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형으로부터 연말 선물로 전 카카오 대표 조수용 님이 쓰신 책을 받았습니다. 조수용 님은 디자이너 출신으로 네이버 사옥 디자인, JOH 창업, B 매거진, 일호식, 디타워 등 여러 굵직한 프로젝트를 맡으셨고, 카카오 대표까지 역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죠.
디자이너 출신임에도 IT 기업에서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기에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배달의민족의 김봉진 의장 같은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가 여럿 생기고, 지금은 대표직에서 물러나신 후 무엇을 하고 계신지 잘 모르다 보니 큰 기대 없이 가볍게 읽어보려 했는데요.
예상보다 책이 많은 영감을 주었고, 형이 왜 직원들에게 선물할 만큼 추천했는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더라고요. 책이 얇고 너무 무겁지 않다 보니 일요일 저녁에 절반을, 다음 날 출근길에 나머지를 금방 읽을 수 있었고, 몇 가지 인상 깊었던 구절을 정리해 공유해봅니다.
3줄 핵심 요약:
오너십이란, 오너의 생각을 대신하는 것이다.
오너십은 강요할 수 없지만, 나를 성장시키고 장기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 당장 금전적 보상이 없어도 오너십을 갖고 일하는 자세는 더 큰 성장을 이끌어낸다.
감각은 디자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업과 제품의 피상적인 면을 넘어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특히 사회 초년생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라면 더 많은 영감과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고, 다른 분야의 종사자도 충분히 인상 깊게 읽을 수 있을 만합니다. 직접 구매하기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돌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너의 신뢰를 얻으려면 오너의 고민을 내가 대신 해주면 됩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통하지 않기도 하고, 혹은 윗사람이 자기 아집에 빠져서 내 말을 들으려조차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느낌이 누적될 때는 그 조직을 떠나도 됩니다. 저도 이런 이유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었다고 무기력에 빠지는 등 감정 소모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그저 세상 모든 일이 각자의 방식으로 공존한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운명은 오너의 태도로 정해진다고 봐도 됩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많은 브랜드가 흥망성쇠를 겪는 것이며,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분야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내가 맡은 일의 주인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첫 삽을 뜨고, 마지막 흙을 덮는 일까지 직접 살피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만나는 지접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결과물들이 만들어 졌습니다.
저는 내 취향을 깊게 파고, 타인에 대한 공감을 높이 쌓아 올린 결과 만들어지는 것이 '감각'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감각은 '현명하게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항상 어떤 대상을 성실하게 좋아하시면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고, 싫어하는 것을 피하는 과정에서 감각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제 기준에서 감각적인 사람은 까칠하지 않습니다. 까칠한 사람은 그냥 까다로운 사람이지 감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비스킷 하나, 운동화 하나를 사기 위해 여러 제품을 살펴보는 이유는 까칠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그런 사소한 결정도 애정을 가지고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실용성, 아름다움, 브랜드만의 특별한 이미지 등 많은 것이 디자인에 고려되어야 하지만, 실용성이 우선인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싼 명품 브랜드에서 가방을 판매하는 점원도 고객에게 설명할 때는 늘 실용성을 이야기합니다.
1. 사용자 입장에서 기능을 고민하고 경험을 의도하는 것
2. 1을 조형적, 미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
3. 1, 2번을 우리답게 지속하는 것
이 책에서는 1을 기획, 2를 디자인, 3을 브랜딩이라고 하겠습니다.
기획이 꼼꼼하게 잘되면 디자인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또 기획과 디자인이 잘되고 있다면 이미 브랜딩도 잘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출발점인 기획이 전부인 것입니다. 모든 기획은 사용하는 사람의 경험(User Experience)에서 출발합니다.
브랜딩의 첫 단계는 비즈니스 콘셉트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이 일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매일 고민해야 비즈니스의 본질이 드러나고, 그 결과 기획이 선명해져서 디자인 결정이 용이해집니다.
