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순간

광진구 백일장 장원

by 로샤


살면서 아름다운 순간이 행복으로 반추될 수 있다면 죽어서의 아름다운 순간은 어떤 의미로 유추될 수 있을까?


1943년 출생인 나의 엄마는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 속을 온몸으로 지나온 지난한 세대이다. 우선 전쟁이 그랬고 뿌리 깊은 유교사상의 남아선호 사상이 그랬다. 1남 7녀의 장녀이기까지 해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어이없는 세대의 당연한 의무를 태어나자마자 짊어진 보릿고개 중에서도 더더 가난했던 보릿고개집의 첫째였다.


그런 엄마의 청춘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였을까? 아니 있기는 했을까?


똑똑한 여성이었지만 아들인 남동생은 꼭 대학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부모님의 엄포와 동생들의 케어에 학교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공장에 다니며 허드렛일로 일곱 동생을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본인의 인생은 없었다. 그런 그녀가 결혼으로 잠시 가난을 피해 그 짐을 벗어나나 했지만 급작스런 남편의 교통사고로 어린 4남매를 홀로 키우며 더 가난한 삶 속으로 들어갔다.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 솜잠바 하나로 버티고 길거리 과일 리어카로 행상을 하며 4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학교를 보내면서도 우린 늘 주린배였고 그런 엄마를 지켜보는 딸에게 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순간이란 요원하기만 했다.


가난은 다음 세대에게도 질긴 연결고리를 갖게 되고


엄마와 우리 가족이 행복해지기를 바랐지만 아름다운 순간보다는 마려웠던 순간이 더 지배적이었던 삶인 것 같다.


그런 그녀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랬다. 어렵게 키운 그녀의 자식들에게 엄마의 투병생활이 짐이 될까 봐 끝까지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하고 겉으로는 전혀 아픔을 내색하지 않았으며 온몸으로 암과 사투하며 그 고통을 홀로 겪어내 죽음 속으로 더 빨리 걸어 들어가고자 했다. 그렇게 엄마의 의지대로 서둘러 가셨다.


아직도 가난의 카테고리 속에서 연대 중인 주변인들은 엄마의 장례식을 초라하게 아니 정확하게는 비용을 적게 들여하라고 재촉했다.


엄마의 生을 자식으로서 아름다운 순간을 많이 만들어 드리진 못했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은 절대 초라하면 안 됐다. 1월의 최강 추위 속에 외롭게 가시는 길이고 어쩌면 현생에서건 이생에서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다.


나는 예약가능한 장례식에서 제일 비싼 vip실로 엄마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살아생전 주위사람 배곯을까 밥 해 먹이는 걸 좋아했던 엄마를 위해 음식도 최대 가짓수로 추가해서 문상객들을 정성껏 대접했다.


안다. 살아서 잘했어야지 돌아가신 후 이런 허례가 무슨 소용이냐고!!!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엄마에 대한 최선은 이것밖에 없었다.


vip실에서 최고로 화려한 꽃으로 곱게 장식된 꽃 속에 쌓인 영정사진 속의 곱디고운 엄마가 환하게 웃고 계신다. 평생을 주연이지 못한 조연처럼 조력했던 그녀의 삶에 마지막이나마 주인공 일수 있는 장례식이다. 부족한 딸이 해드릴 수 있는 엄마의 vip실이 장례식이나마 '아름다운 순간'이길 바랐다.


나는 요즘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 글로써 엄마의 아름다운 순간을 토렴 해내는 지금 이 순간도 가을하늘이 내 엄마의 품처럼 그렇게 높고 넓고 따스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딸의 기억으로 글로 나는 또 한 번의 엄마의 아름다운 순간을 추억해 내고 있다.


우리 가족은 요즘 더할 나위 없는 잔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50이 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보니 알겠더라.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평온한 순간이더라고..


아름다움은 강함이 아닌 지켜 낼 수 있는 평온한 매 순간이라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매일 '아름다운 순간' 순간을 지어내며 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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