테이지 쪽에서는 라이브드로잉이 진행되고있다. 미국에서 클럽+디제잉+라이브드로잉 퍼포먼스가 꽤 유행이라는 것을 들었는데, 이런 형태의 퍼포밍을 대한민국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극장이 클럽인지, 클럽이 극장인지 이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도였다.
공연의 막이 내리며, '우리는 맷돼지 사냥에 성공했다'라는 영상의 타이포그래피가 뜨면서 암전 가운데 맷돼지가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거칠게 남는다. 춤을 췄음에도 또 춤이 추고 싶어지는 욕망, 춤을 추고싶은 욕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욕망이라는 타겟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사냥꾼들이 난입되었을 때 격렬하게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맷돼지들... 곡선은 관객들을 모두 맷돼지로 만들고싶었던 것이 아닐까?
공연이 끝난 후 극장에서 설문지를 나눠주었다. 그곳에서는 관객참여 후기에 대한 칸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미리 정해진 관객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랜덤으로 관객을 선택한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관객으로 하여금 춤추게 만들었을까? 이토록, 적극적으로, 무용수처럼, 혹은 그들보다 더 격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