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클래미
1830년부터 미국은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60% 부과하며 이후 120년간 세계에서 공산품의 관세가 가장 높은 나라였다. 즉, 미국은 사실상 자유 시장이 아닌 보호 무역으로 부자가 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지금 와서 주변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약간의 내로남불이라고도 지적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보고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용어를 처음 썼다.
1962년 한국은 박정희 정부의 주도 아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했다. 도로와 항만 건설, 중화학 공업 보호 육성, 수출 주도형 산업 육성 등 국가 자주 경제 건설을 위해 5년 단위로 추진된 경제 계획이었다. 다들 한국이 자유 시장으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사실상 정부가 엄청나게 개입한 '국가 주도 경제개발'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룬 셈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때때로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면서 유동적으로 진화해 왔다. 아시아 금융 허브이자 국제 도시의 표상인 싱가포르의 토지 90%는 국가가 소유하며 주택공사가 주택 85%를 공급한다는데 사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양립하는 개념이 아닌 정부가 시장을 얼마나 규제할 건지의 정도를 나타내는 스펙트럼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경제 이론마다 강점과 약점이 공존하기 때문에 경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이 유의미하며 자유 민주주의의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것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사다리 걷어차기>(앞선 나라는 따라잡고 뒤쫓는 나라는 따돌리던 선진국 경제 발전 신화 속에 감춰진 은밀한 역사)라는 글로벌 베스트셀러로 유명해진 장하준 교수의 신간이다. 사실 신간이라고 부르기 어렵고 이미 10년 전에 출간했던 책인데 당시 국방부에서 반미/반자본주의를 주장한다며 불온도서로 분류당했고 이번에 10주년 특별판으로 재출간되었다고 한다.
장하준의 사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는 그동안 미국 정부가 취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이지 미국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지지하는 책은 더더욱 아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당시 정부에서 몇 가지 키워드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요즘 시대에도 불온서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덕분에 역으로 화제가 된 것에 대해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다고 한다.
나도 오랫동안 미국에서 공부했기에 성향을 따지자면 자연스럽게 친미에 가깝지만 (아마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 그럴 듯) 최근 10개월 세계여행을 다녀오면서 우리나라가 역사적 배경 때문에 미국과 특별히 가까울 뿐 미국이 패권 국가는 맞지만 그렇다고 곧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니며, 은근 적대시하는 나라들도 많고 (중동/중국/중남미는 말할 것도 없고, EU(유럽연합)도 미국과 대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에서만 예외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꽤 많다고 느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정치인들은 교묘한 수법으로 국민들의 성향을 좌파-우파 and/or 친미-중-일 등으로 나누면서 자신들의 콘크리트층과 카르텔을 형성하곤 한다. 이것이 곧 정치인들이 살아남는 방법이기 때문에 크게 불만감을 갖지 않으나 개인적으로 '진정한 대한민국인'이라면 친-대한민국 성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가끔씩 이렇게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이성을 잡아먹을 때가 있다. 그래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칠 때도 있고 가끔씩 손익이 분명한데도 이데올로기에 갇힌 주장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서의 지위를 이어가기 위해 우리나라가 왜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따르는지, 이에 대한 장단점은 무엇인지, 다른 경제/정치 체제를 따르는 나라는 어디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고민하는 게 더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장하준의 신간 "나쁜 사마리안들"에 대해 알아보자!
자본주의(Capitalism)이란 말 그대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 체제를 뜻한다. 16세기에 당시 봉건 사회였던 유럽에서 대항해시대를 통해 상인들이 귀족들보다 돈도 많이 벌고 입김이 세지자 슬슬 계급보다 자본이 더 중요시되며 자본주의가 싹을 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업데이트를 거치며 특정 나라를 제외하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경제 체제이다.
처음으로 자유시장의 이론을 체계화한 사람은 소위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였다. 그는 <국부론>이라는 책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당시로선 굉장히 획기적인 개념을 주장했으며 자유롭게 이윤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이 경쟁을 유발해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이룬다고 말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인정이나 우유 배달원의 호의 때문이 아닌 각자의 이기심 때문이다 - 애덤 스미스 -
이어서 그는 업무의 분업화를 강조하며 혼자서 핀을 만들 경우 하루 최대 20개까지 만들 수 있는데 만약 핀을 만드는 과정을 분업화한다면 1인당 생산량이 수백 배로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 분업화 → 생산성 증가 → 국부 증가) 그러면서 단순 노동에 의해 노동자에게 미칠 악영향도 우려하여 이를 위해 '노동자를 위한 공교육'의 필요성도 주장했다. 이후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애덤 스미스가 예견한 자본주의 시대가 본격 도래했다.
