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한 동네 선배가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렵지 않게 담배를 살 수 있었다.
간이 부은 어느 날이었다.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간다고 하면서 담배 한 까치와 라이터 그리고 나무젓가락을 들고 나왔다. 뜯지 않은 나무젓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면, 손가락에 냄새가 나지 않고 피울 수 있었다.
우선냄새의 노출이 적더록 화장실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담배를 나무젓가락에 끼웠다. 그다음에는 변기통의 물 내려가는 밸브를 밟고, 화변기에 머리를 박고 불을 붙였다.
화변기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쿵쾅 거렸지만, 담배의 몇 모금을 멈출 수 없었다.체력장에서 유연성 테스트는 항상 끝까지 밀어 넣어항상 A를 받았었는데, 그 재능을 이런 데다 쓰다니...라는 웃긴 생각을 했다.내뿜는 연기는 변기통의물과 함께 계속 내려갔고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릴 때면 '버릴까?' 생각이 들면서도 꽁초가 될 때까지 버리지 못했다.
마지막 깊은 한 모금으로 꽁초를 내려버리고도 냄새가 없어지도록 조금 더 밟고 있었다. 그다음 화장실에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지 귀 기울인다.조용해진 화장실이 되면 빠른 걸음으로나왔다.
마치기 십 분 전에 화장실을 나왔기 때문에, 교실로 돌아오면 거의 수업 마치는 종이 울렸다.보미의 주위 친구들은 미쳤다는 표정과 함께 찰싹 아프지 않게 한 대씩 때렸다.
화장실은 미세하게 퍼진 담배 냄새가 걸렸을까 봐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담배 하나를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산을 했는지 모르겠다.이렇게 잔머리 굴리는 식으로 공부를 했다면 참 잘했을 텐데...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항상 안 걸릴 수는 없었다.
사립 여자고등학교여서 선생님들 역시 십 년 이상 계신 분들이셨고, 어디에 어떻게 숨기는지도 빠삭하게 알고 계셨다. 심지어 브래지어 안쪽으로 숨긴 한 까치마저 찾아내셨다.
그런 선생님들을 속이기 위해 볼펜 내부에 있는 볼펜심과 용수철을 빼내고 담배 한 까치를 숨기기도 하고, 가방에 덧대어진 면을 찢어 숨기기도 했다. 얼마나 숨기기에 진심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일 년에 한 번씩은 걸려서 벌점을 받았고, 봉사활동을 했다. 봉사활동 기간에는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고하루 종일 청소만 한다. 화장실부터 시작해서 강당, 유리창, 복도, 과학실, 음악실, 학교 밖 쓰레기 줍기 등등.
교무실 청소를 할 때면 모든 선생님들의 훈계를 귀 따갑도록 들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낼 준비를 하고 입장했기에 큰 타격은 없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얌전히 하지 않았다.
방송부였던 보미는 방송실 열쇠가 있어서 들어가 자거나 컴퓨터를 하기도 했고, 근처에 부모님이랑 따로 사는 후배 녀석의 집으로 가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쓰레기 주우면서 얼마나 많은 꽁초들을 주워 피웠는지... 1cm, 2cm만 남아있으면 냅다 주워 피웠다. 어릴 적 주워 먹었던 과자가 깨끗해 보일 지경이었다.
한 날은 야간 자율학습을 도망 나와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니터 위로 담임선생님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람과 동시에 재떨이를 숨긴다고 얼마나 아무 말을 했는지 모른다.이미 피시방은 걸린 마당에 담배까지 걸릴 까봐 우선 숨기는 것이 먼저였다. 선생님과 말하면서 손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재떨이를 본체 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날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음을, 재떨이가 걸리지 않음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보미의아빠도 보미가 담배 피우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고아원으로 연락이 갔고 아빠에게도 역시 연락이 갔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보미가 놔둔 담뱃갑을 마주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크게 뭐라 하지 못했다.
"무슨... 이런... 담배를 피나.. "
아마 보살피지 않는 입장에서 보미를 혼내지 못한 것 같았다. 혼을 낼 입장이 아닌 걸 알았을 것이다. 뭐라 했다면 나를 왜 버려뒀냐고 원망을 한 움큼 뱉어낼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담배는 끊고 싶은데 못 끊는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하던지 모른다. 태우러 나가는 것도 싫었고, 나한테서 나는 담배 냄새도 싫었는데, 습관이 되어버린 이 행동을 멈추지 못하는 스스로가 싫었다.그냥 습관처럼 화장실 가듯 당연하게 피워야 했다.
보미의 학창 시절은
누가 때리면 맞으면 됐고, 욕하면 싸우거나 흘리면 그만이었다. 담배를 피워서 일찍 죽으면 땡큐였고, 어쩌다 사고 나서 죽어도 좋았다. 그냥 죽을 수 없어서 사는 삶이었다.
커서도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이 시기만큼 마음과 정신이 괴로운 적은 없었다.
