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人오브제> (LOVE IN OBJET)

제 2 회 혜강 시나리오 공모전 출품작

by 조혜인

각본 조혜인 (라피)

The title of means not only but also . Because ‘人’ means ‘Human’ and sounds like ‘In’.


Copyright ⓒ 2019 Hyein Cho (Raphie) All right reserved.


등장인물

신무달 26 세, 모델지망생

입시생 1 현역

입시생 2 삼수생

입시생 3 현역

원장 미대입시 지도 약 10 년차

세련 승인대학교 미대 중퇴, 미국유학중

승인대 조교 20 대 중후반 남성, 승인대학교 미대 재학중

두상모델 20대 남성


Prologue. 무달의 자취방 (화요일 밤/겨울)


어둑하게 창문을 가리는 무채색 커텐으로 사뭇 쓸쓸한 느낌이 풍기는 무달의 방. 가운데 벽 한켠에는 무달의 사진들이 작고 산만하게 붙어져있다. 사진 속 그녀는 모두 근사한 헤어메이크업을 하고 포즈를 취한 채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옆으로 그녀가 동경하는 모델들의 화보사진이 큼직하고 단정하게 붙어져있다. 그녀와 모델들 사진 가운데 놓여있는 전신거울, 그리고 바닥에 체중계. 커튼과 같은 색의 이불 속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무달.


S#1. 학원 원장실 (수요일 아침)


수많은 합격자 명단과 수상실적 액자들이 걸려있는 원장실. 자신이 그린 그림들(인물화와 아그립바)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한쪽 벽에 붙어져있다. 먼지 한톨 안 날릴 듯 깨끗하고 좁은 공간이지만 원장의 책상과 상담자 책상의 거리감을 통해 어딘지 모르게 낯선 경계심이 맴돈다. 원장, 누군가와 통화중이다. 수화기 너머의 여자 정체는 베일에 쌓여있다.


원장 (화색이 돌며) 그래! 오늘 오겠단말이지?


(E.C.U.) 짙게 바른 붉은 립스틱이 도드라지는 그녀의 입술


여자 (옅은 웃음) 네. 이제 출국도 얼마 안남았고 선생님 생각이 나서요.

원장 Always welcome! 거기 있으니까 선생님한테 배울 때가 좀 떠올랐니?

여자 그럼요.

원장 나는 제자를 그냥 맞이하는 법은 없어. 알지? 차비라도 챙겨줄테니 와서 애들한테 유학 성공담좀 들려주는거 어떻니? 입시때 경험담도 좀 해주고.

여자 어머나, 제가 감히…

원장 애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니? 살아있는 성공사례를 보면 분명히 다들 너처럼 되고싶어할거다!

여자 과찬이세요.

원장 과찬은 무슨… 애들이 예술을 왜 하려고 하겠니, 그 나이에는 간지나려고 시작하는거야. 나도 그랬어! 그저 자기가 원하는걸 얻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면 밑도 끝도 없이 그 사람처럼 되고픈게 아이들 심리란다.

여자 (웃음) 선생님도 참…

원장 아마 네가 한번 왔다가면 애들이 독기 바짝 올라서 기염을 토해낼테지!

여자 이제 시험이 얼마 안 남았겠네요?

원장 (한숨) 당장 이번주 주말이지. 미치겠어… 올해처럼 인풋대비 아웃풋 없는 해는 또 처음이라고… (목소리를 은밀히 낮추며) 이제 너는 나이도 좀 있고 하니까 하는 말인데… 어떤 학부모가 지랄할지 몰라. 재능없는 지 아들딸년들 실력 탓은 안하고 입시 떨어지면 무작정 학원비 뱉어내라며…

여자 (냉소적으로 비꼬며) 정말 수준떨어지네요.

원장 (여자의 반응에 더 격하게 동조하며) 아무렴! 그러니까 오는김에 확실히 동기부여좀 시켜줘!

여자 (씨익 웃으며) 어려운 일은 아니죠. 아참, 선생님 드리려고 위스키도 좀 챙겨왔어요. 국내에선 팔지 않는거라서 귀한거에요.

원장 (얼굴이 펴며) 선생님은 그런거 하나도 안바래요! (다시 굳은 얼굴로) 올해는 솔직히 패가 안좋아. 작년에 비하면 딱 한 명만 두각을 드러낸다니까. 그래도 붙는다는 보장은 없으니… 하이고, 작년에는 그래도 세 명이나 승인대를 보냈는데… 어차피 될 애는 되고 안될 애는 안되지만…

여자 불변의 진리죠. 음악을 못하는 애들은 '음치', 미술을 못하는 애들은 '미치'잖아요!


(E.C.U.) 깔깔대는 여자의 입


원장 (한숨) 그런애들 가르치다보면 내가 답답해 미치겠어. 그러니까 세련이 네가 꼭 와서 막판 꼬랑지에 불 한번 싹 질러줘. 명세기 승인대 출신이잖니! 부탁한다.

세련 네. 이따 뵙겠습니다.

원장 그리고 나서 따로 이야기 하자고…

세련 아시죠? 제가 얼마나 학원을 아꼈는지…

원장 그럼, 알고말고… 꼭 부탁한다.

세련 … 곧 뵙겠습니다.


원장, 통화를 종료한다.

(E.C.U.) 입꼬리가 올라간 원장의 거뭇거뭇한 입술


S#2. 무달의 자취방 (수요일 아침)


(E.) 알람 소리


무달, 일어난다.


(C.U.) 체중계에 올라가는 무달의 두 발


무달, 체중을 잰 뒤 전신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살펴본다. 몸을 살펴보는 것을 그만 두고 얼굴을 살핀다. 고개를 천천히, 빠르게, 이리저리 다각도로 돌려가며 구석구석 자신의 얼굴을 살핀다.


(E.) 전화 소리


무달 일어났어… (사이) 연락이 그렇게 쉽게 오나. 요즘 살도 좀 찌고… 그게 이유겠지.


무달,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사과를 집어든다. 곧장 입으로 가져가려다 그만두고 사과를 골똘히 살핀다.


무달 사과만 먹는것도 이젠 지겨워.


무달, 사과를 테이블 위에 놓는다.


무달 엄마, 왜 난 예쁘게 태어나지 못했을까? (사이) 고슴도치도 다 자기 자식은 예뻐하지. (사이) 미안해… 나 당분간 쉴까봐. 몸도 몸이지만 일단 내가 제정신이 아니야.


무달, 허기가 졌는지 사과를 다시 집어든다.


무달 응? 뭐라고? 무슨 그런 소리를 해? (사이) 모델일을 하는데 어떻게 외모를 안봐? (사이) 그런 일은 평범한 일반인들도 다 할 수 있는거야. 모델지망생들의 일이 아니라고… 그걸로 경력이나 쌓일 것 같아? 나 진짜 미치겠네. (사이) 하긴, 하다못해 누드모델 하는 애들도 있긴 한데… 아니 그래도 전문 누드모델이랑 그거랑은 엄연히 다르다고. (사이) 아 몰라! 끊어!


무달, 엄마와 통화를 종료한다.


무달 하, 이젠 별 소리를 다 듣네…


무달, 테이블 앞에 앉아 사과를 먹기 시작한다. 처음에 한입 베어먹고, 그 이후로는 병적으로 갉아먹는다. 무달, 앙상히 뼈대만 남은 사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전신거울 앞에 선다.


무달 사과 하나 먹었다고 배가 이렇게 나올 수 있나…


무달, 배를 힘껏 집어넣어 날씬해 보이려는 포즈, 억지로 만든 환한 웃음, 다양한 표정을 지어본다. 그리고 재빠르게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자신의 모습을 찍어본다.


(E.) 찰칵찰칵


무달, 앨범을 확인한다. 핸드폰 속의 모습과 거울 속 모습이 교차된다.


무달 (처참하게) 아…


(E.) 전화 소리


무달 (시큰둥하게) 왜. (누그러들며) 미안할게 뭐있어… (사이) 그래. 그자식 얘기 오랜만이다. 상담인가 뭔가 받으러 다닌다며. (사이) 또? 이 미친자식! 아니 50 만원이 무슨 애들 장난이야? (사이) 엄마, 그자식이 싸질러놓은 똥인데 언제까지 뒤따라다니면서 닦아줄래? 막말로 걔는 엄마가 늙어서 벽에 똥칠 해놓으면 눈 하나 깜짝 안할 놈이라고. (사이) 그 돈 나올 구멍이 어디있는데? 나를 봐, 나를! (히스테리를 참지 못하며) 아으으으으읏! 그동안 걔한테 들이부었던 돈이면 진작 성형을 했을텐데! 그랬으면 지금쯤 돈 잘 벌고 있겠지. (사이) 끊어!


무달, 엄마와 통화를 종료한다.


무달 신무진 이 또라이새끼…


무달, 자리에 눕는다. 이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쓴 채 잠시 미동이 없다.


무달 죽어서 무슨 지옥에 떨어지려고…


무달,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이 모습은 마치 시체가 경련을 일으키는 것 마냥 순식간에 벌어진다.


무달 너 때문이 아니라 내가 먹고 살려는거다…


무달, 노트북을 켠다.

(C.U.) 테이블 위 말라비틀어진 사과뼈


무달 미술학원… 두상소묘… 아이들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제발 졸지 마세요… 두상모델이 졸면 아이들이 예민해 합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무언가를 요구하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세요… 쳇, 염병하네. 근데 페이는 나름 꿀인데? 다섯번만 하면 50 만원…


무달, 미술학원에 전화를 건다.


(E.) 통화음 소리: ‘사람과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합격이다.’ 안녕하세요? 러브人오브제 미술학원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통화가 연결되오니…


S#3. 학원 원장실 (수요일 아침)


원장 여보세요?

무달 여보세요? 알바헤븐에서 보고 전화드렸어요.

원장 언제 시간 가능하세요?

무달 저는 이번주 모두 시간이 괜찮습니다.

원장 오늘은 자리가 다 찼고, 내일 당장 오시겠어요?

무달 네? 내일 당장요? 좋습니다!

원장 시간약속 꼭 지켜주세요. 당일 날 펑크내시면 수업진행이 안되니까요.

무달 알겠습니다!


(E.) 승인대반 입시생들 목소리: 러브인오브제 13 기! 갈수있다 승인대! 할수있다 OOO(자기이름)!


원장 (등원한 입시생들을 의식하며) 그럼 내일뵙겠…

무달 잠시만요 원장님, 혹시 사진 보내드려야…

원장 아뇨 필요 없습니다.

무달 정말 괜찮으시겠…

원장 사진 필요 없습니다. 이제 곧 수업이 시작되서 가봐야합니다. 아, 내일 학원 오시기 전에 출근하고 계신지 전화 한통만 넣어주세요. 없으면 바로 다른 모델 구해야 합니다.

무달 알겠습니다…


미술학원과 통화가 종료된다.


무달 이렇게 쉽게 합격인가…


무달,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무달 엄마, 나 내일 출근해.


S#4. 출근길 (목요일 아침)


목도리와 패딩으로 온몸을 무장한 무달, 대로변에는 미술학원들이 줄지어있다.


무달 (몸을 움츠리며) 하아… 존나춥다.


(E.) 전화 소리


무달 아, 저 이제 다왔어요. 죄송해요. 전화 드린다는거 깜빡…

원장 (말을 확 자르며) 어디쯤이신가요?

무달 학원 앞입니다.

원장 미리 전화를 주셨어야죠. 다른 모델 구하기 일보직전 이었습니다.

무달 죄송합니다…


무달,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른다. 학원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번 한다.


무달 속마음 (카메라를 향해) 여기 좀 까칠한 곳인가봐요. 그래도 오늘만 고생하면 10 만원이 들어온다구요.


S#5. 학원 작업실 (목요일 아침)


무달 (뻘쭘하지만 좋은 인상을 애써 남기려) 안녕하세요.

원장 (데면데면하게) 네. 잠시 여기 앉아서 대기하고 계세요.


무달, 간이 의자에 앉아 학원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작업실 중앙벽에는 ‘사람과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합격이다.’ 라고 쓰여진 플랜카드가 붙어있다. 이것만 빼면 여느 미술학원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각 대학별 시험일정이 체크된 달력도 제법 눈에 띈다. 작업실에는 입시생 1, 2, 3 이 있고 그들 앞에 이젤이 놓여있다. 세개의 이젤은 가운데에 회전의자 하나를 둘러싸고 있다. 입시생들은 연필을 깎으며 수업준비를 하고있다.


(C.U.) 송곳처럼 매우 날렵한 모양으로 연필 심지를 다듬고있는 입시생의 손


무달, 입시생들과 눈이 마주친다.


무달 안녕하세요.


입시생 1, 2, 무달을 본척만척 한다.


