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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비 Oct 03. 2023

일탈

보미오면

° 일탈



 눈병이 유행일 때였다. 그냥 정당하게 결석해도 되고 얼마나 좋은가? 보미는 눈병 걸린 친구들 눈에 눈을 마구 비볐다. 이마를 잡고 나쁜 세균이 오라고 얼마나 적나라하게 비볐는지 말도 못 한다. 그저 학교에 안 오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바보짓이었다.

 눈병으로 조퇴를 하고 노래방에 있다는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다들 눈병으로 조퇴해서 눈은 빨갛지만, 남녀 학교 구분 없이 몰려 놀고 있었다. 어린 우리들에게 눈병은 그저 학교를 빠지고 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서 눈병 걸린 학생들도 등교를 하라고 방침을 바꾸었다. 학년 상관없이 눈병 걸린 학생들을 한 교실에 가둬버렸는데, 눈병 걸린 아이들이 사고뭉치들인 것으로 보아 모두 자진해서 걸린 것이 분명했다. 이러니 방침을 바꾼 학교도 이해는 갔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보미의 특기인 드름 짜기도 하고 귀도 파줬다. 실핀으로 후배들 이마를 얼마나 짰는지 다들 이마가 울긋불긋했다. 이런 것이 왜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귓밥 많은 아이들 파 줄 때 희열을 느꼈다. 한참 사춘기라서 여드름도 많을 때인데 바늘로 살짝 찌르고 실핀의 둥근 부분으로 꾹 누르면 빵 터지는 것도 재미있었다. 정말 생각해 보니 이상한 특기였다.



 점심시간에도 일반학생들이 식당에서 빠지면 눈병반이 가서 먹었다. 학년 구분 없이 함께하는 점심시간도 재미있었다. 공포 이야기도 하고 비디오도 보고 침묵의 공공칠빵 게임을 하다가 너무 웃어서 여러 번 경고를 받았다.

눈병 걸려서 갇혔으면서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는지 모다.




중학교 3학년. 보육원에 농땡이 잘 부리는 오빠의 친구 대진이 오빠를 알게 되었다. 주위에서 들어보면 무서운 사람이라는데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따뜻했다.

 지나가다가 생각났다는 말로 당시에 유행했던 매운 어묵이나 간식을 한 봉지 가득 사주 집 아이들이랑 먹으라 들려 보냈다.

한밤중에 연못에서 수영하는 오빠들을 보며 미쳤다고 잔소리도 하고, 깜깜한 초등학교에서 과자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노는 오빠들이 어린아이 같 세 살 어린 보미는 잔소리쟁이가 되었다. 놀이터 돌 테이블에 앉아 하늘을 보며 무슨 이야기를 그리했는지... 하늘이 예쁜 건지 같이 있는 사람이 좋아서인지 밤하늘이 무척 예뻤다.

항상 보미가 다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보였고,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터치 한번 하지 않았다. 보미가 소중해지는 느낌이랄까? 얼마나 보미를 생각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중과 싸울 때 보미의 방패막이되어 주었던 대진이 오빠... 오빠와 특별한 건 없었다. 사귀자! 너 좋아해! 이런 식의 고백도 없었다. 딱히 말하지 않아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지만, 보미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많은 데다 애매한 관계에서 먼저 고백할 자신도 없었다.

 먼저 고백해 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왜 좋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옛 일기장을 꺼내보는 지금에서야 미련이 남는다. 그냥 사귀어 볼걸... 먼저 고백해 볼걸...

보미의 마음을 사정없이 두드려대니 안 흔들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오빠는 끝까지 고백하지 않았고, 보미 역시 고백하지 않았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서인지 아련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보육원에서 에어로빅을 시작으로 유도와 스포츠댄스를 잠깐 다. 깊이 배우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살짝씩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 조회가 있으면 전교생 앞에 나가 국민체조를 했고, 춤추는 일이 있을 때면 빠지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 같이 놀던 친구들이 춤까지 잘 추면서 댄스팀을 만들었다. 나름대로 하교 후 연습을 하며 처음 나가는 축제를 준비했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친구들끼리 하는 장기자랑으로 했다.

  노래도 춤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할 틈 없 한 친구가 노래를 믹싱 해서 CD를 구워왔고, 춤 잘 추는 친구들이 춤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해서 축제를 나갔는데 상을 받았다.


 우리는 그저 놀라고 신기했는데 주위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삼 학년 때에는 대상을 받았는데 다른 학교 학생들도 와서 소문이 났고, 초청공연 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시 축제 행사에서 공문으로 우리의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그래서 공식적인 외부 공연할 수 있었는데 수업까지 빼주다 보니 수업 듣기 싫은 보미에게 아주 좋은 기회였다. 덤으로 작지만 소소한 용돈까지 챙길 수 있으니 안 할 이유는 없었다. 

열심히 준비해서 무대에 올라갈 때에는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갈까 걱정스러웠다. '이러다가 심장이 터져버리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크고 빠르게 뛰었으니 말이다. 정신없이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면 실수한 부분이 생각나서 아쉬웠고, 오분의 공연을 위해 오랜 시간 연습한 것이 허무했다. 하지만 끝이 났고 연습 지옥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시원하기도 하였다.

 처음 멤버는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최종 남은 멤버는 네 명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찢어진 우리는 시 댄스팀이 되어 공연을 했다. 남중, 남고에 초청공연을 갈 때면 이름 부르는 고함소리와 함성소리에 어깨가 절로 올라갔다. 축제 때에는 남자들이 몰려와 이름을 부르면 뿌듯함과 벅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추면서도 보미의 큰 콧구멍이 더 커지진 않을 코에서 최대한 힘을 빼려 노력한 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사진을 보면 큰 콧구멍이 최대 커져있는 것이 못생겨 보였기 때문이다. 예쁘게 보이려는 혼자만의 노력이었다.



 사실 보미는 엄청 잘 추는 건 아니었다.

 일반 친구들보다는 잘 췄지만 멤버들과 동영상을 찍어 확인하면, 다른 멤버들에 비해 눈길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다섯 번만 해도 되는 것이 보미는 열 번, 스무 번 해야 했다.

 성인이 되고서야 문제점을 알았지만 보미의 댄스 생활은 학창 시절로 끝이 났다. 팔, 다리에 힘을 확실히 줬어야 했는데 바람 빠진 풍선 같았던 이유를 늦게 알아서 아.

 그래도 재미있고 멋진 활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빠질 때 명분이 있는 것도 좋았고, 춤추는 애라는 꼬리표가 달린 것도 좋았으니까.


고등학교 축제 때는 방송부여서 카메라 잡기도 바빴는데, 댄스팀 춤까지 춰야 하니 보미보다 바쁜 사람은 찾기 힘들 정도였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는데 공부 빼고 다 잘했다면 믿겠느냐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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