애덤 스미스는 사실 '자본주의'가 아닌 '상업사회(Commercial Society)'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독일의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였다.
그는 <자본론>라는 책을 통해 기술 혁신, 자동화, 주식회사 등 당시 상상도 못 할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누구보다 자본주의에 대해 잘 이해했던 사람이었다. 동시에 노동 착취와 실업, 경제 불균형 등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도 강하게 비판했다.
산업혁명은 영국의 공업 도시인 멘체스터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증기 기관을 통한 기계식 공장이 발명되고 더 이상 공장을 돌리는 데 큰 힘을 쓸 필요가 없어지자 공장의 자본가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저임금의 순종적인 아이들을 위주로 고용을 했다. 보통 아이들은 6세에 취직해서 주말도 없이 하루 15시간 넘게 일을 했으며 기계들은 일부러 아이들의 몸에 맞춰 작게 만들어졌다. 공장의 먼지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폐질환으로 파리 목숨처럼 죽어나갔고 당시 1820년부터 1870년까지 멘체스터 빈민가의 평균 수명이 17세였다고 한다.
이러한 자본가들의 착취 구조를 밝힌 마르크스는 가장 발달한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자 계급이 혁명을 일으켜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냉전 시대 때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혁명 선동가로 낙인이 찍혔지만 사실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산했던 경제학자였다고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중국/북한 같은 비정상적(?)인 나라들 때문에 사회주의는 나쁘고 자본주의는 좋다는 인식이 우리 머릿속에 박혀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중심인 미국에서는 복지를 강조하고 세율이 높은 프랑스/독일/스웨덴 같은 나라들도 사회주의 국가로 분류하며, 아시아 금융 허브이자 국제 도시의 표상인 싱가포르의 토지 90%는 국가가 소유하며 주택공사가 주택 85%를 공급한다고 한다. 따라서, 사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양립하는 개념이 아닌 정부가 시장을 얼마나 규제할 건지의 정도를 나타내는 스펙트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자본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은 돈이 아무리 많던 적던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진 봉건주의나 사실상 소련의 붕괴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모든 사적 소유와 생산 수단을 공유하자는 공산주의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러니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때때로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면서 유동적으로 진화해 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 물자를 대며 급부상한 미국은 최고의 경제 호황기를 누렸고, 그 자신감으로 물건을 무수히 찍어댔다. 문제는 전쟁 당시 유럽과 미국의 수요가 이례적으로 높았던 것뿐 전쟁이 끝나고 유럽이 패망하자 더 이상 물건을 살 사람들이 없어졌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과잉 공급으로 공장들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1920년부터 1939년까지 약 10년간 미국은 역사상 가장 길었던 경제 대공황을 겪었다. 당시 미국의 노동자 임금은 50% 감소, 생산량은 26% 하락, 실업률은 8배 증가했다.
이때 대통령으로 취임된 루스벨트는 1933년 '뉴딜(New Deal)'이라는 정책을 통해 경기 침체를 대응하기로 한다. 뉴딜의 요지는 정부가 복지 정책, 일자리 마련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다는 사실상 굉장히 반-자유시장적이자 사회주의적인 정책이었다.
물론 당시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시장은 장기적으로 균형을 이룰 텐데 왜 정부가 억지로 규제를 하냐는 비판이 거셌다고 한다. 이에 대해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더드 케인스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의심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지지했다.
그의 의견은 실직을 했거나 봉급을 못 받았을 경우 자연스럽게 구매가 어려워질 텐데 나의 지출은 곧 남의 소득이기에 전반적으로 경제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지출하여 수요의 수준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가 쓴 책인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정부가 돈을 여러 곳에 깊이 파묻은 다음 마음대로 파 가도록 놔둔다고 하자. 기업들은 돈을 파가기 위해 사람들을 고용할 것이고 사회전체의 실질 소득과 부 역시 이전보다 커질 것이다" - 케인스 -
이는 개인을 넘어 국민 소득/물가/실업/환율 등 국가 전체의 경제 현상을 보는 완전히 다른 시각이었으며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의 출발이었다.
