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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파랑 Oct 02. 2016

닌텐도 농성

<두장의 타임라인>  10월 2일


한 몸뚱이 살아가는데 이렇게도 많은 짐을 이고 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자연에 대한 죄악인 것 같습니다. 버리고 짱박아도 나오고 나오는 짐을 정리하는데 꼬박이었던 일주일입니다.

이슈를 이슈로 덮느라 애쓰는 현 정부 덕분에 신문이나 언론에서는 끊임없이 나오는 어지러운 뉴스에 바쁘게 돌아가고, 파내고 파내도 넘쳐흐르는 정치 사회적 문제는 하나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렇게도 많은 죄를 저질러도 되는지 생각하게 되는 한 주였습니다.


1989년 화투 제작업체로 출발한 일본 게임회사 <닌텐도>.

휴대용 닌텐도 게임기는 2008년 경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아이들의 정신과 여가를 장악했습니다.

<명텐도>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은 그 해 과천 정부청사에서 "현장 비상경제대책회의"라는 것을 주제 하면서,

"온라인 게임은 우리가 잘 하는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같이 개발된 창의적 제품은 소니·닌텐도가 앞서가는 게 사실"이라며, "닌텐도 게임기를 우리 초등학생들이 많이 갖고 있는데 이런 것을 개발할 수 없느냐?"라고 했습니다. (조선일보)

경제 좀 했다는 그분의 스펙 때문인지 '이 물건 만들어라 저 물건 만들어라'라고 오더를 내리는 잘 못된 그의 뇌구조로 <명텐도>라는 웃지 못할 단어가 생기고, 그의 창조적 아이디어는 4대강의 <로봇 물고기>로 역사에 기록될 그 희극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합니다.

이 잘못된 정부의 창조성 때문에 국민의 창조성은 억압되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것일까요?


하여간 그 열풍의 피해는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에 거금 들여가며 게임기를 사준 아이들 삼촌은 사주고도 욕을 먹었습니다.

마음은 온통 게임기로 가득 차 있는 아들과의 갈등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촉발되었던 계기는 잘 생각은 나지 않으나 그날도 이 닌텐도로 심하게 아들을 꾸짖었습니다.

핑계되고 자기 합리화를 주장하는 아들에게 저는 유신정권에게 교육받은 386세대 답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긴 몽둥이를 잡고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엎드려!"

파랗게 질린 아이가 반항했고 또 저는 이렇게 말했지요.

"안 엎드려? 맞기 싫으면 필요 없으니 나가!"

아이는 맞는 것이 정말 싫었고 폭력 아빠도 정말 싫었던 게지요.

현관을 나서는 아이를 붙잡고 지갑을 뺏었습니다.

"너 이렇게 살라고 아빠가 돈 버는 것 아니야!"

가 봤자 초등학생이 어딜 가겠습니까?  배 고프면 돌아오겠지요....


우리 어릴 적에 엄마에게 혼나면 이런 말 했지요?

"나 밥 안 먹어!"

정말 먹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하루를 꼬박 굶었는데 엄마는 아무런 제스처가 없었습니다.

결국 백기를 들고 슬그머니 밥상 앞으로 다가가서 남은 찬밥을 입에 넣었던 것 같습니다.


몇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갑자기 비는 왜 내리는지요. 불길한 마음이 엄습했습니다.

엄마도 걱정되어 전전긍긍하고 놀러와 있었던 이모도 얼굴이 파래져서 결국은 아이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내쫓은 장본인인 제가 찾아 나서는 것은 논리도 명분도 없지요. 맘을 벌써 백 번 이고 나가고 있었는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힘드네요. 자식 키우는 게....  냉장고에 있던 소주를 한잔 따라서 털어 넣었습니다.


몇 시간이 더 흘렀을까요?

엄마와 이모의 손이 이끌려 아이는 비를 흠뻑 맞은 모습으로 현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아파트 지하 주자창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는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기억에는 없습니다.

단지 아들의 젖은 품속에는 삼각김밥 한 조각과 우유팩 하나가 있었습니다.

"너 이거 무슨 돈을 샀니?"

"아까 아빠가 지갑 뺏을 때 따로 이천 원 챙겨 놓았어요...."


요즈음 국회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새누리당 대표가 연신 매스컴의 화두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백남기 농민, 사드, 위안부, 성과연봉제, 한진해운, 우병우, 최순실...  다루어야 할 뉴스와 국정감사가 산적해 있는데, 이분은 이러한 돌출 행동으로 뉴스 잠식하고 국정감사도 참여하지 않으십니다.

지금은 감옥에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쌍용자동차 대량해고에 항의한 <송전탑 고공농성 171일 투쟁>.

2014년 세월호 특별법과 진상규명을 위한 유민아빠의 <광화문광장의 40일 단식 투쟁>.

단식과 농성은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몸뚱이 하나로 표현하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섭씨 25도로 잘 맞추어지고 비도 맞지 않고 대중들의 시선도 전혀 없는 국회회관 당대표실에서, 그것도 고작 명분이 <국회의장 사퇴>라니요.

국회의장 사퇴는 국회의장이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무리한 요구입니다.

의도했는지 머리가 좋지 못해서 그랬는지 이 비현실적 요구에 자신이 농성을 풀 수 있는 명분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퇴로가 없는 것이지요.

오로지 그녀의 위로 섞인 한마디만 기다리며 명분을 찾으셔야겠지요.



아빠의 폭력에 항거하고 최후의 상황을 대비해서 이천 원의 별도의 돈을 챙겨 나간 초등학교 오 학년의 아들.

여당 대표보다는 훌륭하고 명분 있는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닌텐도 DS>

짐 정리하면서 생각나는 수많은 우리 가족들의 기억들....

아픈 기억도 추억이 되어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또 버리지 못하고 이마트에서 가져온 노란색 박스에 이 추억의 물건은 담아서 창고 한편에 쌓아 놓게 되는,

그렇게 바쁘게 지내는 10월 초 삼일 연휴의 주말입니다.


명텐도 경제. 2009년.
여당 대표의 농성. 2016년 9월. (출처: 포커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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