보미가 살던 작은 도시에 보육원이 세 개나 있는 것처럼, 다른 도시에는 더 많겠다고 생각했다.이렇게 안 키우고 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도대체 왜 임신을 하는지, 책임감 없는 게 아닌지 항상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결혼 같은 건 안 해'
어렸을 때부터보미의 삶이 괴로웠기 때문인지, 나 같은 건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힘든 세상에 낳아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았고책임을 져야 할 그 어떤 것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혹시 커서 아이가 키우고 싶거든, 보육원에서 입양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빠, 엄마가 모두 있어야 하고, 직업과 자본도 충족해야 한다는 절차는 생각하지 않고,그저버림받은 아이를 키우겠다는 의지만 있었다.
친구들의 부모님들도 싸운다는 이야기와 때린다는 이야기만 들어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중학생 때는학교로 찾아와서 때리던 아빠와 별의별 난동 있던 친구들을 보며 '없는 게 마음 편한데?'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그래서 보미는 연애를 끊임없이 했다. 결혼이 아닌 연애만 하고 살겠다는 생각이었고, 찾지 않아도 보미를 좋아해 주는 이는 많았다.
중학교 일 학년부터 연애를 시작하면서 혼자인 기간이 한 달을 넘긴 적이 없다. 계속해서 구애하는 남자들에 그저 '누가 나랑 말이 잘 통할까?', '누가 나랑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제발 얼굴 좀 보고 만나라고 할 정도였다.
보미가 사랑받지 못해서인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좋았다. 재미있게 연애하고 좋아하다가 콩깍지가 벗겨지면 헤어지는 건 같았다.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이 있었는데, 예외인 사람이 있었다.
핸드폰이 없는 보미와 연락하기 위해 누구 건지 모를 폰을 쥐여주기도 하고, 소설 다운로드해 보라며 영어사전을 주기도 했다. 무엇을 해도 소설 속 주인공같이 알콩달콩 했다가 싸우기도 하며 연애를 했다. 물론 콩깍지가 쓰여있어서좋았지만 일 년 반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식어갔다. 그래서 헤어졌고, 보미를 좋아해 주는 다른 사람을 만나 연애를 했다.
그런데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
매일같이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지 않고보미의집 창밖에서 몇 시간씩 서있는 것이 아닌가?
미안하다고, 잘하겠다고, 받아달라고...
'있을 때 잘해야지 얼마나 잘하려고 이러나...'
며칠을 반복했을까?
눈 내리던 어느 날은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려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가서 보니 열이 났고, 따뜻한 물과 함께 약을 주었다.그리고 생각했다.
'이토록 원하는데 다시 한번 만나보자!'
다시 하는 연애는 남자 친구가 참 잘했다. 하지만 소유욕이 심해져서 자신 이외의 다른 남자라면 무조건 질투하고, 경계하기 바빴다. 보미는 그것이 너무 사랑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각에 살던 친구였기 때문에저녁에는 보미와 함께하는 것이 힘들었다. 예전에는 같이 있었지만이제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려는 친구에게 떼를 쓸 수는 없었다.
남자 친구와 함께인 모임에서는 홀로 있었고, 그런 일들이 많아지면서 서운해지고 소원해졌다. 분명 남자 친구가 있음에도 혼자였고외로웠다.
결국 헤어지자고 했다.
그런데 보미가 다른 남자와 사귀는 꼴은 못 보겠다며 진상을 부리고 질척였다. 연락도 안 하면서 헤어지지 않았다는 명목 하에 그냥 남자친구 없는 듯 일상을 지냈다.
시간이 지나 보미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기고 나서야 정리가 되었다.본인은 명함도 못 내밀 친구라서 아무 말 없이 물러난 것이 참 없어 보였다. 그 친구의 그런 면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얼마나 찌질해 보이던지 모른다.
그런데 뒤늦게 보미와 사귀면서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중학생 때부터 함께한 보미의 X 언니...
심지어그 일을 아는 주변인들도 여럿 있었다는 것이 너무 짜증 났다.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느낌...
질투가 심해지고 의심을 많이 했던 것은본인이 하는 짓이라서 보미가 혹시 바람피울까 봐 그렇게도 죄였던 것이었다. 이딴 놈과 가장 예쁘고 힘든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모른다. 심지어 여러 번의 자살시도를 했을 때에도 작은 의지조차 못한 놈인데 왜 사귀었을까.
X 언니는 중학생 때부터함께한 인연인데, 어떻게 내 남자 친구와 바람을 피울 수가 있는지...남자 친구라며 소개했던 그 순간이 생각나면서 화가 났다.한 번에구남자 친구와 X 언니에게 뒤통수를 후려갈겨진 듯한 기분이었다.
소문내는 일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다. 작은 시내를 나가기만 해도 어디서든 욕먹으라는 화풀이 었다.
얼마큼 소문이 퍼졌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나다 가들 봤는데 뻔뻔 하이 잘 돌아다니대'라고 친구들을 통해 들으니,'당당히 데이트는 못 하겠구나' 생각했다.
그저 촌놈 같은 수수한 면을 좋아했을 뿐인데, 그 기억마저 쓰레기로 만든 놈이었다. 훗날에 바뀐 보미의 번호로 연락이 왔는데, 여전히 어른답지 못한 그놈에게 '내 장례식장에도 오지 마'라는 보미의 감정을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