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장의 타임라인> 10월 15일
우리 세대는 지금처럼 남녀 공학이 아니었지요. 중학교부터 분리된 이성에 대해 감정을 억누르면서 참는 법을 배워온 것 같습니다. 영화 <친구>에서 나온 것처럼 빵집에서 하는 미팅은 용기 있고 영혼이 자유로운 친구들이 누리는 특혜였습니다.
제가 미팅을 처음 한 것은 대학 입학 후 같은 동아리 선배 누나의 권유로 4월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한양대의 어느 레스토랑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디에 사세요? 어떤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라는 통상적인 몇 마디를 하고는 가슴도 벌렁거리고 무슨 말을 이어갈지... 심정은 그 카페의 어두운 조명보다도 더 캄캄했습니다. 같은 주니어로 만났지만 나중에 자리에 일어나면서 그녀는 이런 멘트를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 재수해서 그쪽보다 누나예요. 앞으로 대학 생활 열심히 하세요."
여학생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저는 가능한 미팅을 자제했습니다. 지금은 입만 열면 뻥이요 늙어서 말만 많아지는 것을 조심하려 하는데, 당시만 해도 말주변도 없어 특이 낯선 여학생 앞에서는 가슴이 벌렁거리고 앞이 캄캄 해지는 것을 극복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조금씩 세상의 선명함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10월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아리 놈들이었는지 학과 놈들이었는지 하여간 끌리다시피 또 갑자기 미팅 건을 제안받았고 저항도 하지 못하고 머리털 나고 두 번째의 미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명동의 세종호텔 근처의 한 레스토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대는 근처 학교의 유아교육과 학생들이었고 네 커플 정도가 그 어두운 노란색 조명 아래 마주 앉았습니다. 지금의 저속한 용어로 표현하자면 <폭탄>도 있었고, 특별하게 제 가슴을 더 벌렁거리게 하는 <천사>도 있었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기 그지없지만 주머니에서 하나씩 물건을 꺼내고 짝짓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속으로 빌었습니다. 제발 저 '폭탄'과 커플이 되어주기를.... 그 '천사'는 제가 감당할 몫도 아니고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아뿔싸!'
이 무슨 운명의 장난입니까?
<천사>는 제 물건을 집어 들었고 제 머릿속에서는 또 까맣게 블랙아웃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기억에 남는 것은 이야기의 소재를 찾아 심하게 바쁜 제 머릿속과 '왜 난 이렇게 말 주변이 없을까?'라는 자괴감에 시달렸다는 것... 그리고 그 <천사>는 이런 저의 방황을 잘 받아넘기는 여유까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리드 덕분에 제법 이야기는 길어졌고 커플은 한 두 팀씩 자리를 떴지만 우리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다가 좋은 분위기에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매력적인 여학생이었고, 잔인한 4월에 보았던 그 <누님>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지만, 다시 만날 용기도 돈도 없는 가난한 대학생은 커피값을 지불하려고 카운터에 섰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망할 놈들은 왜 자기들 찻값을 내지 않고 나간 것일까요? 달랑 몇천 원 제 찻값만을 준비해 갔는데, 이 <천사> 앞에서 저는 <알파고>보다도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용기 내어 카운터 직원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죄송한데, 지금 지갑을 두고 와서 그런데 신분증 맡기고 다음에 가져다 드리면 안 될까요?"
후우~~~. 이 무슨 망신인지... 그리고 가방을 뒤져서 신분증을 찾았을 때 저는 또 다른 블랙아웃을 경험했습니다. 어디에 두었을까요? 제 신분증을....
그리고 저는 난감하게 그 천사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미안해요. 제가 신분증을 두고 온 모양입니다. 그쪽 것 좀 빌릴 수 있나요?"
그렇게 본의 아니게 저는 그녀와의 두 번째 만남에 대한 약속을 잡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결론으로 저는 다음을 또 설레는 맘으로 준비했습니다.