미국의 '뉴딜' 정책은 소위 케인스식 처방이라고 불린다. 댐과 발전소 등 사회기반의 시설을 건설해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동시에 근로 시간과 최저 임금 규정 등 실업자를 위한 복지 정책을 마련했다. 2차 대전 이후 최대 적자를 내며 정부의 자금 지출을 통해 수요를 늘려 경기를 지탱했으며, 자유 시장 형태의 자본주의 룰이 처음으로 깨졌던 시기였다. 참고로 코로나로 인해 각 정부에서 재정 지출하는 것이 케인스식 정책이 맞다.
어쨌든 이렇게 여러 학자들의 고뇌를 통해 자본주의가 발전하며 결국 자본주의가 무너진다는 마르크스를 틀리게 만들었다. 만약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만 믿고 낙관했다면 자본주의가 붕괴되었을 수도 있다.
10년의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고 미국은 1940년대인 트루먼과 아이젠하워가 집권하던 시기에 자본주의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접목시키며 또다시 황금기를 맞이했다. 1인 소득 성장률은 연간 3~4% 수준으로 당시 처음 겪는 고속 성장기였으며, 실업률도 25%에서 무려 4.8%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때 복지 확대와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는데 최고 세율이 무려 92%였다고 하며, 소득 상위 1%의 소득 비중이 가장 낮던 시대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워낙 경제 성장률이 높아 세금이 높아도 자본가들은 산업 투자와 기술 혁신을 큰 이익을 얻던 시기였다.
정부의 적절한 개입으로 미국과 서유럽은 30년간 유례없던 황금기를 맞이하며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헤럴드 맥밀런은 "이렇게 좋았던 적은 여태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자 이제 세계 공부는 열심히 했으니 한국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한국의 경제 개발도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한국 경제는 케인스식 정책이 아닌 개발주의 경제학으로 성장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개발주의란 16세기에 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알렌산더 해밀턴'이 발명한 이론으로 소위 '유치산업 보호론'이라고도 불린다. 쉽게 말하자면 어린아이를 키울 때처럼 후진국은 유아기 단계 때 산업이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외국 경쟁자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보호 무역 이론이다.
자유주의 나라에서 보호 무역이라니. 당시 유럽의 기술이 훨씬 뛰어났을 때 많은 미국인들이 해밀턴에 반기를 들었다. 유럽과 자유롭게 무역하면 미국산보다 훨씬 싸고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는데 왜 실력도 없는 자국산 물건을 보호하고 지원하냐며. 하지만 해밀턴은 그 당시 자유무역으로 간다면 아직 자체 기술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애초에 경쟁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830년부터 미국은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60% 부과하며 이후 120년간 세계에서 공산품의 관세가 가장 높은 나라였다. 즉, 미국은 사실상 자유 시장이 아닌 보호 무역으로 부자가 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지금 와서 주변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약간의 내로남불이라고도 지적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보고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용어를 처음 썼다.
아무튼 1960년대부터 '유치산업 보호론'을 따른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당시 나이지리아 96불, 가나 190불, 세네갈 321불보다 훨씬 저조했던 93불이었다.
1962년 박정희 정부의 주도 아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되었다. 도로와 항만 건설, 중화확 공업 보호 육성, 수출 주도형 산업 육성 등 국가 자주 경제 건설을 위해 5년 단위로 추진된 경제 계획이었다. 다들 한국이 자유 시장으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사실상 정부가 엄청나게 개입한 '국가 주도 경제개발'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룬 셈이다.
당시 얼마나 정부가 시장에 개입했다면 1962년 자동차공업 보호법이라고 국내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전면 수입을 금지했다. 1970년대에 한국 자동차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과 합작을 했는데, 당시 박정희 정부에서는 2년 안에 독자모델 개발 못하면 합작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허가 취소를 안 받으려고 기를 쓰며 현대자동차가 개발했던 자체모델이 '포니'였다. 이렇게 1975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자동차 모델이 탄생했으며 산유국 에콰도르를 수출 전략지로 발판 삼으며 해외 수출의 시대를 열었다.
