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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래미 Oct 12. 2023

사업과 예술성의 균형 잡기 <픽사, 위대한 도약>

Written by 클래미

들어가기 전,


<픽사, 위대한 도약>는 전 CFO '로렌스 레비'가 쓴 책입니다.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를 다시 화려하게 복귀시켜 준 것은 픽사의 성공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픽사의 초기 모습은 매우 초라했는데요. 명확한 수익 모델과 사업 계획도 없이 매달 스티브가 개인 수표로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줄 정도로 재정 상황이 열악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스티브는 어떻게든 본인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하루빨리 픽사를 상장시키길 원했고 이를 도와줄 사람으로 실리콘 밸리 출신의 변호사 로렌스를 CFO로 스카웃을 합니다.


알면 알수록 픽사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로렌스는 스티브의 제안을 거절할지 수차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스티브와 일하는 일생의 기회와 가족 영화를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결국 입사를 합니다.


롤러코스터 같은 2년의 여정 끝에 픽사는 성공적으로 상장을 했고 추후 디즈니에 높은 가격으로 매각되었습니다. 그 과정이 매우 곤욕스러웠기에 책을 읽으면서 꿈을 키워야 할지 좌절감을 느껴야 할지 혼돈이 있을 정도였는데요.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스티브와 로렌스가 하나씩 부딪혀 가면서 어쩔 땐 운에 기대어 나가는 모습에 왠지 모를 동질감과 위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가 고민한 전략과 생각은 꽤 도움이 되는 것 같았고 멋진 영화 한 편을 본다는 마음으로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픽사의 초기 : 어느 스타트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로렌스가 스티브의 전화를 받으면서 픽사의 상장을 위해 함께 일해보자는 이야기로 책은 시작된다. 로렌스는 변호사로서 기업의 상장을 도와주는 업무를 맡고 있었고 스티브는 비록 애플에서 쫓겨났지만 여전히 실리콘 벨리의 핫스타였다. 로렌스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스티브가 말하는 픽사가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 사무실을 방문하기로 했다.


픽사의 사무실은 혁신의 이미지와 다소 거리가 먼 어느 정유 공장 앞 허름한 건물에 위치했다. 그곳의 담당자들은 사무실을 구경시켜 주었고 작은 상영실로 데려가 제작 중인 첫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 <토이 스토리>의 시작 부분을 보여주었다. 로렌스는 엄청난 창의력과 기술력에 매료되었고 결국 스티브의 입사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입사 이후 픽사의 문제점을 하나씩 발견되기 시작했다.

(스톡 옵션)
스티브는 스톡 옵션을 나눠주겠다며 유능한 직원들을 붙잡아두었지만 정작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그들은 픽사에 대한 애정으로 남아있었지만 스티브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은 상태였다.

(수익 모델)
명확한 수익 모델과 사업 계획 없이 비용 지출이 너무 컸다. 원래 스티브가 픽사를 인수하게 된 배경도 그가 하드웨어 사업에 투자하길 원했고 당시 픽사가 고가의 영상 처리 컴퓨터를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은 단지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는데 인수 이후 하드웨어 사업부가 문을 닫게 되면서 스티브의 초기 비전에서 많이 멀어지게 된 거였다. 스티브도 지난 10여 년간 개인 자금으로 이미 5천만 달러(약 670억 원)를 투자한 상황이었기에 이에 대한 피로도가 높았다.


"처해 있는 상황은 엉망이었지만 ... 중요한 것은 다음 말을 어디에 놓느냐였다. - pg 82


로렌스는 회사 상장 위해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했다.


2. IPO로 가는 길 : 어둠 속에서 불가능에 도전하다


우선 수익 모델을 개선하기 위해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정리하고 핵심 역량에 집중하기로 했다. 당시 픽사가 하던 사업은 크게 4가지가 있었다 : 1) 렌더맨 소프트웨어 판매, 2) 애니메이션 광고 제작, 3) 단편 영화 제작, 4) 장편 영화 제작.


렌더맨 소프트웨어는 너무 니치한 시장이기에 성장성에 한계가 있었고, 애니메이션 광고는 수익성이 낮았다. 이로서 로렌스는 위 두 가지 사업을 축소하고 영화 제작에 몰두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스티브와 로렌스 모두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해 문외한이었다는 것.


