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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비 Oct 06. 2023

살아가는 법

보미오면

° 살아가는 법



 중학교가 멀어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농땡이 부리던 보미에게 새벽은 재밌는 것 투성이었다. 매일 자고 싶지 않아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금방 새벽이 되어버렸다. 일찍 잠드는 게 왜 그리 싫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지각해서 혼 지만, 점점 꾀가 생기기 시작했다. 등교 시간을 훌쩍 넘어 선도부나 선생님이 철수한 후에 들어가면 모르는 것이었다. 휑하니 교문이 딱 보였는데, 가방을 메지 않고 들어가면 '학교 앞에 준비물 사러 갔나 보다'라고 생각했는지 걸리지 않았다. 물론 1교시에 어떤 과목의 선생님인지 확인하고 움직여야 했다.



등교시간이 훨씬 지나 등교하면 교문에 서있는 선생님이 들어가기 전까지 의점에서 컵라면에 볶음김치를 먹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간혹 등굣길에 먹던 작은 컵라면이 얼마나 꿀맛이었는지 모른다. 컸다고 볶음김치까지 사 먹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달까? 컵라면한 가지만 먹다 보니 려서 종류별로 보았다. 어떤 컵라면 이렇고 저렇고 다 파악할 정도였는데, 컵라면 회사에서 일했다면 찰떡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앞에는 이렇다 할 분식집이 없어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학교 앞에 하나 있는 슈퍼만이 미의 유일한 등굣길 코스였다. 가끔씩 함께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번갈아가며 바뀌어서 파트너가 질릴 일도 없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달까? 학교 앞 편의점 매출에 일조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수업 종 울릴 즘 학교 문으로 슬쩍 들어갔, 끔은 가방 없이 정문 등교를 했다. 지각을 안 하면 될 것을... 제시간 등교를 해놓고도 라면 먹다가 지각한 적도 많다.




 만만한 시간에는 중간에 나와서 떡볶이를 먹고 들어오기도 했다. 수업을 처음으로 도망 나와 4층짜리 큰 하나로 마트에서 떡볶이 먹었던 도 있다. 아마 처음으로 학교를 탈출해 나온 날이라서 기억에 많이 남아있나 보다.



 수업 도망 나왔을 때는 교무실에서 바로 보이는 정문과 복도 쪽으로 보이는 후문을 나가지 못해 우리가 찾은 곳이 있었다.

 바로 학교 옥상.

 학교 옥상은 3층 교실에서 반계단만 올라가도 나오는 곳이었는데, 항상 굳게 잠겨있어서 못 갔다.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게 문위 쪽에 있던 유리창이었다. 미리 의자를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 있지만 수업을 도망갈 수 있던 유일한 곳이었기에 기꺼이 준비했다.


 처음으로 옥상을 밟은 날은 참 낯설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 곳이라서 그냥 날 것의 옥상이었다. 눈 오면 눈이 쌓이고, 비 오면 빗물이 고이는 그냥 옥상. 거뭇한 곰팡이들이 있어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자주 가지는 않았다. 입장하는 수고로움을 채울만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장 위층인 교실에서 한 층만 올라가면 나오던 옥상은 우리의 아지트로 쓸 수 없었다. 정이 안 가기도 했지만, 탈출하기 위해 가져다 둔 의자가 선생님한테 걸렸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는 보육원의 뒷산을 넘으면 바로 학교가 나왔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던 보미의 등굣길이었는데, 선생님들 제일 가까운 녀석이 가장 늦게 온다고  정도였다.


  아침이 되면 보미에게 문자 한 통이 날아온다.



'김피토(김치피자토스트) 3, 참치(주먹밥) 1, 김치 (주먹밥) 2......'