그렇게 정부는 1988년까지 개발주의 모델을 바탕으로 외국차 수입을 전면 금지하며 동시에 국내 기업에 수출 보조금과 연구 개발 지원비를 아낌없이 투자하며 세계 굴지의 기업을 여러 개 탄생시켰다. 또한 경제가 발전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인식도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경제의 발전이 사회를 변화시켰다. 그렇게 자본주의 황금기인 1960~1990년대 초까지 약 30년 동안 유례없는 고도의 성장기를 맞이했으며 당시 선진국의 연평균 성장률이 3~4% 수준이었으면 한국은 연간 7%씩 성장했으며, 10년 만에 1인당 소득 수준이 2배 이상 크게 증가했고, 실업률은 2.4% 수준으로 고용의 안정성 또한 좋았다.
물론 초고속 성장에 따른 폐해도 굉장히 많았다. 당시 하루 16시간씩 혹사하며 장시간의 노동을 감내했으며 작업장에서는 폭력이 빈번했다고 했다고 한다. 압축성장에 따른 부작용이 많았던 것이다.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던 60~90년대 시기에 빈부격차가 심해지지 않았냐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오해이다. 60년대 터 80년대 초반까지 소득분배 불평등도가 약간 증가했으나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노동 임금도 같이 오르면서 소득분배가 평등해졌다.
불평등도 심화되기 시작했던 시기는 2000년대 초반 외환위기 이후 금융 규제 완화와 자유화 시행부터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약자를 위한 경제 규제가 강했는데 예를 들어서 1949년에는 농지개혁법이라고 소농들을 보호하기 위해 농지의 소유 한도를 엄격히 제한했으며 농산물 수입 또한 규제했다. 1990년대까지 쌀 수입도 아예 금지였다.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 장치도 탄탄했는데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2006년 폐지)라고 큰 기술력이 필요 없는 중소기업들의 산업 분야에 대기업 진입을 금지시켰다. 1990년대까지 대규모 점포도 정부의 허가 후 입점 가능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규제 완화로 보호 장치가 제거되었고 이후 대형 체인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로서 대한민국은 2020년 8월 기준 OECD 국가 중 전체 상대 빈곤율 3위, 소득불평등도가 높은 나라 7위가 되어버렸다.
사회주의적 요소를 흡수하며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경험했음에도 자유시장주의가 다시 주류가 된 이유는 오일쇼크를 겪으면 서다.
1973년 산유국들이 가격 담합을 하면서 원유갑이 4배 폭등했다. 그리고 1979년에 한차례 더 폭등하며 경제 불황 속에서도 물가가 10~15%씩 성장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때 혼합경제에 대한 의심으로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등장했다.
"정부의 무분별한 지출이 공항을 초래했다"라며 미국에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이라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가 나타났으며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즉 규제 없는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학의 주류가 되었다.
사실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부자들을 착취하는 정책을 만들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이와 달리 혼합경제를 경험하고 나타난 신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노골적으로 반대하지 않지만 민주주의보다 경제적 자유를 우선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영국 보수당 대표 마가렛 대처 수장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의 책을 꺼내 들며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1979년에 대처 수상이 집권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행했으며 대표적으로 공기업 민영화, 복지 지출 삭감, 고소득자 소득세율 감면을 실시했으며, 물가를 잡는다고 이자율을 올려 1984년에 실업자가 350만 명으로 증가했던 적이 있었다. 높은 이자율에 매혹되어 외국 자본을 유치할 수 있었지만 파운드화의 가치가 떨어져 영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파괴되기도 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때가 영국 경제가 진통을 겪었던 시기였으며 영국의 제조업 몰락과 빈북겨차,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겪었다고 말했다.
1981년 레이건 집권 시기에 미국도 신자유주의를 신봉했다. 약 70%였던 소득세율을 28%로 감면하며 파이의 큰 조각을 부자한테 주면 부자가 전체 파이를 키워 가난한 사람들의 파이도 덩달아 커진다는 가설인 낙수효과(Trickle-down)를 기대했다.
이론적으로 말이 안 되진 않지만 문제는 실제로 그러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1980년대 아래 신자유주의 개혁이 시작되고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하락했는데 이유는 부유층이 파이를 독식하고 재투자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건부로 그 돈을 어떻게 쓸 건지 투자 성과에 대한 조건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가들은 근로자들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고 임금을 동결시켰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부자들은 더 줘야지 열심히 일하고, 가난한 자들은 덜 줘야 열심히 일한다는 이상한 이론이었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부자이니까 부자들에게 유리했던 정책을 펼쳤던 것) 결국 모든 경제 정책들은 정치적으로 결정되며 규칙이 잘 정해져야지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것이다.