월스트리트를 설득하기 위해 창작 전략만큼 재무 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했다. 그러려면 유통사/마케팅/제작사와의 수익 분배 요율을 파악했어야 했는데 할리우드가 워낙 보수적이다 보니 모든 데이터가 대외비였다. 결국 건너 건너 틀을 잡을 수 있는 실사용 샘플 문서를 공유받을 수 있었고 엉성하지만 픽사만의 애니메이션용 재무 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스톡 옥션 문제도 해결이 필요했다. 스티브는 애초에 직원들과 스톡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고 매우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에 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로렌스는 지금까지 희생한 직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스톡 옵션 배분이 필요하다고 스티브를 거듭 설득했고 결국 직원들에게 주식 할당량을 조금 늘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상장을 하려면 투자은행의 주관이 필요한데 스티브가 원하는 골드만삭스나 JP모건은 들쑥날쑥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특성상 리스크 때문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로렌스는 기존에 알던 부티크 투자은행을 끌어드렸지만 대형 투자은행이 아니다 보니 스티브를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어딜 가나 대표와 파트너를 중재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스티브는 굉장히 무리한 요구를 하였는데 대표 파트너께 2주간의 로드쇼에 참석하길 요청했다. 로드쇼는 잠재 투자사를 만나서 세일즈를 하는 일인데 고된 업무량 때문에 대표 파트너가 직접 참석하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투자은행 측에서 이를 받아들였고 슬슬 상장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다.


픽사의 상장 시점을 언제로 할지 논의가 필요했는데, 최종적으로 토이 스토리 시사회 이후로 정했다. 사실 로렌스는 토이 스토리가 평단에 좋지 못한 반응을 얻을 경우 그대로 주가에 반영될 수 있기에 그전에 상장하길 원했지만 스티브가 밀어붙였다. 결국 토이 스토리의 반응으로 회사의 운명이 결정되는 셈이었다.


다행히도 토이 스토리는 시사회에서 많은 호평을 얻었다. 반응에 힘입어 픽사는 상장 직후 높은 주가를 기록하였고, 토이 스토리의 박스오피스 성적은 당시 애니메이션 최고 성적이었던 디즈니의 알라딘을 제쳤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렇게 픽사의 등장은 굉장히 강렬했고 스티브는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하였다.


3. 지속적인 성장을 꿈꾸다 : 단독 브랜딩과 수익성


픽사는 기업으로서 토이 스토리의 성공 하나만으로 안주할 수 없었다. 상장 회사로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줘야 하는데 문제는 초기에 디즈니와 체결한 계약에 있었다. 토이 스토리를 포함하여 총 5편에 대해 디즈니가 제작비를 부담하는 대신 픽사에 대한 수익 분배 요율이 매우 저조하게 책정되어 있었다. 또한 브랜딩도 픽사가 아닌 디즈니로 표기되어 픽사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릴 수 없었다. 예전에는 픽사의 자금난 때문에 어쩔 수 없었으나 상장 후 충분한 자금이 모였기에 지금이라도 계약을 재협상하는 게 중요했다. 아니면 지금처럼 주식이 고평가 된 상황에서 언제든지 곤두박질 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디즈니의 입장에서든 재협상을 위한 의무나 니즈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픽사는 디즈니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디즈니의 라이벌인 드림웍스를 끌어드려 그들의 협상력을 강화하였다. (지금 재계약하지 않으면 계약이 끝나고 라이벌과 손을 잡겠다는 식이다) 결국 비용은 함께 부담하되 수익 분배 요율을 50대 50까지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디즈니와의 재협상은 이뤄졌고 디즈니·픽사라는 코브랜딩으로 영화뿐만 아니라 굿즈 상품까지 모두 라벨링 하기로 했다. 자존심 센 디즈니가 가장 눈에 띄는 자리를 픽사와 공유하기로 동의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었다.


이후 픽사는 벅스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등 연속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픽사의 주가는 계속 높아졌다. 스티브 잡스도 픽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안착하자 애플로 복귀해 한창 새로운 제품 개발에 집중하였다. 이 시점 로렌스는 픽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사업을 다각화하거나 더 큰 회사에 매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마침 애니메이션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디즈니의 CEO가 바뀌면서 2006년에 디즈니는 픽사를 인수하게 되었다. 당시 픽사는 창작에 대한 권한을 경영진이 아닌 창작팀에서 전담하였는데 의외로 할리우드에서는 사업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경영진이 스토리를 리뷰하는 프로세스가 있었다고 한다. 로렌스는 픽사의 창의성을 지키기 위해 픽사의 문화가 보존될 수 있길 노력했고 디즈니 측에선 오히려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로렌스는 픽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고 판단했고 안식년을 갖게 되었다. 그는 스티브 잡스처럼 동양 철학과 선불교 사상에 관심이 많아 관련된 수련과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픽사의 성공 비결을 '중도'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픽사에서 온갖 위험들을 감수하며 예술성과 사업 전략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썼잖아. 그게 바로 중도의 사상을 보여 주는 사례였어. ... 우리는 비즈니스 원칙을 존중하면서 창의성, 존엄성, 인간다움을 장려하는 매우 특별한 조직을 구축할 수 있다. 단지 세심한 조율이 필요할 뿐이다. 관료체제와 깊고 미묘한 창의적 영감 사이에서 기꺼이 균형을 맞출 의지가 있어야 하고, 기업 활동의 인간적 차원을 인식해야 한다. ... 픽사의 경우 그랬던 것처럼, 중도는 우리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 pg 352


이 책의 부제가 '크리에이티브의 불확실성이 기회가 되기까지'인 이유를 알게 하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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