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약속

by 책방삼촌




젖은 약속


사랑 담은 사이에

영원은 손끝에 걸어도

이별을 약속하진 않더라


벼락으로 단 한번 예고하고는

경계도 없이 폭우가 쏟아진다

담벼락 아래 고양이가 젖고

지붕 없이 홀로 누운 무덤도 젖었다


처마 아래 비가 새는 기흉에 대고

거칠게 두 손을 모은다

가지 마라

아직 떠나지 마라

그 약속 받아낼 하늘이 다그친다





우리는 늘 서툴다.

약속은 맑은 날에 하고, 영원은 쉽게 입에 올린다.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듣고도 우리는 우산을 챙길 필요 없다고 믿는다.

영원이란 날씨 같은 건 아무 상관없는 거라고, 웃으며 말한다.


폭우는 예고 없이 온다.

조금만 기다리면 그칠 거라고 한다.

우리 나눈 말들이 다 젖기 전에 처마 아래로 뛰어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흠뻑 젖은 채 서 있다.

헤어짐은 예고 없는 재난으로 들이닥친다.

비는 공평하고 잔인하게 적시고, 젖은 약속은 마른 약속보다 무겁다.


우리가 나눈 것은 약속이 아니라 기도였을 것이다.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지, 지킬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비는 아직 내린다.

나는 여전히 처마 아래에서 두 손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