입시생 3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원장 (무달에게 종이를 건네며) 여기에 성함, 주민번호, 계좌번호 적어주세요. 페이는 공지 했다시피 10 만원입니다. 우리 학원은 다른 학원에 비해 페이가 좀 높은 편이에요. 그만큼 신경 써주시길 바랍니다.

무달 네. 원장 우선 복도 사물함에 짐 풀어놓으시고, 머리 묶으신 다음에 이마가 보이게 실핀으로 고정하고 오세요. 나머지는 애들이 알아서 설명 해 줄 겁니다.


무달, 복도로 나간다.


원장 (입시생들에게) 무슨 연필을 하루종일 깎니? 빨리 준비해!

입시생 1, 2, 3


(E.) 무달 목소리: 원장님!


원장 네?

무달 (작업실로 다시 돌아오며) 실핀이 없는데요?

원장 아 그런가요?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며) 그럼 혹시 실례지만 요 앞에 편의점에서 실핀좀 사다주시겠어요? 일하러 오신거니까 이정도는…

무달 (당황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아… 네.

원장 (무달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수고 좀 해줘요.

무달 알겠습니다!


무달, 작업실 밖으로 나간다.


원장 (입시생들에게) 얘들아- 오늘 온 모델한테는 잘 설명해줘라. 저번처럼 화가나서 도망가면 니들만 손해야. 모델비 내고선 괜히 수업 허탕치지 말고… 입시 스트레스를 예술로 승화시키란말야! 모델이 없으면 니들 뭘로 그림 그릴래? 실기장에서 ‘모델을 상상해서 그리시오’ 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적당히 해야 돼. 알겠니?


입시생 1, 2, 3 (연필을 여전히 깎으며) 네…

원장 모델 오면 바로 모의고사 들어간다. 준비들 하고있어.


입시생들, 각자 이젤에 종이를 세팅한다. 원장, 작업실 밖으로 나간다. 원장이 나가자마자 이들은 서로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S#6. 길바닥 (목요일 아침)


휘잉- 칼바람이 부는 겨울아침의 길거리. 무달, 편의점을 찾고있다. 그녀는 언덕 아래에 있는 편의점을 발견한다.


무달 속마음 (카메라를 향해) 아 저기 있다. 근데… 원래 두상모델 일은 이런건가요?


편의점을 향해 걸어가는 무달의 뒷모습


S#7. 학원 베란다 (목요일 아침)


입시생 세명,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핀다.


입시생 1 (침을 찍찍 지리며) 아 씨발, 존나 잔소리.

입시생 3 (자기가 뿜어내는 연기를 유유히 지켜보며) 하루이틀이냐. (입시생 1 을 보고) 침은 통에다 뱉어.

입시생 1 (가래를 걸쭉하게 뽑아내어 통에다 흘리며) 씨발 원장새끼… 일부러 거기다가 뱉은거임.

입시생 2 (뻐끔뻐끔 빨아대며) …

입시생 1 근데 봤음? 오늘 모델 키 존나큼-


(Insert.) 입시생 1, 의자에 앉아 연필을 깎다 말고 무달을 아래위로 스캔한다.


입시생 3 그러게.

입시생 1 근데 얼굴이 개빻음

입시생 2 (키득)

입시생 3 … 오늘 점심 뭐먹을래?

입시생 1 오늘 햄버거 각임

입시생 3 그래. (입시생 2 에게) 언니, 괜찮아요?

입시생 2 … 상관없어.

입시생 1 난 듀듀버거 먹을거야. (입시생 3 에게) 너 그거 먹어봄?

입시생 3 당근이지!

입시생 1 새우패티 개쩔어… 아, 존나 배고프다…


입시생 3, 자기 눈썹 위로 담배연기를 후우- 분다. 하늘을 도화지 삼아 맴도는 연기.


입시생 3 나도 고프다… 자유가…


(E.) 원장 목소리: (입시생들을 향해) 야야야! 아우- 이 아치새끼들!


원장, 길고 가는 작대기를 들고 베란다로 뛰어들어온다. 베란다의 문이 벌컥 열린다.


원장 이것들이 꼴초도 이런 꼴초가 없네… 준비 하고 있으랬더니 담배는 오라지게도 피워대요. 니들 실기장가서도 그림 안그려진다고 나가서 담배피워댈래?

입시생 3 (담배를 끄며) 죄송합니다…

원장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니들 선배 하나가 시험 도중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대요. 근데 지금 니들 하는 꼬라지가 딱 똑같구만? 그 선배는 어떻게 됬는지 말 안해도 알겠지? 떨어지고 싶어 환장했어? 걔는 그 이후에 우리 학원을 일년 더 다녔어- (작대기를 바닥에 탁탁 치면서) 정신차려 이년들아!


원장, 침으로 범벅이 된 바닥을 본다.


원장 (솟구치는 히스테리를 발산하며) 아오-------- 누구야? 드럽게도 뱉어놨네!!!


입시생 3 죄송합니다. (입시생 1, 2 에게) 얼른 가자.


입시생 1, 2, 담배를 끄며 입시생 3 을 따라 나선다.


입시생 1 (입시생 2 에게 소곤거리며) 같이 듀듀버거 먹자.

원장 (소곤거림을 듣고) 듀듀버거…? 니들 미친거아니니? (작대기를 바닥에 탁탁 치면서) 니들은 학원에 밥쳐먹으러 나오니? 여기서 쳐먹을 생각 말고 승인대 가서 쳐먹으란말야!


입시생 1, 2, 3 재빠르게 베란다를 나선다. 원장, 베란다에 놓여있는 청소도구로 바닥을 정리한다.


원장 … 니들이 뭘 쳐먹든 제발 붙기만 해라.


S#8. 학원 작업실/길바닥 (목요일 아침/실기 D-2)


분할화면으로 입시생과 무달의 상황을 동시에 보여준다. (분할화면 1.) 입시생 셋, 무달을 기다리며 잠시 수다를 떤다. (분할화면 2.) 무달이 편의점에서 계산을 하고 나와 추위에 떨며 언덕을 오르고, 학원계단을 올라오고, 실핀으로 머리를 정리한다. 무달, 거울앞에 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오늘 하루도 잘 버틸 수 있다는 무언의 결심을 한다. 분할화면이 종료된다.


입시생 1 하… 그놈의 승인대…

입시생 3 이틀뒤면 시험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입시생 1 시험 끝나면 바로 클럽가서 술마시고 놀거임.

입시생 3 요즘도 위조민증 먹혀?

입시생 1 (킥킥거리며) 야, 클럽 가드들은 니 생각보다 훨 븅신임. 등치가 존나 크니까 처음엔 덜컥 쫄았는데 어차피 걔들은 눈깔을 달고다녀도 소용없는거라고. 우리같이 하루종일 뭔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존재들이 아니면 어디에 칼집이 났는지, 어디가 비뚤어졌는지 알 길이 음-슴-

입시생 3 한번도 안가봐서 모르겠어!

입시생 1 떨어지면 존나 죽칠거임.

입시생 3 너 그러다가 펭북에 올라오는거 아냐?

입시생 1 닥쳐…


입시생 3, 화려한 조명과 댄스플로어를 상상한다.


입시생 3 좋은거 아닌가? 잘 놀지, 인기많지, 게다가 그림까지 잘그리는 미대생… 그런 미대생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밤을 즐긴다… 누군가는 부러워서 동영상을 찍고, 그게 펭북에 올라가서 좋아요 만개가 넘고… 잘생긴 애들한테 메세지오고!


입시생 1, 화려한 조명과 댄스플로어 위에 좋아요가 쏟아져나오는걸 상상한다. 마지막 좋아요 끝에 따라 나오는 큼직한 하트메세지 아이콘.


입시생 1 그럼 좋은거지!

입시생 2 현실은, 승인대 떨어지면 여기서 죽치는거야.

입시생 1, 3 아…


하트메세지 아이콘이 박살난다.


입시생 2 난 이번엔 꼭 붙어야 돼.

입시생 1 나도.

입시생 3

입시생 1 근데 모델 왜이렇게 안옴?


무달과 원장, 작업실로 들어온다.


원장 여기는 ‘승인대학교’반입니다. 명실상부 미대 1 위 학교인만큼 실기 절차가 좀 까다롭죠. 다른 학교는 거의 조소만 치는데 이곳은 하루에 시험종목을 소묘, 조소 두번이나 봅니다. 의자 회전수도 현저히 많구요… 모델님의 집중력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힘드시다고 긴장을 풀어버리면 각도 한끝 차이로 작품의 선과 명암이 달라져버리니… 거두절미, 제 말 아시겠지요?

무달 열심히 하겠습니다. (입시생들에게 웃으며) 잘 부탁드립니다.

입시생 2 (무달에게) 좀 늦으셨네요.

무달 아… 실핀 사는데 길을 좀 헤메…

원장 (아이들에게) 아참, 오늘 특별한 손님이 올 예정이다.


무달, 겸연쩍게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는다. 추운 바깥에서 들어와 빨갛게 상기되어있는 두 볼.


입시생 1 누군데요?

원장 우리학원 출신 ‘민세련’이라고 들어본적 있니? 아참, 기쁨이(입시생 2)는 알겠구나. 같이 시험도 보러 갔으니.

입시생 2

원장 아무쪼록 니들 선배는 대단한 사람이지. 승인대 회화과를 한번에 패스하고 지금은 뉴욕에서 공부하고있거든. 너희들에게 기 불어넣어주려고 어렵게 모셔왔으니 물어볼거 다 물어보고, 눈치껏 얼굴도장 잘 찍어놔!


원장, 작업실을 나간다.


(C.U.) 입시생 2 의 멍한 얼굴


S#9. 학원 작업실 (어느 저녁/Flashback)


(F.I.) 소묘 자습중. 교복을 입은 입시생 2 와 세련, 서로는 옆에 나란히 앉아있다. 입시생 2, 그림을 그리던 세련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인다.


(E.) 입시생 2: 사랑해.


세련, 놀라서 욕설을 퍼붓는다. 세련의 욕설은 소리로 들리지 않고 단지 입모양과 표정으로 나타난다. 세련이 떠난 자리에 입시생 2 가 남아있다. 그녀는 이젤 위에 붙어있는 세련의 그림을 본다. 울고있는 여자의 얼굴이다.


(Insert 1.) 미술학원 벽 낙서 1: ㅇㄱㅃ 존나싫어

(Insert 2.) 미술학원 화장실 낙서 2: ㅈㅐ수축하ㅋㅋ^^

(Insert 3.) 미술학원 벽 낙서 3: 레즈ㅗ 즐 ㅗ


세련의 그림이 불타오른다. (F.O.)


S#10. 학원 작업실 (목요일 아침/실기 D-2)


(C.U.) 입시생 2 의 멍한 얼굴


입시생 1 (입시생 2 에게) 친한사람이야?

입시생 2 … (무달에게) 지금부터 제가 타이머를 누르면 10 분간격으로 삐빅 소리가 날거에요. 삐빅 소리 날때마다 120 도씩 돌아 앉으시면 되세요. 3 번 돌고 5 분 쉬실 수 있으세요.

무달 시선 어디로 봐드릴까요?

입시생 1 (입시생 3 에게 소곤거리며) 좀 해봤나봐.

입시생 2 저희 이마 봐주세요. 이어폰으로 노래 들으셔도 되구요.


입시생 2, 타이머를 누른다. 타이머를 누르자마자 입시생들은 무달 앞으로 달려들어 무달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무달의 숨이 느껴질 정도로 다가가기도 하고,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관찰하듯 멀찍이 바라보기도 하고, 연필을 쥐고 허공 위에 얼굴을 그려보는 행위를 하고, 비율을 재보고, 서있는 위치를 바꿔서 두상을 입체적으로 파악해 보기도 한다. 관찰작업이 끝나면 입시생들은 본격적으로 이젤에 그림을 그린다.


무달 속마음 (카메라를 향해) 사람들 앞에 서는 그 순간은 언제나 긴장이 되요.

입시생 2 너무 긴장하진 마시구요.

무달 (이어폰 한쪽을 빼며) 네?

입시생 2 얼굴 근육 조금만 풀어주세요. 그냥 모델님은 여기 계신동안 아무 감정없는 사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마음 편하실거에요.

무달 아, 네.


입시생 셋은 무달을 기준으로 120 도 간격으로 위치해 작업을 진행한다. 무달은 가만히 앉아있고 타이머가 울릴 때 마다 의자를 돌린다. 무달의 몸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치는 상태로 변화한다. 소묘작업이 계속된다. 무달, 꾸벅꾸벅 졸고있다. 입시생 2, 졸고있는 무달을 발견한다. 입시생 1 과 2, 무달이 한심하다는 듯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입시생 2 모델님, 졸지마세요.

무달 앗, 죄송해요.

입시생 1 그럼 제가 그림을 못그려요…

입시생 3


무달, 두 눈을 부릅뜨며 몸을 꼿꼿하게 세운다.


