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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비 Oct 13. 2023

홀로서기

보미오면

° 로서기



우여곡절과 우울이 많았던 학창 시절의 막바지에 달했다.

삼 학년 담임선생님은 도덕 선생님 선도부를 담당하던 오랜 노처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개학 첫날, 반명단을 보 교실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그저 전해야 할 말 만 전달해 주고 그 이유 학생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 반에 사고뭉치 인물들이 여럿 분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학년 때, 매일 자는 보미의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 잠이 안 와도 엎드리 보미를 포함 여러 인물들이 모여있으니 우리들도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담임선생님무서운 선도부 선생님인데 어찌 전과 같을까.

 수면제를 먹으면 개운하지 않은 아침이었지만 학교를 가려고 노력했다. 등교할 때 보미 집으로 같은 반 친구를 보냈고 여차저차 등교를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보미에게 제재를 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물론 여전히 담배를 걸려서 봉사활동을 했고 이유를 만들어 방송실에서 자거나 딴짓을 하며 농땡이를 부렸지만, 대학을 준비하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보미도 길을 찾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야간 자율학습까지 잡혀있다 보니 공부도 했다. 신기하게 친구들과 같이 하는 한국 근현대사옆집 오빠 이야기하듯 인물들을 이야기하며 말장난을 했다.

"1876년 임오군란 때 무위영이랑 장어영이 화나서 시작했지..."

 이런 식의 아침 인사가 시작되 친구들끼리 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로 기억하려고 말로 계속 풀어냈는데 누가, 어떤 일들이, 몇 년도에, 어떻게 벌어졌는지 서로 말하려고 쟁했다. 왕들의 이름도 노래로 만들어 외우며 다녔는데, 그런 식으로 친구들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물론  잘할 수는 없었지만 공부 재미를 느끼며 스스로 나아갔다는 것이 특별했다. 사고뭉치들에게도 작은 변화가 생긴 것이다. 사실 공부하려고 자리를 잡으면 책상 정리하던 보미라서 공부를 못 했지만 말이다.


물론, 여전히 야자 감독 선생님이 허술한 날은  도망 나가서 놀기는 했다. 하지만 앞으로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실제로 고아원은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있을 수 있었 대학교에 진학하면 더 머무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보미는 대학원서라도 써봐야 했다.


어떤 대학교와 과를 선택해야 할지 보미는 항상 혼자해왔기 때문에 혼자 정하고 움직여야 했다. 그 상황에서 주위 친구들은 부모님과 의논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름 인생의 큰 일인데 혼자서 결정하고 움직이는 것이 서글펐다.

'나는 왜 제자리에 없는 부모 때문에 혼자 해야 할까...'

하지만 이제 보미는 알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은 모두 같을 수 없고 그냥 나는 나라는 사실을...





고등학교 삼 학년 이학기,

아빠의 부재중 전화는 까맣게 잊은 채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도망 나와 친구들과 시내를 나가려고 꾸미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걸려온 아빠의 전화. 원래는 부재중이면 다음에나 전화하던 아빠였는데 다시 걸려오는 전화에 느낌이 이상했다.

'이상하다...?'


그리고 전해 들은 이야기는 천벽력 같았고 바로 울음이 터져 나왔고 무너졌다.

'보미야...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지금 의료원 장례식장으로 온나...'


몸이 좋지 않아 다섯 살인 보미를 보육원에 맡기고 홀로 시골 생활을 하신 할머니. 후로 중학생 때 중풍이 오셔서 병원생활을 시작하셨다. (지금으로 말하면 뇌졸중인데 그 시절엔 중풍이라고 했다.) 시내 인근에 위치한 병원이라 한 번씩 들렸는데, 풍채가 좋았던 할머니가 홀쭉해진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나에는 보미를 못 알아보셔서 아빠 딸이라고 말을 해야 했다. 보미를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바로 터져버린 울음과 덜덜 떨리던 몸은 감당할 수 없었고, 함께 있던 친구들의 케어를 받으며 바로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정신을 차릴 수 없던 보미를 챙기며 함께해 준 친구들이 정말 고마웠다.


 영정사진 속의 할머니를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어서, 사진만 멍하니 보았다. 당장에 존재를 확인하고 싶으나 확인할 길이 없으니 영정사진만 계속 보았다.

