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클래미 & 클로드
*바이오 연구원, 금융 데이터 엔지니어, 빅테크 디자이너와의 대화*
AI가 개발자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올드하다. 그렇다면 연구실에서 유전자를 편집하는 사람, 월스트리트에서 금융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 빅테크 R&D 조직에서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사람. 이렇게 아예 AI와 다른 분야에 있는, 그것도 실리콘밸리가 아닌 뉴욕과 보스턴에 있는 사람들은 AI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
우선 공통점으로는 셋 다 모두 절대 AI 이전의 방식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AI를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우선 바이오 연구원에게는 AI는 연구의 속도를 바꾸는 도구였다. 금융 엔지니어에게는 팀의 구조를 재편하는 힘이었다. 마지막 디자이너에게는 잃어버렸던 창작의 기쁨을 되돌려준 존재였다. 같은 기술인데 또 각자만의 의미가 달랐다.
이전 글에서 나는 주로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AI를 받아들이는지 썼다면, 이번에는 3개 다른 산업에서의 비개발자와의 인터뷰에 대해 써본다.
보스턴의 한 생명과학 연구소에서 일하는 AI 연구자를 만났다. MIT와 하버드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 연구소에서 그는 바이오 연구를 위한 AI 도구를 만든다. 유전자 편집 기술인 CRISPR 관련 논문도 발표했고, 생명과학과 인공지능의 교차점에서 매일을 보내는 사람이다.
그에게 바이오 분야에서 AI의 가능성을 물었더니 단호하게 대답했다. "생명과학은 아직 30% 정도밖에 이해되지 않은 분야다. 이것도 추론이고 아무튼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AI로 인해 더이상 남은 분야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의심이 되곤 했다. 그와 소통했을때는 아마 바이오와 우주야 말로 연구개발이 AI로 인해 드디어 박차를 가하지 않을까, 아직 인간이 탐구해야할 분야가 무수히 많아서 할일이 무척 많다고 했다.
또한, 곧 새로운 바이오 AI 회사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게놈지도를 만든 교수님들이 세운 연구소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AI를 활용해서 아직 인류에게 남은 모든 난치병을 고치기 위해, 스스로 AI 모델도 만든다고 한다.
더 흥미로웠던 건 그의 사이드 프로젝트였다. 그는 클로드 코드를 이용해서 Polymarket이라는 예측 시장 플랫폼의 배팅봇을 만들고 있었다. 본업은 바이오 AI 연구인데, 퇴근 후에는 금융 예측 봇을 코딩하는 연구자. 이 조합이 가능해진 이유가 있다.
"코딩 속도가 체감상 3배는 빨라졌다." 그는 원래 순수한 개발자가 아니다. 연구자 출신이다. 도메인 지식과 분석력은 있지만, 코딩 자체가 본업은 아니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은 혼자서 작동하는 봇을 만든다. AI가 코딩의 진입장벽을 낮춘 전형적인 사례다. 그에게는 데이터를 읽고 가설을 세우는 능력이 있었고, 클로드 코드가 그 능력을 실제 코드로 변환하는 다리 역할을 해준 셈이다.
뉴욕 맨해튼의 한 글로벌 금융 데이터 회사에서 데이터 엔지니어 팀 리드로 일하는 사람을 만났다. 10년 차. 광고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시니어 데이터 분석가로 이 회사에 합류했고, 이후 데이터 엔지니어로 전환한 뒤 팀 리드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금융 업계는 보수적이다. 그가 클로드 코드를 쓰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보안 규정이 엄격해서 외부 AI 도구 도입이 늦었다. 하지만 일단 쓰기 시작하니 변화는 빨랐다. 특히 매니저로서의 삶이 달라졌다고 했다. 팀원들의 작업을 요약하고, 문서화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또한, 요즘 대부분의 금융 회사들은 자체적으로 AI 모델들을 만들고 있다. 이유는 그 데이터가 모두 몇십년 동안 쌓아온 노하우이며, 그렇다고 외부 툴에 의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금융 분야의 데이터는 구조가 복잡하고 정확도의 기준이 높기 때문에 범용 모델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자체 모델을 개발하는 쪽으로 웬만한 금융 대기업들은 사용하고 있다.
이 사람에게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동남아나 인도 중국에 맡기는 단순노동 외주팀이 꽤 많았다는거다. 금융데이터라는게 생각보다 데이터가 비정형화되고 불친절하게 공유되는경우가 많다. 그런경우 우선 사람들이 일일이 수기로 데이터를 읽어서 추출하고 옮기는 작업이 필요했다.
"사라지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한꺼번에 없어진 게 아니라,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AI가 처리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들에게 물량이 줄었고, 자연스럽게 계약 규모도 축소되는 흐름이었다. 금융 업계는 여전히 엑셀 기반의 문화가 강하다. 하지만 그 엑셀 안에서 일어나는 작업의 주체가 바뀌고 있다. 사람이 칸을 채우던 자리를 AI가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매니저 입장에서는 오히려 편해졌다.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 품질 관리, 일정 조율 같은 오버헤드가 줄었으니까. 아마 그들도 눈치했을 것이다.
