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은비 Oct 08. 2023

비행청소년

보미오면

° 행청소년



보미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반항이란 무엇인가?' 드라마 한 편은 찍은 것 같다.


 낳아달라고 없는데 낳아놓고서는 왜 리고 이런 삶을 살게 하는지, 사는 것이 행복하지도 않은데 왜  살아가야 하는지. 너무 살아있 싫었지만 말 그대로 죽지 못해서 살았다.


하필 그 시기에 있던 보육사는 최악이었다. 방황에 허덕이는 보미를 살피기보다는 미워했다.

학교에서 전화 오고 사고만 치는 보미가 예뻐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야기 한번 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보미를 '물건보다 못한 거'라고 지칭하며, 사무실에 이르고 욕하고 소문내기 바빴다.

 어떻게 보육사 자격을 가졌는지 인정할 수가 없었다. 보육교사 자격증은 그저 돈벌이 일 뿐이라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미워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미웠고 오죽하면 임신 중인 마저 저주했다.

 물론 사고만 치는 보미에게 따뜻한 한마디 나오지 않았겠지만, 보미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어을까 생각한다.




눈을 뜨는 하루가 저주스러웠고 움직이는 순간이 힘들었다.

재미도 없고 외로운 인생을 얼마나 살아야 할까?

앞으로를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계속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친구들끼리 '살자 클럽'을 만들었다. '자살클럽'이라는 속 뜻을 숨긴 이름이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은 보미가 안고 있는 듯 모든 현실이 싫었다. 거지같이 살아도 보호자살고 싶었고 테두리가 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다. 배우고 있는 모든 것은 보육원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 필요 없고 가족과 살고 싶었다.



'이렇게 버릴 거면 왜 낳아?'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 낙태를 하지 왜 낳았어?'

'이 거지 같은 세상에 왜 혼자 살게 해?'

원망은 끝도 없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빠에게 '돈 주세요' 한마디 못 하면서, '나 좀 여기에서 빼내 줘'라는 말은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보미가 이렇게 말하면 '1년만... 1년만' 하던 아빠도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돈 없어도 좋은데 왜 데려가지 않는지 우리를 왜 버려두는지 매일 원망했다.




 그래서였을까?

 불면증과 우울증이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삼층 높이의 창문 밖 철망에 앉아 '여기에서 떨어지면 죽을까?', '내가 죽으면 모두가 슬퍼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뛰어내리겠다는 의지와는 달리 철망을 잡은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죽고는 싶은데 무서운 건 아마 그만큼의 용기가 없었던 것 아닐까. 철망을 놓지 못하는 손이 얼마나 저주스러웠는지 모른다. 매일 밤 난간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어린 보미의 마음을 온전히 보일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더 큰 세상에혼자 살아가야 하는 미래도 피곤했다. 그냥 다 끝내버리고 싶었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는 불면증으로 종합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먹었다. 자려고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생각이 많아서인지 잠 들지 않았다. 그냥 눈만 감고 누워있다가 짜증 나서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면 새벽 두 시, 세시. 잠들고 싶은데 눈만 감고 있다가 아침이 와 버렸다. 얼마나 정신이 피폐해졌는지 모른다. 처방받은 수면제는 아침을 없게 만들었다. 일어나도 내 정신이 아닌 몽롱한 상태? 삶이 삶이 아니었다.

 정말 너무너무 살기 싫었는데 자살을 하는 것은 무서웠다.

수차례 손목 그어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깊게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동맥을 그어야 하는데...

 깊게 넣어야 하는데...

  알지만 아프고 무서웠다.


 하루는 엉엉 울면서 줄넘기를 찾아 목도 졸라보았다. 아무리 세게 잡고 있어도 얼굴에 피가 차오르고 참을 숨이 없자 두 손은 풀려버렸다. 아무리 세게 잡고 있어도 풀려버렸다.

'난간에 걸고서 뛰어내릴까?'

 생각만 들뿐, 진짜 죽을까 봐 무서웠다.

 죽겠다고 하는 짓이면서 진짜로 죽을까 봐 무서운 건 무슨 일인지... 정말 죽고 싶었던 것이 맞을까?


 끝내고 싶은데 뛰어내리는 것도, 손목을 긋는 것도, 어떤 것도 무서워서 수면제를 먹었다. 어떤 방법도 용기가 나지 않아서 한 일이었다.