'내 할머니... 할머니... 앞에 차려진 음식들을 먹지도 못하는데 차려놓으면 뭐 하나...'

보미는 이제 만질 수 없는 할머니가 믿기지가 않았다. 어른들은 장례식장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 이상했다. 원래 장례를 치를 때엔 웃기도 해야 편히 가신다는데 보미는 다시 못 본다는 생각에 슬퍼만 했다.  슬퍼만 했다.

 마지막 날에 할머니를 묻기 위해 큰 버스를 타고 시골로 다. 관을 꺼낼 때 숨이 턱 막혀서 가슴을 수차례 쳐야 했다. 그리고 화려한 마차에 관을 태워 성인 네 명이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가족들과 할머니를 뒤따랐는데 보미를 보고 시골 어르신들은 한 마디씩 하셨다.


"보미 보고파서 우예 가노~"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묻는 곳은 생각 이상으로 깊이 파였.

'저렇게 깊이 묻으면 춥지는 않을까...'

'무섭진 않을까...'

'큰할머니는 할아버지랑 같이 계시는데 우리 할머니는 혼자 둔다고 화내지 않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땅 깊숙이 관을 넣고 흙으로 덮는데 이제는 정말 이 세상에 머니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정말 못 보고 못 만진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다.

'할매... 아프지 말고 잘 계셔~ 나 보러 꿈에도 와야 돼...'


'자식들이 슬프지 손녀인 내가 더 슬플 일인가?'라고 생각했지만 보미에게부모와 같은 존재이자 부모의 따뜻함을 할머니에게서나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커서 생각하니 '어린 보미가 클 때까지 기다려 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부터 몸이 좋지 않던 할머니였는 보미가 고등학교 삼 학년이 되어서야 가셨으니 말이다.


모든 일이 끝이 나고 가족들과 할머니 집에 모여 이것저것 정리를 했다. 보미는 진이 빠져 힘없이 앉아있는데, 여태 보지 못했던 아빠의 결혼식 사진들이 나왔다. 당연히 아빠는 필요 없었고 다른 가족들이 보미에게 전해주었다. 잊어버렸던 친모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눈만 동글하니 컸고 키도 작았다. 그냥 철저히 '나를 낳아준 인간'을 바탕으로 밉다가도 그리웠다. 그리워한 것도 철없던 아이의 감정에서나 남아있던 마음이었다.




 삼 학년 일 학기에 내신으로 넣은 대학들이 합격을 했다.

 명한 대학은 아니었지만 손재주 좋은 능력으로 '시각디자인과'와 방송부에서 영상 편집하며 상 받던 실력을 살려 '영상 연출과'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이지만 최종 면접까지 본 후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첫 등록금은 직접 내야 다음부터는 보육원에서 지원해 주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늦게 알아서 당장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다. 대학 간 언니, 오빠들은 장학금을 어떻게 받은 건지 보미한테 주기 싫어서 이런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당장 돈이 급했다.


 아르바이트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신문에 나온 공고를 보고 공장일을 시작했다. 일 학기 대학에 붙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일한다고 빠질 수 있었다. 

야간 일이었는데 저녁에 정해진 장소에 모여있으면 봉고차가 와서 공장으로 들어갔다. 처음 해보는 공장일은 핸드폰 조립하는 라인이었다. 입실 전에 입는 방진복부터 여러 번 몸의 먼지를 터는 에어샤워도 작업할 때 정전기 방지를 위해 끼는 어슬링도 생소했다. 초록색 라인을 따라 내려오는 물품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어색하고 어려웠다. 보미가 못하면 다음 사람에게 넘어갔지만 그래도 해당 양은 해내고 싶어서 얼마나 빨리 움직이려 했는지 모다.

 십 분의 짧은 쉬는 시간에는 후다닥 흡연실로 가서 담배를 피우고 다시 라인일을 했다. 미성년자인 걸 알지만 아무도 담배 피우는 것을 터치하진 않았다. 흡연실에 부모님 뻘 되는 어른들도 있었는데 미성년자인 보미에게 언니라 부르라고 했다. 딱 봐도 아빠보다 많아 보이는데 쉽사리 나오지는 않았고 그냥 이모라고 불렀다. 자꾸 언니라고 하라는 이모들에게 "아빠보다 많아서 나오지가 않는데 우째 언니라 캐요~ " 하며 너스레 떠는 보미를 밉게 보지 않았다.