5. 이젠 팁 계산도 챗GPT로 한다
이 사람과의 대화에서 가장 웃겼던 대목은 일상 속 AI 이야기였다. 뉴욕 사람들은 이제 레스토랑에서 팁을 계산할 때도 계산기가 아니라 챗GPT를 쓸 정도로 AI가 업무 도구를 넘어 모든 생활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거다.
또 하나의 예시는 자신도 최근 아파트 리스 계약서를 클로드에 넣어서 검토했다고 했다. 뉴욕의 아파트 리스 계약서는 수십 페이지에 달하고, 법률 용어가 가득하다. 예전에는 그냥 그냥 상대방을 믿고 눈 가리고 사인하거나, 변호사에게 비싼 돈을 맡기고 검토했을 텐데, 지금은 클로드가 핵심 조항을 요약해주고, 주의해야 할 부분을 짚어준다. 변호사를 완전히 대체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뭘 물어봐야 하는지는 알게 된다"는 게 그의 표현이었다.
매니저로서 AI를 가장 많이 쓰는 상황도 구체적이었다. 팀 미팅 후 요약 정리, 프로젝트 문서화, 상위 보고를 위한 브리핑 작성. 매니저로서 이제는 직접 코드를 짜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커뮤니케이션 업무에 쓰는 시간에서 AI가 크게 절약해준다고 했다.
미국 빅테크 R&D 조직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경력 10년이다. 안타깝지만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AI 툴을 제공하지 않는데, 그런데 이분은 스스로 매달 500달러를 개인 돈으로 클로드 토큰에 쓰고 있다고 한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의외였다. "다시 만드는 기쁨을 느끼게 됐다." 디자이너로 10년 넘게 일하면서 어느 순간 작업이 루틴이 되었다고 했다. 와이어프레임을 그리고,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고, 다시 피드백을 받는 반복. 그 과정에서 "만드는 즐거움"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런데 AI가 그걸 되돌려줬다. 자신의 작업물을 AI와 함께 다듬으면, 혼자서는 도달하기 어려웠던 수준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밤늦게까지 작업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월 500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 돈으로 내가 되찾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커리어의 나머지 10년을 어떤 감정으로 보낼 것인가. 그에게 AI는 효율의 도구가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장치였다.
우선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인간이 만든 디자인과 AI가 만든 디자인의 차이였다. 우선 그녀는 "AI가 만든 UI에는 일관된 디자인 시스템이 없다."고 했다. 개별 화면은 괜찮아 보인다. 버튼도 예쁘고, 레이아웃도 깔끔하다. 하지만 여러 화면을 놓고 보면 색의 톤이 미묘하게 다르고, 간격의 규칙이 일정하지 않고,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 언어가 부재하다.
일반 유저가 보기에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아무튼 전체적인 서비스 인프라에서 디테일한 일관성을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핵심 역할이고, 그건 아직 AI가 하기 힘든 영역이라고 했다. 10년의 경험이 30초 만에 "이건 뭔가 어긋나 있다"고 감지하는 그 감각.
그녀는 링크드인을 "a little stream of anxiety"라고 표현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하다. 매일 피드를 열면 새로운 AI 뉴스에 누구는 사용 후기를 등등 그걸 보면서 느끼는 미세한 압박. 나만 놓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FOMO. 그런 상황에서 우선 본인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면 그 불안이 사라진다고 했다. 만들다보면 자기만의 노하우도 키우면서 또 뉴스 이상의 인사이트를 얻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놓고 보면, 공통된 현상이 하나 보인다. 역할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오 연구자는 투자 봇을 만든다. 개발 팀 리드는 AI로 문서를 쓰고 계약서를 분석한다. 디자이너는 코드를 배우기 시작했다. 각자의 직함은 그대로인데, 실제로 하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그런데 세 사람 모두 같은 말을 했다. AI가 아직 못하는 것이 있다고. 바이오 연구자는 "AI는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한다"고 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일을 끝내고 다른 것을 시도할텐데. 실험 결과를 분석하고 다음 방향을 정하는 것, 가설을 세우는 것, 무엇이 중요한 질문인지 판단하는 것. 그건 아직 인간의 몫이다. 금융 데이터 엔지니어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AI가 데이터를 추출하고 정리하는 건 잘하지만, "이 데이터를 가지고 어떤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가"는 사람이 판단해야 했다. 디자이너 역시 마찬가지다. AI가 화면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제품 전체의 방향을 잡는 건 사람의 일이다.
도구는 강력해졌고, 그 도구를 다룰 수 있는 범위는 넓어졌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는 능력,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 그게 점점 더 결정적인 차이가 되고 있었다.
세 사람을 만나고 나서 생각한 것이 있다. 결국 셋 다 AI를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만드는 기쁨"을 되찾고 있었다. 바이오 연구자는 머릿속에만 있던 이론을 실제로 돌아가는 코드로 만들어보는 기쁨. 금융 엔지니어는 수십 명이 수작업으로 하던 일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설계하는 기쁨. 디자이너는 10년 차 루틴에서 빠져나와 다시 밤새 무언가를 다듬고 싶어지는 기쁨.
AI가 위협이냐 기회냐는 이미 낡은 질문이다. 이 세 사람에게 AI는 위협도 기회도 아니었다.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무언가를 돌려주는 존재였다.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감각. 그걸 되찾은 사람들은 계속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