무달 속마음 (카메라를 향해) 돈버는거 참 쉽지않아요, (자기 허벅지를 콱 꼬집으며) 그쵸? 몸이 고되면 고된대로 힘들고, 몸이 편하면 편한대로 힘들고… 솔직히 이 일을 좀 만만하게 보고 왔어요. 앉아있어 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도 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고,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거라 자만했는데 이번에도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네요. 난 언제쯤 프로가 될 수 있을까요?


(E.) 찰칵, 찰칵


무달 학생…?


입시생 1, 핸드폰을 꺼내 무달의 사진을 찍는다.


입시생 1 죄송해요. 이따 쉬는시간 되면 쓰게요.

무달 그래도 먼저 허락은 받고 찍으셔야죠…?

입시생 1 당장 지워드릴까요?

무달 (생각) 저 퇴근하면 지워주세요.

무달 속마음 (카메라를 향해) 에휴.


입시생 2, 곧장 핸드폰을 꺼내 무달의 사진을 찍는다. 입시생 1, 같이 따라서 찍는다.

(E.) 찰칵, 찰칵찰칵, 찰칵


무달 ?! 이러시면 안돼죠.

입시생 2 뭐가요?

무달 왜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으세요?

입시생 1 아까는 된다면서요? 입시생 2 어차피 잠깐 쓰고 지워버릴거니까요.

무달 속마음 (카메라를 향해) 허, 내가 무슨 지들 물건인 줄 아나봐요.

입시생 2 그리고 쟤(입시생 1)한테는 찍어도 된다면서요?

무달 (억울하다는 듯) 이미 찍었으니까 어쩔 수 없…

입시생 3 어쨌든 모델님이 싫다고하시잖아요?


(E.) 삐빅!


입시생 2 돌아주세요.


무달, 120 도 돈다. 작업을 위해 감정을 곧 거두고 굳은 자세와 표정을 유지한다. 음악 듣기에 최대한 집중을 한다.


입시생 1 근데… 왜 갑자기 자퇴했을까?

입시생 2

입시생 1 쩐이 있으니까 큰물에서 놀고 싶었던건가?

입시생 2 누구는 ‘큰물’로 가고싶어 쉽게쉽게 대학 때려치시고… 누구는 이렇게 고여서 썩어있고…

입시생 1 언니만 썩어있는거 아닌데?

입시생 2

입시생 3 (입시생 1 에게 살며시) 야…


침묵. 그림을 그리는 셋. 시간이 흐른다.

(E.) 삐빅!


입시생 2 돌아주세요.


무달, 120 도 돈다.


입시생 1 (입시생 3 에게) 그 사람이 오면 우리가 뭐 달라짐?

입시생 2 달라지나보지.

입시생 1 그래요? 그렇게 잘났나?

입시생 2 잘났지… 아주 잘나셨지…

입시생 3 ‘너희들도 우리 학원에 다니면 이 사람처럼 된다.’ 이건가?

입시생 2 ‘그러니까 재수해도 여기로 와라.’ 겠지.

입시생 1 와 씨발…

입시생 3 난 재수한다해도 다신 여기로 안올거야.

입시생 1 왜?

입시생 3 그런게 있어…


S#11. 원장실 (어느 밤/Flashback)


(F.I.) 입시생 3, 상담용 의자에 앉아서 통화내용을 듣고있다.


원장 어머니, 이럴때일수록 우유부단해지시면 안됩니다. 안타깝지만 특강비 할인은 해드릴 수 없습니다. 이제 입시 한달 안남겨두고 아이 특강을 못 듣게하면 그동안 쌓아둔 공든탑이 한순간에 무너지는거에요. 이 시기에 실력이 역전 될 수도, 퇴보 될 수도 있는거지요. (부드러운 목소리로) 300 만원 눈 딱 감고 투자하시면 현혜는 소질이 있는 아이라서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사이) 어머니, 제일 중요한게 있습니다. 현혜는 우리학원 에이스에요. 비교불가 섬세한 재능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특강을 못 듣고 방치해두는건 말이 안됩니다. (사이) 네, 그럼요! (사이) 걱정마세요 어머니. 학원에서 책임지고 스파르타로 교육하겠습니다.


원장, 입시생 3 의 어머니와 통화를 종료한다.


원장 허락 받았다.

입시생 3 저…정말요?

원장 넌 참 힘들게해.

입시생 3 죄송합니다…

원장 붙기만 하면 죄송할 필요는 없지.

입시생 3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장 너는 우리 학원에서 가장 승인대에 갈만한 학생인데, 그런 네가 특강을 안 듣고 입시를 망쳐버린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얘기 들었다고 어디 나가서 다른 애들한테 절대 하지 말고.

입시생 3 정말 특강을 들으면 붙을 수 있을까요…

원장 그럼 남들은 특강 듣는 동안 너는 뭐 하고 있을거니?

입시생 3 그림 그려야죠!

원장 니가 원하는 그림, 승인대가 원하는 그림?

입시생 3

원장 잔말말고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하는게 심신에 이로울거다. 내가 오죽하면 이렇게 야밤에 전화까지 해가면서 어머니 설득을… (한숨) 아휴… 그 전에 니 학원비 석달치 밀렸던거 생각만 해도… 아주 한숨이 푹푹…

입시생 3 (떨리는 목소리로) 그래도 이렇게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 너,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대학없이 니가 원하는 예술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하니?

입시생 3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잘 모르겠..

원장 잊지마.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야. 승인대.


입시생 3, 인사를 꾸벅하고 도망치듯이 원장실을 나선다. 그녀는 학원 문을 나서다 뒤돌아 원장실을 본다.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다. (F.O.)


S#12. 학원 작업실 (목요일 정오/실기 D-2)


(E.) 삐빅!


입시생 2 점심시간입니다.


무달, 일어나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셋의 작품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무달 같은 얼굴을 그렸지만 그림마다 이렇게 다를수가 있군요. (입시생 3 의 그림을 보며) 와, 정말 잘 그리시는데요? 특히 제 눈매가 굉장히 섬세하게 묘사됬어요.

입시생 3 감사합니다.

입시생 1, 2

무달 (입시생 3 에게) 이따 수업 끝나면 그림 찍어가도 될까요?

입시생 3 하하… 쑥쓰러운데요…

무달 제 얼굴을 누가 언제 또 이렇게 작품으로 담아줄지도 모르고… 정말 마음에 들어서요.

입시생 3 찍어가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무달 아닙니다. 진짜 금손이시네요!


입시생 3, 수줍고 환하게 미소짓는다.


무달 식사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입시생 3 밖에서 드시고 오시고 1 시까지 학원으로 오시면 되세요. 아님 같이 드실래요?

입시생 1 버거먹는날인데—-

입시생 3 같이 주문해도 되지 않아?


무달, 입시생 1 이 3 에게 눈치주는걸 발견한다.


무달 (애써 환하게 웃으며) 식사들 맛있게 하세요!


무달, 작업실을 나선다. 입시생 3, 무달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입시생 1 (약간 히스테릭하게) 너 좀 가식적이다?

입시생 3 (입시생 1 에게 시선을 옮기며) …?

입시생 1 왜이렇게 챙기는 척 해?

입시생 3 뭐가?

입시생 1 넌 니가 천사병이라도 걸린줄 아나봐?

입시생 3 우리 이러지 말자.

입시생 1 봐봐. 툭하면 니가 착해져서 나만 썅년되잖아. 심지어 내 그림도…

입시생 3 난 니가 무슨말 하는지 모르겠어.

입시생 1 (혼잣말로) 하... 죽여버리고싶다...


입시생 3, 혼잣말을 들어서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신경끄고 이젤 앞으로 가서 연필을 잡는다. 입시생 1과 2,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입시생 1 언니, 난 저년이 존나 띠꺼워.

입시생 2 나도 그래.


S#13. 김밥천지 식당 (목요일 정오/실기 D-2)


무달,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김치수제비와 김밥 한 줄을 시켜놓고 정신없이 속을 따뜻하게 채우고 있다.


(E.) 문에 달려있는 종소리


원장이 김밥을 사러 들어온다. 무달, 문쪽을 힐끔 쳐다보다가 고개를 휙 돌린다. 무달과 원장의 두 눈이 찰나에 마주친다. 원장, 곧바로 외면한다. 무달, 자신의 뒤에서 주문을 하고있는 원장의 존재를 느끼지만 불편함을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원장 이모, 김밥 한 줄 주세요.


무달, 일부러 이어폰 음악의 소리를 크게 한다.


(E.) 이어폰 음악소리


무달 속마음 (카메라를 향해 원장을 은밀히 가리키며) 저기 저 사람 보이죠? 내가 여기서 하루만 일하지만 서로 이렇게 모른척하는 상황이 참 뻘쭘하네요. 심지어 동네 강아지도 제가 지나가면 꼬리 한번 살랑거려 주던데…


무달, 일부러 수제비 그릇에 얼굴을 박고 먹는다. 원장, 김밥을 포장해 나간다.


(E.) 문에 달려있는 종소리


S#14. 학원 작업실 (목요일 정오/실기 D-2)


입시생들의 식사가 시작되고있다. 입시생 1 과 3 사이에 냉전기류가 흐른다. 입시생 3 은 자기 자리에서 혼자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을 하며 버거를 먹고있다. 입시생 1, 입시생 3 을 가만히 지켜본다.


입시생 1 (입시생 2 에게) 언니,

입시생 2 (버거를 쩝쩝 먹으며) 어.

입시생 1 나 진짜 빡이 존나게 치는데.

입시생 2 원래 그런거야.

입시생 1 언니는 불공평하다고 생각 안 들어?

입시생 2 뭐가?

입시생 1 항상 저년이 칭찬 받는거…

입시생 2 ‘그런가보다.’ 하는거지.

입시생 1 삼수하느라 이제 무뎌진거야?

입시생 2 (눈빛이 살벌해지며) 입조심해라…

입시생 1 나 너무 억울해.

입시생 2 실력은 속일 수 없어.

입시생 1 나 붙을 수는 있을까…?

입시생 2 붙겠지 당연히…

입시생 1 언니… 나 너무 힘들어, 화나, 억울해. 쟤랑 나랑 같은 시간에 똑같이, 똑같은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데… 쟤 그림을 봐!


입시생 3, 한손엔 버거를, 한손엔 연필을 쥐고 묵묵히 자기 그림을 다듬고있다.


입시생 2 (버거와 콜라를 꾸역꾸역 삼키며) 그러게.

입시생 1 언니는 견제 안돼? 어차피 다같이 승인대 실기장 가야하잖아.

입시생 2 … 이제와서 소용없을걸.

입시생 1 하늘이 두쪽나지 않는이상 우리 셋은 모두 실기장으로 가겠지…


무달, 작업실로 돌아온다. 입시생 3, 무달을 본다.


무달 (감탄하며) 쉬는 시간에도 그림 그리고 계시네요? 진짜 열심이다.

입시생 3 (이어폰을 빼며) 내일 모래면 시험이잖아요.

무달 그래도 쉴 땐 좀 쉬어요.

입시생 3 모델님은 밥 맛있게 드셨어요?

무달 네. 근데 밖에 누가 있던데…

입시생 1 (무달의 말을 엿듣고서) 왔나보다!

입시생 2 …!


(E.) 복도에서 들리는 여자와 원장의 웃음소리


원장 얘들아, 니들 선배왔다.


입시생 1, 2, 3, 여자에게 주목한다. 높은 하이힐, 고가 브랜드의 가방과 코트, 붉은색 입술의 모습을 한 여자의 모습.


세련 안녕하세요 여러분. 러브인오브제 11 기 민세련입니다.

입시생 1 선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승인대 수석입학! 진짜 쩌세요-

세련 하.

입시생 2

원장 지금 어디 다닌다고 했지?

세련 (원어민 발음과 흡사하게) New York University 에서 Fine Arts 전공하고있어요.

입시생 1 우와… (어설프게 세련을 따라서 혀를 굴려보며) 빠인 아츠가 뭐에요?

세련 ‘순수 회화’라고 하지요.

원장 (혼잣말로) 으이그 무식아…

입시생 1 근데 왜 승인대 그만두셨어요?

세련 (흘리는 웃음을 지으며) 학생이 초면에 궁금한게 많은가봐요.


세련, 입시생 2 의 수척한 모습을 본다.


세련 (입시생 2 를 모른척 하며) 원장님이 얼마나 여러분 생각을 많이 하셨는지 몰라요.

원장 자자, 간만에 왔는데 애들 그림좀 봐줄래? (무달에게) 모델분, 의자에 좀 앉아주세요.


무달, 의자에 앉는다.


세련 아유, 제가 무슨 그림을 봐줘요. 한국에서 입시한지 너-무 오래되서 가물가물한데요.

원장 손 좀 보면서 합격비법도 전수좀 해줘. 아무래도 직접 다녀본 선배한테 티칭한번 받아봐야지.

