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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인 Sep 13. 2019

몸, 존재, 그리고 시간에 대하여

[2019 성균관대 하계연극제] <A의 밝은 방>을 중심으로

몸, 존재, 그리고 시간에 대하여

[2019 성균관대 하계연극제] <A의 밝은 방>을 중심으로


기고자: 조혜인
기고 마감일: 2019-08-12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의 2019년 하계연극제 <호모 이매지넌스 – 상상하는 인간>의 막이 올랐다. 그 첫 시작으로 <A의 밝은 방>은 ‘호모’의 현존(Dasein)을 굳건히 드러내 주는 몸(Körper)을 매개로 하여 시간(Zeit)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더 나아가, 관객과 ‘드라마스튜디오’라는 같은 시공간에서 공동현존(Mitdasein)의 경험을 발생시킨다.

    본 공연은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에 대한 서준, 유하은 퍼포머의 고민을 담고 있다. 무대의 사 면에 비닐막을 설치하여 의도적으로 제4의 벽을 견고히 하고, 관객은 퍼포머들과 한 층 거리감을 두고 방 안을 관조하듯 거리를 두게 된다. 이때, 눈 앞의 벽으로 인해 관객의 ‘보고 싶은 욕망’은 더욱 증폭되고, 방 안에서 비닐을 온몸에 입은 두 퍼포머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강렬한 현존이 드러난다. A와 무명(無名)은 미동치 않고 새 하얀 의상을 입은 채 비닐 속에 갇혀 누워있다. 언뜻 보면 ‘죽음’ 같지만, 가장 원초적인 상태의 생명으로서 ‘탄생’의 순간을 기다리는 강렬한 생명력이 그들의 존재 자체로 드러난다. A의 방이 밝아질 때, 무대 위의 모래시계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모래를 흘리며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시킨다. 동시에 비닐 속의 A는 작은 움직임들을 통해 자신이 생명을 가졌음을 증명한다. 그의 움직임의 강약과 비례하여 비닐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감각 그 자체로 전달되며, A는 비닐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마치 태중에 있던 생명이 밝은 빛을 받으며 나오는 숭고한 순간을 상상케 한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니 A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잡음이 혼란스럽게 들린다. 시간 속에서 우리 ‘호모’가 겪는 미지의 두려움으로 인해 때로는 세상 밖으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삶에 대한 보편적 회피를 A의 몸을 통해 느낄 수 있다.


프리셋 (C) 조혜인


    특히 본 공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흘러가는 시간에 다가가려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버리는 시간을 살아내는 ‘호모’들을 플래시 조명 효과를 통해 반복적으로 장면화 한 것이다. 찰나의 순간처럼 시간이 지난 후 다른 몸인 무명이 탄생하고, A와 같은 욕망으로 시간에게 다가가며 소유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한다. 다가가려 할 때 멀어지는 시간 속에서, A와 함께 앙상블을 이루며 시간 앞에서 모두 동일한 인간 공동의 운명을 표현한다.

    스스로 현상하는 흘러가는 모래 그 자체처럼, 본 공연에서는 ‘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퍼포머의 몸을 감각하는 것, 불편한 잡음을 감각하는 것, 그리고 지금 여기(Jetzt und Hier)를 감각하는 것은 곧 무대 위의 퍼포머들과 관객 자신들조차도 같은 시간 속을 살아가는 존재임을 지각하는 공동 현존의 순간을 누리도록 한다. 존재론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에 의하면, 작품은 존재의 진리를 보여준다. ‘존재자가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하는지’ 의미가 밝혀지면, 작품 속에서 ‘진리’가 발생한다는 관점으로 예술작품과 진리에 대한 관계를 전개했다. 또한 무대 위의 ‘현존재’로서 이 세계란 무엇인지 질문하는 서준, 유하은 퍼포머는 시간 속에서 몸의 넘치는 생명력과 때로는 망각되는 자아와 같은 안무 연출로 인해 ‘디오니소스적 혼돈’을 창출한다. (니체는 예술의 두 유형에 ‘아폴론 형’과 ‘디오니소스 형’이 있다고 구분한다) A와 무명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궁극적으로 우리들 ‘호모’ 자신이 가진 유한한 시간성이 투영되며, 같은 시간을 (그리고 특히 공연의 순간에는 같은 공간 또한) 향유하고 있다는 진리를 마주하는 경험을 한다.


커튼콜 후 (C) 조혜인


    클라이맥스로 공연이 치달을 때, 제4의 벽에 걸린 비닐이 걷어지며 천장 위로부터 모래가 흐른다. 관객은 보다 명확히 눈 앞을 인식하며, 중력의 법칙에 순응하며 떨어지는 흙의 입자를 감각한다. 이처럼 끝이 보이는 시간을 마주함으로 인해, 우리 ‘호모’가 이루는 공동 현존의 중요성에 대한 질문을 제시한다. 시간 속에서 때로는 각자의 위치에 서는 우리, 시간 속에서 때로는 강렬한 연대를 통해 모이는 우리는 어떻게 시간을 직면하며 살아가야 할까? 시간에 대한 마음가짐을 ‘호모’로서 다시 한번 조각해보며 본 기고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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