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공동체 설립 이야기
#독서모임 #독서공동체 #독서모임운영
#독서모임시작 #독서모임일기
이것은
IN & OUT 북클럽의
특별한 시작에 관한 이야기다.
저마다의 독서 공동체마다
특별한 시작의 계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서로를 친구 혹은
언니, 동생이라고 부를 정도로
우정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어떻게 구면이었냐면, 2020년 경
노원문화재단 <토요영화살롱 소모임>
(이하: <살롱>) 을 통해
우리는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이였다.
<살롱>에 참여한 여성 참가자들이
마음이 맞아서
<살롱>이 종료된 뒤에도
그 과정에서 <살롱>이 종료된 겨울,
나는 현재의 부운영자를
집에 초대한 적이 있다.
그 때, 그에게 넌지시
한 마디를 건넸던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살롱>이 끝난 뒤에
독서 모임을 해보면 좋겠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만남이 정식으로 추진되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요즘 같이
인덱스 관계(Index Relationship)가
발달하여 특정 목적을 수행 한 후
흩어짐이 익숙한 세상에서
비록 아주 좋은 사람들이었고
계속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건 단지 '내 마음'이었을 뿐이라며,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며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고 있던
강팍한 나의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귀차니즘이 한 몫 하긴 했다.
어차피 나 혼자 아둥바둥 추진 해봤자
힘들기만 하고, 잘 안되면
실망감만 커질거라는
지레 겁먹은 내면때문이었을까?
독서 공동체 추진은
마음 깊이 생각만 하고있었지
그 생각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저 어딘가 심연 밑으로
가라앉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부운영자와의 마지막 만남을 뒤로하고
'이걸 추진 해?, 하지 마?' 라며
마음의 장미 잎사귀를 한 장 한 장 떼며
꽃잎들이 차가운 눈발에
모두 떨어져갈 때 쯤
그 겨울. 부운영자에게 연락이 왔다.
혜인님, 독서모임 했으면 좋겠어요.
부운영자의 연락 한 통에
내 영혼의 엔진에 화르르 불이 붙었다.
나는 차근차근 <살롱>여성 참가자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다행이도, <살롱> 종료 후
나는 총 3명의 여성 참가자들과
1:1로 식사 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래서였을까, 대뜸 전화를 돌릴만한
넉넉한 명분이 있었다.
라고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그들에게 전화로
우리가 다시 모여서
우리의 삶을 독서로 나누어보자는
그리고 또 한 가지,
엥? 내 생각보다... 너무 쿨한데?
<살롱>은 멤버들이 저마다
닉네임을 가지며
닉네임으로 서로를 호명하기때문에
그들의 진짜 이름을 알기도,
기억하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반 년을 가까이 만났지만,
존재는 닉네임으로 기억되었다.
닉네임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고,
어쩌면 닉네임이 있기에 <살롱>에서
마주한 영화들에 대한
가감없이 솔직한 평을 하고,
모임 참여와 참여자 사이의 관계로부터
자유를 획득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 우리 공동체가 <살롱>의 흔적에서
간절히 벗어나기를 바랐던 나는
첫 모임때 다시
통성명을 하는 시간을 가지며
(서로를 알게된지 반 년만에 제대로
통성명을 한 것이다!)
서로를 OO님(이름)으로 부르자는 제안을 했다.
무엇보다도,
이름을 다정히 불러줄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게 중요했다.
상대방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요즘 세대에서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아보이지만
크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관계도
상대의 가정 환경, 사회적 배경,
여타의 정체성 등을 떼어놓고
있는 그대로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장점이 있겠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익명성은 상대와의
예측불가능한 관계 가운데
그와 '거리를 두겠다'는
암묵적이고도 철저한 선언이며
언제, 어떻게 등을 돌리더라도
그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인처럼
느껴지곤 했다.
책을 매개로 다시 모였지만
서로를 더 깊게 알아가겠다는 마음이
어쩌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운영 초기부터
통성명과 호칭 정리를 통해
뜻을 확고히 하고자 했다.
책에 대한 자유로운 발언을 위해
익명 혹은 닉네임 뒤에서
자신감을 획득하는 방식을 지양하였다.
'나'라는 삶의 맥락에서 독서를 하고
그 사유를 나누고
그 사유가 오롯이 그의 것이 되고
우리의 일부로 스며들 수 있다는걸
인정하는 태도 또한
내가 모임장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한 바 이다.
독서모임에서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에 대한 문제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음을
아직까지도 실감하고 있다.
서로가 이름을 호명해줌으로서
공동체 안에서 내가 '나'로서
뚜렷이 존재하고
진정한 내가 진정한 '우리'가 되는
경험으로 나아가기
처음부터 서로의 이름을
진실되게 불러주자는 선택을 한 것에
후회가 없다.
앞선 과정을 겪으면서
느꼈던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한가지를 말해보자면
당근이 없어도 움직이긴 하는데
'으어억...! 으어억...!'하며
힘겹게 움직였을 테다.
그런데, 누군가 당근을 주면
그것을 덥썩 받아먹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앞에서 당근을 주고
뒷꽁무늬에 채찍을 가하면 더 움직인다.
기똥찬 확신을 장착하며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야생마가 된다.
만약, 부운영자가 이 모임을 하고싶다는
의지의 연락을 주지 않았다면
아무리 내가 애를 쓴다고 한들
우리는 단연 흩어지고 말았을 테다.
현재까지도, 부운영자는
나에게 꾸준히 당근과 채찍을 주고 있다.
이러한 당근과 채찍에 더하여
가장 중요한 점은
그러니까,
에는 무엇보다도
다음의 세 가지 뜻이 맞아서였다.
1. 30대 초반에 독서를 꾸준히 하고자 하는 결단
2. 독서를 바탕으로 삶을 나누고,
성찰해보고, 격려를 주고받으려는
마음
3. 책과 삶을 능동적으로 연결시키는
내면의 작업을 하기
솔직히 이러한 뜻은
처음부터 '짜잔-!' 하고 생긴 것은 아니었다.
공동체가 공동체로서 지속되다보니,
우리가 하루, 이틀 더 만나는 날이
많아지다보니
우리는 이 뜻을 계속 품으며
올해를 또 나아가려한다.
그리고 이 뜻 안에서 또 다른
풍성한 의미들을 발견하며
살아가려한다.
독서가 삶의 압축판을 '경험'하는 것이라면
독서를 통해 삶을 살아내는 것은
삶을 확장시키려는 '태도'이다.
인앤아웃 북클럽은
시작이 소소했고
그 끝마저 소소할지 몰라도
꼭 '대대'하지 않아도 좋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