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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인 Mar 18. 2023

자식을 위하여

인형극 <용감한 탄티>(2023)

관극일시: 2023-03-11 (목), 오전 11시


(C) 노원뉴스 나우온(2023)


극단 파랑새 <용감한 탄티>가 노원어린이극장을 찾았다. 본 공연은 방글라데시 민담을 바탕으로 하는 점에서 소재의 첫인상이 생소할 수 있으나, 이야기만큼은 부정(父情)이라는 인간 보편의 정서를 건드린다. 이러한 '아버지의 정'이라는 소재를 인형극으로 표현하여 어린이 관객에게 한 발짝 더 친밀하게 다가간다.


가장이란 좁은 자리, 세상이란 넓은 전쟁터


극 중 초반, 아빠 '탄티'는 아들 '칸'과 갈등을 빚는다. 칸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탄티에게 불평을 하기 때문이다. 탄티는 칸이 말을 타고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말의 알'을 구해 올 것을 약속한다. 이렇게 부자간의 갈등이 벌어지는 장면에서, 그들의 거리는 물리적으로 표현된다. 아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하기보다, 탄티는 동그란 방석을 깔고 무대 한편에 앉곤 한다. 노원어린이극장의 큰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달랑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방석 위 탄티는 아주 작아 보인다.


탄티의 방석은 그가 쉴 수 있는 유일한 자리처럼 보인다. 동시에 자신의 무능력함을 탓할 때 좁혀지는 가장의 자리는 자녀와의 거리감을 낳는다. 그러나, 탄티는 스스로를 계속 고립하지 않는다. 검은 옷을 입은 조력자 두 명이 나타나서 탄티의 감정을 헤아려주며 여정을 도와준다. 탄티는 칸을 위해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를 결심한다. 과연 탄티는 다시 칸의 곁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방석을 깔게 될까?


(C) 광주일보(2019)
난 탄티. 아빠거든. 용감한 아빠!


아이들은 부모의 온정을 바란다. 극장에 모인 아이들은 부모의 온정이 험난한 세상을 경유해 베풀어진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본 공연이 아들 칸을 위해 세상이란 넓은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온 용감한 탄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높은 산과 깊은 바다를 헤쳐나가며 '말의 알'을 찾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C) 아시테지 코리아(2019)


탄티가 나무 그늘에 앉아 잠이 드는 무렵, 말의 알을 노리는 여우가 등장한다. 여우는 극 중 안타고니스트(대항자)로 탄티의 여정을 방해한다. 탄티가 자는 동안, 어린이 관객들은 일제히 "여우가 나타났어요!", "일어나요!"라고 외치며 탄티의 모험을 조력한다. 과연 탄티는 무사히 말의 알을 칸의 품으로 건네줄 수 있을까? 이처럼 부모의 헌신에는 고단함과 용기가 따르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탄티의 인형탈은 어떠한 표정변화 없이 묵묵한 가장의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무엇이 방글라데시스러운 것일까?


(C) 구로문화재단(2020)

본 공연은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의 정서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만국 공통의 공감대를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무대, 의상, 소품과 같은 미장센을 논할 때 '무엇이 방글라데시스러운 것일까?'를 유추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방글라데시 민담의 한국적 수용을 위해 국가가 지닌 특유의 색채를 옅게 만들려는 시도였을까? 본 공연이 '방글라데시 민담'이라는 타이틀을 건 만큼, 방글라데시를 보여주기 위한 톤 조정에 있어 깊은 고민의 지점이 요청된다.


2023년 본 공연에서 탄티의 의상은 브이넥에 세로 줄무늬가 있는 셔츠, 동남아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금색 코끼리 문양의 바지였다. 의상을 통해 '동남아 국가' 이야기라는 인상은 엿보이지만, '방글라데시' 특유의 색채가 직관적으로 전달되기엔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비유를 하자면 해외에서 우리나라의 <해님 달님>을 공연하는데, 한복을 입지 않고 동양권 국가 어디든 흔히 입을 수 있는 의상을 입고 공연을 하는 것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 구로꿈나무 인형극제에서 상연된 공연 의상과 2023 공연 의상을 비교해 보았을 , 프로덕션 측에서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면이 돋보인다.  공연이 방글라데시 민담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면, 조금  과감하게  나라 특유의 전통을 무대에 표현해 주면 어떨까? 방글라데시 남성이 가정과 일상에서 편하게 입는 '룽기'(원통모양으로 기워 만든 하의. 천을 허리에 둘러 입음) 착용해 주는  미장센에서 방글라데시 문화에 대한 소소한 고증이 보인다면 방글라데시 민담이란 측면을 강화시킬  있을 테다.


나가며: 자식을 위하여

(C) 광주드림(2018)


<용감한 탄티>는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인형극을 바탕으로 극적인 표정변화가 절제된 미를 보여준다. 절제된 표정은 아동극에서 보기 어려운 요소이나, 탄티의 인형탈에는 특유의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평범한 아버지들의 얼굴이 중첩된다. 이러한 절제미의 반대편에서, 배우들의 큰 제스처는 극의 흥미를 채워나간다는 점 또한 돋보인다.


일터에서 치열한 일과를 마친 뒤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다시 굴하지 않고 내일을 살아내곤 한다. 탄티가 아들 칸을 위하여 '말의 알'을 구해 왔을 때도, 그 여정이 힘들었다는 호소 대신 묵묵히 칸의 곁에서 말의 알을 건넨다. 자식을 위하여 자신의 초라함을 박차고 풍파가 이는 세상으로 나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하며, 본 공연을 감상하는 어린이 관객에게도 아버지의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보편의 아름다움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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