'미안한 맘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정확하게 말하면 '설레는 맘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고민으로 며칠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로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이하 생략)
당시의 시 문단의 절대 강자 <이혜인> 수녀의 '민들레의 영토' 일부 구절입니다.
정성스럽게 시집을 포장해서 주말의 어느 오후에 그 레스토랑으로 나갔습니다.
주말 오후지만 컴컴한 그곳에서 기다리는데 드디어 그녀가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친구를 덤으로 데리고 말이죠.
뭘까요? 이 시추에이션... 하여간 그해 32년 전 10월에는 용돈의 지출이 상당히 컸던 기억입니다. 친구들 네 커플의 커피값, <민들레의 영토> 시집 구매 비용, <천사>와 그 군식구의 점심값까지...
지난주 정태인 칼 포리니 사회경제연구소장님의 강의에서 그분이 강의 중에 언급한 시인이 있어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소장님은 강의 중에 '사회적 신뢰'를 언급하시면서 이 시를 언급하셨습니다. 시에서 처럼 동백꽃을 피우기 위해 수많은 추운 날들을 견디어 피웠지만은 그냥 그 꽃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리는 것이 <인간의 신뢰>라고 했습니다. 이 시의 원작의 표현은 오랜시간 같이했고 타올란던 그 사랑을 떠나보내기가 어려움 표현했습니다. 꽃과 같이 쉽게 피었지만 지는 것이 이별이 아픔이 후드득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순순하고 애달픈 마음을 표현한 것 입니다.
이 시가 실린 최영미 시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대를 응시하는 처절하고도 뜨거운 언어로 한국 문단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지금껏 50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놀랍게도 이 시인은 최근에 페이스북을 통해 마포구청으로 <생활 장려금>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기업만이 돈을 버는 더러운 세상, 문화예술인들의 대부분은 이런 자본에 연연했다면 아마 시를 쓰지 못했을 것이고 영혼이 자유롭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도 <국문학>을 하고 싶었던 우뇌형 인간이지만 더 심한 가난의 공포 때문에 <공학>을 택하고 자본의 노예가 되었고 결과는 얻은 물질만큼 인생의 읺어버린 자유에 대한 동경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Black List>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감독 <김기덕>, 영화배우 <김혜수> <박진희>, 몸은 던져 노무현 대통령의 연기를 했던 배우 <송광호>.
세월호 시국선언을 했거나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List에 올리고 관리한다는 것이지요.
<검은 목록>을 만들고 각종 심사에서 규제를 가하는 무참한 짓을 하는 이 정부의 사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IS 테러 단체를 욕하고 우리도 테러를 방지해야겠다고 <테러 방지법>을 통과시킨 현 정부는 그 테러집단이 행하고 있는 각종 문화 유적의 폭파와 파괴 행위와 무엇이 다른 것인지요?
자본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유롭게 노래하고 연기하고 시를 쓰는 분들께 그 알량한 자유마저도 파괴하려는 이 정부는 오늘도 국감장에서 <김제동>이 사과를 해야 하는지 마는지를 토론하면서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을 축내고 있습니다. 국민의 분노가 이 높은 하늘만큼이나 높다는 것은 이 잘못된 유전자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순, 그녀의 잔치는 끝나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32년 전 만났던 그 <천사>는 배우 <박진희>를 닮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검은 목록>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저는 이렇게 더 흥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맑은 가을의 주말입니다.
동네 서점을 또 찾아가야겠습니다. 그리고 몇 글자 적혀 있지 않아서 얼핏 가성비가 좋지 못할 것 같지만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이 있는지 찾아보려 합니다. 3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도 잘 팔리지 않는 그 시집은 우리가 인터넷으로는 읽은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깊은 사고와 성찰을 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니까요.
자본으로 눌러 버린 이분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국감장에서 청와대에서 List를 가지고 힘으로 또 다시 억누르는 IS집단과 같은 만행을 부디 멈추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