 한 달이 넘다 보니 여러 공정을 할 수 있었고, 빈자리를 메꾸는 작업도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젊은 조장 언니가 보미를 예뻐했다. 일주일에 네 번 정도 나갔는데 협력업체의 협력업체를 통한 취직이라 중간에 떼이는 돈이 많아서인지 실수령액은 적었다.


 입학금은 냈지만 등록금이 사십만 원 정도가 모자라서 처음으로 아빠에게 부탁했다. 그 정도는 없어도 대출을 받기에 크지 않으니 도움을 청하면 될 줄 알았다. '태어나서 돈 달라고 해본 적 없던 딸인데 해주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다. 정말 고아가 아닌 아버지는 있으니까.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멋쩍게 웃으며 수중에 돈도 없고 신용불량자라 대출도 안된다는 것이다. 십 년이 넘은 건강보험 고지서들과 이것저것 내야 할 고지서들이 자꾸 날아오는 이유가 신용불량자였다니... 내가 처리할 돈은 아니라는 생각에 크게 신경 안 썼는데... 

 그래서 직접 학자금 대출을 받겠다고 등본을 떼어 은행으로 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말은 부모가 신용불량자라 학자금 대출은 어렵다는 말이었다. 

 아빠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나를 키워주지도 않았으면, 적어도 방해는 안 해야지!!!' 세상에 있는 있는 , 없는 욕 다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우리를 키우지도 않아 놓고 나쁜 짓을 했던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뭘 하고 살아야 신용불량자 일수 있는지... 이 세상에 믿고 기댈 구석 하나 없는 스스로가 너무 불쌍했다.




 입학금만 낸 대학은 등록 기간이 지나버렸고, 보미의 대학은 날아가 버렸다. 상상했던 대학생활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리고 졸업 후 바로 보육원에서 짐을 싸서 나와 인근에 있는 아빠에게로 왔다.





'뭐 먹고살지?'


 당장은 공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이 금액을 받으면서 계속 다닐 수는 없었다.


 대기업 원서를 접수해 보라는 보육원 선생님의 말에 무작정 이력서를 넣었다. 출결이 엉망이라 처음에는 서류에서 떨어졌지만 다시 원서를 접수고 대기업에서 봉사 나오시던 분을 통 1차 서류는 합격할 수 있었다.




보미의 모든 것을 아는 이 지역에서 멀어지고 싶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으면 해서 가까운 구미사업장을 두고 아산 탕정 사업장으로 지원했다. 출결이 문제라서 뽑히면 '감사합니다!!'하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마음이 전부였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좁은 이 지역은 구역질이 났고,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존재는 하지만 도움은 안 되는 보호자도 싫었고 보미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이 싫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천안으로 가는 법과 면접을 어떻게 보는지 공부했다. 주위에서 들은 바가 없으니 믿을 거라고는 인터넷밖에 없었다.


 면접을 보는 기업은 시설이나 건물들이 엄청 빛났고 모든 것이 멋있어 보였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면접생들 보며  떨어질 생각도 어느 정도 해두었다. 진짜 탈락 후에 오는 허탈함을 달래기 위해서 항상 하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었다.



 일반 지원자들에 비해 출결이 안 좋은 보미는 생각대로 대면 면접에서 출결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동안 연습한 대로 진심으로 대답했다.


"어릴 때 다 놀아봐서 이제는 일하며 돈 버는 것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자급자족해야 하니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



 목소리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다행히 보대기업에 합격했고, 입사 전까지 돈 걱정 없이 있을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돈 걱정 안 하고 산 적이 없었는데, 직업이 생겼으니 마음만은 편안했다.


그리고 보미는 다른 지역으로 날아가 버릴 수 있었다.








 더 큰 세상에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청소년기의 외로움과 괴로움은 감히 넘을 수 없을 만큼 무겁고 침울했다.


 이 세상에 많은 고아들을 비롯한 버팀목 없는 아이들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우선 살아보자. 누가 언제 어디서  보아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보자. 단, 버틸 곳 없으니 고집 있게, 단단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 괴로운 건 너뿐만이 아니란다. 더 살아보니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도 있더라. 우리가 알지 못한 세상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어. 얘들아, 살아내 보자.


어린 보미야... 잘 버티고 살아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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