세련 그럼 조금만…


세련, 입시생 1 의 그림으로 간다. 그녀는 그림을 곰곰히 살펴본다.


세련 지금 학생 그림은… 선이 너무 거친 경향이 있어요. (연필을 잡으며) 여기 모델분 광대뼈가 나오는 부분에는 지금처럼 터치가 들어가면 안돼요. 승인대는 면과 면이 맞닿는 부분에서 터치가 섬세하게 이어지지 않으면 점수를 많이 깎거든요?

입시생 1 오…

세련 모델님 턱좀 들어볼래요? 광대가 빛을 잘 받게.


무달, 턱을 든다.


세련 (왠지 싸가지없이) 그렇게 높게 말고. 좀 낮춰요.


무달, 턱을 낮춘다.


세련 (입시생 1 에게) 봐봐. 여기 밝은명함 부분이랑 어두운 부분이랑 자연스럽게 구의 형태로 떨어져야 하는데 지금 학생 그림은…

입시생 1 별로인가요? 세련 아니, 그건 아니고… 학생은 선을 좀 곱게 써봐요.


세련, 입시생 2 의 그림으로 간다. 순간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빠르게 입을 거두고 입시생 3 의 그림으로 간다.


세련 좋은데요? 특히 선이 정말 곱고 머리카락, 눈썹 등 모발의 질감이 다르게 잘 표현되었어. 입시준비 얼마나 했어요?

입시생 3 1 년이요.

세련 지금 이 스탠스로 계속 밀고가세요.

입시생 3 감사합니다.

세련 굳이 지적하나 해주자면… 승인대는 맑은 눈동자를 좋아하니까, 안구가 빛을 어떻게 받는지 남은 시간동안 좀 더 공부해보고 그걸 고쳐봐요.

입시생 3 그러겠습니다.

세련 (재빠르게 무달에게) 잠시만요. (무달의 눈밑을 손가락으로 당기며) 눈은 항상 디테일하게…

무달 (놀라서) 저기요…

세련 어머- 미안해요.

무달 (한숨)

세련 오늘 모델 처음이신가봐요. 티칭하다보면 원래 이래요.

무달 그런건가요…

세련 기분 나쁘셨으면 사과할게요.

무달 (침묵)

입시생 3 아…


세련, 남아있는 입시생 2 의 그림을 본다. 그리고선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녀에게 다가간다.


세련 그림을 보면 사람의 마음상태를 알 수 있다고들 하지. 전형적으로 입시 스트레스에 지친 마음이 그림에도 그대로 반영된 느낌이에요.

입시생 2 … 그래? … 그래요?

세련 네. 모델님을 보세요. 우리의 입시는 있는 그대로 보셔야하는 구상작업이란걸 잊었나요? 모델님의 형상보다는 왠지 본인의 지친 모습이 드러나…

입시생 2 (불쑥) 니가 뭔데 그딴 개소리를 지껄여?


작업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놀란다.


원장 뭐하는거니?

세련 …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아유- 원장님, 그럴 수 있죠. 기쁨이잖아요.

원장 안기쁨, 말조심해. 아무리 그래도 네 선배다.


(Insert.) 미술학원 화장실 낙서: 안 X 쁨 ♥ 민 X 련 ← 불짱해 ㅠㅠ


입시생 2, 갑자기 참을 수 없이 괴로워한다. 그러다 돌변하여 세련의 얼굴에 침을 퉤뱉는다.


세련


입시생 1, 3 그리고 원장, 벙찐다. 입시생 3, 황급히 휴지를 챙겨 세련에게 가져다준다.


입시생 2 실력도 없고 뭣도 없는 년이 아빠 빽이나 믿고 대학들어가선… 니 실력이 점점 까져버린 양파껍데기처럼 처참히 들통나서 미국으로 도피유학간거 아닌가?

세련 그런 뭣도 없는 년을 넌 왜 그렇게 쫓아다니셨을까?

무달, 입시생 1, 3 ?!

입시생 2 (세련을 한대 칠 기세로) 야이 씨발ㄴ…

입시생 3 (입시생 2 를 잡아서 말리며) 언니 그만해!


무달, 의자를 박차고 일어선다.


무달 아무래도 일 못하겠어요…

원장 이보세요, 진정하세요 모델분.


무달, 급하게 작업실을 나선다. 원장, 무달을 따라 나선다.


S#15. 학원 복도 (목요일 정오/실기 D-2)


원장 모델님, 오늘 수업 부디 끝까지 책임져주시길 바랍니다.

무달 이렇게 험한 싸움이 오고가는데 제가 여기서 일해야 될지 잘 모르겠네요. 아침에 저한테 실핀 사오라고 하신것도 솔직히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원장 지금 무책임하게 펑크내시면 아이들 오후 수업 진행이 안됩니다.

무달 이건 책임이랑 좀 상관 없지 않나요? 뭔가 나쁜 일에 휘말릴거 같아서요. (짐을 챙기며) 저 가보겠습니다.


무달, 문을 나서려고 한다.


원장 십오만원 드리겠습니다!


무달, 멈칫한다.


무달 뭐라고요?

원장 모델님, 우린 아이들과 다릅니다. 우린 성인입니다. 상식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범주 안에서 우리 행동합시다.

무달 진짜 15 만원 주실건가요?

원장 네. 오늘 수업 끝까지 해주시고, 입만 다물어주신다면…

무달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원장 당장 토요일이 입시라그런지 이렇게 털끝 하나 건드려도 폭발하는 시즌이니… 학원 바깥으로 이상한 소문이라도 돌면… 우선 자리로 가서 앉읍시다…


S#16. 학원 작업실 (목요일 정오/실기 D-2)


무달과 원장, 다시 작업실로 돌아온다. 갈기갈기 찢겨져있는 입시생 2 의 그림. 무달, 잠깐 서서 당황하지만 자리로 돌아가며 그림조각을 무의식적으로 밟는다.


원장 (찢어진 그림을 보며) 이..이게 무슨일이니… (격하게 분노하며) 누가 이랬어?

세련 지가 지 분에 못이긴거죠.


입시생 2, 온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흠뻑 젖어있다.


원장 너, 따라와. 복도에 좀 앉아있어.

입시생 2 (악에 바쳐 식식거리며) 다 죽여버릴거야.

원장 안기쁨!

입시생 2 오늘 밤, 다 불질러버릴거야.

원장 정말 미쳤니?

입시생 2 원장님은 제 맘 몰라요. 내가 왜 이렇게 승인대를 가고싶어했는지, 내가 왜 이런 쓰레기 같은데서 버티고있었는지 절대 몰라요!

원장 뭐? 쓰레기? 이렇게 항상 막판에 정신 나가버릴래?

입시생 2 난 조예민 저년도 존나 싫고, 강현혜 저년도 존나 싫어. 한 년은 맨날 내옆에서 찡찡대고, 한 년은 가만히 냅둬도 잘하고… 난 그 가운데서 항상… 썩어있는 고인물이잖아.

원장 누가 그런 소리를 하디?

입시생 2 그런 소리? 아무도 나한테 하지 않았죠. 하지만 나를 보는 당신들 눈빛을 봐.


입시생 2, 사람들을 향해 정신이 나간 듯 큰 소리로 웃는다.


원장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거 모르니?

입시생 2 (피식 비웃으며) 지랄하네. (세련에게) 세련아… 넌 나를 미워했지만 난 널 미워하지 않아. 아직도 난 여기에 있잖아.

세련 … / 원장 그게 무슨 소리니?


입시생 2, 벌떡 일어나 작업실 밖으로 뛰쳐나간다. 남아있는 사람들, 입시생 2 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S#17. 원장실 (목요일 정오/실기 D-2)


원장 미안하구나… 아무래도 널 부르는게 아니었는데…

세련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도 이렇게 원장님도 뵙고, 아이들한테 조언도 해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기쁨이 일은 너무 걱정마세요.

원장 그 아이는 항상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져있긴 했지…

세련 솔직히, 원장님이 그 아이를 잡아두고 있던 이유는 딱 하나 아니었나요?

원장 (뜨끔하며) 그렇지. 대학 보내야하니까. 세련 아니요… 그거 말고요…


세련, 붉은 입술에 차가운 웃음을 드리운다.


원장 … 걔는 언제나 내 힘으로 컨트롤 할 수 없었어.

세련 만약 가능하셨다면 진작 붙었겠죠.

원장 … 고맙다, 세련아. 고마워, 붙어줘서.

세련 전 붙어준게 아니라… 붙을 수 밖에 없던 거였어요. 그래도 선생님이 중간에서 잘 쉴드 해주셔서 그런거죠. … 오늘 일에 대해 냉정하게 말씀드릴까요?

원장 그래. 어땠니?

세련 기쁨이 참 불쌍하죠. 저는 올해 기쁨이가 꼭 합격했으면 좋겠지만… 그 아이가 승인대에 붙으면 선생님께 유리할 구석이 하나도 없어요. 기쁨이는 실력이 없어요. 올해도 떨어지고 다른 학원을 가게 하던가 해야 되겠어요. (냉소적으로 비꼬며) 그리고 그 아이는 지금 그림을 그릴 때가 아니라 병원에 입원해야 할 때 아닌가요? 오늘 보니 꼭 산짐승이더라구요. 선생님은 어떻게 저런 애랑 몇 년을 같이 수업 하셨는지…

원장 그건 맞는 말이다.

세련 그나마 승인대에서 받아들이고 키워줄만한 아이는…


세련, 원장의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인다. 원장, 수긍한다는 듯 표정을 굳힌다.


(E.) 세련의 전화 소리


세련 (부산 사투리로) 아빠야? (사이) 내 지금 학원이다. 어어. 선생님 만나가 얘기좀 나누고 있었다. 바까줘?


세련, 원장에게 전화를 바꿔준다.


원장 아이고- 교수님- 잘 지내셨습니까? (사이) 아닙니다. 당연히 챙겨줘야지요. 따님 말씀으로는 오늘 만났던 학생들중에 가능성 있는 애들이 좀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따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아! 따님한테 위스키도 잘 받았구요… (사이) 답례는 실기 당일날 일찍이 찾아뵈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몸 건강하십시오. (사이) 네- 네네들어가십시오.


통화가 종료된다.


세련 정작 이렇게 까지 해도, 까딱이나 교수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락은 장담 할 수 없어요.


원장, 서류 하나를 세련에게 내민다.


원장 (포커페이스로 돌아와서) 받으렴.

세련 (서류를 받아 그 안을 살펴보며)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E.) 또각또각, 세련의 구두소리 세련, 원장실을 나가려다 뒤를 살짝 돌아 원장을 쳐다본다.


세련 설사 원하는 결과 못 얻으시더라도 제 탓은 말아주세요.

원장 내가 왜 제자 탓을 하겠니?

세련 (피식 웃으며) 돈으로 할 수 있는게 있고, 할 수 없는게 있으니까요.


세련, 원장실 밖을 나간다. 원장, 비로소 자신의 의자에 몸을 편히 뉘인다.


원장 (냉소에 가득차서) 쯧쯧… 니까짓게 아무리 교수 딸이어도… 이 바닥을 아직도 잘 모르는군. 돈을 쓰는 이유는 할 수 없는걸 할 수 있게 만들려는거지.


S#18. 학원 베란다 (목요일 오후/실기 D-2)


입시생 2, 의자 위에 앉아 라이터를 껐다 켰다 한다. 바람때문에 작동되지 않는 라이터.


입시생 2 쳇…


(C.U) 입시생 2 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는 누군가의 손


입시생 2, 누군지 쳐다본다. 입시생 1 이다.


입시생 2 (침묵)

입시생 1 우린 붙어도 같이붙고, 떨어져도 같이 떨어져야지.

입시생 2 (웃는건지 비웃는건지 애매한 웃음을 띄며) 합격에는 아군이 없어.

입시생 1 그래도 그년이 붙는 것 보단…

입시생 2 드디어 내 소원이 풀렸어.

입시생 1 그래… 잘됐네. 그 소원이 뭔진 모르겠지만…

입시생 2 난 그 친구를 처음 보자마자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어. 부러웠어. 처음엔 막연히 부럽기만 하다가, 그 친구가 가진게 부러워지고, 삶이 부러워지고… 결국 그 친구를 소유하고 싶어졌어. 사실은 좋아하는건지 마냥 부러워서 내 곁에 두고싶었던건지 헷갈렸지. 그래도 용기 냈어.

입시생 1

입시생 2 내 손이 종이 위에서 뜻대로 움직여주지는 못해도… 그 친구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이따위 오른손쯤 날아가도 대학에 갈 수 있을거라 믿었거든. 확실히 깨달은건… 입시는 재능만으로는 힘들다는거였어.

입시생 1 재능… (연기가 되어 날아가는 자신의 숨을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애의 작품을 보면…

입시생 2 우린 여기 매일와서 숨쉬고 그림만 그려대지만… 이건 마치 보이지 않는 백조의 물장구랄까… 내가 삼수하면서 느낀게 뭔지 알아?

