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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파랑 Sep 25. 2016

창밖의 여자

<두자의 타임라인>  8월 28일


 주초까지만 해도 전기요금 누진제로 들끓던 폭염 속에서 지내던 날이었지요. 밤에 자다가 더워서 선풍기 돌리느라고 한 번씩 깨어났었는데, 이제는 새벽의 제법 선선한 바람에 추워서 밤새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느라고 깨어나게 되는군요. 개인적으로도 동료의 퇴사 소식에 우울하고,  이 나라에서도 좋은 소식은 없고 울화만 치밀어 오르는 한주였네요. 사회에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고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위라는 것에 대한 소신은 변함이 없지만, 담벼락에 <혼자 화내기> 놀이도 지치긴 합니다.  현장에서 하루하루의 생활이 울분과 분노인 세월호 가족분들과 파업 노동자분들의 심정에 비하면 발바닥 수준이겠지요.


 금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우리 딸내미. 긴 머리에 앞머리를 내리는 그 머리 스타일... 조금이라도 얼굴을 작게 보이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만 실제로는 더 크게 보이고 답답하게 느껴져 저는 항상 잔소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성의 머리는 응팔 <덕선이> 머리스타일, 단발머리입니다. 1983년 두발 자율화 이전까지 여성 중고생들의 일괄적이 머리스타일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릅니다. 노래 조용필의 <단발머리>는 식민문화와 독제 정권에 억압되어 자라던, 열성스러운 당시의 여학생 청춘에게 던지는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이 노래는 가왕 조용필의 공식 데뷔 앨범 1집의 B면 첫 번째 곡이었지요.

 A면의 첫 번째 곡에 또 한 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창밖의 여자>. 가사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떠나고 싶은 여인이 커다란 세상의 넘기 힘든 프레임에 갇혀서 떠나지 못하고 창밖을 서성거리는 모습을 연상하곤 합니다.


 몇 년 전 일이었지요?

보통은 퇴근하고 돌아오면 현관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번호가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초인종을 누르고 갸우뚱하면서 들어오는 나에게 집사람은 그날 있었던 일을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아이들까지 모두 등교시키고 그날 오전은 오늘처럼 파란 하늘이 볼 수 있었던 날이었겠지요? 그런데 뿌옇게 오염된 거실 베란다 창문이 무척이나 거슬렸던 것 같습니다. 걸레를 들고 열심히 유리창을 청소 하기 시작했습니다. 앞면보다는 뒤편이 아무래도 더 뿌옇겠지요. 우리 집 베란다의 이중창은 화분을 놓을 수 있는 적당한 공간으로, 사람이 겨우 들어가서 서 있을 만한 수준이어서 안쪽 창문의 뒤편의 유리를 닦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요. 구석구석을 닦고 겹치는 부분을 처리하기 위해 창문을 밀다가... 철커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요즈음 창문은 별도의 잠금장치 없이 끝까지 밀면 잠기는 구조이고 안에서 손잡이를 꺾어서 당기면 열리는 구조인데.....

아뿔싸! 그 창문이 밖에서 잠겨버린 것입니다.

난감한 상황에 한참을 좁았던 그 프레임에 갇혀서 푸른 가을 하늘을 보기도 하고 묘안이 없을까 하고 안쪽을 다시 쳐다 보기도 하고.... 안쪽에서는 고양이가 멀뚱멀뚱 주인님 뭐하시는 건가 하고 쳐다 보고...

결국은 구조 요청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방법이 없었겠지요. 참고로 저희 집은 15층입니다. 30층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지요.

 "저기요~~~~. 구해주세요~~~~." 일면식만 있는 동네 아주머니를 발견하고 소리쳤겠지요?

 "뭐라고요?~~~~."

 "구해주세요.~~~ 문이 잠겼어요.~~~"

 "경비실에 인터폰 하세요.~~~"

이 아주머니는 베란다 문이 잠긴 상황을 금방 파악하기는 힘드셨겠지요. 한참 동안 고주파의 음성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나서 어렵게 어렵게 그 아주머니는 경비 아저씨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젠 아저씨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고 당연히 비밀번호를 물으셨겠지요?

 "0000 이요.~~~"

동네에 울려 퍼진 우리 집 비밀번호를 감지하신 아저씨는 드디어 현관까지 오셔서 비밀번호를 누르시고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그날따라 외부 영업사원이 왔었던지 아님 선교하는 분이 오셨던지, 하여간 아침에 걸쇠를 걸어 놓은 것을 깜박했답니다. 난감하신 아저씨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소리치셨습니다.

 "걸쇠가 걸려있어서요~~~"

가을 낙엽처럼 얼굴이 노래진 집사람은....

 "어떡하죠~~~ 흑...."

결국 경비아저씨는 맥가이버를 연상하는 폭넓은 수습능력으로 어디선가 절단기를 구해오셔서 걸쇠까지 절단한 후에야 집사람이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음료수 두 박스를 사서, 하나는 목숨을 구해주신 경비아저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고, 또 하나는 일면식만 있던 그 아주머니를 찾아가 드리면서 집사람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휴, 정말 황당했어요. 소문은 내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돌아와서는 온 동네에 울려 퍼졌던 우리 집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변경해서 다시 설정했겠지요?


 일어나서 지난 밤중에 추워서 닫았던 베란다 창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시원하고 상쾌한 가을바람이 밀려들어오는 토요일 아침입니다. G20 회의 개최를 앞두고 중국의 얍삽한 일시적 공해 통제 정책 때문에 그런지, 유달리 오늘 하늘은 푸르릅니다. 그러고 보니 창문 닦은 지 오래돼서... 물걸레질 몇 번 해야겠습니다.

 "창밖의 여자" 아니.... "창틀에 끼인 여자"를 생각하면서 피식 한번 또 웃어보게 되네요.


 다음 주는 "대한민국이라는 창틀에 끼인 우리 아이들" 문제를 다시 진지하게 공부해 보려 합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1980년.
서울 하늘.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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