 한주먹을 먹었는데 꼬박 하루를 자고 일어나니 아무 일 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약을 먹어서 못 깨는 보미를 보육사가 학교로 밀어 넣었고 양호실에서 내리 잠만 잤다.


 그게 끝이었다.

 꼬박 하루를 자고 일어나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이 이어졌다.




 무서웠다는 것이, 

 괴로움을 알아주길 바란 것이

 정말 을 바란게 아닌 건가?



험했고, 외로웠다.

보듬어주는 이 하나 없는 어린 날이 불쌍했다.

매일 죽기만을 바랬던 이때가, 보미는 가장 힘들었다.

살기 싫었던 이때가, 가장 괴로웠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이 보미를 포기해 버렸다. 아무것도 한  없었지만, 보미가 보육원에 살아서였을까?

 다른 아이들은 그렇게도 때리면서, 보미는 어떤 사고를 쳐도 받아야 하는 벌점만 줄 뿐이었고 혼내거나 터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서운 것 없이 점심을 먹으러 등교를 했고, 점심 먹은 후엔 다시 학교를 나와서 방황을 했다. 말 그대로 선생님이 포기해서 보미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일명 새탈(새벽 탈출)이라 부르며 새벽에 집에서 탈출을 했다. 철문인 현관으로 나가면 소리나니까, 피아노 뒤쪽 창문으로 10cm 정도의 난간을 밟고 나갔다. 정말 위험했지만 '떨어지면 죽지 뭐?' 런 생각이었으니 무서울 것도 없었다.


 오토바이는 기아 없는 택트 스쿠터부터 배달하는 시티 100과 거의 엎드려 타는 야마하, 혼다 같은 스포츠 오토바이까지 안 타본 것이 없다. 기아 없는 건 혼자 탔는데, 기아 있는 건 어려워서 밭에 처박힌 적도 있다. 결국 기아 있는 오토바이는 남자 친구 뒷자리에만 탔다.


 여름에는 헬멧 앞을 날파리 시체로 가릴 정도였다. 날파리들도 오토바이 달리는 위치에 있다가 빠른 속도에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 오토바이에 세 명이서 타면 삼발이, 네 명이 타면 사발이라고 했는데 동네 후배가 타는 오토바이를 세 명이 타서 사발이를 했다. 어찌나 위험천만했는지...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오토바이스피커를 달아 빵빵한 음악나오게 했고, 반짝이는 불빛도 달서 보기만 해도 요란했다. 마후라를 뚫어 큰 배기음이 나게 했는데 어찌나 컸는지 주위에 있던 사람에게도 진동이 전해질 정도였다. 물론 불법이지만 어찌 그리 이 없었을까.




 스쿠터 타다가 경찰차에 쫓긴 적도 있는데 속으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뒤에서는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서라는데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잡히면 큰일 난다는 생각에 도망가기 바빴다.



"아, 빽차(경찰차)라 걸리마  되는데... "


 신호가 걸려서 잡히기 직전인 그 순간,

 중앙선에 세워진 시선 유도봉 사이로 유턴을 했다.

 시선유도봉을 넘어오지 못하는 경찰차를 보며, 이 순간을 모면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장은 터질 것 같았지만 그 상황을 벗어났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짓을 한 건지...

그때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학생들이 여럿 생긴 후로는 타지 않았다.



 하지만 끝나지 않고 대포차까지 납신다. 보미는 감히 운전해 볼 생각은 못 했지만, 남자 친구들은 겁도 없었다. 내비게이션이 없는데도 인근에 몇 개 없던 교통 카메라의 위치까지 파악해 타지까지 가서 놀다가 왔다. 대포차가 걸릴까 카메라가 있는 곳은 피해 가거나 둘러 다녔다.


 심지어 대포차를 끌고 두 시간이 넘는 부산까지 간 적도 있다. 밤에 출발해서 포장마차에서 회에 소주 한 사바리(사발) 해주고, 바닷가의 일출을 보았다.


 누가 보면 영화 한 편 찍는 줄 알겠다.

 TV에서나 보던 장면을 연출하기에 충분했던 비행 청소년들이었다.



 



이전 17화 살아가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