입시생 1 뭔데?

입시생 2 공공의 적. 너의 적은 나의 적인거지. 그런 적은… 함께 처단해야 내가 살 수 있어.

입시생 1 근데 도통 처단할 방법이 없잖아…

입시생 2 둘 중 하나지. 죽이던가 아니면 시험장을 못가게 하던가.

입시생 1 (생각) 언니… 그 사람 진짜 아빠 빽으로 들어간거 맞아?

입시생 2 아마도. 99.9%의 확률로…

입시생 1 혹시… 그사람 전화번호 알아?

입시생 2 (약간 경계하며) 왜?

입시생 1 알면 좀 알려줘. 우리가 그년을 죽일 순 없잖아. 시험장 못 가게 할 방법을 찾아야지.


S#19. 학원 작업실 (목요일 밤/실기 D-2)


작업실에는 입시생 1, 2, 3의 이젤과 그림이 일렬로 놓여있고 그 옆에 무달이 앉아있다. 입시생 2의 이젤에는 그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미완의 그림이 붙어있다. 원장은 그림과 무달을 비교하며 얼굴에 대한 설명을 하고있으며 입시생들은 바닥에 앉아 피곤한 듯 반쯤 졸며 듣고있다.


원장 이렇게 얼굴을 보면, 모델의 얼굴은 의외로 입체감이 떨어지는 얼굴이라는걸 알 수 있다. 승인대에서 선호하는 얼굴은 아니지만 한번씩 뒷통수치기로 나올 수 있는 얼굴이지. 근데 예민이의 그림을 보면 흠… 모델의 얼굴에 비해 코가 솟아오른 산봉우리마냥 크게 그려진걸 볼 수 있어. 무슨 돌하루방이니? 측면에서 볼 때 모델은 작은 코를 가지고있어. 콧볼도 좁고. 섬세하게, 무조건 섬세하게 관찰해라.

무달 속마음 (카메라를 향해) 이거 수업인지 얼평인지…

원장 (입시생 1 에게) 지꺼 설명해주는데 졸고 자빠져있니? (입시생 1 과 2 가 졸고있는걸 본 뒤 작대기로 바닥을 내리치며) 니들 참 효녀다. 부모님한테 효녀가 아니라 나한테 효녀야. 니들 부모님이 등골빠지게 번 돈들 다 나한테 가져다바치는데… 이렇게 중요할 때 꿈나라로 가버리다니. 고맙다 고마워!

무달 속마음 (카메라를 향해) 괜히 찔리네… 아… 조금만 더 버티면 퇴근이에요. 하루종일 앉아만 있었더니 어깨도 결리고 속도 더부룩하고… 하지만 내일이면 15 만원이 바로 입금될거에요. 버텨야죠, 악착같이.


(E.) 입시생 1 의 핸드폰 진동


입시생 1, 정신이 바짝 든다. 핸드폰 화면을 은밀히 확인한다.

(C.U.) 민세련선배님


입시생 1 원장님, 저 화장실좀 갔다올게요.

원장 졸다가 싸다가. 그냥 집으로 가버려! (쯧쯧쯧쯧쯧쯧)


입시생 1, 작업실 밖으로 나간다. 입시생 2, 입시생 1 의 행동에 뭔가 수상함이 있음을 눈치챈다. 그녀는 입시생 1 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원장 얘들아, 저런 태도로 실기장까지 가면 100% 떨어진다. 주변 사람들 작업 태도도 하나하나 놓치지 말고 자기한테 교훈 삼아야 된다. 어디까지 설명했더라…

입시생 3 질문 있습니다.

원장 해봐.

입시생 3 실기장에 가면 최대한 모델이 가진 리얼리티를 살려야할까요 아니면 제 그림이 아름답게 보이는거에 집중을 해야할까요?

원장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구나. 우리는 입시를 하는 사람이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입시에서 요구하는 기준과 아름답게 보여야하는 기준 이 두가지를 모두 충족 시켜줘야하지. 그렇지만 실기장에서 요구하는 바에 부합하려면 사실적인 묘사를 기본으로 가져가야겠다.

입시생 3 그럼 미술이랑 입시미술이랑은 뭐가 다른가요…?


원장, 순간 화가나서 입술을 살그머니 깨문다.


입시생 3 미술이 진짜라면 입시미술은 미술이 아닌 가짜인가요?

입시생 2 (피식) 원장 그렇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입시생 3 원장님, 무엇이 미술인가요? 저 정말 모르겠어요. 그림은 우리의 마음을 종이 위에 그려서 전달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게 아닌가요? 마음을 표현하는게 중요한건데 왜 대학에서는 굳어져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이는대로 그리라고 하나요?

원장 (차분하게) 현혜야, 너의 질문들은 한때 다 입시하는 학생들이 거쳐가는 질문이다. 지금 당장 해결 못할 고민에 빠지지 말고, 승인대에 가고싶다면 승인대에 걸맞는 스타일로 빠삭하게 익히는게 중요하다. 입시를 하면서 자기의 내면을 온전히 표현하기란 정말 힘들어. 그런 아티스트적인 고민은 대학에 가서 해도 늦지 않다. 입시는 그런 고민을 할만한 자격이 있냐 없냐를 판가름 해주는거고.

입시생 3 입시라는 명목으로 고민할 기회마저 박탈 해버리는 거겠죠.

원장 너… 니가 지금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니? 니 신분이 뭐지?

입시생 2 (낄낄)

입시생 3

원장 니 신분이 뭐라고?

입시생 3 입시생이요…

원장 까불지마. 니는 입시생이다.

무달 속마음 (카메라를 향해) 난 모델 지망생이구요.

원장 너무 깊게 생각하면 위험하다. 딱 이틀만 버티렴. 그 다음에 넌 자유야.

무달 속마음 (카메라를 향해) 딱 50 만원만 모으면, 난 자유일까요?

입시생 3 이틀 뒤에 나는 자유겠죠… 이틀 뒤에.

원장 (입시생 2 에게) 넌 뭘 그렇게 쪼개고있어?

입시생 2 (웃음을 멈춘다)


(E.) 삐빅!


원장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입시생 1, 때맞춰 작업실로 들어온다. 입시생 2, 뒷정리를 시작한다.


무달 수고하셨습니다. (혼잣말로) 아이고… 속이야… 뱃속이 갑갑하네…


무달, 원장을 뒤따라 작업실 밖으로 나간다.


S#20. 학원 화장실 (목요일 밤/실기 D-2)


무달,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일을 보고있다.


무달 속마음 (휴지를 꼭 쥐고 끙끙대다 카메라를 향해) 아오… 하루종일 앉아있어서 그런가… 이와중에 변비라니… 젠장… 아침마다 사과를 먹어도 소용이 없네… 근데 저를 왜 찍으세요?


입시생 1, 2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온다.


입시생 2 (조심스레) 아까 무슨얘기했어?

입시생 1 아…

입시생 2 민세련 맞지?

입시생 1 그게…


무달, 둘의 대화에 솔깃해져 볼일 보기를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입시생 1 물어봤어.

입시생 2 뭘!

입시생 1 오늘 밤 안으로 걔 수험번호를 알아오래.

입시생 2 어떻게?

입시생 1 몰라… 어쨋든 수험번호만 알아내면 포털에서 시험접수 처리과실로 조작할 수 있나봐.

무달 속마음 (카메라를 향해) 헉…!

입시생 2 근데 우리를 아무 대가 없이 도와주는거야?

입시생 1 그런가봐… 딱히 돈 달라거나… 요구하는건 없었어.

입시생 2 좀 이상하다…

입시생 1 언니, 우린 학생이야. 뜯어먹을게 뭐가있다고

입시생 2 … 근데 너 화장실 안가?


무달, 황급히 발을 허공에 올려 숨긴다.


입시생 1 안마려워. 얼른 나가자. 누구 들어오겠다.


입시생 1, 2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무달, 발을 바닥에 착- 하고 내린다.


무달 속마음 (긴 안도의 숨을 내쉬며) 큰일날뻔했어요. 근데 이것들이 큰 죄를 저지르려는 모양인데… 괜히 엄한데 나서지 않는게 좋겠죠? 나야 이제 집가서 돈만 받으면 되니까… 아, 일단 변비먼저 해결좀 하고요… 카메라좀 꺼줘요.


정지영상.


S#21. 무달의 자취방 (목요일 밤/실기 D-2)


무달, 꿈을 꾼다. 무채색으로 꾸깃한 하늘에서 한줄기 햇볕이 든다. 그 아래 하얗게 눈 덮인 평야가 펼쳐져있고 커다랗고 앙상하여 잎사귀 한점 없는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무달, 나무 뒤에서 나와 한바퀴 돌아 멈춘다. 무달이 멈춰있는 자리에 입시생 1, 2, 3 그리고 원장이 앉아있다. 무달, 목소리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나머지 사람들, 무달의 노래를 조용히 듣는다.


"가녀린 이곳에 하얀 눈 덮이면 난 노래하네

야위었던 세월 풍성한 꿈이 되어라

이것은 나의 모습 이것은 나의 꿈


사람들 나에게 검은 말 건네면 난 노래하네

하얀 빛의 거짓 슬픔아 행복 되어라

이것은 나의 모습 이것은 나의 꿈

이것은 나의 모습 이것은 나의 꿈


이것은 사랑받고 싶은 나의 모습

이것은 사랑받고 싶은 나의 꿈"


무달이 노래가 끝나면 사람들 조용히 박수를 친다. 무달, 소복히 쌓인 눈 위에 몸을 눕힌다. 새하얀 눈밭 위에 붉은 사과 하나가 떨어진다. 무달, 같은 자세로 이불을 덮고 곤히 자고있다.


S#23. 무달의 자취방 (금요일 아침/실기 D-1)


(E.) 알람 소리


무달, 일어나자마자 체중계에 올라간다.


무달 신나게 먹고 앉아있으니… 쪘구나.


(E.) 전화 소리


무달 어 엄마… 나 일했지. (사이) 하, 진짜 별 험한 꼴 다보겠더라… 요즘 애들 무서워. (사이) 에휴, 별일 아니야. 그래도 15 만원 벌었어. 오늘 중으로 입금 되겠지.


무달,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사과를 먹는다.


무달 (아삭아삭 사과를 씹으며) 내가 알아서 할거야. 그자식한테 돈 가져다 바치려고 일 했는 줄 알아? 아… 진짜… 제발 그만하자.


무달, 통화를 종료한다. 무달, 사과를 남김없이 갉아먹고선 초라한 뼈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무달, 벽에 붙어있는 자신의 사진을 본다.


무달 이 때로 돌아가는거야… 이 때로…


S#24. 부산 해운대 아파트 (금요일 아침/실기 D-1)


해운대 바다의 탁 트인 아침 광경이 보이는 세련의 집. 세련, 창가에 서서 모래사장을 바라본다. 집 곳곳에는 세련의 회화작품들이 걸려있다. 붉은 입술에 찡그리며, 분노하며, 울고있는 여인들의 얼굴이 작은 정사각형 캔버스들 속에 나열 되어있다. 하지만 작품에서 그녀의 서툰 실력이 엿보인다.


세련 나 봤다.


세련의 아버지, 하얀 소파 위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있다. 아버지의 얼굴은 신문에 교묘히 가려진 채 드러나지 않는다.


세련 아버지 누굴?

세련 그 가시나. 안기쁨.

세련 아버지 가 말은 꺼내지도 마라.

세련 아직도 거서 죽친다.

세련 아버지 그게 지 운명이다.

세련 그래. 나는 아버지 잘 만나서 팔자한번 편하다.

세련 아버지 근데 니 단다히 전했나? 이번 년도에는 한 명 밖에 못해준다카.

세련 그랄 필요 있나? 우리가 그냥 말해삐면 된다.

세련 아버지 글킨 하다. 니… 앞으론 이 일에 다신 엮이지 마라.

세련 이젠 일 없다. 여기 명단.


세련, 수험번호 명단을 건넨다.


세련 강현혜.

세련 아버지 … 이제는 니도 니 힘으로 살아라. 비리 막을라카 일부러 서울까지 가서 뭣도 없는 자슥이 하는 학원다니고, 몰래 뒤에서 과외받고… 미국유학준비까지… 내도 이제 일 없다.

세련 (애교섞인 말투로) 알겠다. (사이) 아버지…

세련 아버지 와?

세련 나 부탁 하나 또 있다.

세련 아버지 뭔데?


S#25. 무달의 자취방 (금요일 저녁/실기 D-1)


무달, 조깅복을 입고 헉헉거리며 방으로 들어온다. 바로 체중계로 올라가서 몸무게를 잰다.


무달 (실망스러운 듯, 그러나 예상했다는 듯) 에라이 씨발.


