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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인 Nov 19. 2019

고통의 변주를 감각하는 방식의 새로운 변주 가능성

[남산 2019 하반기 리뷰단] <Human Fuga>를 중심으로

관람일시: 2019-11-08 (금) 19:30

공연장: 남산예술센터


<Human Fuga> 공식사진


마루 두 개를 X와 Y축으로 이어붙인 텅 빈 무대가 관객을 맞이한다. 사람의 잡음이 서서히 들려오는 동시에 창문고보가 무대의 X축 바닥을 쏘면 공연이 시작된다.


<Human Fuga> 공식사진

푸가(Fuga)는 모방과 반복이 일어나는 변주다. 그렇다면 Human Fuga는 인간 변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본 공연은 다양한 인간의 삶 가운데 518 광주라는 아픔이 관통하며 그로 인해 벌어지는 고통의 변주를 보여준다. 518의 고통이 어떻게 관객에게 가닿느냐의 전략은 바로 ‘몸’이다. 슬로우모션, 약속된듯한 행위의 반복 (예를들어 검지를 자신에게 가리켰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외부로 뻗어내는 행위) 등을 통해 마치 온몸으로 푸가를 감각한다. 특히 피아노의 다양한 부위를 활용한 앰비언트 사운드는 이러한 감각성을 배로 증폭시킨다.



현장에서 생생하게 만들어내는 음악과 배우들의 움직임은 리듬, 템포, 강약이 맞아 마치 무대라는 오선지 위에 음계를 하나씩 창조해나가는 것 같다. 한 명의 고통이 발현되었을 때, 타자 또한 그 고통에 포섭되어지며 이는 모방과 반복의 푸가 음악과 만나게 되는 연출전략은 본 공연의 장점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인간은 무엇인가?”인데, 무참한 학살사건 앞에서도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공허함이 느껴진다.


<Human Fuga> 공식사진


본 공연은 파편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고, 이야기의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배우의 몸과 무대 위의 오브제들이 주는 강렬한 물질성이 더욱 돋보인다. 이는 에리카 피셔-리히테의 수행성 개념과 맞닿는다. 재현 불가능할 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을 재현할 수 없으니 ‘사건’ 그 자체로 나타나고, 고정되고 의미화된 텍스트가 무대 위에서 사라진다. 기호학적 의미는 사라지고 현상학적 몸이 남는 미학, 이것은 바로 ‘수행성의 미학’이다. <Human Fuga>에서 강렬히 드러나는 배우의 ‘몸성’과 오브제의 물질성 그 자체가 주는 질감과 고통의 푸가가 만나 그 감각 자체를 감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승전결의 구체적 서사로부터의 탈피는 관객에게 새롭게 연극을 보는 방식을 일깨워준다. 의미에서 허덕이고, 상징에서 발버둥치는 이성(Reason)의 게임이 아닌,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 그 자체를 감각하고 나의 경험과 잇는 연극에서의 정서적 참여로의 이행해야하는 바이다. <Human Fuga>가 배우의 현존 그 자체로 보여준 고통의 변주는 관객에게 닿아 공연보기방식의 새로운 변주를 상상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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