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장의 타임라인> 5월 21일
어마무시하게 무더운 세러레이의 정오입니다.
아이의 모의논술 겸 입시설명회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에 대학 캠퍼스를 여유 있게 거닐고 사색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캠퍼스 본관에 길게 늘어진 고딕 형식의 필러는 상아탑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최근 <프라임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대학과 기업의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 인문계 정원을 축소하고 이공계를 늘리는 방안에 대한 발표가 있었습니다.
<인구론> '인문계의 구십 퍼센트는 논다'라는 최근 유행어와 무관하지 않은 정책일 수도 있어요.
인문학을 당장 돈이 안되기 때문에 축소하려는 논리.
이공계를 늘리면 청년실업은 감소할까요?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철학을 공부했고,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대통령은 전자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애플과 페이스북은 세계의 IT 시장을 이끌어 가는 리딩 기업이 되었고,
대한민국은 더 이상 <네 마리의 용>중의 하나가 아니며, 그저 노동강도만 강하고 행복하지도 않은 OECD 후진국 중의 하나입니다.
앞으로의 우리나라의 또 다른 한걸음은 대기업이 요구하는 숙련자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독일처럼 숙련된 산업인력은 고등학교부터 양성되고 훈련되어 매칭 해야 하고, 건전한 사회의 근간이 되는 인문학은 뿌리를 굳건히 하면서 그 꽃을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모습으로 피우는 형태로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참 프로젝트가 바쁠 때 엔지니어들끼리 자조적인 언어로 우리를 광부라 부릅니다.
미세 산업이라 먼지만 좀 관리하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뭐든지 파고드는 것은 매한가지이니까요.
팔 때는 넓게 파야 깊게 갑니다.
인문계 A형 인재도 이공계 T형 인재도 역할이 있습니다. 그동안 남들 따라서 그닥 넓진 않지만 깊게 잘 파냈지요. 언제까지 그리 할 수 있겠는지요?
저는 직장에서 수많은 이공계 수재들과 생활하는 늙은 수석연구원입니다.
그리고 집에서는 구십 퍼센트가 굶는 두 명의 인문계 고등학생을 둔 아빠입니다.
이 시대의 대학은, 이 시대의 기업은 그리고 <프라임 사업>을 주도하는 이 나라는 우리 사회에 수없이 배출되는 천재 기능 지식인들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요?
어느 오월의 토요일.
대학 캠퍼스 교정을 거닐며 끄적거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