무달,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무달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아직도 입금이 안되?


무달, 핸드폰으로 자신의 통장을 확인한다. 최근입금내역이 없다. 그녀는 미술학원에 전화를 건다.


(E.) 통화음 소리: ‘사람과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합격이다.’ 안녕하세요? 러브人오브제 미술…


원장 여보세요?

무달 아, 원장님 안녕하세요. 어제 모델 했던 사람인데요,

원장 말씀하세요.

무달 (조심스레) 오늘 중으로 입금 되는거 맞나요…?

원장 아, 이거 어쩌나, 시즌이 시즌이다보니 오늘 당장은 힘들겠습니다.

무달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원장 오늘 말고 다음주 중으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무달 아니… 분명 어제는 오늘…

원장 (말을 뚝 자르며) 모델님, 학원의 사정은 그때그때 변동 될 수 있는겁니다. 모델님이 이 일을 안해보셔서 잘 모르시나봐요?

무달 (기가막혀) 지금 저랑 싸우자는겁니까?

원장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오시나요?

무달 (흥분하여 쏘아붙이며) 돈이 약속한 날짜에 입금이 안되고있으니 전화한건데, 그쪽이야말로 왜 공격적으로 나오시나요?

원장 진정 하시지요.

무달 애초에 줄 생각이 없는거였나요?

원장 저희 그런 파렴치한곳은 아닙니다.

무달 아 진짜, 당장 가서 받아 낼거야.


무달, 원장과의 통화를 종료한다. 땀 범벅이 된 채로 패딩 하나를 달랑 걸치며 밖으로 나선다.


S#26. 지하철 (금요일 저녁/실기 D-1)


무달, 지하철을 타고 승대입구로 가는 길이다. 스마트폰을 하는 중 검색창에 ‘알바 돈 받아내는 법’ 검색을 한다.


지식 OUT 답변 1: 노동부에 신고 하십시오. 근데 근로 계약서는 쓰셨나요?

지식 OUT 답변 2: 구두계약은 효력이 없긴 하지만, 당장 급한게 아니면 좀 기다려보세요.

지식 OUT 답변 3: 왠만한 악덕이 아니면 주긴 합니다. 왠만한 악덕이 많아서 그렇죠ㅋ


(E.) 지하철 알림음: 이번 역은 승대입구, 승대입구 역입니다.


무달, 미술학원 두상모델 알바 후기를 읽어본다.


무달 (기가막혀) 다음주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무달, 지하철에서 내린다.


S#27. 학원 작업실 (금요일 저녁/실기 D-1)


입시생 1, 2, 3 그리고 원장, 수업을 진행중이다. 가운데 의자에는 새로운 모델이 앉아있다. 무달, 작업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무달 (대뜸) 원장님, 입금 해주시죠?

원장 (사색이 되어) 아니, 여기까지 굳이 오셔야겠습니까?


작업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 당황한다.


무달 (새로운 두상모델에게) 여기서 일 왜 하세요? 여기는 그때그때 학원 사정에따라 입금을 안해주는 곳인데요?

두상모델 네?

무달 당일페이 아니라고요.

두상모델 (원장을 쳐다보며) 원장님?…

무달 보통 당일페이잖아요.

두상모델 나 당장 우리집 짱아 약사줘야하는데?

무달 반려동물이 아픈가요?

두상모델 네.

무달 저도 우리집에 개만도 못한… 아휴 됐어요. (원장을 보며) 모델료 주세요! 당장!

두상모델 이런데였으면 덕평에나 갈걸 젠장.


모델, 원장을 한번 쳐다보고 당황해서 어디론가 사라진다.


원장 (도망가는 모델을 바라보며) 저기요!


무달, 식식거리며 거친 숨을 내쉰다.


무달 (원장에게 큰소리로 외치며) 돈 주세요! 십오만원!

원장 좀 기다리시면 저절로 들어오는게 이치 아닙니까?

무달 당신 돈만 돈이고, 내 돈은 돈이 아닌가?


입시생 1, 2, 3, 얼음이 된다.


원장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습니까?

무달 (무의식적으로 말이 툭 튀어나오며) 뭐 작당하고 빼돌리셔야 할 돈이라도 있나보네?

입시생 1, 2, 3 …?!


입시생 1, 2, 자기들끼리 소곤대기 시작한다.


원장 (감정을 매우 억누르며) 과대망상이시군요.

무달 다 필요 없고, 돈 주세요! 지금 당장!

원장 이보세요! 남의 학원 와서! 내일 당장 아이들 시험인데! 지금 무슨 행패입니까?

무달 남이사. 난 내 일 했으니까 돈만 받으면 되는거 아니에요?

원장 제가 어제 말씀드렸죠? 우린 성인입니다. 상식과 합리 안에서 움직이셔야 합니다. 규칙을 정하면 정한대로, 자기 생각이 있어도 한발짝 누그러들고서요.

무달 그놈의 상식과 합리는 당신이 안지키는데요? 제가 무슨 종살이합니까? 사람을 물건취급 하는것도 어느 정도지! 이용만 쏙 해놓고, 지켜야 할 약속은 안지키고!

원장 (여유로운 미소를 띄며) 하이고 참나… 이보세요, 다음주에 붙여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무달 (가슴 깊은 곳부터 끓어오르며) 내 동생이 두들겨 팬 자식은 지금 우리 엄마 멱살을 잡고 있단 말입니다!

원장 사정이야 어찌 되셨든 지금 당장은 아이들 입시가 급합니다. 자꾸 이러시면 수업방해죄로 신고하겠습니다.

무달 수업방해죄? 허, 죄도 아주 가지가지구만? 당신은 사기죄야!

원장 마지막입니다. 신고하겠습니다.

무달 그럼 나는 노동청에 신고할거야!

원장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원장, 입시생 셋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모여져 있는걸 의식한다.


원장 (입시생들에게) 뭐해, 그림 안그리고!

입시생 1 모델이 도망갔는데요…

원장 대충 마무리 하고 있어!

입시생 1 네…


무달과 원장, 끊임없이 말도 안되는 무의미한 실랑이를 벌이고있다. 입시생 1,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만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깨닫는다.


입시생 1 저 물좀…


입시생 1, 옆에 앉아있는 입시생 2 를 한번 툭툭 치고선 고갯짓으로 따라 나오라는 신호를 준다. 입시생 1, 작업실 밖으로 나간다. 입시생 2, 조심스레 그 뒤를 따른다. 입시생 3,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하지만 곧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작업에 몰두한다.


S#28. 학원 원장실 앞/복도 (금요일 저녁/실기 D-1)


입시생 1 과 2, 원장실 문에 걸려있는 비밀번호를 풀려고 한다. 입시생 1, 도어락 키를 누른다.


(E.) 도어락 소리: 띡띡띡띡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입시생 1 언니… 기억안나?

입시생 2 아… 모르겠는데. (생각) 5959 해봐.


입시생 1, 5959 를 누른다. 문은 열리지 않는다.


입시생 1 (망연자실하며 신경질적으로) 왜 하필 5959 야?

입시생 2 러브러브랑 비슷하다고 했는데…

입시생 1 러브러브?

입시생 2 나도 몰라. 아무튼 옛날에 5959 였…


작업실 문이 열린다.


(E.) 원장 목소리: 따라 오십시오!


입시생 1, 2, 정수기 앞으로 슬그머니 가서 물을 마시는 척 한다. 원장, 무달을 끌고 원장실 문 앞으로 간다. 원장, 비밀번호를 누른다.


(E.) 도어락 소리: 띡띡띡…


입시생 1, 원장의 등 너머로 겨우겨우 도어락을 보면서 손짓으로 원장이 누른 번호의 위치를 파악해본다.


무달 잠시만요,


무달, 원장의 손을 탁- 가로막는다. 그 바람에 입시생 1 은 마지막 숫자를 보지 못한다.


입시생 1 (안타까움에 탄식하며) 아 미친년…

입시생 2 쉿…


입시생 1, 2 물을 마시는 척 하면서 도어락을 주시한다.


무달 이렇게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됩니까? 그냥 지금 당장 돈 쏴주세요!

원장 많이 흥분하셨으니 우선 진정하세요.


원장, 도어락을 누른다.

(E.) 도어락 소리: 띡띡띡띡


입시생 1 과 2, 비밀번호를 파악하고 서로 눈이 번쩍 마주친다. 원장실의 문이 열린다. 원장, 무달을 거의 떠밀듯이 그 안으로 집어넣는다.


S#29. 학원 원장실 (금요일 저녁/실기 D-1)


원장, 문을 닫고 들어온다. 그는 자기 책상 아래에서 위스키를 꺼낸다.


원장 모델님께서 힘든 상황에 많이 지치셨습니다. 오죽하면 요즘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두상모델을 전전하겠습니까? 위스키 한잔 드시면서 기분 좀 푸세요.

무달 아니… 저기…

원장 실기만 끝나면 자연스레 입금해드리겠습니다. 기분 푸시고 한잔 하고 가세요.

무달 이런식으로 합리화하려 하지 마시죠?

원장 캘리포니아산 최고급 위스키입니다. 모델님 언제 이런거 드셔보시겠습니까…? 많이 드시면 취하니까 적당히 드십시오.

무달 기가막혀…

원장 굉장히 비싼거지만 귀한 분이신 만큼 내드리는겁니다.


S#30. 학원 복도 (금요일 저녁/실기 D-1)


입시생 1 (짜증이 솟구치며) 비밀번호를 알면 뭐하냐고! 저년이 들어가있는데!

입시생 2


원장, 금세 복도로 나온다. 그는 큰 짐을 하나 처리했다는 듯 한숨을 쉰다.


원장 (아이들을 발견하며) 내일이 실기인데 정신안차려? 빨리 들어와!

입시생 1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네!


입시생 1, 2, 원장을 뒤따라 작업실로 들어간다.


S#31. 원장실 (금요일 저녁/실기 D-1)


상담용 테이블 위에는 위스키와 언더락잔이 놓여있고 각종 다과와 음료수가 놓여있다. 무달, 호기심에 차서 위스키를 음미한다.


무달 (잔을 홀짝이며) 음- 좋네…


무달, 쿠키를 한입 물고나서 원장실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원장의 책상에 가까이 다가간다. 완벽하게 정리되어있는 깔끔한 책상 옆에 작은 책꽂이가 놓여있다. 책꽂이는 원장의 작품집, 입시관련 잡지, 학원 자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무달, 원장의 작품집을 살펴본다.


무달 그래도 괜히 애들 가르치는건 아니구만…


무달, 작품집을 제자리에 꽂아 놓은 뒤 미대입시 잡지에 실린 원장의 인터뷰를 읽는다.


"미대 입시생들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은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먼저 사랑하지 못하면, 우리가 마주 할 모든 오브제들에 대한 애정이 따라올 수 없습니다. 손보다 마음으로 그리는 법을 가르칩니다."


무달 (내용을 소리내서 읽으며) 오브제 속에 사랑이 담긴 작품, 그것이 곧 합격입니다.


무달, 잡지를 탁- 덮는다.


무달 지-랄-


무달, 잡지를 제자리에 꽂아놓는다. 그 옆에 있는 이름 없는 파일을 발견한다.


무달 이건 뭐지? 무달, 파일을 조심스레 연다. 학원비 장부들이 보인다. 무달, 아무 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기다가 무언가를 발견한다.


"승인대반 이름 주민등록번호 수험번호 기타

강현혜 000414-410575 2019182524 O

안기쁨 980707-218421 2019171552 X

조예민 001109-430141 2019354437 X"


무달 앗… 무달, 문득 어제 일을 상기한다.


(Insert.) 무달이 화장실 안에서 엿들은 대화

입시생 1: (입시생 2 에게) 오늘 밤 안으로 걔 수험번호를 알아오래.

입시생 1: 수험번호만 알아내면 포털에서 시험접수 처리과실로 조작할 수 있나봐.


무달,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한다.


무달 나 아무것도 못 보고 아무것도 못 들은 거야… (생각) 근데 ‘기타’는 뭐지?


‘기타’ 항목에 ‘강현혜’만 O 표시 되어있다.


무달 강현혜면… 그림 잘 그리던 학생!


무달, 입시생 3 이 그려준 자신의 얼굴이 얼핏 떠오른다.


무달 아이들은 그 아이를 증오하던데… 근데 왜 여기에만 O 가 되있을까?


무달,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위스키를 본다.


무달 에라이 미친놈. 뽕을 빼고 갈테다!


무달, 급하게 위스키를 따라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한다. 그리고선 상담용 의자에 푹 걸터앉는다.


무달 아… 이건 아닌거같은데…


(C.U.)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실기접수명단


S#32. 길바닥 (금요일 밤/실기 D-1)


달이 중천에 떠있다. 미술학원가의 불빛들은 달보다 더 밝게 빛난다.