자유의 이면으로 1905년에 미국 뉴욕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당시 하루 15시간 제빵 노동자들이 과도하게 노동하자 뉴욕주에서는 하루 10시간을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제빵 업자들은 대법원에 뉴욕주를 고소했으며 '노동자들의 일할 자유를 뺐었다,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 헌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결국 노동시간 규제는 위헌 판결 나며 제빵 업자들이 승소했다.
하지만 그 자유의 이면에는 15시간 동안 노동 착취를 당할 자유도 있다. 물론 그곳에서 일을 안 할 자유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선택지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하루 15시간씩 일하는 빵 공장, 안전장비 없이 독극물을 취급하는 공장 등 굶어 죽지 않으려고 나쁜 직업이라도 얻게 됐을 때 그 자유가 진정한 자유인지 생각해 봄직하다.
어디까지가 시장의 범위인가? 불과 몇백 년 전에는 노예 제도를 통해 사람도 시장에서 사고 팔렸으며 5~6세 아동 노동도 성행했다. 이러한 제도를 금지하려면 계약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반발했고, 결국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아동 노동 금지와 노예제가 폐지 됐다. 이는 경제 이론에 따른 판단이 아닌 사회의 도덕적, 정치적 판단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19세기 전까지 경제학은 정치 경제학(political economy)라고 불리었다. 이유는 정치적 판단으로 시장의 경계가 그어졌으며 정치적 결정으로 제도가 바뀐 수많은 사례가 있다.
시장에서는 1원이 1표이며 돈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때문에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 1원이 1표가 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199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로 퍼졌으나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로 미국의 두 핵심 은행이 파산했다. 잡값 거품의 붕괴로 대출금 회수가 불능한 사태였는데 하이태그가 틀렸고 케인스가 옳았던 것일까? 이는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실감할 수 있는 계기였으며 자본주의는 다시 방향성을 잃었다.
코로나 시기 때 정부는 재정 지출이 아닌 중앙은행 이자율을 대폭 인화하는 양적 완화의 방식으로 무작정 돈을 찍어냈다. 문제는 그 돈이 흘러간 곳은 주식 시장과 부동산으로 각국이 지출한 돈이 투기 거품만 만들었던 상황이었다. 이번 경제 침채를 통해 우리는 나아갈 길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안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전할 수 없다.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보편적 복지를 강화되어야 하지만 복지는 공짜가 아닌 모두가 공동구매하는 사회 보험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복지 지출이 늘면 재정이 위험해지지 않을지 우려하는 분위기가 다소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복지 국가인 독일 스웨덴 프랑스는 복지 지출 이전에 미국보다 소득분배가 불평등했다. 하지만 재분배 제도를 통해 불평등을 해소해 나아갔다.
2019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복지 지출은 미국보다도 낮은 12% 수준인데 OECD 37개국 중 34위로 복지 지출이 하위권이다. OECD 평균치인 20%까지 올리려면 GDP 7%에 해당하는 돈을 더 써야 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따라잡는 것은 힘들기에 경제 발전 5개년 계획처럼 30년 정도 잡고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재정 상태는 선진국 대비 꽤 양호한 수준이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보면 선진국 중에서 부채 비율이 낮은 5~10위 권으로 꽤 건전한 편이다.
오죽하면 OECD에서 한국 정부에게 채권을 발행해서 복지지출을 좀 늘리라고 말할 정도이다. 돈을 안 쓰는 것은 좋고 빚을 내는 것은 나쁘다는 자린고비 경제학은 전 자본주의적 사고다. 진정한 자본주의적 사고란 돈을 빌리고 투자해서 생산성을 높여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부채에 대한 다른 시각이 필요한 시기이며 재정 긴축에서 재정 확대로 정부의 부채와 공공 지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때로는 필요하다. 만약 국가가 채권을 발행해서 시민들이 새 기술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사람에게 투자한다면 사회에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경제학에 절대 반지란 없고 모든 경제 이론마다 강점과 약점이 공존한다. 때문에 경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이 유의미하며 자유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