네이버 그린팩토리 안에 채광을 조절하는 블라인드를 달았습니다. 각 블라인드는 명도와 채도가 조금씩 다른 녹색으로 각각 다양한 각도로 열리고 닫힙니다. 이 투명 유리와 블라인드의 조합이 멀리서 보면 마치 픽셀처럼 보이길 의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린팩토리는 시시각각 변화는 외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게 '어떻게 하면 멋진 건물을 만들 수 있을지'가 아닌, '이 건물을 쓰거나 방문하는 사람들이 네이버를 어떻게 인식하도록 만들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지금도 경부고속도로를 오갈 때 단순한 유리 상자와 그 안에 들어 있는 유기적인 초록 패널을 보면 여전히 네이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감각적인 기획을 생각해내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가장 상식적이고도 기본적인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정리하자면 기획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1. 이 비즈니스 본질(상식)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2. 기존 레퍼런스에서 문제점을 찾아낸다.
3. 비상식적인 부분을 상식적으로 되돌려 문제를 해결한다.
감각적인 사람은 우리가 잊고 있던 본질을 다시금 떠올리는 사람입니다.
제 생각에 디자인으로는 현대카드를 넘어설 방법이 도저히 없어 보였습니다. 위기를 느낀 삼성카드가 리뉴얼을 위해 JOH를 찾았습니다. 현대카드와 대적할 만큼 멋지게 디자인해달라는 의뢰였죠.
우리는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소재 그대로의 흰카드에 1, 2, 3, 4, 5 숫자만 넣었습니다. 그 옆에는 주요 혜택을 한두 줄씩 한글로 써넣었죠. 혜택이 한 줄 있으면 1 카드, 두 줄 적혀 있으면 2 카드입니다.
신용카드는 결제 도구일 뿐이라는 본질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내게 필요한 기능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데 집중했습니다.
상식은 설득이 어렵지 않습니다.
저의 역할은 업의 본질에 대해 반복해서 묻는 질문자였습니다.
브랜딩이란 일의 본질이자 존재 의미를 뾰족하게 하는 일입니다. 포장은 곧 벗겨지기 마련이고 그럼 얼마 안가 본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니까요.
카카오도 과거 네이버의 조수용이 아니라, 지금 JOH의 조수용과 손을 잡은 거잖아요.
저는 자본주의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자본주의가 유지되려면 자본이 건강한 생각을 해야 해요.
건강한 자본이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고, 그게 진짜 돈이 된다는 걸. 경영주도 직원들도 소비자도 함께 행복한 기업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브랜딩의 다른 말은 '소신을 찾아나서는 과정'입니다.
소신 있는 사람 옆에는 사람이 모입니다. 소신 있는 브랜드는 작게라도 팬덤이 생기죠. 팬덤이 있다는 건 이미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뜻입니다. 사랑하고 추종하는 겁니다.
여전히 애플 매장에는 계산대 없이, 파란색 애플 티셔츠를 입은 직원들이 친구처럼 친근하게 접객 활동을 합니다.
저는 21세기의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브랜드 스토리에서 나온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내가 직장인이든 사업을 하든 우리의 삶은 1) 브랜드를 운영하거나 2) 브랜드를 소비하는 두 가지 중 하나, 혹은 양쪽 모두에 속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브랜드를 키워서 돈을 벌고 싶은 욕먕'이나 '브랜드를 소비하고 싶은 욕망'을 빼면 이 세상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애플이 있다고 선언한 스티브 잡스의 스피치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러고 다음 해에 그가 사망했는데, 이 일은 제게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내가 맡은 모든 일은 중요하다.
2. 타인의 의견은 나를 향한 공격이 아니다.
3. 나는 보상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이 아니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 모이면,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하지 않는 조직이 됩니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 '긍정적인 태도'인 이유입니다.
존중과 신뢰야말로 자존감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한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나는 어떻게 일하고 싶으며, 무엇을 본질이라고 생각하는지' 고민하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