 등교 시간을 훌쩍 넘기고 교문에서 선생님이 들어가면 보미는 움직인다. 주문받은 대로 음식을 사서 뒷산을 넘었다. 교문으로 가면 교무실에서 보이니 정문 등교는 불가했고, 산을 넘어서 학교에 가야만 했다. 어릴 때부터 놀던 뒷산이라 산을 넘는 건 어렵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 주문받은 것들을 풀어놓고서 돈을 수거했다. 생각해 보니 셔틀인데?




 담임선생님은 보미가 지각을 자주 해서 뒷번호인 소민이를 매일 우리 집으로 출근시켰다. 자고 있는 보미를 깨워오라는 선생님의 특명이었다.

 소민이는 다른 보육원 친구여서 어릴 때부터 봐왔고, 중학교도 같이 나온 데다 마냥 언니 같은 반 친구였다.



"보미~ 아침에  좀 일찍 인나면 안 되나?"


 부탁도 받았지만 당시에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의지는 있지만 행동이 안된다며 사과를 했다. 고등학생 때는 수면제를 먹으며 잠을 잤기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는 건 힘들었다.








보미는 중학교 친구 세명과 같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충분히 친구사이가 유지될 줄 알았고 걱정도 없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서 보미만 동떨어지게 되었다.


 이유는 많았다.

 집이 학교 바로 앞이어서 버스 탈 일이 없었고, 등하교를 같이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중학교 친구들은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보미는 같은 반인 다른 친구들과 노는 일이 많아졌다.



 이 상황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첫날에는 중학교 친구들과 놀았고, 밤에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놀았다. 둘째 날에는 어디에 껴야 할지 조금 난감했다.


 여기 끼기에도 타인 같았고, 저기 끼기에도 타인 같아서 그냥 버스에서 잠을 잤다. 어색한 상황 회피하려고 도망쳤지도 모르겠다. 같이 가자는 친구있었지만 그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눈치 보고 싶지 않았다. 마침 밤새 화투 점 본다고 인기가 많았던 터라 피곤해서 차에서 잠만 잤다.


 다시 밤이 되면 이 방이고 저 방이고 술 파티가 벌어졌,

선생님들도 수학여행 초에 하는 가방검사는 헛된 일이었다는 것을 느낀 듯 보였다. 우리는 지나가던 대학생에게 부탁해서 술을 샀고, 창문으로 줄을 내려 묶어 올렸다.


 그 시절 공부 못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여서 중학교의 문제아들이 많았고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 역시 많았다. 창문에 덕지덕지 붙은 채 방에서 얼마나 피웠는지 모른다.

 밤에 신나게 놀아서 좋다는 제주도 구경을 못한 게 너무 아깝기만 하다.




 보미는  무리에 머물지 않았다. 물론 보미 친구들은 있었지만 무리에서만 있는 게 아닌, 이 무리들과도 놀고 저 무리들과도 방랑자 같았다. 중학교 친구들이 있고 고등학교 친구들도 있었지만, 더해서 댄스팀 멤버와 방송부 친구들, 피시방 친구들까지 어떤 무리에 끼어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중학교 친구들과는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지 않았고, 고등학교 와서 놀던 친구들과는 계속 같은 반이 되었다.

 일 학년 때 눈만 마주쳐도 서로 위아래로 훑으며 욕하던 친구는 이학년, 삼 학년 때 같은 반 짝꿍을 하면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서로 욕하던 우리가 가장 친해진 건 항상 이야기해도 신기한 일이다.





  인간관계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 생각대로 살지 않으니,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 이리 데이고 저리 치이며 상처받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보미가 말할 사람은 없어서 혼자 달랬고 울었다.


 아마 커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자기 체면을 걸면서 스스로 상처받음을 달랬고 티 내지 않았다. 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하나하나 상처받고 배웠다. 그 과정 속에서 사람에게 집착하지 않는 법 역시 훈련했다.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에 혼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상처받은 마음을 보미는 혼자 삭히고 삭혔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계가 참 피곤했다.

 어디 뚝 혼자만 떨어뜨려졌으면... 하고 매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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