S#33. 원장실 앞 (금요일 밤/실기 D-1)


입시생 1, 2, 화장실에 가겠다는 핑계를 대고 몰래 작업실을 빠져나와 문 앞에 서있다. 입시생 1, 은밀히 문에 귀를 가져다댄다.


입시생 1 언니, 손잡이 한번 살짝 돌려봐.


입시생 2, 손잡이에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돌려본다.


입시생 1 아직도 안갔나보네…

입시생 2 어떻게 할래?

입시생 1 수업 끝나면 원장때문에 못 들어가는데…

입시생 2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 소곤거리며) 어차피 저 사람은 우리가 뭐 하러 들어왔는지 몰라. 최대한 아무 일 없는 척 하고 들어가자.


입시생 1, 고개를 끄덕인다.


(E.) 도어락 소리: 띡띡띡띡

원장실의 문이 살며시 열린다.


입시생 1 과 2, 떨리는 마음으로 원장실을 살펴보는데 의자에 앉아 졸고있는 무달을 발견한다. 위스키는 절반이나 비어있다. 그들은 음흉한 미소를 주고받는다.


(E.) 무달이 코고는 소리: 드르렁- 푸우


입시생 1, 온 얼굴근육이 째지듯 웃지만 소리는 내지 않는다. 입시생 2, 태평하게 자고있는 무달이 황당하다는듯 쳐다본다. 입시생 1, 원장의 자리로 조심스레 다가간다. 입시생 2, 원장실의 문을 슬그머니 닫는다. 혹여나 무달이 깰까봐 문 하나 닫는 것도 전전긍긍한다.


입시생 1 (책상 위에 떡 하니 펼쳐져있는 수험번호를 발견하고) …!


(C.U.) 놀라서 동그래지는 입시생 1 의 두 눈


입시생 1, 입시생 2 에게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한다. 입시생 2, 핸드폰을 꺼내 수험번호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입시생 1이 가로막는다. 손으로 X 표를 만들어 찍지 말라고 한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자고있는 무달을 가리킨다. 입시생 2, 고개를 끄덕인다. 입시생 1, 파일에서 비의도적으로 접수명단 종이를 꺼낸다. 그리고선 종이의 일부를 찢어 입시생 3 의 수험번호를 연필로 후다닥 베낀다.


"강현혜 2019182624"


둘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슬그머니 원장실을 빠져나간다.


S#34. 학원 복도 (금요일 밤/실기 D-1)


입시생 1 과 2, 미친듯이 낄낄거리며 웃는다. 원장, 작업실 문을 열며 소리친다.


원장 니들 시험 끝나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보자. 빨리 기어들어와!


S#35. 학원 복도 (금요일 밤/실기 D-1)


수업이 끝난 뒤 귀가시간. 원장과 입시생들은 인사를 나눈다.


원장 그래. 잘들 하고 와라.


원장, 아이들을 보낸 뒤 원장실로 들어간다. 그는 경악한다. 절반이나 비어있는 위스키, 여기저기 널부러져있는 다과 껍데기, 술에 취에 코골며 자고있는 무달. 원장은 분노에 차올라 무달을 깨운다.


원장 (작대기를 힘껏 바닥에 내리치며) 이보세요!


무달, 번개 맞은 듯 놀라서 깬다.


무달 (술이 덜 깬 채로) 앗… 뎨송합니다…

원장 뭐하시는겁니까…?

무달 그만 잠이 들어서…


원장, 위스키가 절반 넘게 비어있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 탄식한다.


원장 아… 아이고… 내 위스키…

무달 (코가 하늘을 찌를만큼 솟은 기분으로) 체거급 위스키!

원장 내가 미쳐…


원장, 급하게 위스키를 다시 자기 자리에 가져다놓는다. 그 때 책상 위에 펼쳐있는 자신만의 극비 파일을 본다.


원장 (얼굴이 차갑게 사색이 되어) 왜 보셨습니까…?

무달 네…?


원장,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가 접수명단을 집어든다.


원장 (손에 든 명단을 팔랑팔랑 흔들며) 왜 보셨냐고 물었습니다.

무달 아… 그… 그냥 긍그매서…


원장, 명단이 찢어진 흔적을 발견한다.


원장 종이를 찢기까지 하셨네요?

무달 제가여?

원장 이것 보세요!


무달,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무달 (혀는 여전히 꼬인채로) 이건 제가 한게 아닌데여?

원장 (한심하다는 듯) 참나, 당신 말고 아무도 왔다간 사람이 없었는데 낯짝이 뻔뻔하군요.

무달 제가 안 해따니까?

원장 아까부터 수상했습니다… 다짜고짜 학원 찾아와서 아무 죄 없는 사람한테 뒷돈을 빼돌린다고 하질 않나, 저만 봐야하는 파일까지 뒤져보시고…

무달 일부러 그런건 아닙…

원장 더이상 들을 필요 없습니다. 나가세요.

무달 네?

원장 한국말 모르세요? 나가시라구요.

무달 (술기운이 확오르며) 그래도 돈은 주실거져?

원장 (순간 머리를 굴리고 걸려들었다는 듯) 잘 모르겠습니다. 학원 관계자가 아닌 이상 금기시되는 문서를 몰래 보셨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뤄야 하는게 일반 상식이지요.

무달 … 대까? 나 이해가 잘 안가는뒈?

원장 이 문서는 아무에게도 공개되어서는 안되는 문서입니다. (생각) 아이들 신상정보가 적혀있는 문서니까요.

무달 아니 그건 그거고 돈은 돈이져? (핑계댈 거리를 생각하다가) 그러니까 누가 보이는데다 노으래여?

원장 보실꺼면 은밀히 보시고 제자리에 집어넣기라도 하시지… 왜 하필 이렇게 펼쳐둬서 꼬리를 잡혔는지요?

무달 (술에 취해 정신이 없던 자신을 떠올리며) 하…

원장 그래도 제가 모델님 형편을 생각해서 수고비 5 만원은 입금해드리겠습니다.

무달 그런 법이 어디써?

원장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하는 법이지요. 남의 학원에 와서 중요한 문서를 뒤져보는 사람한테 어느 원장이 돈을 기꺼이 내줄까요?

무달 (바들바들 떨며) 당신… 당신… 글어케 살지마.

원장 (호탕하게 웃은 뒤 표정을 거두며) 난 바뀌지 않아요. 평생 이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베풀 줄 알죠.

무달 샤물을 샤랑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샤람부터 샤랑하라거? 이 모순 덩거리…

원장 하하, 그새 제 인터뷰까지 읽으신겁니까? 대단하시네요. 원래 그렇게 남의 물건에 손을 잘 대시나보죠?

무달 (욱하며) 당신은 날 물건취급해써!

원장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하십니까? 물건 취급한건 아니죠. 인격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맺은거 아닙니까? 난 당신을 하루 고용했고, 당신은 우리 학원에서 하루 일했고.

무달 당신… 당신이야말로 샤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멀라!

장 하루 일하시고 어떻게 그렇게 저에대해 판단하십니까?


무달, 말문이 막힌다.


원장 어찌되었든, 나이도 어리고 아직 세상 경험도 부족한거 같으니 내가 5 만원은 넣어 줄 겁니다. 빨리 나가세요.

무달 져 따-악 하나만 무를께여.

원장 (고개를 젓는다)

무달 그거또 댜음주에 쥬실껀가요?

원장 네.


무달, 원장에게 달려든다.


원장 (싸늘하고 낮은 속삭임으로) 일 더 커지기 전에 나가세요.


무달, 축 늘어진채로 학원을 빠져나간다. 비틀거리는 무달의 발걸음.


(C.U.) 승리자가 된 원장의 여유로운 얼굴


S#36. 입시생 1 의 집 (금요일 밤/실기 D-1)


입시생 1,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다.


(Insert.) 입시생 1 의 핸드폰화면 입시생 1 의 문자: 수험번호 2019182624 입니다. 제발 부탁드려요 세련선배님.


입시생 1, 입가에 고소한 웃음기가 돈다. 그녀는 머리맡 일기장에 한 줄 글을 적기 시작한다.


"2018. 12. 14 (금) 넌 성적도, 실력도, 사람들의 인정도 모두 받아왔지만 그 시간은 모두 부질 없었던거야. 너만 내 인생에서 사라지면 돼. 승인대는 반드시 내가 갈거니까."


(E.) 입시생 1 어머니 목소리: 예민아- 내일 시험이잖니- 얼른 자렴


입시생 1 (일기장을 신경질적으로 덮으며) 아 간섭하지마!


(E.) 입시생 1 아버지 목소리: 당신은 그게 문제야. 왜 애 일에 시시콜콜 나서고들어?

(E.) 입시생 1 어머니 목소리: 또, 또 껴든다! 내일 승인대 시험치는데 그 한마디도 못해요? 당신이 그렇게 편만 드니까 애 성격이 베린거잖아?

(E.) 입시생 1 아버지 목소리: 뭐라고? 당신, 지금 나랑 한판 해보자는거야?


입시생 1, 이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는다. 카키색의 이불보가 마치 동그랗고 커다란 무덤처럼 보인다.


입시생 1 (이불 속에서) 아악!


(F.O) 조용한 아파트 단지 속, 바깥에서 바라본 예민의 집


S#37. 입시생 3 의 집 (금요일 밤/실기 D-1)


서울 어느 변두리에 위치한 입시생 3 의 낡은 집 문이 열린다. 모두가 잠이 들어 어둑어둑한 실내에는 생기가 돌지 않는다.


입시생 3 다녀왔습니다.


정적


입시생 3 주무시나보네…


입시생 3, 안방 문을 열고 누워있는 어머니를 들여다본다. 입시생 3 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뒷모습. 입시생 3 어머니의 모습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다.

(C.U.) 어머니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입시생 3 의 얼굴


(E.) 입시생 3 어머니 목소리: 왔니…


입시생 3 응. 엄마, 나 내일 시험이야. 응원 한마디만 해줘.


(E.) 입시생 3 어머니 목소리: 우리 딸 힘내라…


(C.U.) 입시생 3 의 손을 잡아주는 어머니의 손


입시생 3 엄마가 그동안 나 뒷바라지해준거 대학가면 다 갚아줄게.


입시생 3,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아보고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E.) 입시생 3 어머니 목소리: 우리 딸 손이 언제 이렇게 거칠어졌을까…


입시생 3, 웃음으로 어머니의 걱정을 넘겨보려한다. 그리고나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감는다.


(E.C.U.) 입시생 3 의 볼 위에 흐르는 한줄기 눈물


S#38. 승인대학교 실기장 (아침/실기 D-DAY)


승인대학교 실기 고사장에 앞에 모인 입시생 1, 2 는 한 줄로 서서 대기중이다. 입시생 1 의 표정이 매우 좋지 않다.


입시생 2 무슨 일 있어?

입시생 1 아침부터 존나 말이 많잖아…

입시생 2 누가?

입시생 1 애미.

입시생 2 …?

입시생 1 붙지 않으면 가문의 수치라느니 뭐라느니…

입시생 2

입시생 1 어젯밤부터 시험이라고 어쩌고저쩌고 간섭질 오지구요…

입시생 2 걱정되서 그러는거 아니야?

입시생 1 낸들알아!

입시생 2 … 아무래도 조소과 나오셨으니까.

입시생 1 그럼 뭐해? 지 개인전 하나도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인데?

입시생 2 너 입시하니까 쉬시는거라며…

입시생 1 아 몰라몰라! 어젯밤부터 존나 심기건드려… 애미나애비나 씨발 도움이안돼.

입시생 2

입시생 1 이게 다 강현혜 그년때문이야. 실기장마저도 기분좋게 못가는게… 오늘은 니 폭망의 날이다.

입시생 2 (티 나지 않게 키득거리며) …


입시생 3, 등장한다. 줄 맨 끝에 서있다. 입시생 3 뒤로 입시생들이 줄지어 서기 시작한다. 입시생 3, 어머니에게 문자를 한다.

(Insert.) 입시생 3: 잘 하고 올게^^


바로 답장이 온다.

(Insert.) 엄마: 우리딸 화이팅^^♡♡♡


승인대 조교, 실기장 문을 열고 등장한다.


입시생 1 이제 들어가나봐! 떨린다…

입시생 2 (목 아래로 침이 꼴깍 넘어가며) …

승인대 조교 이제부터 가번호 추첨하겠습니다. 한분씩 오셔서 수험번호 대조하시고 가번호 받아가십시오.


입시생 1, 2, 3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린다. 드디어 입시생 1 의 차례가 된다. 입시생 1, 자신의 수험표를 조교에게 보여준다.


승인대 조교 (수험표와 자신이 들고있는 명단을 확인하며) 수험번호 대조가 맞지 않습니다.

입시생 1 네? 그럴리가요?

승인대 조교 전산상의 오류로 접수 과정에서 본인 과실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입시생 1 씨발. … 죄송해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승인대 조교 (이미 불쾌한 기분에) 모릅니다. 빠른 진행을 해야되서요. 다음 학생 오세요!


입시생 1, 일렬로 늘어진 줄에서 홀로 박탈된다.


입시생 2 (불안에 떤 채 자신의 수험번호를 보여주며) 여기요…

승인대 조교 (약간 이상하다는 듯) 수험번호 대조가 맞지 않습니다.

입시생 2 이봐요,

승인대 조교 (아까부터 기분이 계속 안좋은 채로) 말 조심하세요.


입시생 2, 갑자기 무릎을 꿇는다.


입시생 2 (고개를 빳이 든 채) 죄송합니다… 제발 시험 보고싶습니다…

승인대 조교 학원에서 단체 접수를 하다보면 종종 그런 오류가…

입시생 2 그게 무슨 엉터리 변명이에요?

승인대 조교 이건 제가 어떻게 해결을 못해드려요. 입시생 2 나 접수비까지 다 내고, 확인 메일까지 다 받았는데, 증명해줘요?

승인대 조교 시스템적인 문제는… 저는 그냥 확인만 하는지라… 죄송합니다. 다음 학생 오세요.


입시생 2, 무릎을 꿇은 채 다음 수험생이 조교에게로 간하게 . 입시생 1 과 2, 튕겨져 나간 그 자리에 한동안 멍있는다. 입시생 3, 입시생 1과 2가 시험장으로 못들어가는걸 본다. 다른 입시생들은 순리대로 가번호 추첨을 받고있다. 입시생 3 의 차례가 된다. 입시생 1, 2는 입시생 3에게 눈길을 둔다.


입시생 1 (중얼거리며) 제발… 제발…

입시생 2 (무릎을 털고 일어나며) 죽어도…같이 죽는거야…


입시생 3, 자신의 수험표를 조교에게 보여준다.


승인대 조교 가번호 17 번 입니다.


입시생 3, 실기장 안으로 들어간다.


입시생 1 (동시에) 이게… 뭐야…? / 입시생 2 어떻게 된거야…?


입시생들의 줄이 빠르게 줄어든다. 마지막 입시생이 실기장 안으로 들어간다. 조교, 가번호 추첨 마무리를 하고 들어가려고 한다. 그 때, 입시생 1, 조교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입시생 1 조교님, 제발 저 시험 치게해주세요. 제발요… 제가 오늘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손에 물집까지 잡혀가면서… 하루하루 그 지옥같은 입시생활을 견뎌왔는지 조교님이 더 잘 아실거아니에요… 제발요… 제발 부탁드려요.


입시생 1, 고개를 바닥에 떨구며펑펑 운다.


승인대 조교 학생… 미안해요… 마음은 아는데… 나는 힘이 없어요…


조교, 실기장의 문을 닫고 들어가버린다.


입시생 1, 소리내어 크게 운다. 입시생 2, 입시생 1 을 외면하고 사라진다. 다른 조교들이 입시생 1 에게 다가가 조용히 하라며 다른 곳으로 가도록 유도한다.


(Insert.) 민세련이 그린 우는 여자의 얼굴

(C.U.) 우는 여자의 얼굴 입꼬리가 올라가며 붉게 물들여진다.


S#39. 학원 베란다 (아침/승인대 합격발표날)


입시생 1, 2, 담배를 핀다. 흐린날, 툭 하고 건드리면 하늘에서 빗방울이 인정사정없이 쏟아질 날이다.


입시생 1 나 이해가 안가…

입시생 2 더이상 말 꺼내지 마…

입시생 1 오늘 승인대 발표날이잖아…

입시생 2 그렇지…

입시생 1 승인대 사이트 들어가봐.


입시생 2, 스마트폰으로 승인대에 접속한다. 입시생 1, 자신의 주머니에서 예전에 적어놓은 입시생 3 의 수험번호를 확인한다.


입시생 1 2019182624 쳐봐.

입시생 2 … 강현혜꺼 맞지?

입시생 1 빨리 쳐봐!


입시생 2, 수험번호를 친다.


입시생 2 존재하지 않는 수험번호라는데?

입시생 1 뭐라고?


입시생 2,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준다. "존재하지 않는 수험번호입니다. 수험번호를 다시 확인해주세요."


입시생 1 언니… 원장 아직 안왔지?


입시생 1, 2, 재빨리 원장실로 향한다.

(C.U.) 베란다 바닥에 흘려진 수험번호 쪽지


S#40. 학원 원장실 (아침/승인대 합격발표날)


입시생 1 어딨어… 어딨는거야…


입시생 1, 원장의 파일을 찾는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자리에 있지 않은 파일때문에 입시생 1 의 마음이 초조해진다. 입시생 2, 망을 보는데 원장이 올까 안절부절 못하고있다.


입시생 2 (목에 침을 꿀꺽 삼킨 뒤) 나 지금 배아파… 잠시 화장실좀 갔다올게…


입시생 2, 사라진다.


입시생 1 (서류 찾는데 혈안이 되어) 아 좀… 씨발… 빨리좀 나타나라고!


입시생 1, 원장실을 계속 뒤적인다. 원장실은 서류로 난장판이 되어있다. 입시생 1, 드디어 승인대 접수명단을 찾았다.


입시생 1 아! 찾았다!


(Insert.) 종이쪼가리 "강현혜 2019182524"

(E.C.U.) 종이쪼가리에 적힌 "5"


입시생 1, 황급히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뒤적인다. 입시생 3 의 접수번호가 적혀있는 쪽지가 사라진걸 발견한다. 입시생 1, 자신이 쓴 쪽지 내용을 상기한다.


(Insert.) 원장실에 펼쳐진 수험번호 명단 "강현혜 2019182624"


입시생 1 아…


(E.) 발자국 소리

(C.U.) 남성의 구두신은 발이 원장실로 향한다.

입시생 1, 발자국 소리를 듣고 원장실 안에서 허둥지둥한다.


입시생 1 (정신이 반쯤 나간채로) 아냐. 이건 잘못된거야… 내가 잘못적을리 없어…


(E.) 도어락 소리: 띡띡띡띡

(C.U.) 완전범죄를 실패한 예민의 처참한 얼굴


원장실의 문이 열린다.


원장 니가 어떻게 여기있니…?


S#41. 무달의 자취방 (아침/승인대 합격발표날)


(E.) 알람 소리


무달, 눈을 뜬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바로 체중계로 올라간다. 사과를 한 입 씹어먹는다. 스마트폰 통장에 찍혀있는 50,000 원을 본다.


무달 끝까지 입금을 안해주시겠다…


무달, 모자 하나를 눌러쓰고 바로 밖으로 향한다.


S#42. 학원 복도 (정오/승인대 합격발표날)


무달 원장님 계세요?


학원이 조용하다. 텅 빈 복도에 홀로 있는 무달.


무달 쳇- 단체로 망하기라도 했나?


S#43. 학원 원장실 (정오/승인대 합격발표날)


무달, 원장실 앞으로 다가간다. 쇠문고리가 문 틀 위에 걸쳐있어 원장실 공간이 살짝 노출된다. 이는 급하게 사람이 나간 흔적처럼 보여진다. 무달, 행여나 원장이 있을까봐 문을 조심스레 연다.


무달 맙소사…


난장판이 되어있는 원장실. 무달,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다.


S#44. 학원 작업실 (정오/승인대 합격발표날)


무달, 작업실로 들어간다. 작업실은 텅 비어있다.


S#45. 학원 베란다 (정오/승인대 합격발표날)


무달 (베란다 계단을 올라가며) 이런데도 있었나?


무달, 베란다 문을 연다. 아무도 없다.


무달 여기 있을리가 없지. (하늘을 보며) 오늘은 뭐가 오려나…


거무죽죽한 하늘 아래 무달, 발길을 돌린다. 그 때,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무달 …?!


무달, 꾸깃한 쪽지를 주워 그 위에 쓰여진 내용을 확인한다.


무달 강현혜… (수험번호임을 파악하며) ?!


(Insert.) 무달이 파일을 뒤졌다며 화내는 원장의 얼굴, 종이의 찢어진 부분, 자신이 찢지 않았음을 주장하는 무달의 얼굴


무달 오호라…


S#46. 학원 복도 (오후/승인대 합격발표날)


무달, 학원 복도에 앉아 원장을 기다리고있다. 딱딱하게 굳어져있는 무달의 얼굴. 이 때, 입시생 3 이 학원으로 들어온다.


입시생 3 (무달을 발견하며) 어… 안녕하세요?

무달 네…

입시생 3 여긴 어쩐일로 오셨어요?

무달 원장님을 뵐려구요…

입시생 3 아…

무달 (농도짙은 한숨을 쉬며) …

입시생 3 저기… 모델님…

무달 네…

입시생 3 (잠깐 망설이며) 저… 붙었어요.


입시생 3, 갑자기 눈물을 찔끔찔끔 터뜨린다. 무달, 굳어있던 얼굴이 풀리며 울고있는 입시생 3을 바라본다.


무달 (자리에서 일어나 토닥여주며) 축하해요… 고생 많았어요.

입시생 3 저 너무 힘들었어요…

무달 친구가 제일 열심히 했고, 제일 잘 했어요. 저는 비록 하루밖에 친구를 못봤지만… 그림에 대한 친구의 열정이 느껴졌어요.

입시생 3 (무달의 눈을 바라보며) 정말요?

무달 네…

입시생 3 모델님 여기로 와보세요.


입시생 3, 작업실로 들어간다.


S#47. 학원 작업실 (오후/승인대 합격발표날)


입시생 3, 그림보관함에서 자신의 그림을 꺼내 무달에게 건네준다.


입시생 3 모델님, 받으세요.

무달 이게 뭔가요?

입시생 3 저번에 모델님께서 제 작품 맘에 드신다며 사진 찍어가신다 했는데… 그날은 날이 날이 아닌지라…

무달 아…

입시생 3 은근히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무달 그런걸 일일이 다 기억해주다니, 감동인데요?

입시생 3 이렇게 다시 못 만났으면 영영 전해 드릴 수 없었겠죠…

무달 이렇게 귀한걸 덥썩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입시생 3 제 마음이에요. 오늘은 짐도 빼야되서, 마침 잘 오셨어요. 저희 학원은 발표와 동시에 짐싸서 가야하는 시스템이거든요.

무달 어지간히도 칼같네요.


입시생 3, 다시 그림을 건넨다. 무달, 그림을 받는다. 그림은 돌돌 말려 고무줄에 묶여있다. 무달, 작품을 슬그머니 펼쳐본 뒤 부드럽게 씨익 웃는다.


무달 제가 이렇게 아름답게 생겼는지 몰랐어요…

입시생 3 마음에 드세요?

무달 네…

입시생 3 그때 식사도 같이 하고싶었는데… 항상 모델분들 오실 때마다 혼자 외롭게 식사하러 나가시고… 누구도 말 한번 걸어주는 사람도 없고… 전 항상 그게 신경쓰였어요. 근데 저도 소심하고… 괜히 말 한번 잘못 걸었다가 애들한테 피해 갈까봐 가운데서 눈치만 보고 있었거든요.

무달 이해해요.

입시생 3 전 이제 더이상 그런 생활 안해도 되서 너무 행복해요… 앞으로는 있는 그대로 제 마음 표현하며 살고싶어요.

무달 중요하죠…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거…

입시생 3 그게 예술가가 평생 해야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무달 (무언가 결심한 듯) 저도 답례로 드릴게 있어요.

입시생 3 뭔데요?


무달, 베란다에서 주운 쪽지를 주머니에서 꺼내 건넨다. 입시생 3, 쪽지를 받는다. 무달과 입시생 3, 눈이 마주친다.


입시생 3 이게 뭔가요?

무달 언젠가 마음의 준비가 되면 읽어보세요. (자리를 뜨며) 그림 선물 감사해요…


입시생 3, 떠나는 무달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무달, 잠시 걸음을 멈춘다.


무달 솔직히, 제 선물이 학생한테 좋을지 안 좋을지는 모르겠어요.

입시생 3 분명히 좋을 거에요.

무달 앞으로 학생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표현하고 살길 바래요. 때로는 아픔도, 슬픔도, 분노도…

입시생 3

무달 전 언제나 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만 했었는데, 이젠 좀 달라지려구요. 무달 아티스트와 모델 사이에 필요한건 욕심보단 ‘교감’이란걸 느꼈거든요.

입시생 3 음…


무달, 학원을 떠난다. 입시생 3, 손에 쥔 쪽지를 주머니에 넣는다.


Epilogue. 무달의 방 (어느 아침)


(F.I.) 커튼이 활짝 펼쳐져있고 그 사이로 따스한 햇빛이 스며든다.


무달, 곤히 잠들어있다. 무달의 방 중앙 벽에는 그녀의 초상화 한 장만이 붙어있다.


(C.U.) 무달의 초상화 (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